게시판 즐겨찾기
편집
드래그 앤 드롭으로
즐겨찾기 아이콘 위치 수정이 가능합니다.
히데요시의 조선출병 목적에 대한 잡설.
게시물ID : history_17509짧은주소 복사하기
작성자 : NoirCafé
추천 : 8/11
조회수 : 1867회
댓글수 : 14개
등록시간 : 2014/08/02 18:15:56
썰을 풀기전에 우선 짚고 넘어가야할 점은 히데요시는 그 출신성분이 미천했다는 점입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태합의 지위에까지 올랐으니 별 대수는 아니지 않겠는가라는 반론이 있을수도 있겠지만 히데요시에게 있어서 이는 컴플렉스로 작용했고, 실제 그의 정치에서도 이가 여과없이 드러나기도 합니다.

사실 '정상적인 상황'이었으면 결코 일본의 패권을 잡을 수 없었던 히데요시가 뜬금없이 일어난 혼노지의 변과 심복 서포터인 칸베에의 신급 어시 덕으로 노부나가가 이루어놓은 모든것들을 접수하고 토쿠가와를 포함하여 다테, 호죠 등 쟁쟁한 경쟁자들을 굴복시켜 결국 일본의 통일을 완성합니다. 그렇지만 약육강식의 법칙이 철저히 적용되었던 일본 전국시대가 종결된지 얼마 되지 않은만큼 아직도 전국시대에 형성된 역내질서는 잔존해 있었고, 이는 토요토미 가문의 세력이 약해지면 언제든지 잠재적인 적수가 이가 누리던 기득권을 탈취할 수 있음을 암시했습니다.

이러한 토요토미 가문의 정통성 부족문제, 그리고 일본의 국내상황이 히데요시로 하여금 조선출병을 결행하게 한 배경이라고 할 수 있겠습니다.

사실 히데요시의 조선출병 목적이 무엇이었나의 설은 분분한데, 여기에는 히데요시 노망설, 무사개체수 감소책설, (전국무사들에게 배분할) 영지확보설 등이 존재합니다. 필자의 판단에 의하면 여기서 가장 유력한 설은 영지확보설이고, 좀 더 정확하게 말하면 '히데요시의 측근들에게 분배할' 영지확보가 조선출병의 주 목적이라고 할 수 있겠습니다.

 히데요시가 측근들에게 힘을 실어주기 위해서 조선출병을 결행하였다는 설은 히데요시가 임진왜란 당시 편성한 엔트으리를 보면 보다 더 명확해지는데, 우선 임란당시 제8군 대장이기도 한 우키타 히데이에는 불과 20세의 나이에 임란출정군의 총사령관으로 임명되었습니다. 우키타 가문은 히데요시의 빽을 통하여 급성장한 토요토미 가문의 최고 충신가문 중 하나로, 경험이 부족하고 어린 그가 일본의 쟁쟁한 무장들을 제끼고 이 자리에 오른것은 전적으로 이러한 백그라운드에 기반한다고 볼 수 있겠습니다. 그 이외 사령관들도 크게 다르진 않은데, 선봉대인 제1군과 제2군 사령관인 코니시 유키나가와 카토 키요마사도 각각 상인, 양민고아라는 하급신분에서 시작하여 히데요시의 신망을 얻어 일본전역의 중박 다이묘로 성장한 인물들이며, 타군 사령관들도 측근 혹은 최소 히데요시를 지지한 다이묘로 채워졌습니다.

 (여담으로 이 관점에서 보면 최소한 무사개체수 감소설이 그리 합당하지 못한 설인게, 히데요시가 무사개체수를 감소시킬 목적으로 임란을 일으켰다면 본인의 정권을 받쳐주는 측근들의 무사들이 아닌, 오히려 라이벌로 성장할 위험이 있는 영주들의 무사를 전장으로 보냈을 것이기 때문입니다.)

 히데요시가 측근과 우호적인 다이묘들로 원정대를 편성한 그 목적은 이들로 하여금 전공을 세우도록 하여, 차후 있을 영지분배를 이들에게 유리하게 할 명분을 획득하기 위함에 있으리라고 쉽게 짐작할 수 있을 것입니다.
 물론 히데요시가 '적대적인' 영주들을 임진왜란 당시 전혀 투입하지 않은 것은 아닙니다. 진주성에서의 패전보고를 받고 빡친 히데요시는 적성 다이묘인 다테 마사무네를 진주성 전선에 투입시키기도 하였습니다. 다만 다테가 참가한 제2차 진주성 전투에서 일본군이 승리하자 히데요시는 곧바로 다테에게 본국으로의 소환령을 내리는데, 이는 다테와 같은 부류가 임진왜란에서 큰 전공을 세우기를 바라지 않았던 히데요시의 속내를 보여주는 단면이라고 할 수 있겠습니다.

 이외에 히데요시가 스페인 마닐라 총독부에 으름장을 놓은 사건이라든지, 명국과의 교섭에서 고자세로 일관한 배경또한 외국으로부터 그 권위를 인정받아 취약한 자신의 정통성을 보강받는것을 원했을 그의 형편에 있었습니다. 

당시 히데요시는 연로한 상황이었습니다. 물론 자신이 살아있는동안은 그가 구축한 '토요토미 왕국'이 온전하게 보전될 것이나, 그의 사후에도 이가 온전하게 유지될 수 있다고 확신이 들지 않았을 것입니다. 임진왜란은 이러한 히데요시의 '왕국 공고화'에 그 배경이 있다고 보는 것이 옳지 않을까 합니다. 

사망 직전에 히데요시는 오대로(고다이로)에게 자신의 아들인 히데요리의 안전을 보장할 것을 약속하는 서약을 할것을 여러차례 강요하고 결국 사망합니다만, 결국 히데요시가 바랬던 목적은 이루지 못했습니다. 이러한 이유로 단순히 히데요시가 노망이 들어서 임진왜란을 일으켰다는 주장또한 사실과는 거리가 멀다고 생각합니다. 히데요시가 진짜 노망이 들었다면 이렇게 일관적인 행동을 취했을 리가 없으니까요.


전체 추천리스트 보기
새로운 댓글이 없습니다.
새로운 댓글 확인하기
글쓰기
◀뒤로가기
PC버전
맨위로▲
공지 운영 자료창고 청소년보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