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병신과 스카이콩콩.SSul
게시물ID : humordata_1751027짧은주소 복사하기
작성자 : 그냥노동자
추천 : 10
조회수 : 2395회
댓글수 : 5개
등록시간 : 2018/05/09 16:02:02
 
 
최근 원치않게 부족한 수면시간을 갖게 된 본인은 심사숙고끝에 직업을 해체하기로 결정하려다가...
마이너스 통장을 볼때마다 마음을 다잡고 다시 일터로 향하곤 한다. 그래 빚이 있어야 사람이 부지런해진다.
 
사실 꼭 직업을 가질 필요는 없다고 본다.
자유분방하게 산다고 무장경찰 1개 중대가 쳐들어와 잡아가는 세상도 아니고, 저자식은 직업이 없으니 마호메트께
제물로 바쳐야 한다 같은 소리를 해대는 광기어린 군중이 난입하지도 않을테니까. 평화롭게 살아도 좋지 않을까.
 
내가 직업이 없어도 여전히 계절은 바뀔것이며, 명륜동에 있는 작은 빵집의 아가씨는 여전히 케이크를 구울 것이다.
지하철은 오늘도 같은 안내방송 멘트를 내뱉으며 멘트의 획수보다 열곱절은 많은 사람을 쏟아낼 것이다.
김 아무개씨는 월급날이라며 술을 마시다 와이프 전화를 받고 한숨쉬며 들어갈 것이다. 덕계동 사거리에서 난 차사고
당사자들은 니가 잘했네 내가 잘했네 하며 보험사를 부를 것이다.
 
그런데 내가 굳이 직업을 가져야 하는 이유는 평범한 다른 사람들의 삶을 위해서가 아니라 내 자신을 위해서다.
명륜동에 있는 빵집에서 빵을 사먹는것도, 지하철을 타는것도, 김 아무개씨 옆테이블에서 술잔을 기울이는 것도
덕계동 사거리에 발생한 사고를 지켜보며 '저거 저 또 신호 안지켰네' 하고 혀를 찰 수 있는 것도 내가 직업을 가져야
가능한 것들 이니까.
 
 
 
그리고 내가 돈을 벌어야 하는 이유 중 가장 중요한 것 하나는 쪽팔리지 말아야 하기 때문이다.
 
 
 
 
오늘의 이야기는 병신과 스카이콩콩.
 
 
 
 
다가오는 여름맞이 귓구녕 써스펜스를 경험한 하루가 또 지났다.
매일같이 귓구녕에 박히는 그 서슬퍼런 욕을 들어가며 일을 하고 있노라면 처음에는 무섭고 내가 왜 이래야만 하나
하는 자괴감이 들었지만 그것도 지금은 꽤 익숙해져서 오른쪽 귓구녕과 왼쪽 귓구녕을 관통시켜 KTX를 뚫어놓은 상태다.
대뇌를 거치지 않고 오롯이 그 욕 속에 담겨있는 작업지시 내용만 걸러들으면 세상 이렇게 편한데 왜?
우리 열차는 왼쪽 귓구녕을 출발해 오른쪽 귓구녕까지 정차없이 운행할 예정입니다. 이런느낌.
 
라고 말하지만 사실 지금 좀 목끝까지 욕이 차오른 상태다. 장기하 부르고싶다. 달이 차오른다좀 불러봐라고.
 
영화 사도에 나오는 송강호처럼 귀를 물로 씻어내고싶은 마음 간절하지만, 사실 욕을 들어쳐먹은 건 내 고막이지
귀는 아니지 않은가. 고막이 무슨 젠하이저 mx200 이어폰도 아니고 탈부착식이 아닌게 좀 아쉽다.
 
아무튼 그딴 욕을 쳐먹고 들어와 가만히 씻는데 전날 과음을 좀 했는지 아침부터 설사가 멈추지 않았다.
아침에만 화장실을 두 번 갔다. 일이 일찍 끝나서 화장실을 또 한번 가고, 이번에 가면 네번째인데 이제 쏟아낼 것이 없으니
아마 곱창이 나오지 않을까 그런 생각을 하며 화장실에 들어가 마침내 일을 보는데...
 
 
 
여러분들이 생각한 그대로 화장실에는 휴지가 없었다.
혼자 사는데 뭐 밖에 나가서 가지고 오면 되지 않느냐 라고 반문하실 분들이 있을지 모르겠으나, 우리집 화장지 보관 장소는
전편에서도 수없이 말한 바로 그 앞 원룸창문과 맞닿아있는 그 베란다였다.
눈물을 머금고 팬티를 올린 채 아무일도 없는 듯이 걸어가 엉덩이 골 사이에서 느껴지는 그 더러운 감촉을 느끼며 화장지를
가져온 후 닦을 마음으로, 팬티를 올리려고 하는데 불현듯 머릿속에 스쳐지나가는 내면의 한마디가 날 주춤거리게 만들었다.
 
 
'너 세탁기에 일주일 전에 산 흰색 와이셔츠 들어있다. 잘생각해라. 흰색이다. 너 그거 얼마주고 샀더라?'
 
 
난 내 세탁기와 비트의 세정력을 믿기로 했지만 내면에서 또다른 목소리가 들려왔다.
 
 
'그 옷 입고 나가면 넌 똥묻은 팬티가 생각날거야. 그래도 좋냐?'
 
 
와 진짜 노답 내면의 나새끼.
그렇다고 팬티를 입지 않은 채 가자니 덜렁덜렁한 내 방울이는 어쩔 것인가.
나는 굳게 마음을 먹고 마침내 변기에서 일어서 물을 내린 뒤 팬티를 양 무릎에 걸치고 콩콩 뛰기 시작했다.
마음속으로는 콩콩이라고 생각하는데 쿵쿵이라는 소리가 들린다.
 
 
'넌 다섯살짜리 애가 아니니까 쿵쿵이지 이 병신아 깔깔'
 
 
"닥쳐라 내면의 나새끼야 ㅈ되는꼴 보고싶냐?"
 
 
'ㅈ되는건 너지 내면의 너가 아니니까 깔깔'
 
 
아무튼 그렇게 쿵쿵 거리며 뛰어가고 있는데 문득 현관문 비밀번호 누르는 소리가 눌렀다.
 
아...
 
 
참고로 우리집 비밀번호를 아는건 직장 동생 한명밖에 없다.
하도 뻔질나게 우리집을 드나들다보니 아예 그냥 비밀번호를 줘버렸고, 종국에는 내가 1박 2일로 놀러간 그날도
우리집에와서 쳐자고 친구들을 불러 닭까지 시켜먹고 갔던 그놈이다.
 
 
나는 우레와 같이 외쳤다.
 
 
"지금은 안된다 이새끼야!"
 
 
"뭐가 안돼요?"
 
 
"어어 이새끼 어어어어어"
 
그러나 지옥의 문은 열렸다.
 
나는 휴지를 잡은 채 양 무릎에 팬티를 걸치고 엉거주춤한 자세로 뒤돌아 그놈을 쳐다봤고,
그놈은 '아 이양반이 드디어' 하는 탄식어린 표정으로 날 쳐다봤다.
 
 
"그니까네, 이기 내가 우째된거면..."
 
 
"됐고요 더러우니까 빨리 처리하소. 내 나가있을게요. 아 존나 장검사좀 받아보라니까요 똥을싼거고 내장을 싼거고.
뭔냄새고 이게"
 
 
쿵- 소리와 함께 삐릭 하고 문닫히는 소리가 났고, 나는 나지막히 중얼거렸다.
 
 
"뭘 싸긴 똥을 싼거지 이새끼야..."
 
 
나는 모든게 끝났다는 마음에 힘없이 휴지를 잡고 터덜터덜 화장실로 향했다.
 
 
 
 
이 이야기는 내가 지금껏 그놈에게 똥카이콩콩으로 각인되어 있는 이유가 무엇인지에 대한 이야기다.
 
 
 
 
 
 
 
 
 
 
에필로그
 
 
 
그날 저녁, 나는 영화를 틀어놓고 그놈과 함께 피자에 소주를 마시고 있었다.
 
 
"...그러니까" 놈이 소주를 털어넣으며 입을 떼었다.
 
 
"...그래서 그짓을 했다고요?"
 
 
나는 소주를 털어넣으며 나지막히 말했다.
 
 
"...어"
 
 
"...그럼 그냥 팬티를 벗고 빠르게 달려가 집어오면 되잖아요..?"
 
 
 
아뿔싸.
그렇구나...
 
 
 
 
유난히도 추운 5월의 밤이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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