명성황후에 대해 인터넷에 사실과 다른 지나친 비난과 날조가 많이 보이는데 명성황후가 국고를 비게 했다는건 사실이 아닙니다. 오히려 당시 외국 인사들의 증언에 의하면 명성황후는 일국의 여왕치고 대단히 검소해 보였다고 합니다. 실제로 명성황후가 모은 비자금은 거의 쓰이지 않은채 엄청난 금액으로 남아 고종에게 돌아갔고, 이 돈들은 후에 독립운동 자금으로 쓰이게 됩니다. 명성황후가 정권을 자기쪽 사람으로 교체해 나간것도 당시 정권엔 흥선대원군의 세력이 대부분 차지하고 있어서 고종을 뒷받침할 자기쪽 세력으로 교체한거라는 의견도 있습니다. 일본이 명성황후를 시해한것도 당시 명성황후가 일본에 엄청난 위협이었기 때문입니다. 당시 일본이 청일전쟁에서 승리하여 한반도에서 일본의 세력이 강대했는데 명성황후가 권력이나 물욕만 채우려 했다면 일본에 협조하는 친일파가 됐을겁니다. 하지만 러시아 세력을 이용하여 일본을 몰아내려고 했고, 이건 확실히 일본에겐 큰 장애물이었기에 명성황후를 시해한겁니다.
왕비 민씨는 그나마 나았지만 외척인 민씨 일가의 행동은 쉴드 쳐줄 수가 없죠. 하지만 개똥도 약에 쓸려고하면 없다고 명성황후의 사망 이후 고종이 모든 추진력을 잃은 걸보면 명성황후 특유의 추진력이나 줄타기능력은 상당했다고 봅니다. 최순실을 잃은 박근혜가 폐인이 된 걸 보면요. 그런데 명성황후가 살아남았더라도...조선에게 이득이 되었을지는 모르겠습니다. 일찌감치 대세를 인정하고 좀 더 철저하게 일본 왕실과 융화하는 정책을 취했을지도요. 이러니저러니 해도 조선왕족들은 상당히 일제 정부로부터 감시와 우대를 받았습니다.판 읽기가 우수한 그녀였으니 좀 더 많은 잇권과 조선 왕실만의 생존을 추구했을지도요
민비가 날조라.....ㅋㅋㅋ민비와 그외척은 탐욕은 임오군란으로 이어지면서 조선의 멸망으로 이어지는 시발점이였죠. 1년동안 봉급도 안주다가 1번 주려는데 그거도 쌀반 모래반...그 나머지 쌀은 누가 처먹었나요.그 쌀을 나눠주는게 관직에 있던놈이 민씨였죠 고종의 비자금이 민비가 줬다는 증거가 있으신가요??? 설령 진짜 민비가 줬다고 해도, 나라가 망해가는데 매관매직하고 자원 팔아먹으면서 비자금을 만든걸 칭찬한다??? ㅋㅋ 거기다 자기를 호평한 책을 쓴작가에게 결혼축의금을 100만냥 주는년이 정상인인가..??? 처음에 일본에 붙었다가 청에 붙었다가 그다음은 러시아 붙었다가..민비 죽고나서는 남은 민씨들은 일본에 붙었죠, 친일인명사전에도 올라가있는 부분이니 부정할게없죠...민비는 프랑스처럼 국민들손에 죽었어야되는데 외세에게 죽음을 당했기때문에 그나마 면죄부를 받는거 뿐입니다.
원래 미국은 먼로 주의의 전통에 입각해서 유럽이나 아시아에 개입하지 않는 주의. 그런데 당시 대통령인 시어도어 루스벨트는 제국주의, 팽창주의에 인종개량주의의 신봉자, 그리고 일빠였음. 일본은 급격하게 서구화를 이루었으니 '그보다 미개한' 한국을 점령해도 된다고 믿었고 실제로 일본의 조선 식민지화를 묵인했음(가쓰라-태프트 밀약). 그리고 그 밀약을 맺고 관광차(...) 조선에 들렀던 시어도어 대통령의 딸은 민비의 능 석물위에 올라탄 사진까지 찍고 그게 미국 신문에서 실려 구설수에 오르자 그런 적이 없었다고 거짓말까지 했음.
오바마가 대통령이었을때 한국의 대통령은 이명박근혜였다는걸 잊어선 안됩니다.... 누가 미국 대통령이었어도 한반도에서 아무것도 못했을겁니다. 지금 상황은 문재인이 상 다차려놓은걸 트럼프는 숟가락으로 떠먹기만 하는거죠. 만약 홍준표가 대통령이었다면 벌써 트럼프는 한반도에 핵미사일을 발사했을 겁니다.
이 상황을 타개 하려면 50년전쯤부터 유학 보내서 외국과 조약 잘 맺고 서양 문물 공부도 해야하고 권력도 잘 쓸수 있게 잡아야하고 군대도 증설해야하고.... 아니 그런데 조선정부는 세금을 하도 안 걷어서 기근 때 풀 양식도 없는 나라잖아? 이걸 타파하려면 농업개혁을 그 전전부터 해야하고... 농업 개혁을 하려면 과학을 그 전부터 장려해야하고...... 미래를 다 알아도 깝깝하다.
고종도 이거저거 하려다 막 안돼서 최후수단으로 입헌군주정을 한거지 딱히 노리고 한건 아니라고 보이죠.. 그 부인도 외가문제도 있었고.. 흥선대원군이야 권력 쟁취과정이 좀 어려운데다 그 당시 세습권력이 너무 센것도 잇었고 세계열강들의 도굴,종교침략 크리 맞다 보니 엄청 보수 적으로 갈수밖에 없었죠..
정치적으로는 유교원리주의였으나 정조는 사회적 경제적으로는 실학을 밀어줬지요. 당대 보수의 수장이었던 왕이 유교적 스탠스를 포기하기는 어렵고 (특히나 그 이념이 왕실과 왕을 보호하는 논리라면) 정조의 유지를 무난하게 이어나갈 왕이 있었다면 나름 경제적 내실을 다진 조선이 조용하고 차분하게 자본주의로 이행했을지도요. (정조때만 해도 이미 경제력이 신분을 압도하는 시기였죠)결국 세도정치기가 아쉽네요. 백년을 기냥 날려먹음요.
고종은 그래도 할만큼 해보려했죠 말 듣는 신하들 하나 없고 아버지와 부인이 편을 갈라 싸우는 중 나라운영은 커녕 목숨까지 위협 당하는 수준 마지막 희망으로 특사 보냈으나 실패 그래도 끝까지 나라 지키려고 했지만 결국 죽음 야사로 돈 애기로는 일제가 암살했다고 함 (커피에 독을 타서.. 그것에 대한 영화가 가비 라는 영화임) 제대로 교육도 못받고 제대로 된 세력도 없고 끊임없이 나라는 침공당하고 예산은 없고 정말 왕으로써 태어났다면 코즈믹 호러 수준일듯
고종 이새끼는 암군 중 암군이었습니다. 나라가 망하는데도 결국 권력을 손에 놓지 못해 정말 나라가 망했어요. 민비를 악처라고 하는데 결국 민비는 명성황후에 지나지 않았기에 고종을 대리하고 고종이 승인한 아래에서 움직였던 졸에 가깝습니다. 민씨 일족의 악행도 왕권을 강화하기 위해 나대게 둔것에 지나지 않고. 인조는 권력욕심때문에 가족을 차례차례 죽여가는 게 숨막히고 고종은 권력욕심때문에 나라가 망해가게 두는게 숨막히고 그랬어요. 저 두명의 왕에 비하면 다른 왕 세조나 선조 같은 것들은 덜 해보입니다. 이 둘보다 더 한 것들은 조선 공인 막장왕 연산군과 광해군 밖에 없습니다. 사실 고종은 한 짓을 생각하면 광해군이랑 동급이라고 봐도 됩니다. (그런데 연산군보다는 낫다고 생각합니다......)
고종과 민비는 거의 매일 오후에 일어나서 새벽까지 산해진미 + 서양식 연회를 즐겼습니다. 그리고 국가재정 상 봄에 쌀같은거 나눠줄 때 빚을 내는데, 왕실(고종)에게 얻어갑니다. 고종은 조선 왕 중 유일하게 이자를 어마어마하게 받아서, (보통은 빚도 탕감해줌) 나중에 국가재정에서 고종한테 이자 주느라고 다시 고종한테 빚을 냅니다. 이 인간 답이 없습니다.
일제가 명성황후를 왜 시해했다고 생각하십니까? 전쟁할 명분과 구실을 만들려고 시비를 건거죠 그런데 뜻대로 안되니까 국썅ㄴ 이라 당해도 싸다고 왜곡하고... 어째서 요즘사람들이 이완용보다 명성황후를 더 욕하는지 개탄스럽습니다. 1차세계대전의 배후에는 경제공황이 있었지만 실제 촉발된건 왕족 시해로 시비가 붙어서죠. 고종이 분노하고 전쟁을 했다면 국세를 도용한 매국노 보다 민초가 희생됐을겁니다. 매국노들이 기록한건 한줄도 믿지 않습니다
태종이 살았던 시기도 만만치 않은 막장의 세상이었는데.......... 강희제나 태종이 고종이었다면 조선의 운명이 바꿨을지도 모르죠. 일단 태종이 살던 여말선초의 세상 역시 세상의 막장이라고 해도 좋은 중국의 혼란기인지라.... 그리고 고려 역시 제대로 돌아가는 게 없다고 해도 좋을만큼 총체적 부실의 상황이었고. (조선말은 그나마 치안이라도 돌아갔는데 고려말은 외침이 돌아가면서 왔다고 해도 좋습니다) 태종이라면 타고난 승부사였으니 실속없는 전제왕권은 포기하고 실속꽉찬 입헌군주제를 택했을지도요. 입헌군주제의 왕도 시행 초기의 왕은 상당한 권력을 지니며 안정된 말기의 왕도 정통성에 모자람이 없으면 무시못합니다.
저거 빅토리아 조선으로 플레이하면 수많은 버프 퍼부어도 존나 빡셈.... 결국 치트키 없이는 힘듬...존나 비루하게 하루하루 버텨나가다 빡쳐서 치트키써서 중국 때려잡고, 일본 때려잡고 러시아 때려잡아서 중동까지 싸그리 밀고 들어가 유럽에서 깽판친적도 있음 더 웃긴건 치트키 겁나 때려박아도 유럽 이 정신나간 놈들 이기기 졸라 힘듬 특히 프로이센 이놈들이랑 영국놈들......치가 떨리네(유럽 깽판치다 보면 북부 인도랑 중국에서 터지는 반란 크리......캬~~~)
자본주의 맹아론이 사상누각인 이유가 이거죠. 사실 고종이 제정신 박힌 지도자였다고한들 조선이 파국을 피하긴 어려웠으니까요. 조선은 이미 임진왜란 병자호란 이후 시기, 특히 세도정치 때 체질개선의 때를 놓쳤죠. 실학 사상은 자본주의 맹아론의 증거라기보단 그것들이 안받아들여지고 철저히 아웃사이더로 존재했다는 점에서 오히려 조선의 몰락의 증거인 셈이구요
결국 조선이라는 국가 자체가 당시에 국가를 존립하는데 한계가 있었다는 거죠. 국가를 지배하는 이념이 유교정치라는 틀 안에 존재했으니 왕이나 사대부나 모두 그저 구시대의 질서를 지키는 것에만 집중할 수 밖에 없었던 거죠. 그 시기의 다른 국가들은 팽창주의에 열을 올리거나 산업혁명과 자본주의에 근간한 시민국가로 발돋움을 하고 있었으니 더욱 더 게임이 될 수가 없습니다. 지리적 한계도 있었겠지만 시대를 지배하는 이념이 매우 주효하지 않았나 그런 생각을 하게 됩니다..
고종을 보면 정말 리더의 중요성을 느낍니다. 고종은 근본적인 부분에서 이미 선택을 잘 못 했습니다. 나라가 있어야 군주가 권력을 휘두르든 말든 할 수 있는데 권력을 휘두르기 위해 나라를 존치시키려고 발버둥을 쳤네요. 가장 상위에 있던게 자기의 안위와 권력이라서 그걸 느낀 신하들 조차 조선을 포기하게 만들었다고 봅니다. 군주가 나라를 사랑하지 않는고 자기만 살려고 하는데 신하들도 다 자기 살려고 알아서 노력해야하지 않았을까요? 초기에는 나름 청운의 꿈을 가진 인재들도 고종이랑 놀면 몇년뒤 타락하더라구요. 매국노의 대명사 이완용도 시작은 재수없는 샌님엘리트 선비였습니다. 이완용의 인생을 보면 이인간은 나름 장래가 있는쪽에는 충실한 공무원놈으로 일했다고요. 고종이 장래성 있게 보였다면 이놈이 모범적으로 나라를 팔아먹지 않았겠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