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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제가 가장 두려워 했던 독립운동가 - 약산 김원봉
게시물ID : history_17533짧은주소 복사하기
작성자 : 국민행복당
추천 : 11
조회수 : 1060회
댓글수 : 25개
등록시간 : 2014/08/04 00:08:17
(모바일이라 사진자료를 첨부할수 없었던 점 양해바랍니다.) 

 생몰년(1898년 9월 28일~1958년 11월)  

의열단 단장으로써 당시 일본에게 있어서 가장 위험한 인물로 지목됨. 이후 조선혁명간부학교 설립, 민족혁명당 창당, 조선민족혁명당 창당, 조선민족전선연맹 구축, 조선의용대 창군(중국관내최초무장조직) -> 한국광복군으로 합류 하는등 사실상 이 사람을 빼놓고는 1930년대부터 40년대까지의 중국관내(만리장성 이남)에서 있었던 독립운동을 설명할수 없다해도 과언이아님. 

 해방직후 김구에 이어 두번째 개인자격으로 귀국한뒤 여운형의 연설에 감명을 받고 좌우합작운동 조직중 하나인 민주주의민족전선에 합류. 이과정에서 악질 친일계 고등경찰인 노덕술에게 체포되어 빨갱이 두목이라고 불리며 뺨을 맞는등 치욕스러운 고문을 받고 풀려난뒤, 사흘 밤낮을 울었다고한다. 그후에도 계속되는 친일파들과 극단우익 세력의 테러에 신변의 위협을 느껴 남북협상 이후 외당숙 김두봉등 독립운동계 지인들이 많은 북한으로 월북한다. 이후 실권이없고 허울뿐인 노동상, 국가검열상에 오르고 얼마뒤 김일성의 숙청과정에서 '장제스의 사주를 받은 국제간첩' 이라는 죄목하에 숙청당하여 정치범수용소로 끌려간뒤, 분을 이기지 못하고 청산가리를 입에털어넣고 자살했다고 한다.....  

+ 남한내에 잔류해있던 김원봉 유가족들은 6.25전쟁 과정중에서 보도연맹사건에 연루되어 대거 학살당함. 그나마 살아남은 몇몇도 '빨갱이 가족' 이라고 손가락질 받았다.


일제가 가장 두려워했던 약산 김원봉 선생. 그러나 그는 현재 남북 어느곳에서도 인정 받지 못하고있다..  

우리는 그에게 너무도 많은 빚을 지고있는것이 아닐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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