탈리도마이드는 1957년 케미 그뤼넨탈(Chemie Grünenthal)이라는 제약회사에서 만들어졌습니다. 좋은 수면제이자 임산부들의 입덧에 효과가 있었던 이 약은 콘테르간(Contergan)이라는 이름으로 의사의 처방 없이도 구매 가능했었습니다. 제약회사는 이 약이 임산부에게 안전하다고 광고를 했습니다. 하지만 이 약을 복용한 산모에서 태어난 신생아들의 모습은 충격적이었습니다. 사지가 없거나 짧은 아이가 태어난겁니다.
[ 탈리도마이드 베이비 (Thalidomide baby) ]
물론 처음 기형아가 태어났을 시 탈리도마이드가 원인인지 바로 발견하지 못했습니다. 결국1961년 독일과 전세계적으로 판매금지를 할 때까지 5년여간의 시간이 걸렸고, 이 때문에 유럽에서 8천여명, 전세계적으로 46개국 1만명이상의 기형아가 태어났습니다.
주목 해야할 점은 전세계적으로 기형아가 발생할 시 미국에서는 극소수의 문제만 있었다는 겁니다. 당시 미국식품의약품국(Food and Drug Administration : FDA)에는 약리학자였던 프랜시스 올덤 켈시가 (Frances Oldham Kelsey) 심사관으로 있었습니다.
[ Dr. Frances Oldham Kelsey ]
켈시 심사관은 1960년 FDA에 입사하였고, 1개월 후 첫 심사들 중에 하나가 바로 탈리도마이드였습니다. 이 1개월의 차이가 미국의 아이들을 구하게 됩니다. 당시 탈리도마이드는 캐나다를 비롯 유럽 20여개국과 다른 여러나라에서 승인되어 판매되고 있었습니다. 하지만 그녀는 탈리도마이드의 안전성에 의구심을 가졌고 제조회사의 다양한 압박 속에서도 1년여기간 동안 미국내 판매를 거절하게 됩니다.
그렇게 시간이 가는 와중에 “British Medical Journal”에 Leslie Florence박사가 탈리도마이드를 오랫동안 복용한 환자에서 말초신경염이 발생한 것을 발표합니다. (http://www.ncbi.nlm.nih.gov/pmc/articles/PMC2098660/?page=1) 매우 짧은 글이었지만 이 것을 본 켈시 심사관은 탈리도마이드의 미국판매대행업채이자 승인을 신청한 “Richardson-Merrel”사에 이 부작용에 관한 정보를 요청합니다. 그리고 탈리도마이드가 신경을 손상시킨다면 이 약은 임산부내의 태아발달에도 영향을 미칠것이라 의심합니다. 그리고 이 의심은 증명됩니다. 유럽에서 팔다리가 짧거나 없는 아이가 갑자기 기하급수적으로 태어나게 됩니다.
[ Dr. Widukind Lenz ] 1961년 독일 소아과 의사인 Widukind Lenz 박사가 이 현상이 탈리도마이드에 의한 것임을 알아내고 케미 그뤼넨탈 회사에 경고합니다. 그리고 10일만에 가게에서 이 약은 철수합니다. 물론 회사는 지속적으로 이의를 제기했습니다만 1962년 “Richardson-Merrel”사는 미국 FDA 승인을 포기합니다.
2. 2006년 서울아산병원 홍수종 교수는 기이한 질병을 보게 됩니다. 그가 진료하던 환아중에 급속히 악화되는 폐질환을 가진 아이들이 있었습니다. 소아청소년과 호흡기알레르기 분야의 전문가였던 홍교수가 어떻게 해결해보기도 전에 아이들은 죽어갔습니다. 이상하다고 느낀 홍교수는 타병원에 연락을 돌려서 비슷한 증상이 있는 환아가 있는지 확인해봅니다. 결국 2006년 3월에서 6월사이 자신이 본 12명의 환아 이외에 서울대병원에서도 3명의 환아가 있는걸 확인하고 [2006년 초에 유행한 소아 급성 간질성폐렴]이라는 논문을 발표합니다. (논문링크 : http://synapse.koreamed.org/Synapse/Data/PDFData/0052KJP/kjp-51-383.pdf)
간질성 폐렴이란 것은 염증으로 인해 폐 조직자체가 망가지고 섬유화되는 질환을 의미합니다. 스펀지 같이 부드럽고 수축,팽창을 해야하는 폐가 딱딱해지고, 산소교환을 해야할 폐포가 망가져 환기도 제대로 안되는 상황입니다. 2006년 논문이 발표된 이후 동일한 증상을 가진 환아들의 이야기가 홍교수에게 전해졌습니다. 1년이 지난 2007년 초에도 똑 같은 증상을 가진 간질성 폐질환 환아가 홍교수에게 찾아왔습니다. 그래서 그는 2008년 8월 전국의 병원에 설문을 돌립니다. 이때 모인 환아는 23개 병원에서 78명이었고 36명은 사망한 상태였습니다. 그렇게 [급성 간질성 폐렴의 전국적 현황조사]라는 두번째 논문을 발표합니다. (논문링크 : http://synapse.koreamed.org/Synapse/Data/PDFData/0052KJP/kjp-52-324.pdf)
여전히 2건의 조사에서 의심할만한 공통된 바이러스나 세균은 발견되지 않았습니다. 문제는 해결되지 않았는데 매년 비슷한 환아는 찾아왔습니다. 그러던 와중에 2011년 산모들이 유사한 증상으로 사망하는 사건이 터집니다. 그리고 결정적인 단서를 발견합니다. 조직검사결과 염증의 시작이 기관지 주변이었고, 기관지 근처의 폐포만 손상이 있었던 겁니다.
숨을 쉴 때 무엇인가가 기관지로 들어가서 문제가 생겼을거고, 그래서 같은 공간에 있었을 가족들이 영향을 받았을거라고 생각합니다. 이 내용이 질병관리본부로 넘어갔고 2011년 역학조사에서 가습기 살균제가 문제라는 것을 발견합니다.
3. 2016년 5월 2일 한국역학회는 서울지방검찰청에서 요청된 질의 사항에 대해 답변서를 작성해 제출합니다. 몇몇 질문과 답변은 증상, 진단기준, 역학조사의 타당성등에 대해 이야기합니다. 그 중에 핵심적인 부분을 몇 개 소개하자면
[문] 해당 사건에서 폐질환의 원인으로 ‘바이러스 또는 세균 감염’으로 발생할 수 있는가? [답] 본 역학조사에서 혈청학적, 호흡기 검체, 세포배양 등 임상적으로 가능한 모든 검사를 실시한 결과로 볼 때, 본 환자들의 발병 원인으로 [현재까지 알려진 바이러스 또는 세균 감염의 가능성을 배제]할 수 있다고 판단됨.
[문] 가습기 살균제에 대한 교차비 47.27이 이사건 폐질환과 가습기 살균제 상호간의 인과관계를 인정함에 있어서 어떠한 의미를 갖는가? [답] 드문 질환인 경우 산출된 교차비를 상대위험도로 해석할 수 있음. 즉, 본 역학조사에서 가습기 살균제를 사용하면 사용하지 않은 사람에 비해 원인 미상 폐질환이 47.27배 발생한다고 해석할 수 있음. [47.27배라는 교차비는 가습기 살균제와 폐질환의 관련성 강도가 매우 높다는 것을 의미하며, 가습기 살균제와 원인 미상 폐질환 발생 간의 인과관계를 지지하는 강력한 근거임.]
[문] 이 사건 폐질환이 Signature disease(오로지 특정한 한 요인의 노출하고만 연관성이 있는 질환)에 해당한다고 볼 수 있는지, 볼 수 있다면 그 근거는 무엇인지? [답] 본 역학조사에서 원인 미상 폐질환으로 진단된 18명 중 17명이 가습기살균제에 노출됐고, 지금까지 확인된 적이 없는 특징적인 임상적 및 병리적 소견을 보였으며 [판매 중지이후 원인 미상 폐질환이 발생한 적이 없으므로 정의상 가습기살균제로 인한 signature disease로 볼 수 있음.]
이로써 다른원인이 아니라 확실히 가습기 살균제로 인해 폐질환이 발생하였음이 정리되었습니다. 이후 소송에서 이 관련 내용은 큰 영향을 미칠겁니다.
4. 탈리도마이드 사건과 가습기 살균제사건은 매우 유사합니다. 누군가의 집요한 노력과 합리적인 의심, 그에 상응하여 늘어나는 협력자들로 더 큰 재앙을 막았습니다. 홍수종교수님과 연구에 도움을 준 수많은 의사들, 그리고 역학조사원들의 노력이 아니었다면 가습기 살균제가 이 처참한 상황의 원인이 되는지도 모르고 지금도 사용하고 있었을지 모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