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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른대접 받는다는 것
게시물ID : humordata_1755892짧은주소 복사하기
작성자 : 데트르
추천 : 17
조회수 : 2068회
댓글수 : 18개
등록시간 : 2018/06/12 19:14:3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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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창작글
아버지..
 
내 기억속에 가장 먼저 기억되는 아버지는 웃음을 짓고 계셨다.
 
 
내가 대여섯살이나 됐을 때 한 여름이였을 것이다.
 
어머니와 누나들 그리고 형과 함께 마당에서 아버지의 퇴근을 기다렸었다.
 
그때 당시 아버지는 저녁 식사 시간에 맞춰서 퇴근을 하셨다.
 
저녁을 먹기 위해 옹기종기 모여서 아버지를 기다렸고
 
그 기다림은 설렘이 가득했다.
 
설렘이 가득한 이유는 저녁을 먹을 수 있어서?
 
 
아니다.
 
 
퇴근하시면서 늘 아버지는 아이스크림을 사오셨기 때문이다.
 
아이스크림을 들고 마당을 들어오시는 아버지는 늘 웃음을 짓고 계셨다.
 
 
 
여기까지만 이야기 하면 아버지가 참 자상하시네라며 훈훈하게 이야기가 마무리 지어지겠지만
 
또 아니다.
 
 
아버지를 떠올리면 처음으로 떠오르는 기억이 이렇게 훈훈할 뿐
 
아버지를 떠올리면 가장 먼저 떠오르는 이미지는 한 단어로 폭군이라는 단어이다.
 
 
시골에서 나고 자란 옛날 사람이고
 
9남매의 첫째인 장남이고 가부장적인 사람이다.
 
그리고 자상하다라는 단어랑 거리가 먼 사람이다.
 
조금이라도 거슬리면 욕은 안하시지만 화부터 내고 다혈질인 분이기도 하다.
 
 
한 번은 이런 일이 있었다.
 
초등학교 2학년 때 큰 이모는 형과 나를 위해 자전거를 선물해 주셨다.
 
두발 자전거를 타본적도 배워본적도 없는 형과 나는 선물은 기뻤지만
 
복도에 세워둘뿐 타고 다니지는 않았다.
 
먼지만 쌓여가는 자전거가 아까우셨던 아버지는
 
일요일에 자전거 타는 법을 알려주신다며 형과 나를 데리고 밖에 나갔다.
 
여기까지도 아주 훈훈해 보이지만
 
역시나 아니다.
 
 
아버지가 원체 어려웠던 형과 나는 도살장에 끌려가는 소처럼 축 늘어졌고
 
어쩔 수 없이 따라 나가게 되었다.
 
지금 생각해도 이해가 안되는게
 
뒤에서 잡아주시면서 중심을 잡아봐라 라든지 중심을 잡는 노하우라든지
 
이런걸 알려주시면서 자전거를 타길 바라셔야지
 
그냥 "타봐" 이러시고 앞으로 못나가면 화부터 버럭 내셨다.
 
한두시간을 그렇게 혼만 나고 자전거 실력은 늘지도 않고..
 
나중에는 눈물을 찔끔 흘리며 자전거를 선물해주신 큰 이모를 원망하기도 했었다.
 
 
아버지랑 단 둘만 집에 있게 되면 공기조차 무거워서 숨도 쉬기 힘들었고
 
누구든 집에 얼른 돌아오길 바랄 정도로 아버지가 무섭고 어려웠다.
 
 
이렇게 아버지를 어려워하던 내가 20살이 되었고
 
군대를 갈 시기가 되었다.
 
 
입대 날짜가 나오자마자 어머니께서는 추석도 같이 못 지내고 입대한다고 우셨고
 
아버지께서는 딱히 반응이 없으셨다.
 
시간은 점점 흘러
 
입대날이 되었다.
 
아버지께서는 휴가를 내시고 어머니와 막내누나를 데리고
 
논산까지 직접 데려다 주셨다.
 
 
대연병장에 도착했을 때는 사람들이 많이 몰려 있었고
 
여기저기 훌쩍이거나 웃으며 이별을 준비하는 사람들이 많이 있었다.
 
 
스탠드 세번째 줄에서 기다리던 나와 가족들은
 
"입영병들은 연병장에 집합하십시오" 라는 소리와 함께
 
이별을 시작했다.
 
어머니와 누나는 울기 시작했고
 
나는 걱정을 안끼치기 위해 일부러 크게 웃으면서 달래주다가
 
문득 아버지의 얼굴을 쳐다보았다.
 
아버지는 울진 않으셨지만 눈이 엄청 빨개지셔서
 
다치지 말고 잘 다녀오라고 하셨다.
 
그 무서운 아버지가
 
눈이 충혈될 정도로 빨개지며 울음을 참는다는게
 
나에게는 놀라움을 주었다.
 
우리 아버지도 눈물이 있는 사람이구나...
 
 
 
논산에서는 입영 행사가 끝나고
 
연병장을 한바퀴 쭉 돌며 마지막으로 가족들에게 인사를 하는 시간이 있다.
 
마지막 인사를 위해
 
운동장을 천천히 걸으며 가족들이 서 있던
 
스탠드 세번째자리를 쳐다봤는데
 
우리 가족들은 보이지 않았다.
 
나는 속으로 '이 사람들 동시에 나가면 차가 막힐테니까 먼저 가셨군' 이라는 생각을 했다.
 
 
내가 참 속도 좋은게
 
다른 가족들은 아들의 이름을 부르며 마지막으로 손을 흔들고 있는데
 
섭섭하다는 감정은 하나도 없었고
 
차 안막히게 가셔야지라고 이해를 하고 있었다.
 
그렇게 혼자서 남의 가족들에게 웃으며 손을 흔들며 건물 뒤로 집합하게 되었다.
 
 
 
나중에 들은 얘긴데
 
나를 좀 더 잘 보기 위해 스탠드 첫째줄로 내려오고 자리를 살짝 옮기신거였다고 했다.
 
막내 누나 말로는 아버지께서 결국 눈물을 흘리시며 내 이름을 그렇게 크게 불렀는데
 
내가 전혀 엉뚱한데 쳐다보고 웃으며 손을 흔들고 들어 갔었어서
 
아쉬웠다고 했다. 
 
아버지께서 결국 눈물을 보이셨다는 얘기는
 
나에게 이상한 감정을 들게 했다.
 
한마디로 정의하기 힘든 이상한 감정이었다.
 
솔직히 그때까지도 아버지가 무섭고 싫고, 독립만 하면 아버지 안보고 살꺼라고
 
입버릇 처럼 말하던 내가 아버지에 대한 생각이 수정되는 계기이기도 했다.
 
 
 
다시 얘기로 돌아와
 
내가 일병을 달고 휴가를 나왔을 때 이야기가 이 글의 목적이다.
 
 
분명 내가 이 날 휴가를 나간다고 했는데
 
집에 도착했을 때는 문이 잠긴채 아무도 없었다.
 
복도식 아파트에 살던 나는 우유구멍에 열쇠가 있나 뒤져보기도 했지만
 
없었다.
 
두번째 휴가만에 내가 이렇게 소홀해 질줄이야..
 
 
복도식 아파트여서 내 방 창문은 방범창으로 되어있었는데
 
나는 그 부분을 힘껏 손으로 당겨 늘이고
 
낑낑대며 몸을 집어 넣어 집으로 들어가게 되었다.
 
살짝 쓸리긴 했지만 당시에 엄청 말랐던 나는 그게 가능했었다.
 
 
군인이 휴가를 나와서 집에 왔는데 반겨주는 사람도 없고
 
열쇠도 없어서 억지로 집에 들어온 나는 짜증이 좀 났다.
 
이러면 안되지만
 
나도 모르게 책상 의자에 앉아 담배에 불을 붙이고 힘껏 한모금 빨았다.
 
 
 
연기를 내뱉고 있는데 갑자기 내 방문이 벌컥 열렸다.
 
그리고는 아버지와 눈이 마주쳤다.
 
눈이 마주친 그 순간 몸이 뻣뻣하게 굳어버렸고
 
제일 먼저 드는 생각은 '싸대기 맞겠다..' 였다.
 
담배를 끄던지 했었어야 했는데
 
진짜 몸이 굳어서 의자에 앉아서 아무 반응을 할수가 없었다.
 
 
하지만 아버지의 반응은 내 예상과 전혀 달랐다.
 
"허허 xx야 휴가 나왔니? 맛있는거 많이 먹고 들어가라."
 
이렇게 말씀을 하시고 방문을 닫고 나가셨다.
 
아버지께서 나가시고도 한참을 굳어 있던 나는
 
'아 군인이니까 한번 봐주시는구나'라고 생각을 했다.
 
 
시간이 한참흘러 이 일을 생각해보니 아버지께서는
 
내가 군인이어서 봐준게 아니라
 
나에게 어른 대접을 해주기 시작하신거였다.
 
 
어른이 무엇이냐고 물어보면 누구나 다 정의가 다를 것이다.
 
내가 나를 스스로 평가하기에 나는 아직도 어른이 아니지만
 
아버지께서는 자기를 희생해 나라를 지키고 가족을 지키는 것이 어른이였다.
 
 
그리고 아버지께서 왜 그리 엄하셨고 가족들에게 서툴었는지 이해가 되기 시작했다.
 
옛날 사람이여서 방법을 몰랐을 뿐
 
아버지의 행동 하나하나가
 
아버지만의 가족을 지키는 방법이었다는 것을 알게되었다.
 
그리고 아버지께서는 최고의 어른은 아니였지만, 최선을 다하는 어른이었다.
 
 
 
지금은 70이 가까워져 머리가 하얗게 샜지만 정정한 영감님이다.
 
그리고 아들에게 전화가 오면 기분이 좋아지신다는 마음이 약한 영감님이시기도 하다.
 
 
 
 
 
 
여담이지만
 
어머니께서는 내가 제대하는 날 큰누나와 함께
 
나를 금연클리닉으로 끌고 갔다.
 
어머니께 나는 군대를 다녀와도 어른이 아닌갑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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