게시판 즐겨찾기
편집
드래그 앤 드롭으로
즐겨찾기 아이콘 위치 수정이 가능합니다.
삼국지 장포 관련해서...
게시물ID : history_17559짧은주소 복사하기
작성자 : 풀업마린
추천 : 2
조회수 : 1410회
댓글수 : 4개
등록시간 : 2014/08/05 01:33:37
엔하위키에 보니

장비의 아들 장포 

張苞

생몰년도 미상

삼국시대 촉한의 인물로 장비의 맏아들이며, 장준의 아버지이다. 남동생은 장소[1](張紹), 두 여동생은 유선의 아내이다.

장비보다 먼저 요절했다고 하며, 장비가 죽었을 때 장포가 일찍 죽었기 때문에 장소가 후사를 이었다는 것만 확인할 수 있기 때문에 행적은 알려져 있지 않다. 연의에서 비슷한 수준으로 재창조한 관흥은 죽으니까 그 재능을 아까워해 제갈량이 슬퍼했다는 기록이라도 있지 장포는 그런거 없다. 심지어 자도 전해지지 않는다. 이것 외에 알려져 있는 내용은 아들 장준이 263년 등애가 이끄는 위군이 촉을 멸망시킬 때 면죽관에서 제갈첨과 함께 싸우다 죽었다는 구절이 있다. 아버지보다 기록이 몇 배는 길다!

삼국지연의에서는 흰 전포를 입은 채로 이릉대전에 참전했는데, 관흥과 함께 선봉이 되기 위해 다투어 100보 밖에 깃발을 세워 붉은 칠을 한 부분을 맞췄으며, 관흥도 활 솜씨를 보이자 창으로 다투려고 했지만 유비가 말려서 두 사람을 화살을 꺾어 서로 구해주도록 하는 맹세를 하면서 관흥과 함께 각기 병사 3천명을 거느려 임금을 호위하는 역할을 맡게 된다.

자귀에서 손환을 공격하러 갔다가 사정과 싸워 30여합 만에 도망치게 만들거나 이이와 20여합을 싸우다가 승부가 나지 않아 담웅이 화살로 말을 맞춰 죽을 뻔 하지만 관흥이 이이를 죽이면서 구해졌으며, 다음날에는 오군의 영채를 공격해서 사정을 죽였다.

또한 관흥과 함께 각기 5천 명을 거느려 산골짜기에 매복했다가 주연의 수군이 손환을 구하러 오는 틈을 타 관흥과 함께 협공했다가 최우를 사로잡았다. 유비가 관흥과 장포를 칭찬하면서 예전에 따르던 장수들은 늙고 쓸모없다는 얘기를 하자 황충이 동오의 영채를 공격하러 가자 관흥과 함께 구하러 가서 황충을 말렸으며, 황충이 이를 듣지 않고 출진하였다가 오군에게 포위되어 어깨에 마충의 화살을 맞자 관흥과 함께 구출한다.

오나라에서 유비의 공격을 무마시키기 위해 범강장달을 보내자 이들을 직접 참수해 장비의 영위를 차렸다. 제갈량의 북벌 때 봉명산 전투에서 설칙을 죽이는 등의 활약을 하다가 229년에 무도, 음평을 공략하면서 이 두 군을 방어하기 위해 온 곽회와 손례를 추격하다가 산골짜기에서 흐르는 물에 떨어져 머리가 깨지면서 성도로 보내졌다가 결국에는 사망했다. 교통사고를 조심하자

삼갤에서는 정사기준으로 관흥, 마대와 많이 까인다. 몇몇 삼갤러들이 지은 별명이 포거품.

----------------


첫 문단에 장비 보다 먼저 죽었다고 (요절 했다고) 적혀있는데, 마지막 둘째 문단에서는 장비가 죽은 이후에 범강과 장달을 직접 참수했다고 나오네요... 너무 혼돈 스럽네요.. 어떻게 된 일인가요??
꼬릿말 보기
전체 추천리스트 보기
새로운 댓글이 없습니다.
새로운 댓글 확인하기
글쓰기
◀뒤로가기
PC버전
맨위로▲
공지 운영 자료창고 청소년보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