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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생바보글보고 형생각해봅니다(내용이 많습니다)
게시물ID : freeboard_518339짧은주소 복사하기
작성자 : 산낙지
추천 : 2
조회수 : 276회
댓글수 : 1개
등록시간 : 2011/06/30 09:50:47
제겐 정말 좋은 형님이 계셨습니다.

1살차이라 어렸을 땐 그저 싸우기 바빴는데
고등학교부터 떨어지더니 그 후론 거의 볼 시간도 없었습니다.
그러다가 같은 대학교 다니면서 다시 형님과 마주하는 시간이 많아졌습니다.
1학년 형님께선 기숙사붙고 전 기숙사 신청을 늦게 해서 자취를 하게되었습니다.
별 생각없이 나 혼자서 어떻게든 되겠지라고 생각했는데
아니 글쎄 형님이 기숙사 식당 아주머니들에게 제 얘기하면서 밥도 못 먹고 다닌다면서 불쌍하다고
반찬을 얻어다 주는 겁니다.
거기에 자기도 돈없을 때 치킨도 사주시고 공부하라고 노트북도 사주시고 심지어 제가 늦잠자서
오전수업 놓칠까봐 아침에 기숙사에서 제 자취방까지 뛰어와서 저를 깨우기도 하셨습니다.
그러다 2학기땐 형제는 기숙사에 같이 들어갈 수 있다는 걸 알고 같이 기숙사 생활을 했죠.
같이 기숙사 생활하니까 이번엔 과모임 동아리모임가서 술마셔도
제가 기숙사 열쇠 안 가지고 갔을까봐 일찍 들어오곤 하셨습니다.
그런데도 전 형님께 지금 집이 얼마나 어려운 상황인데 모임을 너무 자주 간다느니
여자친구에게 돈을 너무 많이 쓴다느니하며 개새X, 말새X라며 온갖 쌍욕을 내뱉었죠.
그런데도 형은 그냥 허허하고 웃고 넘겼습니다.

그렇게 시간이 흘러 2학년 1학기 쯤에
그 당시 형님께선 S기업에서 진행하는 무슨 인재양성 프로젝트같은 거에 학비지원을 받고 계셨는데
원래는 휴학을 하면 학비지원이 없어져서 입대를 미루고 있던 상황이었는데
마침 그 당시 군입대의 경우는 예외로 바뀌었습니다.
결국 형님과 전 같은 날 입대하기로 했습니다.
(동반입대하면 전방간다는 주위사람들 말에 그냥 같은날 입대신청만 했습니다.)
그 뒤로 형님과 전 서로 떨어지게되었습니다.
그렇게 서로 일병이 되고 형님께서 특박을 쓰고 제게 면회온겁니다.
군필자분들은 아시겠지만 일병 짬찌가 특박나와서 군인면회간다고 하면
진짜 미친짓인거 알겁니다.
전 그 일이 있고 나서 정말 형님을 존경하기로 했습니다.

그런데

문제는 그 다음달에 터졌습니다.
이제 갓 물상병 시절 근무지원 갔다와서 생활관에서 쉬려고 했는데 중대장이 절 부르는겁니다.

지금 형님께서 응급실 실려가셨다고...

결국 저녁에 급히 청혼휴가를 내고 병원으고 갔습니다.
부모님과 친척들, 군관계자들 모두 다 있었고 상황은 심각했습니다.
당시 형님께선 제독병 겸 인사병을 맡고계셨는데(전 형님께서 인사병만 하는 줄 알았습니다.)
검열때문에 밤샘작업하고 그 다음날 바로 천암함후속조취훈련을 뛰시다가 과로로 인해 쓰러지셨고
뇌출혈까지 온겁니다.
그런데 뇌출혈자체야 시간싸움이라 빨리 수술받으면 문제가 없는데
군체계아시는 분들은 다 아실겁니다.
얼마나 X같은지...
형님이 1분간 기절해있었다가 일어났는데 의무실에 갔더니 외진 가보라고 했답니다.
근데 이걸 바로 보냈어야했는데 지휘계통에 맞게 위에 보고하다가 시간이 지체되었습니다.
그리고 외진갔더니 혹이 났다...이걸로 끝났더랍니다.
결국 부대로 복귀하던 도중 구토를 하며 쓰러졌고 의정부 성X병원으로 실려갔습니다.
여기서도 바로 수술했으면 괜찮았을텐데...그러지도 못했습니다.
바로 보호자동의가 문제였던겁니다.
병원측에서 보호자가 직접 병원으로 와서 동의를 해야한다는 겁니다.
이 소식을 듣고 부모님께서는 지금 급하게 택시타고 가고 있으니 전화로 먼저 동의하고
도착하면 서명해주겠다고 하셨지만 병원측은 이를 거절하였습니다.
물론 군측에서도 수술동의는 커녕 보호자가 직접 오기를 바랬습니다.
결국 이렇게 2시간이 더 지체되었고 오전에 발생한 뇌출혈이 오후4시에 수술이 실시되었습니다.

결국 형님께서는 그렇게 돌아가셨습니다.

나중에 장례식을 치르고 난 뒤 형님 유품 정리 중 수첩을 봤는데
거기엔 형님의 꿈들이 적혀있었습니다.
형님께선 제빵, 사진, 시짓기 등에 관심이 많았는데 수첩에
수많은 시들...사진 기법...당뇨병이신 어머니를 위해 웰빙빵 만드는 방법 등등이 적혀있었습니다.
그렇게 하고 싶은 것들이 많았는데...결국은 못 해보고 떠나신 겁니다.

그런데 그와중에도 행정관이 몸이 아파서 걱정이라는 말이 적혀있었습니다.
본인에게 죽도록 일을 시킨 그 장본인도 형님께선 걱정하셨던겁니다.
형님의 억울한 죽음에 소송을 하시려던 부모님께선 이를 보시고
막말로 재판이겨서 돈 몇푼 더 받아봤자 무슨 소용이냐며 
그사람도 몸 상태가 안 좋던데 신경써서 쓰러지기라면 그것도 형이 바라지 않을거라며
소송까진 가지 않았습니다.

나중에 국가유공자로 인정되고 전 그로 인해 작년에 의가사전역을 하였습니다.
원래대로라면 그제 전역이었는데...
원래대로라면 이번 2학기에 형이랑 같이 복학하는건데...
이제는 혼자입니다.

그래도 노래처럼 그저 그런 형님이 계셨다는 사실에 감사하며 열심히 살아보려고 합니다.

Ps. 요새 동생바보글과 얼마전 현충원에서 근무하셨던 분 글보고 적어봤습니다.
      이번 현충일에 대전현충원 가봤는데 의외로 저나 제 형님 또래 나이이신분들이 많이 있더라구요.
      제 형님과 그 분들 모두 좋은 곳으로 가셔서 더이상 고생 안하셨으면 바랍니다.
      마지막으로 형 사랑해요, 그리고 고마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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