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겨레] 아프간 피랍 사태가 일어난 직후인 7월23일 경기 성남 분당 샘물교회 박은조 담임목사는
“국민에게 염려를 끼친 것에 가슴 깊이 사죄한다”며 고개를 숙였다.
또 인질 두 명이 잇따라 피살된 뒤인 8월2일엔 “다시 한번 엎드려 사죄한다.
국민 여러분께 염치없지만 피랍자들의 안전귀환을 위해 마음의 소원을 모아 주실 것을 감히 부탁드린다”
고 엎드려 호소했다.
하지만 이런 자세는 나머지 피랍자 19명이 지난 2일 오전 무사귀환한 날부터 돌변했다.
그는 이날 설교에서 “탈레반의 개종 요구를 거부하다 심한 구타와 살해 위협을 당했지만 끝까지 버텼다”
며 피랍자들을 마치 ‘영웅’인 양 치켜세웠다.
그의 ‘성폭행 위협’ 주장은 나중에 사실이 아닌 것으로 판명됐다.
그는 여기서 그치지 않았다.
같은 날 오전 예배에서는 “2천년 전부터 복음이 가는 곳마다 비난과 죽음이 있었다”며
“교회와 복음을 향해 비난이 쏟아지는 것을 위기라고 본다면 잘못 알고 있는 것”이라고 주장했다.
40일 넘게 국민에게 눈물로 호소하던 피랍자 가족모임 차성민(30) 대표도 지난 3일
“우리가 ‘국민 여러분께 심려를 끼쳐 드려 죄송합니다’라는 말을 할 때마다
잡혀 있는 가족(피랍자)들에게 너무 미안했다”고 말했다.
피랍자들이 전혀 잘못한 것이 없는데도 ‘죄송하다’고 말해야 했던 상황이 괴로웠다는 것이다.
‘지옥의 문턱을 오가며 피도 눈물도 모두 말랐다’며 국민들에게 호소했던
샘물교회 박 목사와 피랍자 가족 등이 피랍자들의 석방 뒤 거침없이 쏟아내는 이런 말들이,
함께 ‘인질’이 돼 가슴을 태웠던 국민들의 가슴에 비수가 되어 돌아오고 있음을
그들은 알고나 있을지 궁금하다.
김기성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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