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간은 벌써 밤 10시를 넘어가고 있었다.
문상원과 윤수영 그리고 김혁을 태운 SUV가 좁고 어두운 시골길을 달리고 있었다.
문상원은 라디오에서 나오는 음악을 흥얼거리며 SUV를 운전했다.
그 옆 좌석에 앉은 윤수영은 방송용 캠코더를 흥미 있는 표정으로 이리저리 만져보고 있었다.
그리고 뒷좌석에는 김혁이 어두운 창밖만을 묵묵히 바라보고 있었다.
“상원 오빠. 방송국에서 이런 거 그냥 가지고 나와도 돼? 이거 꽤 비싸 보이는데.”
“오빠가 그 정도 짬도 안 될 것 같냐? 그리고 만약에 흉가 가서 귀신이라도 찍히면!
오히려 방송국이 나한테 고마워해야 한다고. 안 그래?”
“나 실은 흉가체험 처음으로 가보는 거잖아. 정말 흉가가면 귀신같은 거 있어?”
“글쎄. 직접 본 적은 없지만 뭔가 가끔은 섬뜩한 느낌이 들긴 해.
근데 실제로 본 사람들은 꽤 많데. 혁아, 안 그래? 넌 가끔 귀신들 보인다고 했잖아.”
문상원은 백미러로 힐끗 뒤를 보았다.
그러나 김혁은 기분이 안 좋은 듯 묵묵히 어두운 창밖만을 바라보고 있었다.
삼수생인 김혁은 원래 신기가 조금 있는 아이였다.
그러나 연이은 대학 입시의 실패로 인하여 요즘은 기분이 매우 침울해져 있었다.
게다가 입영날짜까지 다가와서 속절없이 군대로 끌려갈 운명이었다.
“야, 야 기분 풀어. 사나이가 까짓 거 군대는 다들 가는 거고.......
대학은 그때 가서 시작한다 해도 안 늦어. 빠져가지고.......
이따가 펜션 가서 죽도록 먹고 마시자고.”
“......D펜션으로 가는 거예요?”
김혁은 묵묵히 있다가 한숨을 내쉬며 말했다.
입시와 군대문제 때문에 정말 마음고생이 큰 모양이었다.
입시 공부하느라 친구들도 다 떨어지고 그나마 있던 친구들도 전부 군대에 가버렸다고 했다.
문상원은 김혁의 상황이 이해가 가긴 했지만 그다지 위로해 줄 말이 생각나지 않았다.
“응. 동호회 회장이 거기로 오라고 했어.
거기 가서 회원들 다 모이면 밤새도록 술 먹고 놀고 다음날 저녁쯤에 흉가로 간데.
우리가 말이 흉가체험 동호회지 실은 먹고 죽자 동호회 아니냐? 하하하.”
“오빠. 어떤 사람들이 올까? 나도 신입 회원이긴 하지만 이번에 신입 회원들 많이 온다고 했잖아.”
“술 먹고 또 멀쩡한 남자 꼬시려고 그러냐?”
“뭐 어때? 난 꼬시지 말라는 법이라도 있어?”
그때였다. 사거리를 지나며 도로 위에 있는 표지판들이 휙 지나가 버렸다.
그러나 문상원은 표지판을 보지 못한 채 그대로 직진해 버렸다.
문상원은 작은 탄식 소리를 내며 서서히 속도를 줄이다가 차를 멈췄다.
그러자 윤수영이 궁금한 표정으로 문상원에게 물었다.
“왜 그래?”
“표지판을 못 봤어. 도로가 좁아서 U턴 할 수도 없고 후진하기도 좀 그런데.......”
“차만 큰 거 샀지 그 흔한 내비게이션은 왜 안 샀어?”
“그게 사람을 눈 뜬 봉사로 만든다 해서 일부러 안달은 거다.
그러는 너는 왜 아직도 그 흔한 스마트폰도 안 샀냐?”
“내가 사기 싫어서 안 샀나? 약정이 안 끝나서 못 샀지.
내가 오빠처럼 아직도 테이프 사서 듣는 구닥다리인줄 아쇼?”
“그나저나 어쩌지? 네가 내려서 표지판 좀 보고 올래?”
“내가?! 이 어두운 시골길을 무서워서 어떻게 가?! 차라리 오빠가 가!”
윤수영은 과장되게 겁에 질린 척 하며 몸서리쳤다. 문상원은 난감한 표정을 지었다.
가로등 하나 없는 시골길에서 길을 잃으면 도착지까지 가는데 한참 헤맬 수도 있었다.
순간 내비게이션을 살 걸 하는 후회가 밀려왔다.
문상원은 문득 뒷좌석에 앉아있던 김혁을 백미러로 보며 말했다.
“그래도 제일 막내인 네가 가야하지 않겠냐?”
“.......싫어요. 형이 가요.”
김혁의 침울한 목소리가 들려왔다.
예전 같으면 두말없이 웃으며 갔을 텐데 어느새 어두운 성격으로 완전히 변해버렸다.
문상원은 뭐라 한 소리 하고 싶었지만 김혁이 처한 상황을 생각하며 그만 두었다.
그때 옆에 앉아있던 윤수영이 빽 소리 지르며 앞문을 열었다.
“남자들이 겁은 많아가지고. 답답하니까 차라리 내가 갈게요.”
윤수영은 차에서 내려 20여 미터 뒤에 있는 사거리로 걸어가기 시작했다.
문상원은 백미러로 그 모습을 보며 김혁과 대화를 나누었다.
그러나 김혁은 대화하기 싫은지 별 말이 없었다.
그러다가 윤수영이 표지판을 확인하고 다시 돌아오는지 작은 사람의 그림자가 사이드미러로 보였다.
문상원은 갑자기 장난기가 발동하기 시작했다.
안 그래도 침울해있는 김혁에게 무언가 힘(?)을 불어넣어 주고 싶었다.
“흐흐흐. 어디 따라와 봐라.”
문상원은 서서히 차를 출발시키기 시작했다.
그러자 윤수영이 당황하여 뛰어오는 모습이 보였다.
문상원은 웃으며 속도를 올리기 시작했다.
문상원은 허겁지겁 뛰어오는 윤수영의 모습을 보며 웃음을 터트렸다.
그러자 김혁이 무뚝뚝하게 말했다.
“......처음 온 사람한테까지 장난치는 거예요?”
“괜찮아, 괜찮아. 모임에는 처음 왔지만 나랑 오래전부터 알던 동생이야.”
문상원은 그렇게 잠시 동안 시골길을 달렸다.
그런데 너무 멀리 왔는지 아니면 어두워선지 윤수영의 모습이 보이지 않았다.
문상원은 코너를 돌다가 아차 싶어 차를 멈췄다.
사이드미러를 통해 뒤를 보았지만 윤수영의 모습이 보이지 않았다.
문상원은 창문을 내리고 고개를 내밀어 뒤를 보았다.
그러나 역시 컴컴한 어둠만이 있을 뿐 보이지 않았다.
산등성이에 걸친 코너 때문에 뒤쪽의 도로 자체가 보이지 않았다.
“왜 그래요? 안 와요?”
“글쎄....... 숨이 차서 걸어오나?”
일직선으로 쭉 달리기만 했기 때문에 도로만 잘 따라온다면 길을 잃을 염려는 없었다.
하지만 칠흑 같은 어둠 속에 발을 헛디딜 수도 있었다.
그렇게 잠시 기다려도 윤수영이 나타나지 않자 문상원은 조금씩 긴장되기 시작했다.
결국 주머니에서 핸드폰을 꺼내며 김혁에게 말했다.
“얘가 왜 안 오지? 혹시 뭔가 잘못된 거 아냐?”
“속으면 안 돼요. 예전에 형은 우릴 놀리려고 그냥 집으로 가버렸잖아요.
우리가 그때 온 동네를 뒤지느라 얼마나 힘들었는지 알아요?”
“그건 그거고....... 하도 산골이라 핸드폰이 안 터지네.”
문상원은 걱정스러운 표정으로 핸드폰을 다시 주머니에 넣었다.
자신도 모르게 서서히 초조해지기 시작했다.
지난 몇 년 간 흉가체험 동호회에서 이런 식의 장난을 자주 치고는 했었다.
실제로 귀신을 보지 못한 아쉬움을 그나마 달래주는 장난들이었다.
하지만 이렇게 인적하나 없는 캄캄한 도로에서는 처음이었다.
예전에 한번 된통 당한 문상원은 시외버스라도 타고 집에 갔지만 이 시간에 시외버스가 다닐 리도 없었다.
“조금 있어봐. 내가 잠깐 갔다 올게.”
문상원은 차 문을 열기 위해 창문으로 고개를 돌렸다.
그때 갑자기 어둠 속에서 윤수영의 얼굴이 불쑥 튀어나왔다.
문상원은 매우 깜짝 놀라 비명 지르며 뒤로 물러섰다.
“아! 깜짝이야!”
“뭐예요 오빠! 이딴 장난치지 말아요!”
윤수영은 거칠게 숨을 몰아쉬며 매우 화를 냈다.
정말 열심히 뛰었는지 얼굴이 온통 땀으로 젖어 있었다. 문상원은 내심 미안한 마음이 들었다.
캄캄한 시골길에서 정말 크게 놀란 모양이었다. 조금 장난이 지나쳤나 하는 생각이 들었다.
“미안해. 다신 안 그럴게.”
“오빠! 두 번 다시 그러지 말아요!”
문상원은 도로를 지나 좁은 산길을 올라가기 시작했다.
그렇게 산 중턱까지 올라가자 깨끗하고 아담해 보이는 D펜션이 모습을 드러냈다.
문상원은 펜션 앞마당 주차장에 SUV를 세웠다.
아담한 펜션은 세워진지 얼마 안 되어 시설이 꽤 괜찮아 보였다.
그러나 아직 아무도 안 왔는지 불이 꺼져 있었다. 문상원은 시동을 끄며 말했다.
“트렁크에 술이랑 고기랑 촬영장비들 있으니까 꺼내.”
“싫어! 날 그렇게 놀래켜 놓고 일까지 시키려고? 오빠가 다 해! 흥!”
“혁아, 같이 짐 좀 나르자.”
“.......피곤해서요. 형이 좀 해주세요.”
윤수영과 김혁은 어느새 차에 내려서 자기네들끼리 대화하며 펜션으로 올라가고 있었다.
문상원은 기가 막혀 그들의 뒷모습을 바라보았다.
결국 혼자가 된 문상원은 투덜거리며 트렁크를 열었다.
“이것들이 정말. 두고 보자.”
먹을 것을 들고 펜션으로 들어온 문상원은 거실의 불을 켰다.
그런데 왠지 분위기가 적적하여 텔레비전을 켰다. 그러자 텔레비전에서 왁자지껄한 개그쇼가 흘러나왔다.
문상원은 거실 한 가운데에 술과 고기를 펼쳐놓으며 먹고 마실 준비를 시작했다.
윤수영은 시작도 하기 전부터 술 먹자고 술 먹자고 노래를 불러댔다.
그러나 김혁은 조용히 소파에 앉아 텔레비전만을 보고 있었다.
“자, 먹자!”
“와아 잘 먹겠습니다!”
불판 위에서 지글지글 고기가 익기 시작했다. 문상원과 윤수영 그리고 김혁은 술잔을 들고 건배했다.
술이 들어가자 윤수영은 흥이 오르기 시작했는지 마구 수다를 떨어댔다.
그러나 김혁은 혼자 묵묵히 술을 마시며 텔레비전을 볼 뿐이었다.
문상원은 그렇게 잠시 술과 고기를 먹다가 힐끗 손목시계를 보았다.
동호회 사람들이 하나 둘씩 올 시간이 지났는데 아직 아무도 안 오고 있었다.
하도 시골이라 찾아오는데 조금 힘든지도 몰랐다.
“그런데 왜 아직 아무도 안 오지?”
“그러게. 다들 아까 그 사거리에서 길을 헷갈리는 거 아냐?”
“그만 좀 해라. 쪼잔해가지고.”
“앞으로 10년은 우려먹을 거네요!”
그때 현관 쪽에서 한 쌍의 젊은 남녀가 들어왔다. 아마도 동호회 사람들인 것 같았다.
그런데 둘 다 처음 보는 얼굴들이었다. 그들이 거실로 들어오자 문상원은 자리에서 일어나 인사했다.
그러자 그들도 어색히 웃으며 인사했다.
“안녕하세요? 혹시 처음오신 건가요?”
“......네. 저희가 조금 늦었나요?”
“아니에요. 우리도 막 시작했어요. 어서 자리에 앉으세요.”
문상원은 두 사람을 안내하며 자리에 앉았다.
그러나 그 두 사람은 자기네들끼리만 이야기를 하고 있었다.
묵묵히 텔레비전만 보는 김혁도 그렇고 새로운 사람들이 자리에 끼자 분위기가 조금 어색해졌다.
문상원은 이런 어색한 분위기가 너무 싫었다.
“저기요. 새로 오신 분들 자기들 소개 좀 부탁해요.”
그러자 그들은 난처한 듯 서로의 얼굴을 바라보았다. 두 사람은 서로 눈치만 보더니 귓속말을 했다.
그러고 난 후에야 남자가 먼저 망설이며 입을 열었다.
“전 이수혁이라고 하구요. 얼마 전까지 사업을 했는데 결국 손해를 보고 망했어요.
옆에 사람은 저랑 동갑이고 제 아내입니다.”
“안녕하세요. 전 주소연이라고 합니다.”
“환영합니다! 반가워요.”
문상원은 활짝 웃으며 박수 쳤다. 윤수영도 환영한다며 박수 쳤다.
그런데 김혁은 그들을 보자 얼굴이 굳어지며 힐끗 시선을 피했다.
이수혁과 주소연도 분위기가 왠지 어색한 듯 고개를 숙였다.
문상원은 분위기를 띄우기 위해 종이컵에 술을 따른 뒤 건배를 올렸다.
“자, 새로 오신 분들을 위하여 건배!”
문상원과 윤수영이 잔을 들었다. 이수혁과 주소연도 서로 눈치를 보더니 마지못해 잔을 들었다.
그러나 김혁은 멍하니 텔레비전만을 바라보았다. 문상원은 김혁에게 눈치를 주며 입을 열었다.
“혁아, 뭐하니. 어서 잔을 들어야지.”
“저 피곤해서 먼저 들어가 잘게요.”
김혁은 자리에서 일어났다. 그러더니 코너를 돌며 방으로 들어가 버렸다.
문상원은 갑작스런 김혁의 행동에 당황하며 두 사람을 바라보았다.
그러나 이수혁과 주소연은 전혀 신경 쓰지 않은 채 서로 소곤거리며 대화를 나누고 있었다.
문상원은 시끄러운 텔레비전을 끈 뒤 어색한 웃음을 지으며 두 사람에게 말했다.
“아, 쟤가 수험생이라 잠을 좀 못 자서 그래요. 신경 쓰지 마세요. 자 건배.”
문상원은 건배를 한 뒤 술을 들이켰다. 그리고 윤수영과 고기를 먹으며 수다를 떨었다.
그렇게 잠시 술을 마시다 보니 왠지 새로 온 사람들이 마음에 걸렸다.
힐끗 그들을 바라보니 심각한 표정으로 대화를 하고 있었다.
문상원은 수다를 멈추고 가만히 그들의 대화를 들어보았다.
“이젠 틀렸어. 그 빚을 어떻게 다 갚아. 차라리 내가 그냥 짊어지고 죽을게.
그럼 다 깨끗하게 끝날 거야.”
“아, 안 돼. 자기 혼자 죽으면 난 어떻게 하라고? 죽어도 같이 죽고 살아도 같이 살아.”
“소연아, 잘 들어봐. 난 이미 마음을 굳혔어. 이젠 더 이상 방법이 없어.”
“안 돼. 자기 놔두고 혼자 살 수 없어.”
어느새 주소연은 눈물 흘리기 시작했다. 문상원은 그들에게 뭔가 말을 걸고 싶었지만 그만 두었다.
무언가 매우 심각한 대화를 나누고 있는 것 같았다.
아니, 저렇게 심각한 대화를 하고 있을 거면 흉가체험 동호회는 왜 왔나 싶었다.
문상원은 그들에게서 신경을 끊고 윤수영과 수다를 떨며 술을 마셨다.
그렇게 술을 마시다보니 어느새 얼큰하게 술기운이 올라오기 시작했다.
“그래! 사업 실패한 건 나 때문이라고 쳐! 그럼 넌 뭐가 잘났어! 빚보증은 왜 섰냐고!
파산 신청만 하면 단 줄 알아?!”
“그래! 다 나 때문이다! 지긋지긋해! 다 끝내버리라고!”
그때였다. 갑자기 두 부부의 언성이 높아지더니 주소연이 벌떡 일어섰다.
문상원과 윤수영은 깜짝 놀라서 그들을 바라보았다.
그러자 주소연은 눈물을 훔치며 펜션 밖으로 나가버렸다.
이수혁은 매우 당황하며 그 모습을 바라보았다. 그러더니 문상원에게 말하며 일어섰다.
“죄송합니다. 잠깐 밖에 나가서 얘기 좀 하고 올게요.”
“그, 그러세요.”
이수혁은 서둘러 밖으로 나갔다. 문상원은 고개를 저으며 술잔을 들이켰다.
김혁도 그렇고 이번 흉가체험은 뭔가 일진이 좋지 않은 것 같았다.
윤수영도 기분이 조금 상했는지 눈살을 찌푸리며 말했다.
“뭔가 심각한 거 같은데 흉가체험은 왜 온 거야? 부부싸움 할 거면 집에 가서 하지.”
“그러게 말이다. 다른 사람들 기분까지 잡치게.”
“그런데 용준이 오빠는 왜 안 오지? 동호회 회장이 제일 늦으면 어떡해?”
“내가 듣기론 사람들 모아서 오느라 조금 늦는다고 했어. 신경 쓰지 말고 마시자.”
“용준이 오빠 없으면 뭔가 썰렁한데........ 에이, 마시자 마셔.”
그렇게 얼마나 시간이 흘렀을까. 문상원은 얼큰하게 술이 올랐다.
그때 펜션 밖에서 자동차 들어서는 소리가 들려왔다.
드디어 다른 일행들이 펜션에 도착한 모양이었다.
문상원은 자리에서 일어나 창문을 가린 커튼을 들어올렸다.
양반은 못 되는지 펜션 주차장에 박용준의 애마인 낡은 아반테가 들어오고 있었다.
문상원은 고개 돌리며 윤수영에게 말했다.
“야, 용준이 형 왔다.”
“야호! 이제부터 본격적으로 시작이야.”
문상원은 얼른 술병을 더 준비하며 새로운 고기를 불판 위에 올려놓았다.
그러자 곧바로 현관문이 열리며 박용준이 들어왔다.
그러나 펜션에 들어서는 박용준의 얼굴은 딱딱하게 굳어있었다.
문상원은 환하게 웃으며 손짓했다.
“형, 인제 왔어? 다른 사람들은?”
그러나 박용준은 딱딱하게 굳은 얼굴로 불판위에서 지글지글 구워지고 있는 고기를 바라보았다.
그러더니 신발도 벗지 않고 마루에 올라섰다. 그러자 문상원은 깜짝 놀라 박용준을 바라보았다.
“너 지금 여기서 뭐하냐?”
“뭐하긴. 흉가체험 하기 전날엔 맨날 술 마셨잖아. 그런데 다른 사람들은?”
“없다. 나 혼자 왔다.”
“혼자 올 거면서 왜 이렇게 늦은 거야? 얼른 앉아. 고기 다 탄다고.”
“상원아. 이번 모임은 취소됐다.”
그러자 문상원은 이게 무슨 소리인가 하여 박용준을 올려다보았다.
문상원은 자리에서 일어났지만 좀 취했는지 몸이 비틀거렸다.
문상원은 초점이 잘 안 맞는 눈으로 박용준을 바라보며 말했다.
“취소라니? 아니, 이제 와서 취소하면 여기 온 사람들은 어쩌고?
뭐 상관없어. 우리끼리 하면 되겠네.”
문상원은 다시 자리에 앉아 술을 마시고 고기를 먹었다.
그런 모습을 보며 박용준은 크게 한숨을 쉬었다.
그러더니 뭔가 결심한 듯 단호한 목소리로 문상원에게 말했다.
“상원아, 잘 들어라. 내가 실수로 너에게 잘못 알려 주었는데........
술 마시고 노는 펜션은 여기가 아니었다.
여기가 바로 우리가 오려했던 흉가다.”
“그게 뭔 소리야? 이렇게 좋고 깨끗한 펜션이 흉가야? 말도 안 되는 소리.
흉가라면 낡고 오래되고 폐허같이 된 집이잖아.”
“3개월 전....... 여기서 6명의 사람들이 잔인하게 살해당했다.
그 이후 그들의 귀신이 시도 때도 없이 출몰하기 시작했지.
인테리어도 완전히 바꾸고 그래도 소용이 없었데.
그래서 주인이 팔려고 내놓은 곳이야.”
그러자 고기를 씹던 문상원은 온 몸에 소름이 돋으며 움직임을 멈췄다.
문상원은 억지로 고기를 삼키고 자리에서 일어나 박용준을 바라보았다.
정신이 번쩍 들며 얼큰하게 취했던 술이 다 달아나는 것 같았다.
“그게 뭔 소리야? 여기가 흉가라고?”
“그래. 잘못 말해줘서 미안하다.”
“그럼 아까 새로 온 사람들은 어떻게........?”
문상원은 재빨리 손목시계를 보았다.
그러고 보니 새로 온 사람이라던 이수혁과 주소연은 두 시간 넘게 펜션에 안 들어오고 있었다.
문상원은 깜짝 놀라며 창문을 가리고 있던 커튼을 확 열어 제쳤다.
그러나 펜션 주차장에는 자신의 SUV와 박용준의 아반테만이 서 있었다.
이렇게 늦은 시간에 깊은 산속에 위치한 펜션에 오려면 반드시 차가 있어야만 했다.
그런데 그들은 차도 없이 이 펜션에 들어온 것이었다.
문상원은 경악에 질린 얼굴로 박용준을 돌아보았다.
“뭐야?! 아까 그 사람들은? 그 사람들 설마 귀신인 거야?”
“그리고 상원아. 놀라지 마라. 내가 이번 모임을 취소한 이유는.......
잔인하게 살해당한 6명 중에 혁이도 끼어있었다는 거야.
그걸 몇 시간 전에야 알아서 너한테 전화했지만.......
통화불능 지역이라 내가 직접 올 수 밖에 없었다.”
“거짓말 치지 마! 혁이는 아까 내 차타고 여기까지 왔다고!
같이 술 마시다가 피곤하다고 해서 먼저 자고 있단 말이야!”
문상원은 매우 화가 나서 박용준에게 고함질렀다.
그리고 김혁이 들어간 방문 앞으로 달려가 문을 벌컥 열어젖혔다.
불을 켜 보았으나 텅 빈 방안에는 아무도 없었다.
문상원은 아무 것도 없는 방 안을 바라보며 아무 생각도 할 수 없었다.
“아무튼 내가 할 말은 다 했다. 어서 빨리 가자. 그리고 당분간 모임은 취소다.”
“........하하하하!!”
문상원은 기가 막혀서 미친 듯이 웃었다. 뭔가 감쪽같이 사기당한 느낌이었다.
그렇게 생각하니 뭔가 오기가 생기기 시작했다.
마음속 깊은 곳에서 대박을 건져야 한다는 직업 정신이 솟구쳐 올랐다.
술에 취해서인지 무모한 용기가 마구 샘솟는 것 같았다.
“형 먼저가. 난 해 뜰 때까지 좀 더 있을게.”
“그게 무슨 소리야? 여긴 흉가라고!”
“어차피 우리 모임은 흉가체험 아니었어? 이건 진짜 대박이야.
뭐라도 하나 건지면 정말 대박이 터지는 거라고.”
“그럼 너 마음대로 해라. 난 간다.”
박용준은 도망치듯 펜션에서 나갔다. 곧이어 아반테가 떠나는 소리가 들려왔다.
문상원은 고개를 저으며 정신을 다잡았다. 이곳은 진짜로 귀신이 출몰하는 진짜 흉가였다.
만약 카메라에 뭔가가 찍히기라도 한다면 얼마든지 대박이 터질 수 있었다.
그러면 자신에게도 출세가도의 길이 약속되어있는 것이나 마찬가지였다.
문상원은 서둘러 술자리를 치우고 자신의 차에서 촬영장비들을 가져왔다.
방송용 캠코더에 테이프들을 장전하고 CCTV를 설치하기 시작했다.
그러자 윤수영이 문상원의 옆에서 겁에 질린 표정으로 말했다.
“오빠, 무서워. 그럼 우리가 아까 봤던 사람들은 뭐야?”
“넌 왜 안 갔냐? 용준이 형 차타고 가지.”
“아니........ 무섭기도 하지만 원래 우리는 흉가에서 귀신 보려고 온 거잖아.
나 이렇게 가슴이 뛰어보는 건 정말 처음이야.”
“그래. 짜릿짜릿하지. 대박 터지면 제대로 한 턱 쏠 테니까 기대하라고.”
CCTV를 전부 설치한 문상원은 캠코더를 들었다. 그리고 펜션의 구석구석을 촬영하기 시작했다.
윤수영은 겁에 질린 표정으로 문상원의 뒤를 따르며 캠코더의 LCD를 바라보았다.
그러나 특별히 찍히는 것은 없었다.
“음....... 아무 것도 안 찍히네. 정말 귀신 찍히면 좋겠는데.”
“쉿! 조용히 해. 소리 같은 게 잡힐 수도 있으니까.”
문상원과 윤수영은 펜션 곳곳을 돌아다니며 촬영을 했다.
펜션 주변과 주차장은 물론이고 지하실까지 촬영했다. 그러나 특별히 찍히는 것은 없었다.
윤수영은 뒤에서 무섭네 아무것도 안 찍히네 계속 수다를 떨어댔다.
문상원은 조용히 하라고 하고 싶었지만 솔직히 자신도 무서웠기 때문에
윤수영과 계속 대화를 나누며 촬영했다.
그렇게 대충 촬영을 끝내자 다시 거실로 돌아와 CCTV의 화면들을 바라보았다.
CCTV들은 펜션의 각 방들과 현관 앞 그리고 화장실에 설치되어 있었다.
문상원은 그렇게 CCTV들을 바라보고 있자니 서서히 눈이 감기기 시작했다.
무리하게 술기운을 깼더니 몸이 매우 피곤해진 모양이었다.
“오빠, 자지마. 나 혼자 무섭단 말이야.”
“알았어. 그럼 졸리지 않게 무슨 말이라도 좀 해봐.”
그러자 윤수영은 이런 저런 수다를 늘어놓기 시작했다.
그러나 문상원은 천근만근 무거워지는 눈꺼풀을 견딜 수 없었다.
윤수영의 목소리가 점점 멀어지며 한순간에 깊고 깊은 잠에 빠져들고 말았다.
“이보세요. 일어나세요.”
누군가가 문상원의 어깨를 흔들었다. 문상원은 바닥에 웅크린 채 눈을 떴다.
그러자 자신을 흔들고 있는 두 명의 경찰이 눈에 들어왔다.
문상원은 온 몸을 두들겨 맞은 것 같은 근육통을 느끼며 몸을 일으켰다.
그러자 경찰들은 자신이 어젯밤에 설치한 CCTV들을 살펴보고 있었다.
“혹시 문상원씨 맞습니까? 어제 밤새도록 혼자 뭘 하고 있었던 겁니까?”
“........촬영할 게 좀 있어서요. 근데 무슨 일로 오신 겁니까?”
“윤수영씨 문제로 왔습니다. 조사할 게 있으니 같이 서로 가주셔야겠습니다.”
“수영이라면 아까까지만 해도 여기서 술 마시고 촬영도....... 근데 수영이가 어디 갔지?”
문상원은 주변을 두리번거렸다. 그러나 깨끗하게 치워진 거실에는 아무것도 없었다.
그러자 문상원을 바라보던 경찰이 목소리를 높이며 말했다.
“윤수영씨는 어젯밤 11시 경에 XX군 사거리에서 트럭에 깔려 숨졌습니다.
숨지기 직전까지는 문상원씨 차를 타고 있었죠. 사실입니까?”
“아니 그게 무슨 소립니까?! 수영이라면 분명히.......”
그러고 보니 모든 게 이상했다.
김혁과 윤수영은 자신의 차에 타고 내렸는데 문을 열었다는 기억이 없었다.
김혁과 윤수영이 먼저 펜션에 들어왔는데도 불구하고 자신이 직접 거실에 불을 켰다.
그리고 박용준 회장이 펜션 안에 들어왔을 때도 CCTV를 설치하고 있었을 때도
윤수영은 분명히 펜션 안에 없었다.
“마, 말도 안 돼. 분명히 이 카메라에 수영이 목소리가 들어갔을 거라고요.”
문상원은 자신도 모르게 식은땀을 줄줄 흘리기 시작했다.
떨리는 손으로 캠코더와 CCTV들을 되감아 재생해 보았다.
그러나 CCTV에는 캠코더를 촬영하는 자신의 모습밖에 찍혀있지 않았다.
그리고 캠코더의 영상에는 누군가와 대화하는 문상원의 목소리만이 흘러나오고 있었다.
호러, 미스테리, 스릴러 단편집 [한여름 밤의 악몽]이 전자책으로 나왔습니다...
무료니까 부담 없이 다운 받아서 보세요~~
비스킷, 아이폰, 아이패드, 안드로이드폰, 갤럭시탭으로 볼 수 있습니다~~
http://book.interpark.com/product/BookDisplay.do?_method=Detail&sc.shopNo=0001100000&sc.dispNo=001018&sc.prdNo=20852838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