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종대왕은 개인적으로 탄산수를 꽤 좋아했는지 이곳 청주(초정리)와 목천(천안시), 전의(세종시)에는 탄산수가 있는데 왜 (충청도와는 달리) 경기도에는 탄산수가 없느냐며 경기도 관찰사에게 탄산수가 나오는 곳을 찾아보라는 명을 내리기도 했다.
경기 관찰사에게 교유하기를,
"청주(淸州)·목천(木川)·전의(全義) 등지에는 다 초수가 있었는데, 어찌 본도(本道, 여기서는 '경기도'를 의미함) 에만 없겠느냐 만약에 보고서 알리는 사람이 있거던 상을 주기로 하고, 마땅히 도내 각 고을 수령들로 하여금 편의한 대로 찾아보게 하되 소요(騷擾)스럽게 하지 말 것이며, 만일에 알리는 자가 있거던 빨리 계문(啓聞)하게 하라."
하였다.
- 세종실록 104권, 세종 26(1444)년 4월 13일 임진 3번째 기사
충청도의 탄산수를 한양의 궁성까지 파발마 특송으로 보냈다고도 한다.
충청도 관찰사 김조(金銚)와 경기 정역 찰방(京畿程驛察訪) 이백견(李伯堅)에게 유시(諭示)하기를,
"지금 가는 내섬시 윤(內贍寺尹) 김흔지(金俒之)의 말을 듣고, 이어 그가 가지고 가는 사목(事目)을 살펴본 뒤에 초수(椒水)를 올려보내는 일을 흔지(俒之)와 함께 곡진(曲盡)하게 조처하라.
1. 전의(全義)의 초수(椒水)는 각역의 잘 달리는 말 두 필씩을 선택하여 초수를 실어 보내는 일에 전용(專用)하고 다른 일에 쓰지 말것.
1. 초수에는 부지런하고 근신하며 사리를 알 만한 자 2인을 선택하여 감고(監考)로 정하고, 몸이 건장(健壯)한 자 3인을 선정(選定)하여 칭호를 압직(押直)이라고 하고, 매일 감고 1인과 압직 1인이 윤번(輪番)으로 지키게 하되, 관(官)에서 아침저녁의 식사를 제공할 것.
1. 연도(沿途)의 각역에서는 초수(椒水)를 압직(押直)하고 운송하는 자 3인을 선정할 것.
1. 전항(前項)의 초수를 운성할 때에 각역에서는 말 두필과 압직(押直) 3인이 윤차로 입직하고, 서로 휴식하면서 차례로 돌려 다시 처음으로 돌아오게 할 것.
1. 전의의 초수는 입번(入番)한 감고가 매일 해질녘에 초수를 사기그릇에 넣고 기운이 새지 않도록 하여 봉함하고 서명(署名)한 뒤에, 그때의 시각과 이를 실은 역마의 이름을 적어서 압직인에게 주고, 압직인은 다음 역의 압직인에게 전한다. 이렇게 급히 체송(遞送)하여 하룻밤 사이에 서울에 도착하여 바치게 하라. 만일 지체하는 일이 있으면 찰방과 역승(驛丞)을 그때 즉시 처벌할 것.
1. 초수 운송을 잘하고 못하는 것으로 찰방·역승 등을 경솔하게 검거하지 말것.
1. 지금 보내는 사복시(司僕寺)의 말 여덟 필은 각역의 빈한(貧寒)한 역자(驛子)에게 나누어 주어 초수를 운송하게 하라."
하였다.
- 세종실록 105권, 세종 26(1444)년 7월 4일 신해 2번째 기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