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원균이조선수군을거의잃은후다시수군을재건하는이순신장군의수습과정[BGM]
게시물ID : history_17660짧은주소 복사하기
작성자 : 동물의피
추천 : 19
조회수 : 2361회
댓글수 : 15개
등록시간 : 2014/08/12 14:29:05
 
불멸의 이순신 OST - 칼의 노래
 
 
 
 
[출처]I Love Soccer (축구동영상)
http://cafe.daum.net/WorldcupLove/Knj/1792395
글쓴이:야구팬구름이 님
 
 
 
 
 
아이러브사커.jpg


 
 
 
 
27-01.jpg

영화 명량으로 이순신 장군의 관심이 높아졌다고 합니다.
뉴스를 보니 이순신 장군 관련 서적이 3~9배까지 판매량이 늘었고
판옥선 모형 판매량은 3배이상 매출이 올랐다고 하네요.
영화에서는 이순신 장군의 수습과정이 지도에 화살표가 움직이는 그 한컷으로 처리됬더라구요.
해전자체도 위대했지만 수습과정 자체도 고문후유증과 자신이 힘들게 구축한 대함대를 잃은 슬픔,
어머니를 잃은 슬픔을
모두 이기고 발빠르게 수습을 하는 모습을 보이는데
역시 영화 러닝타임의 한계인가봅니다.
불멸의 이순신에서는 이 수습과정이 1회분량으로 배정되어 어느정도 묘사를 했습니다.

-------------------------------[이순신 장군 통제사 재임명 전]----------------------------------------
1.이순신장군 선조의 뻘짓으로 고문->백의종군 , 그와중에 삼도수군통제사가 된 원균이 그동안 이순신 자력으로 
모은 함대 모두 잃음.  

--------------------------[이순신 장군의 빠른 조선 수군 재건 능력]---------------------------------
2.경상우수사 배설이 도망쳐서 불행 중 다행으로 12척의 배가 있었음. 
  당시 충무공의 보고서에 따르면 병사들은 전의 상실에 전쟁공포증, 군함 1척당 190명 승선인원이 필요하나
  90명 수준, 군량미 부족으로 병사들이 기아상태, 화약 절대 부족상태.

3.8월 3일 충무공을 죄인취급하던 선조는 뻔뻔하게 다시 충무공을 삼도수군통제사로 재임명..., 이날부터 충무공은 아픈몸을 이끌고
  매우 빠르게 행동하기 시작

4.가장 먼저 12척의 판옥선을 갑판 벽을 높여 적의 탄환과 도선을 힘들게 개조함. 그리고 절대적으로 필요한
 병력과 군량미,화약 확충을 위해 본인과 9명의 군관을 이끌고 이리저리 해매고 다님
 (이와중에도 조정의 지원은 0...,)

5.8월 5일 충무공은 곡성읍에 도착해서 고산 현감 최진강으로부터 신병들을 인수 받음

6.8월 6일 옥과에서 옛부하 이기남,정사준,조응복,양동립을 다시 편입시킴

7.8월 7일 옥과에서 순천으로 가던 도중 부대해산하려던 이복남과 그의 부하들을 수군에 편입함. 이때 
 군마와 각종 병기도 확보함

8.8월 8일 광양 현감 구덕령,나주 판관 원종의,옥구 군수 김희온을 편입시키고 순천에 도착.
  순천에서 무능한 관리들이 군기창고를 파괴하지 않은채 도망쳤는데 여기서 많은 무기를 확보함.
  (충무공이 조금만 늦으셨더라면.., 이건 전부 왜놈 손에...,)

9.8월 9일 낙안으로 이동. 거기서 순천부사 우치적과 김제 군수 고봉상 편입. 바로 보성 조양창으로 이동.
 여기서도 순천과 마찬가지로 병기창고를 파괴하지 않고 도망친 무능한 관리들 덕에 병기와 군량미 확보
 이 짧은 몇일 사이에 330km을 이동하며 수군함대를 재건할 무기와 군량미를 모으고 또 모음...
 이 짧은 몇일간 충무공이 모은 병사는 신병 1000여명,군량미 1개월 분,1회 전투 분량의 병기
 (여기서 더 놀라운건 충무공이 왜군보다 약 하루정도 차이로 먼저 수습하였다는 것이다. 
 전멸된 수군을 보고 망연자실과 신세한탄을 하루만 했어도 신병과 군량미,병기들은 조선것이 아니게 될뻔한 것이다.)

10.8월 20일 판옥선의 갑판 개조가 완료되자마자 함대를 직접 이진으로 이동함.

11.8월 26일 왜군의 척후선 8척이 접근함. 충무공은 어란진으로 도망치는 척함. 이미 삼도수군을 멸해서
사기가 하늘을 찌르는 왜군은 도망치는 12척의 전함에 이순신장군이 있는줄은 꿈에도 모르고 그저 패잔병들이
겁을 먹고 달아난다고 여겨 맹렬히 추격함.

12.8월 28일 아침, 불과 8척으로 추격해온 왜선을 가볍에 물리침. 이 전투는 작은 전투이지만 해전경험이 전무한
육군출신이 대부분인 수군의 사기를 높이는데 큰 역할을 함. 병사들도 그전까진 전의가 바닥이었지만
이순신 함대라면 지지 않는다는 확실을 가지게 됨.

13.왜군은 이번일로 자신들의 수륙병진책에 걸림돌이 생길것을 염려하여 조선의 12척을 잡기위해 55척의 대규모
함대를 이끌고 어란진에 쳐들어가나 조선수군은 이미 자리를 떳다. 왜군은 당황하여 12척만 따로 수색을 시작했다.
이순신장군은 이미 여러군대에 감시망을 확보하고 수색하러 따로 떨어진 12척을 공격했고 왜군은 퇴각했다.
아직까지도 이순신장군의 복귀를 모르는 왜군은 새로운 조선의 유능한 장수가 나타났다고만 생각함. 
병력수로 제압해야겠다고 판단한 왜군은 조선수군의 두배인 25척으로 공격할 계획을 짬.
이미 왜군이 야습할것으로 예상하고 있던 왜군의 눈에 잘뛰는 곳에 작은 협선에 불을 밝혀 표적이되게 하고
이순신장군 함대들은 미리 매복함.

14.9월 7일 예상대로 박파진으로 왜군이 쳐들어오자. 왜군들은 이순신장군의 예상대로 눈에 띄는 협선을 공격함.
그러자 매복해있던 진짜 조선함대가 나타나 함포 세례를 퍼부으며 압도적인 승리를 거둠.
전의와 경험이 일천하던 신병들의 경험과 자신감을 갖게 해준 소중한 전투였음
그리고 일본 내에서도 이 함대를 이끄는 수장이 이순신 장군일꺼라는 소문이 퍼지면서 
일본군의 사기가 떨어짐.

15.일본에서는 제 아무리 이순신이라고 하더라도 단 12척의 패잔선으로 수백척을 당할 수가 없을 것이라 판단하여
최신 대형 전투함을 대거 투입해 조선수군을 격멸할 계획을 세우고 벽파진에서 70리 떨어진 어란진에 집결함.

-----------------------[명량해전]--------------------------------------------------------

16.일본 해군은 최신예 전함 200척과 한강 마포에서 상륙을 하려던 왜군 10만명이 어란진에 모임.
   이순신 장군은 이미 정보전에 능하므로 이미 이러한 움직임을 파악하고 있었음

17.9월 9일 왜군은 2척의 정탐선을 벽파진으로 보내 지형과 수로를 파악하고 이순신 함대가 정말 12척인것을
재확인함. 왜군이 정탐하러 왔다는 보고를 들었음에도 이순신 장군은 일부러 관망만함. 이것은 일부로 왜군이
벽파진으로 공격하길 유도한 것이다.

18.9월 14일 이순신장군은 모든 인원들을 모아놓고 비장한 각오와 지시를 내림. 이순신 장군은
우수영에 있는 명량의 해협을 이용하기로함. 이미 원균 함대에서 전멸을 경험했던 장수들도 있던 터라
불안해 하는 장수도 많았다
(이 해협은 함초가 많고 유속이 빠르며 폭이 좁다는 이점이 있다.)

19.9월 15일 이순신 함대는 순류를 타고 명량해협을 통과하여 우수영으로 이동

20.9월 16일 일본연합함대는 어란진을 발진하여 벽란진으로 총출격함. 하지만 이순신 함대는 이미 사라진뒤.
일본군은 조선수군이 겁을 먹고 도망갔다고 판단했지만 벽란진에서 다른 곳으로 이동하기 위한 수로는 
북쪽 우수영 방면뿐이다. 이순신장군은 일본 대함대를 자신이 원하는 곳으로 유도를 한것이다.

21.구루시마를 선봉으로 133척의 정예 함대가 명량 해협에 접근했다. 그 뒤를 70여척의 함대가 따르고 있었다.
일본함대가 도착한 시간이 정오였는데 이 시각엔 물살이 잠잠했다. 마침 도망갔다고 생각했던 조선함대도
명량 해협중에서도 가장 좁은 수로인 울돌목에서 진을 치고 있었다. 이순신 장군의 대장선이 앞장서 있으며 
그 뒤 11척의 배들이 일자로 진을 치고 버티고 있었다.

22.기함에 오른 장기를 보고 조선수군의 함대에 이순신이 있다는걸 알아챘으나 앞도적인 전력차로 구루시마는
강한 자신감을 내보이며 대함대를 전진시켰다. 하지만 해협의 폭이 좁아 함대는 종대 전진을 했으며 재빨리 조선수군을
포위하기 위해 양쪽으로 날개를 펼치려 했으나 암초에 걸려 기동 불능에 빠진다. 
그러자 일본군은 다시 작전을 바꾸고 중앙으로 재집결하는데 이상하게도 조선수군은 아무 반응없이
바라 보기만 한다. 이틈을 타 왜선들은 전진해서 해협을 통과한다.

23.이때를 맞춰 조선수군은 지자포,현자포,함재포를 난사하기 시작한다. 그로인해 일본의 선봉전함들이
순식간에 불길에 휩싸인다. 각종 포로 일본함대의 기동성을 저해시킨 이후 조란환을 발사하여 
왜군을 몰살시킨다.

24.강렬한 포사격 때문에 앞선 왜선은 초토화가 되었으며 그 뒤를 따르는 왜선들은 또 그 뒤를 따르는 왜선들로
퇴각도 못하는 상황에 빠지게 왜군은 죽기살기로 돌격하시 시작한다.

25.놀라운건 위의 상황이 이순신 대장선이 가장 앞에서 1시간동안 혼자 고분분투한 하고 있었다는 것이다.
다른 함선들은 멀리 떨어져 겁을 먹고 있었다. 이미 후퇴도 불가능한 왜군은 죽기살기로 돌격하여 몇몇 왜병이
도선에 성공하기까지 이르렀다. 이순신장군은 참다참다 못해 중군기와 초요기를 올리고 겁을 먹고 있는 거제 현령 안위에게
"죽고 싶으냐? 군법으로 너를 죽여 마땅하지만, 싸움이 급해 우선 너를 공을 세우게 한다"라고 불호령을 내리자 그제서야
겁을 먹던 전함들이 사력으로 싸우기 시작한다.

26.전투발발 3시간 경과:대장선이 적의 선봉 20여척을 모두 격파하자 왜군의 대장선이 노출되었고 이순신장군의 대장선이 집중공격하니 왜장 구루시마는 바다에 빠지고 만다. 준사가 바다에 빠진 시체를 보고 구루시마라고 알려준다 대장선 병사 김을손이 구루시마의 시체를 건져 올리자 마자 목을 베어 대장선의 꼭대기에 매단다. 이후 왜선의 사기는 크게 꺽인다. 

27.그때까지도 적극적으로 싸우지 않는 9척의 함대에 공격명령을 내렸고 모든 함대가 함포를
발사한다. 때마침 물의 흐름이 가장 빠른 신시가 되어 물살도 왜군에게 불리한 상황이되었고 3시간동안 기직맥진하여 도망치기 급급한 왜선에 가공할만한 화력으로 공격을하니 왜선은 암초 혹은 자신들의 배끼리 부딪혀 막심한 피해를 입는다. 


----------------------------------[결과]--------------------------------------------------------
28.왜군은 이 전투로 수많은 전함이 좌침 혹은 전투선으로 기능을 잃고 수많은 군사를 잃었으며 재해권을 다시 잃게 되었다. 그리고 10만명의 대군을 서울로 상륙시키려한 작전까지 물거품이 됬으며 사실상 나라를 구한 역사상 최고의 드라마틱한
승리라 할 수 있겠다.


(출처: 난중일기,부흥)



최근 수많은 일이 터졌는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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