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대 유진벨
유진 벨 선교사는 교육과 의료 사역에도 중점을 두어 목포에 정명학교와 영흥학교를 세웠고, 광주에 숭일학교와 수피아여학교를 세웠으며, 광주에 최초의 종합병원인 광주기독병원(현 제중병원)을 세움
한국에서 자녀 둘을 보았지만 유진 벨의 부인은 심장병을 돌아가심
유진벨은 재혼을 했지만 두번째 부인마저 1919년 3월 제암리교회 학살 사건을 조사하고 광주로 돌아오다가 병점역에서 열차와 자동차가 충돌하는 사고로 세상을 떠남
2대 샬롯 벨
미국에서 생활하다 한국으로 돌아온 샤롯 벨은 윌리엄 리튼과 결혼한 후 전주 기전여고, 전주 신흥고 등 미국 남장로교 선교사들이 세운 학교의 교장으로 활동함.
윌리엄 린튼은 1919년 태극기와 독립선언서 제작 등 3·1 운동을 후원하는 한편 한국의 독립운동 소식을 외국 신문에 기고해 알렸음
일본의 신사참배 요구에 불응하자 강제출국 당하고 학교도 모두 폐교.
해방이 되어 다시 한국을 찾은 윌리엄 린튼은 '한국 사회에 필요한 것은 젊은 지도자 양성'이라고 생각하여 1956년 한남대학교(HNU)의 전신인 대전대학을 설립
3대 휴 린튼
한국 전쟁 당시 미 해군 대위로 인천 상륙작전에 참전.
종전 후 선교사로 재입국하여 전남 도서지역에 600여 교회를 개척하며 결핵 퇴치 사업을 펼침. 하지만 1984년 불의의 교통사고 세상을 떠남
4대 스테판 린튼
북한의 결핵 퇴치를 비롯하여 돕는 일에 앞장서온 북한 전문가
4대 인요한
연세대학교 의과대학 가정의학과 교수 겸 국제진료센터 소장
5ㆍ18 광주민주화운동 당시 외신기자들을 통해 광주사태를 미국언론에 알린 인물
그 일로 한국에서 추방되었다가 다시 귀국하여 의사가됨
5대 데비비드 린튼
변호사로서 숙부 스테판 린튼이 설립한 대북지원 민간단체인 유진벨 재단의 업무를 함께함
진정 금수저 가문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