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 쭝학생 시절 엄마는 아침마다 도시락을 싸기 위해 일찍일어나지..는 않으셨고, 거의 내가 학교에 갈 시간쯤 되어서야 도시락을 싸기 시작하셨다.
반찬이야 뭐 다른건 없고 김치에 소세지 볶음같은것이 전부였다. 진짜 성의없었다. 다른집 엄마들은 뭐 계란말이나 제육볶음 아니면 함박스테이크라던가 손수 만들어 싸주곤 하셨는데.
한번은 계란말이를 먹고싶다고 했더니 '진작 이야기하지' 하며 다음날 분주히 계란을 까는 엄마의 모습을 보며 내심 기대를 안은 채 도시락통을 열었는데, 두꺼운 계란지단이 들어있었을 때의 내 심정이란. 알고보니 그냥 계란말이를 못하셨던거다. 덕분에 지금 난 계란말이 안에 오만걸 다 넣고도 예쁜 모양을 낼 수 있는 사나이가 되었다. 목마른놈이 우물파야지.
돌이켜보건대 그정도만이라도 감사할 수 있었던건 퀄리티가 정말 떨어지는 날엔 양반김에 참치캔이 전부였던 적도 있다. 진짜 어지간히 귀찮으셨나보다. 어린마음에 그런 도시락이 쪽팔릴때면 아예 밥도안먹고 덮었던 적도 있다.
엄마는 참 뭐랄까. 다른집에 가면 예쁘게 접시에 반찬을 내오곤 하는데 우리집은 그냥 플라스틱 통에 담긴 반찬이 그대로 나왔다. 내 밥그릇은 당시 기준으로 16년이 넘은 스댕밥그릇이였다. 아. 참고로 지금도 그 밥그릇 있다. 난 명절때 집에가면 여전히 그 밥그릇에 밥을 먹는다. 밥그릇이 나보다 형이다. 말하자면 난 식사때마다 형님 머리통을 헤집는 동생인 격이다.
아무튼 밥그릇은 그렇다 치고 난 그 모든것이 싫었다. 그냥 되는대로 내주는것 같은 밥상이나 매번 뽄새없는 밥상만큼이나 예쁜것 하나없는 우리집도 나이키 신발을 신고싶다는 생각을 입밖으로 내지 못했던 괴랄한 엄마아빠의 패션감각도.
뭐 그런데 지금 생각해보니 특별히 나쁜 일은 아니였던 것 같다. 하긴 소세지야 좋아해서 싸준것일테고 참치랑 양반김도 좋아하는데 뭐. 단지 안예뻐서 쪽팔렸던 것 뿐이다. 계란말이야... 좀 아쉽지만 이젠 내가 해먹을 수 있으니 그것도 뭐.
타지에서 오래 생활하다보니 이젠 그 뽄새없는 밥상이 너무 그립다. 멋이라곤 하나도 찾을 수 없는, 유년기에 그렇게 싫어했던 그 집에 언제라도 가고싶다.
나는 밖에서 육천원짜리 백반이나 국밥같은걸 사먹으면서도 집보다 훨씬 예쁜 그릇에 맛난 반찬이 나오는데도 집밥이 더 생각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