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율법과 현실 법의 괴리
게시물ID : religion_17685짧은주소 복사하기
작성자 : 국회민영화
추천 : 2
조회수 : 516회
댓글수 : 1개
등록시간 : 2015/01/29 17:11:15
초대 교회는 세상을 멸망할 것으로 보고 또 자신의 낙관주의를 천년왕국에 대한 소망으로 표현하였기 때문에,
 
지상의 세계를 패배주의적 시각으로 보았다.
 
이러한 소망이 약해지기 시작하고, 교회가 정치적 경제적 생활에 대해 책임을 져야만 하는 상황이 닥쳐오자,
 
기독교적 이상이란 이름 아래 기존의 사회 관습과 관계들에 대해
 
도전하는 경향이 줄어들었다.
 
그 결과 노예제도, 불의, 부의 불평등, 전쟁 등은 인간이 죄를 범한 상태를 위해서 하느님이 고안한 자연법에 따라 제정된 것이라고 받아들여졌다.
 
예를 들면 노예 제도와 같은 사회 제도를 인간의 죄악의 결과로 볼 것인지 아니면 하느님이 죄를 억제하기 위해 사용하는 수단으로 볼 것인지에 관해
 
종종 상당한 혼란이 있었다.
 
하여튼 교회는 기존의 제도와 그 자신의 이상 사이에 간격과 충돌이 있음을 잘 알고 있으면서도 현재의 제도를 수용한다.
 
자연과 역사에 존재하는 그 어느 것도 하느님의 분명한 의지가 없이는 있을 수 없다는 자연적 결정론과 그 신앙은 이러한 경향을 더욱 부추겼다.
 
자연법은 복음의 법에 비하면 그 서열이 낮을지 모른다.
 
하지만 국가와 사유재산 제도, 전쟁과 불평등의 제도 또한 하느님이 만든 것이다.
 
(중략)
 
초대 교회에서는 노예도 평등권을 갖고 있었다는 사실은 그들의 시민적 자유를 향상시키는 데 큰 도움이 되지 않았다.
 
교회는 경제적 힘을 가진 세력들이 노예를 중세의 농노로 만들 때까지 노예 제도를 방해하지 않고 그대로 두었다.
 
(하략)
 
-도덕적 인간과 비도덕적 사회  _ 나인홀트 니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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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독교는 현실과 끊임없이 부딪치면서 당시 시대와 타협하는 수밖에 없었고, 기독교는 그 수많은 부조리와 악습을 묵인한 채
 
과거와 현 시대의 모든 부조리를 끊임없이 받아들이며 그 때 마다 모든 것이 하느님의 뜻이라며 받아들였다.
 
이로써 기독교가 인류를 위해 한 것은 약자를 위한 것이 아닌 강자를 위해 힘써온 것이 아닐까하는 의구심 마저 든다.
 
기독교는 오히려 노예 제도, 여성 인권 박탈, 인종 차별을 끊임없이 부추기며
 
심판의 날을 외치며 현실을 받아들이고 인내하는 것에 그친 것이다.
 
하지만 기독교는 노예제도와 여성 인권, 인종 차별에 묵인해 온 것에 대해 전혀 반성하는 일말의 태도도 보이지 않으며
 
오히려 지금에 이르러서는 동성애자의 인권을 박탈하려 들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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