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람들은 무협소설을 흔히들 구무협과 신무협으로 나눈다. 누군가는 그 기준을 태극권이라고도 하나 대부분은 대도오를 중요한 계기가 되었다고 한다.
그렇다면 구무협과 신무협의 차이란 무얼까? 언젠가 들어봤던 것으로 그것은 무협 소설에 인간이 있는가의 여부다. 그저 대리만족을 위해 정형화 된 길을 따라, 미남, 수련 후 고수, 강호 질타, 미녀들과의 인연, 운우지락, 위대한 협객, 명예, 성공 이러한 것들을 그저 보여주며 독자들이 대리만족을 느끼도록만 한 구무협과 달리 신무협은 소설답게 인간을 그리기 시작한 것이다.
그런 면에서 볼때 좌백작가의 혈기린 외전은 신무협에 가장 걸맞는 소설이 아닐까 한다. 그야말로 인간이 중심이며 다양한 인간군상을 통해 주제를 말하기 때문이다.
좌백 작가는 혈기린 외전을 쓰기에 앞서, 이 소설은 협이란 무엇인가에 대해 쓰겠다고 밝힌다. 그리고 사마천이 사기의 구절을 인용하고 협이 무엇인지 협객, 협사란 과연 무엇일까에 대해 명확하진 않지만 그 어렴풋한 형체를 보여준다. 도가도 비상도라 하였으니 협이 무어라 하면 그것은 협이 아닐 것이다. 그저 협의 단면일 뿐, 그러니 어쩌면 이 어렴풋함이 좌백작가가 씹고 씹어 소화한 '협'이라는 것을 가장 잘 나타내주고 있다고 생각한다.
또한 좌백작가는 혈기린 외전에서 '나는 누구인가'라는 실존적 물음 역시 던지고 있다. 이 실존주의적 고뇌는 작품 전반에 걸쳐 보이는 데 개인적으로는 '협'과 더불어 실존적 고뇌가 이 소설의 척추라고 생각한다.
이 두 뼈대 위에 좌백작가는 정말 재밌는 살들을 덧붙인다.
주인공 왕일은, 정말 아무것도 모르는 촌무지렁이다. 조그마한 농가의 장남이고 강호의 강, 무공의 무자도 모르는(당연히 글도 모르고 특별히 강한 신체도 가지지 않은) 극히 평범한 인물이다. 아버지 어머니, 얼굴이 곱상한 여동생과 다른 조그마한 동생들. 이들가족은 몇십년에 한번 올 가뭄에 입에 거미줄 칠 상황에 빠진다. 그러나 그때 마을의 유력자의 아들이 범죄를 저질러 군역을 받게 되었는데 대신 역을 짊어지면 쌀 10가마와 10냥을 준다고 한다.
왕일은 책임감에 대신 군역을 가고 7년후 돌아온다. 그러나 집은 불타고 누이동생을 제외한 모두가 죽었다. 누이동생은 유력자의 첩이 되었다가 이제는 산적에게 끌려가 산적 우두머리의 첩이된다.
이러한 일을 저지른 것은 무림인.
왕일은 눈썹과 같이 바로 옆에 있으나 그에겐 너무나도 멀었던 그 무림인들에게 복수를 시작한다.
보통 같은 소설이면 어떤 문파에 들어가든 기연이라는 뭘 얻든 그가 강해지겠지만 왕일은 그저 원래 조금 잘 쏘던 활 실력과 독을 통하여 그들에게 복수하기 시작한다.
여기서 나오는 무림인들은 3류축에도 끼지 못하거나 가장 강한 산적 우두머리가 2류 정도의 실력이다. 그러나 그들은 왕일이 어찌할 수 없을 정도로 강하고 왕일은 너무도 약하다.
그러나 복수한다. 이것이 1부 내용이며 2부 내용에서도 왕일은 똑같이 그저 활과 독을 좀 다룰줄 아는 3류에서도 못미치는 하수일 뿐이다. 3부가 되어서야 강해지나, 여전히 문제가 있다.
보통 무협소설을 생각하고 읽으면 너무나도 현실적이라 이야기는 답답할 정도일 수도 있으나 이러한 현실성 때문에 소설에 깊이 빠져 왕일과 동화되고 아무것도 없기에 썩은 동아줄 위를 걸어가듯 위태로운 왕일의 이야기는 긴장감 넘치고 너무나도 재밌다. 흡사 3부작 영화를 보는 듯한 기분이 들었다.
한국 무협을 논한다면 반드시 혈기린 외전을 빠뜨리면 안된다더니, 읽어보니 그 이유를 가슴 깊이 느낄 수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