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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작소설) 가디언 [ 프롤로그 #1 ]
게시물ID : readers_17755짧은주소 복사하기
작성자 : 민호입니다
추천 : 2
조회수 : 234회
댓글수 : 0개
등록시간 : 2014/12/25 03:27:50


그날은 이상하리만큼 세차게 비바람이 몰아치는 밤이었다. 대충 꼬맨듯한 가죽옷에 커다란 검은 망토를 두른 사내가 이니시우 마을에 도착한 것이
이야기의 시작이었다. 사내의 옷은 꽤나 멀리떨어진 곳에서 온것을 증명이라도 하듯 진흙과 먼지로 뒤덮혔고, 망토에서는 퀴퀴한 냄새가 진동을
할정도였다. 그가 발을 내딛을 때마다 물웅덩이에서 진흙이 튀어올랐는데, 사내는 무심한듯 신경쓰지 않고 그대로 앞을 향해 나아갔다.
그의 가죽옷에는 희미하게 변색된 붉은 자국들이 있었는데, 모르는 이가 봤다면 전쟁터에서 방금 막 귀환한 사람으로 이해하기 충분한 차림새였다.
이니시우 마을의 입구는 두개의 언덕사이에 초소가 세워저 있었는데, 보통은 감시하고 있어야할 경비병들이 보이지 않는것을 보아하니 일찍이
퇴근한 모양이었다.

사내는 초소를 거쳐 희미한 불빛이 일렁이는 마을 중심가를 향해 계속해서 걸음을 재촉했다. 꽤 늦은시각이었고, 비도 세차게 내리면서 슬슬 기운이
서늘하게 떨어지고 있어서 사내는 최대한 빨리 하룻밤을 지낼곳을 찾아야 했다. 마을 중심가에 도착했을때는 소수의 집만을 제외하고는 거의 불이
꺼진 상태였는데, 멀리서 희미하게 여관이라는 표식의 간판이 사내의 눈에들어왔다. 비가 많이 내리고있었고, 어둠이 깊숙히 내려앉아있어서 가시거리
가 길지 못했을 텐데 한번에 여관의 간판을 찾은것을 보면 사내는 밤눈에 꽤 밝은것같았다. 질퍽이는 땅을 뒤로하고 여관의 문 앞에 도착한 사내는
거칠게 숨소리를 내며 문고리를 세번 두드렸다.

문고리를 세번 두드리는 행동은 게하 대륙의 여행자들이 암묵적으로 만든 룰이었는데, 늦은시각에 여관에서 하룻밤을 지내길 원할때에 '문고리를 세번
두드리면 잘곳이 필요하다' 라는 약속같은 것이었다. 이 약속은 여관주인들에게도 많이 알려져있었기 때문에 문고리를 두드린지 얼마 안되서 안에서
사람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문은 열려있으니 들어와요"

여관 주인이라고 하기에는 목소리는 상당히 젊은 여성의 목소리였는데, 사내는 별로 신경쓰지 않는듯 했다. 그가 거쳐간 대도시 중에서도 여관이나 주점
을 젊은 여인들이 운영하던 곳이 많았기 때문이었다. 사내가 나무로된 문을 열자, 오래된 문에서 나는 끼이익 소리와 함께 안쪽문 바로 위에 붙어있던
작은 종들이 부딪히며 딸랑딸랑 소리를 내기 시작했다. 사내가 문을 반쯤 열고 문 안으로 발을 내딛자 바로 신경질적인 여인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신발에 진흙은 밖에서 대충이라도 털고 들어와요. 바닥이 더러워져서 또 청소해야 하잖아요"

남자는 머쓱한듯 고개를 잠깐 갸웃 하더니 이내 여관 입구로 나가 발을 바닥에 두세번 힘없이 털기 시작했다. 꽤나 오랜 여행이었는지 몸에 조금의 힘도
안주는 모습에, 여인은 초면에 신경질낸게 미안했는지 한숨을 푹 쉬고는 카운터로 들어갔다. 사내가 카운터 앞에 서자, 여인은 사내의 행색을 천천히
둘러보더니 이내 말을 꺼냈다.

"꽤나 먼곳에서 왔나봐요? 옷에 진흙투성이에 먼지투성이인거 보니 걸어오신것 같은데, 말같은걸 안타고 여행하시는 건가요?"
여인이 호기심에 가득한듯 물었다. 그녀가 여관주인으로 있는 이니시우 마을은 게하 대륙에서도 제일 끝에 있는 변두리에 위치한 아주 작은
마을이었기 때문에 보통 여행자들은 이니시우 마을은 건너뛰고 바로 소도시인 트라바시로 거쳐갔기 때문에 이런 여행자는 오랜만의 방문이었다.

"작은 방 하나만 주고, 씻을 물좀 데워주세요. 간단한 식사 가능하겠죠?"
사내가 여인의 물음에 답하지 않고 곧바로 용건을 꺼내자 여인은 조금 기분이 상한듯 얼굴을 찡그렸다. 그녀는 여관을 운영하면서 여러 여행자가
여관에 들려 여행한 이야기를 해주면 그것을 들으며 바깥세상은 어떤곳일지 상상하는것이 취미였는데, 사내의 반응으로 봐서는 자세하게 알려줄 것
같지도 않았다. 여인은 작은 한숨을 내쉬며 사내의 눈을 잠깐 응시했는데, 사내는 피곤한 모양인지 눈에 힘이 많이 없는것 같았다.

"2층 첫번째 방으로 가세요. 어자피 손님이 없어서 오늘 묶으시는 분은 여행자님 밖에 안계시니까 편하게 지내도 되요.
씻을 물은 금방 준비해드리죠. 식사는 어떻게 하실거에요?"
여인은 뒤에있는 서랍에서 철로 제조한듯한 작은 열쇠를 꺼내서 사내에게 던져주며 물었다.

"방안에서 먹겠습니다. 가져다 주시겠어요?"

"방안에서 먹으면 냄새가 배서 안되요. 귀찮으셔도 내려와서 저기 원형탁자에서 드세요. 음식은 차려놓을테니 씻고 내려오실때 쯤이면 준비 될거에요.
하룻밤만 묶으시는 거니까 총 12실버만 주세요"

그녀는 무심하게 답하고는 사내의 손에서 12실버를 낚아챈 뒤 곧바로 카운터 뒤쪽에 있는 주방으로 사라졌다. 사내는 어디서 먹든 별로 중요치 않은듯 말없이 무거운 몸을 이끌고 2층으로 향했다. 첫번째 방에 들어간 그는 검은 망토를 벗고 옆에 소파에 걸쳐두었다. 망토를 벗자 사내의 허리춤에 걸려있는 검이 철컥 소리를 내며 모습을 드러냈다. 검은 화려하지 않고 수수하게 장식되어 있었는데, 손잡이의 가죽끈으로 묶어놓은 부분이 검붉게 변색된것 봐서 사용해본지 오래된 검 같았다. 사내는 검을 망토옆에 눕히고 침대로 걸어갔다. 침대에 풀썩하고 대자로 뻗어버린 사내는 눈을 지그시 감고 상념에 빠져들었다.

수분이 지났을까. 문을 두드리는 소리와 함께 여인의 목소리가 문밖에서 들렸다.
"물 데워졌으니, 옆에있는 욕실에서 씻어요."

여인이 말을 끝마치고 내려가려 하던 차에 방안에서 사내가 말했다.

"혹시 입을만한 옷이 있겠습니까? 아무래도 이 옷은 빨아야 할것 같네요"

"안그래도 필요하실 것 같아서 문 밖에 대령했으니 가져다 입으세요. 다른 여행자분들이 입었던 옷인데
나갈때 안가져가서 빨아 놨던거에요. 치수가 맞을지는 잘 모르겠는데 일단 그거라도 입으세요"

말소리가 끝나자 삐걱거리는 소리와 함께 계단밑으로 내려가는 여인의 발소리가 들려왔다. 사내는 문을 열자 그의 눈에 밝은 갈색의 면옷이
가지런히 놓여있는게 들어왔다. 사내는 옷을 들고 방안으로 들어와 침대위에 가져온 면옷을 놔두고 입은 옷을 하나씩 벗기 시작했다.
사내의 몸에는 수많은 흉터들이 가득했는데, 길고 날카로운것이 날카로운 쇠붙이 같은것에 긁힌것 같았다. 화상자국도 많아서 보기 예쁜 몸은
아니었지만 탄탄하게 자리잡은 근육들을 봐서는 오랜시간동안 몸을 단련한 것을 쉽게 알 수 있었다. 사내는 하체에 흰 천을 두른뒤 욕실로 가서 몸을 씻기 시작했다.

사내가 몸을 깨끗이 씻고 옷을 갈아입은뒤 1층으로 내려왔을때는 이미 테이블에 간단한 음식이 준비되어 있었다. 돼지의 것으로 보이는 고기와 야채들
과 빵이 놓여있었는데, 야채가 신선한 것이 마을에서 직접 재배해서 따온 것 같았다. 사내가 테이블에 앉아 식사준비를 하자 여인이 먼저 다가와서
맞은편에 앉아 말을 꺼냈다.

"제 이름은 루이사에요. 그냥 편하게 루 라고 불러도 괜찮아요. 당신은요?"
자신을 루이사라고 소개한 여인이 사내를 보면서 활짝 웃자 사내는 루이사를 슬쩍 쳐다 보더니 고기를 들고 음식에 초점을 맞추며 대답했다.

"전 이름이 없습니다"
루이사가 황당한 표정으로 사내를 쳐다보자, 사내는 한숨을 푹 쉬고는 다시 고기를 물어뜯기 시작했다. 루이사는 기껏 먼저 다가서려고 친근하게
대하고 자신의 애칭도 알려주면서 먼저 다가갔는데, 사내가 이름을 알려주지 않자 기분이 언짢았다.

"세상에 이름이 없는 사람이 어디있어요?"
"바로 앞에 있지 않습니까"
루이사는 한방 먹은듯 얼굴을 잔뜩 찡그렸다. 사내는 별로 신경 쓰지 않는듯 음식을 먹는데 신경을 집중하고 있었기 때문에 루이사의 표정을 보지
못했는데, 루이사는 금방 표정을 고쳐짓고는 다행이라고 생각하면서 사내에게 다시 말을 건냈다.

"그러지 말고 말해줘요. 저는 바깥세상의 이야기를 듣는것이 취미에요. 그래서 여행자님들이 여관에 묶게되면 세상 이야기를 듣고는 했죠"
루이사는 사내를 쳐다보다가 사내가 자신을 바라보자 눈을 똑바로 마주보았다.

"당신의 이야기를 듣고싶어요"
사내는 미간에 주름을 잡으며 곤혹스러운 듯 잠깐 생각하더니 이내 말했다.

"별로 들을 이야기 없을겁니다. 여행자가 아니라서요"
"여행자가 아니라면 왜 이런 변두리 마을까지 오신거죠?"
루이사가 눈에 빛을내며 물었다. 사내는 잠깐 고민하더니 아무렇지 않은듯 답했다.

"굳이 말하자면, 패잔병이 좋겠군요"
"패잔....네? 패잔병이라고 하셨어요?"
루이사가 되물었지만 사내는 대답하지 않고 계속해서 식사를 이어가기 시작했다.

루이사는 잠깐 고민하더니  눈을 가늘게 뜨고 사내를 쳐다보며 물었다.
"혹시 이번 레오나드 왕국과 고센 왕국에서 일어난 전쟁에 참여하신건가요? 네?"

루이사가 재차 묻자 사내는 얼굴을 찡그리며 그녀를 슬쩍 쳐다보았다. 루이사는 사내와 눈을 마주치자 순간 다른방향으로 눈을 돌리면서
괜히 안알려주는 것 보니 고센왕국편에 서서 싸우다가 전쟁에서 졌구나 라고 생각하기 시작했다. 그녀가 최근에 마을사람들에게 들은 내용으로는
레오나드 왕국과 고센 왕국이 전쟁을 벌였다는 이야기, 그리고 레오나드 왕국이 승리하였고 고센 왕국의 영토를 그대로 다 집어 삼키면서 레오나드
제국이라는 이름을 선포했다는 이야기. 그리고 결정적으로 고센왕국이 전쟁에서 패한 이유가 레오나드 왕국의 첩자가 고센왕궁의 높은 자리까지
잠입해 위장해 있다가 왕을 살해하여 전쟁이 순식간에 끝났다는 등의 이야기를 들은 바 있었다.

"고센 왕국의 기사였습니다. 전쟁에서 패하여 지금은 그냥 떠돌이 신세가 되었죠"
남자가 고기를 뜯으면서 슬쩍 힘없이 말을 꺼냈다. 루이사는 그런 그의 신세를 보며 참 안됬다고 생각했다.
루이사가 미소지으며 사내에게 말했다.

"많이 힘드셨겠네요. 식사하시고 그릇은 그대로 놔두시고 들어가서 좀 쉬세요"
루이사가 자리에서 일어나서 의자를 탁자밑으로 집어넣으며 말했다. 루이사의 머릿속에는 온갖 질문들이 용솟음 쳤지만 지금 그에게
그 많은 것들을 물어보는것은 그의 상처가 더 아플것 같아서 잠시 접어두기로 했다. 사내의 모습이 많이 피곤해보이기도 했기 때문에
그녀는 오늘만이 날이 아니라고 생각하고 상냥하게 말했다.

"오늘은 푹 쉬시고 내일 이야기를 들으면 좋겠네요. 그런 이야기라도 없으면 이런 변두리 마을에서 얼마 못 가서 미쳐버릴거에요"
소녀가 카운터쪽으로 천천히 걸어가자 사내가 조용히 말을 툭 던졌다.

"이름이 없다는 건 사실입니다. 고센 왕국의 전하께서 주신 이름이 있었는데 지금은 고센 왕국이 멸망했기 때문에 그 이름을 사용하지
못합니다"

루이사는 사내의 말을 듣고 슬쩍 그의 눈을 쳐다보았다. 보통 한 왕국의 왕이 이름을 하사하는 경우는 대륙적으로 위명을 떨칠정도의 공헌을 하거나
높은 수준의 지식, 무술, 혹은 마법의 세계에 발을 들여놓아야 받는데, 앞의 남자는 자신이 그 강대했던 고센 왕국의 왕에게 이름을 하사받았다고
하는 소리였다. 루이사는 설마 진짜겠어 하는 생각으로 그에게 미소짓고는 자신의 방으로 들어가버렸다.

그녀가 방에 들어가자 적막해진 거실에서는 사내가 음식을 먹는 소리밖에 들리지 않았다. 이따금 그가앉은 의자에서 삐걱소리가 나긴 했는데,
그 소리가 작지 않았던 탓인지 더 거실을 공허하게 만들고 있었다. 사내는 적당히 식사를 마치고 자신의 방이 있는 2층을 향해 몸을 움직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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