운명 같은 만남.
그런데 여기에 모포를 하나 더 사서 끼워 넣고 다니려면 부피도 그렇고 추가된 무게도 그렇고 어깨와 무릎이 견디지 못한다. 물론 나도 10년 전에는 이렇게 산더미 같은 등짐을 짊어지고 90도 암벽을 등반해 에레베이트 산을 넘은 적도 있기는 하다. (유사품 에베레스트 산에 주의)
하지만 현재 나는 나이를 먹어 예전 같은 전투적 모험심을 상실한지 오래이다. 하여 두꺼운 모포를 살 용기가 나지 않아 무릎담요에 만족해야할 판이었다. 횡성시장 내 이불가게를 몇 곳 돌아다니다보니 눈에 딱 띄는 적당한 크기의 작은 담요가 하나 눈에 들어와 묻고 따지고 할 것도 없이 바로 구입한다.
유랑을 많이 하다 보니 천기를 보는 능력이 발달했는데, 운명적 끌림 같은 것이 내 시야를 잡아 끌고 ‘이건 내꺼다’는 영혼의 외침이 노도와 같이 밀려오곤 한다. 바로 이런 때를 말함이다. 하여간 그렇게 구입한 무릎담요를 들고 어둑한 횡성 외곽 길을 지나 텐트를 친 후에 펼쳤다. 아기 옷이다.
후회해서 어쩌겠는가. 그냥 덮고 잘 뿐. 한국소비자 연맹 충동구매의 대표적 폐해 사례로 쓰임직한 사건이다. 길바닥에 노숙하며 얼어 죽게 생긴 소비자가 그 난관을 타계하기 위해 시장 가서 구입해 온 것이 아기 옷이라니.ㅠㅡ
대충 덮고 자고 패션쇼 하는데 사용한다.
이렇게 쓸모 없는 것의 쓸모(덮개로 샀다가 패션쇼에 이용함.)는 장자의 '무용지용'의 가장 극적인 사례라 할 것이다. 인생이란 그런 것이다. (강원도 횡성에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