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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직
게시물ID : religion_17771짧은주소 복사하기
작성자 : 모모Momo
추천 : 1/15
조회수 : 1533회
댓글수 : 11개
등록시간 : 2015/02/22 21:24:42
정 직


마샬 비안 써머즈
미국 콜로라도 보울더

사람들은 신의 새 메시지가 있다는 말을 들으면, 처음 떠오르는 의문 중의 하나가 이 새 메시지가 정직하고 진짜인지, 이 새 메시지를 세상에 알리기 위해 파견된 메신저 또한 정직하고 진짜인지 따져본다. 이처럼 정직은 여기서 매우 중요한 문제이다. 왜냐하면 정직하지도 않고 진짜도 아니면서 종교와 영성의 이름으로 행해진 일이 많기 때문이다.
 
많은 사람이 세상에 신의 메시지를 가져왔다고 주장한다. 그래서 진짜 신의 메시지가 세상에 오면 사람들은 의심하고 비웃고 피해버린다. 수많은 다른 가짜가 있고, 사람들은 거기에 속고 싶지 않기 때문에, 진짜도 가짜라고 주장한다. 끝내 가짜로 판명 나는 부정직한 것에 자신을 내맡기고 싶지 않기 때문이다.

그래서 당신은 가장 참된 의미와 가장 깊은 수준에서 정직을 생각해보아야 한다. 당신의 느낌을 말했으니 정직하다고 말하는 것으로는 충분하지 않다. 당신의 느낌이 정직하지 않을 수 있기 때문이다. 당신은 자신의 관점을 말했고 그 점에서 정직했다라고 주장할 수도 있지만, 당신의 관점이 자신의 내면에서 정직하지 않았다면, 남들과 대화에서 그저 자신의 부정직을 보여줄 뿐이다.

사람들은 자신의 감정을 정직하게 표현했다고 느낄지도 모르지만, 그 감정은 남을 다치게 할 수 있다. 또한 그 감정으로 남을 헐뜯고 비난하고 웃음거리로 만들 수 있다. 실제로 이것은 정직이 아니다. 우리는 여기서 정직을 훨씬 더 깊은 수준, 자신 깊숙이 있는 앎의 수준에서 다뤄야 한다.

앎은 신이 당신 안에 심어놓은 깊은 마음이며, 이 마음이 당신을 안내하고 보호하고 삶에 큰 성취로 이끈다. 만약 당신이 느끼고 생각하고 표현하는 것이 자신 안에 있는 앎과 실제로 닿아 있는 것이 아니라면, 그것은 실제로 정직한 것이 아니다. 만약 당신이 생각하고 말하는 것이 당신 가슴 속에서 나온 것이 아니라면, 그것은 실제로 정직한 것이 아니다. 어쩌면 그 말이 보통 하는 말일 수도 있고 그럴 법한 말일 수도 있으며 그 당시에 당신이 느낀 것일 수도 있다. 그러나 당신의 진짜 체험이 아니라면, 그것은 실제로 정직한 것이 아니다.

결국 신의 새 메시지가 진짜인지 아닌지는 이처럼 깊은 수준에서 분별해야 한다. 사람들은 새 메시지를 자신의 생각이나 무신론에 근거하거나 이런 엄청난 일을 따져보기가 겁이 나서 무시하든가, 아니면 종교라면 무조건 싫어하는 편견이나 특정 가르침, 특정 전통만을 좋아하는 편견 때문에 비난할 것이다. 그러나 알다시피 이것은 정말 정직한 것이 아니다. 왜냐하면 그들은 신의 새 메시지의 가치와 실상을 깊은 수준에서 살펴보지 않았으며, 깊은 체험하고는 전혀 관계가 없는 생각 수준에서만 무시하거나 비판하고 있기 때문이다.

이것은 어려운 문제이다. 왜냐하면 당신 주변에는 겹겹이 부정직으로 쌓여 있고 어느 정도는 당신 안에서조차 무엇이 사실이고 진짜인지 보려면 매우 도전적인 일이기 때문이다. 그래서 스스로 이런 깊은 평가를 하지 않은 채 이것을 신의 새 메시지라고 믿는 것을 어느 누구에게도 우리는 바라지 않는다. 좋아 보이니까 쉽게 믿는 것은 이런 깊은 평가가 없기 때문에 실제로 정직하지 않다. 단순히 당신에게 보상이 올 것으로 보기 때문에 어떤 것을 신봉하는 것은 정직한 관계가 아니기 때문이다. 그런 관계는 진짜 인정하고 친밀해서 생긴 관계가 아니다.

당신은 부정직이 겹겹이 쌓여 있는 세상에 산다. 사람들은 서로 간에도 정직하지 않으며, 극히 드문 경우 말고는 자신한테도 정직하지 않다. 생각은 자신 안 깊숙이 있는 마음에 동조하지 않으므로 서로 조화를 이루지 않는다. 그래서 좀 지나면 자신이 무엇을 생각한지도 모르고, 무엇이 사실인지도 모르며, 무엇이 진짜인지도 모른다. 그래서 남들이 생각한대로 따라가고 세상 사람들 관점에 맞춰 살아간다. 그리고는 이거야, 이게 맞아.”라고 하지만 단지 그것은 많은 사람이 그렇게 생각하기 때문이다. 때로는 이건 아니야.”라고 하지만 그것은 그 말이 옳다고 보는 사람이 거의 없기 때문이다. 그래서 신의 진짜 메시지가 오면 곧바로 논박하고 거부한다.

또 사람들은 ~, 신은 이미 오래 전에 신의 메시지를 주었으니, 새로운 것은 필요하지 않아.”라면서, 마치 신이 인류에게 흥미를 잃고 더 이상 계시할 일이 없는 것처럼 말한다. 참된 신앙은 하나밖에 없다.”라면서, 마치 신이 전해줄 메시지가 하나밖에 없었고 그 뒤론 인류를 쭉 무시해도 되는 듯 말한다. 또 어떤 사람은 ~, 이 메신저는 기적을 행하질 않는 걸 보니, 사실일 리가 없다.”라면서, 마치 기적을 행하는 것으로 신이 준 권리와 신에 응답하는 능력을 표시하는 것처럼 말한다.

이런 대응은 모두 정직하지 않다. 하나같이 자신 앞에 놓여 있는 것을 깊이 살펴보지 않았기 때문이다. 그들은 신의 새 메시지를 탐구해보지도 공부하지도 않았고, 왜 그런 메시지를 이 시기에 세상에 보냈는지, 거기에서 실지로 무엇을 전달하려고 하는지 마음을 열고 살펴보지 않았기 때문이다. 그래서 그들이 정직하지 않는 것이다. 그 결과 신의 새 메시지에 자신이 부정직성을 투사하여, “이 메시지는 잘못됐다, 속임수이다, 가짜이다라고 말한다. 그러나 실제로 그들은 무엇을 보고 있는지조차 모른다. 그들은 이 새 메시지를 볼 수 없으며, 그들 삶이 진리에 의존하고 있지만 그 진리를 볼 수 없을 것이다. 그들은 보고 싶은 것만 보고 이미 믿는 것만을 보면서, 자신의 기존 관념이 옳다고 주장하는데 모든 것을 써먹으려 한다.

이 메시지를 신의 새 메시지로 보면 곧바로 책임감을 불러일으킨다. 새 메시지가 실제로 진짜라면, 이것이 당신에게 무엇을 뜻하는가? 당신과 무슨 관계가 있는가? 그리고 책임감을 갖고 배우며 적용해보고 지지하겠는가? 이것은 단순히 가지고 노는 것이 아니며, 장난삼아서 하거나 실험적으로 하는 것도 아니며, 당신이 재미있어하는 다른 것하고 짜맞춰보려고 하는 것이 아니다. 이것이 실제로 신의 새 메시지이라면, 이것이야말로 안성맞춤이다. 이 메시지와 만나면 당신은 보는 것에서나 하는 일에서나 정직해야 하기 때문이다.

이런 점에서 신의 새 메시지는 인간사회에 쭉 있어왔고 사람들 마음과 믿음에 만연해있는 겹겹이 쌓인 부정직을 들춰낼 것이다. 이전에 있었던 신의 메시지도 모두 똑같은 이유로 거절하고 부인하였다. 사람들은 이처럼 도전정신이 필요한 것과 맞닥뜨리고 싶어 하지 않는다. 또 자신이 서 있는 자리를 다시 생각해야 하고 자신의 관념이나 믿음을 다시 살펴봐야 하는 것을 바라지 않는다.

그러나 이와 같은 경우 신의 새 메시지는 당신더러 많은 일을 하라고 한다. 당신에게 많은 것을 요구하여 당신의 생각, 느낌, 활동에서 정직해지도록 한다. 그리고 당신이 가진 관념과 선입견이 진짜냐고 묻는다. 또한 실제로 당신이 생각하는 모든 것과 당신이 하는 모든 것에서 본질적으로 자신에게 매우 정직한지 물을 것이다. 앎길을 배우고 앎길로 살아간다는 것이 바로 이 뜻이다.

게다가 신의 새 메시지는 대부분 사람들이 모르고 있고 준비도 안 된 인류에 대한 도전을 알려준다. 그 도전은 세상에 닥쳐오는 큰 환경변화에 직면하는 도전이고, 약하고 분열된 인류의 약점을 이용하려고 우주에서 온 종족들의 개입에 직면하는 도전이다. 이 도전들은 어마어마하며, 지금까지 인간가족 전체에 닥친 도전 중에 가장 큰 도전이다.

이 도전을 마주보고, 대처하고, 깊이 생각해본다는 것은 엄청난 일이다. 이 일을 다루고 싶지 않다면, 당신은 삶에서 신의 새 메시지를 원하지 않을 것이다. 그래서 묵살하거나 거부하고, 가짜이고 부정직하다고 비난할 것이다. 사실상 이때는 부정직한 쪽은 바로 당신이다. 직면해야 할 것을 직면하지 않은 것도 당신이고, 상황을 정직하게 평가하지 않는 것도 당신이다.

그래서 물어야 할 것은;- 신의 새 메시지를 정직하게 깊이 살펴보고 검토해볼 수 있는가? 정직하게 적용해볼 수 있는가? 정직하게 지지할 수 있는가? 이런 것들이다. 정직하려면 이런 것들을 모두 짚고 넘어가야 한다. 사람들은 신이 자신들을 위해 사랑과 행복을 가져다주고 직장과 건강도 확실히 챙겨주는 등 많은 것을 요구해도 되지만, 신이 그들에게 요구하는 것은 거의 원하지 않는다. 모두 일방적인 관계다.

당신이 큰 목적 때문에 여기 있고 큰 목적 때문에 세상에 파견되었다는 것을 깨닫고 깊이 생각해보기 시작할 때까지는, 신이 마치 심부름하는 꼬마나 된 것처럼 당신의 부탁을 신에게 말하기 쉬울 것이다. 그러나 당신이 무얼 하기를 신이 바라는지, 당신이 무엇을 하도록 신이 설계해 놓았는지, 신의 새 메시지가 계시되는 바로 이 상황에서 세상을 직시하도록 당신을 파견한 목적이 무엇인지 진지하게 생각해보지는 않을 것이다.

당신이 하기로 되어 있는 일인데다가 사실이고 긴급한 일을 다루고 싶어 하지 않는 것은 근본적으로 부정직하다. 이것은 현실을 거부하는 것이고, 당신의 깊은 체험을 거부하는 것이다. 또한 당신의 책임을 거부하는 것이며, 신과의 근본 관계를 거부하는 것이다. 신과의 근본 관계는 당신 안에 있는 앎의 힘과 현존을 통해 표현되고 체험된다. 이때 당신은 신에게 당신의 힘을 주는 것이 아니라, 신이 당신에게 준 힘을 받아들일 것이다. 그리고 그 힘을 기만하거나 조작하려는 일 없이, 또 갖고 싶은 것을 얻거나 삶에서 일어나는 일을 회피하는 데 쓰려는 일 없이 받아들일 것이다.

그래서 신의 새 메시지를 알아보는 당신의 능력에서, 문제는 모두 정직에 관한 것이며 그것도 자기정직에 관한 것이다. 이때 당신의 진짜 모습은 당신의 견해나 관점, 강한 믿음 같은 것이 아니라는 것을 당신은 알아야 한다. 당신의 진짜 모습은 세상에 길들여진 표면에 있는 마음이 아니다. 당신의 진짜 모습은 결코 이런 것이 아니다. 이런 마음을 가지고 당신은 세상에 오지 않았다. 세상을 떠날 때도 이런 생각의 대부분은 뒤에 남겨두고 떠날 것이다. 당신이 마음이 아니라면, 무엇이 당신의 진짜 모습인가? 진짜 당신은 정말 누구이고 무엇인가?

당신이 마음을 객관적으로 바라본다면, 마음은 명백하게 당신일 수가 없다. 사람들은 마음 표면에서 방황하며, 그 아래에 무엇이 있는지 알지 못한다. 끊임없이 마음 표면에서 자극받는 채로 머무르며, 자신에 대해서는 아무 것도 모르고 자신에게 이방인이 된다. 이처럼 신이 그들 안에 심어놓은 큰 지성을 알지 못한다면, 어떻게 그들이 무언가를 정직하게 평가할 수 있겠는가? 사람들은 견해·편견·여론에 지배될 것이다. 사람들은 믿도록 배운 것을 믿고, 남들한테 인정받으려면 믿는 것이 좋을 것으로 생각되는 것을 믿는다. 여기에는 어떠한 정직도 없다.

사람들은 서로의 관계에서 진짜 정직을 찾으려고 애쓴다. 그러나 여전히 서로 연기를 하고, 서로 호감을 사려하고, 서로 자신의 허물과 약점을 감추려 한다. 서로 긴 세월을 함께할 수는 있어도 상대가 진짜 누구인지는 전혀 모른다. 가까이에 사람들이 있기는 하지만, 계속 혼자인 채로 있고 알지 못한 채로 있다. 이것이 인간의 슬픈 현실이다. 여기서 정직이 진짜 돌파구다. 그럴듯하게 꾸미는 짓을 그만두고 연기하는 일을 그만두기 때문이다. 당신은 자신의 관념과 사회적 행동으로 자신과 남들을 얼마나 속이는지 인식한다.

비록 이렇게 하면 혼란스럽고 낙담이 되겠지만, 당신에게는 진짜 돌파구가 된다. 당신이 삶의 표면을 뚫고 들어간다는 뜻이다. 세상이 당신을 지배하고, 두려움이 당신을 지배하고, 필요한 것이 당신을 지배하는 것이 바로 이 표면에서 일어난다. 그러나 안으로 더 깊이 뚫고 들어가면, 당신은 지배받지 않는다. 왜냐하면 당신 안에 있는 앎이 세상에 지배받지 않고, 세상을 두려워하지 않기 때문이며, 또한 필사적으로 사랑을 구하거나, 인정받으려 하거나, 정당성을 입증 받으려 하지 않기 때문이다. 앎은 그 대신에 특정한 사람들과 특정한 일을 완수하는 사명 때문에 여기 있다. 개인으로서 당신은 이 사명을 위해 만들어졌다. 그러나 이 사명은 당신 이성으로 알 수 있는 영역에 있지 않으므로 마음 표면에 머물러 그 사명이 무엇인지 알 수는 없다. 당신은 자신 안으로 깊이 들어가야 한다.

<앎으로 가는 계단>을 밟으면서 안으로 들어가는 법을 배울 때, 모든 것에서 당신의 진짜 느낌은 기존에 생각했던 것과는 다르다는 것을 알 것이다. 대부분의 경우, 당신 내면 깊은 곳에서의 느낌은 기존에 생각했던 것하고는 다르다. 이것이 계시이다. 아주 많은 경우에서 당신 생각이 깊은 체험을 대신해왔다는 충격적인 계시이다. 진짜 당신 자신을 느껴보고, 당신 관계들을 알고, 세상에서 당신 일과 활동들을 알면, 자신을 안심시키며 이전에 내린 결정을 더 굳히려고 자신에게 말해왔던 것하고는 다를 것이다.

당신이 마음 깊숙이 들어가기 시작하는 때가 바로 무엇이 진짜 정직이고, 무엇이 당신의 깊은 본성에 참이고, 무엇이 당신 삶의 깊은 흐름에 참인지 당신이 알게 되는 때이다. 이때 유행 따라 가는 것, 세상이 당신한테 요구하는 것, 당신이 믿어야 하고, 해야 하고, 생각해야 하고, 생각하지 않아야 하는 것들로 조건화된 것을 뛰어넘는다. 소용돌이치는 마음의 표면 아래에 깊은 침묵의 샘이 있다. 바로 여기서 당신은 평화를 찾고 잠시 쉴 수 있다. 또한 이곳에서 당신의 내면 깊이 흐르는 삶의 깊은 흐름을 체험할 수 있다. 마치 사막의 표면 아래 흐르는 물과 같다. 지표면에 모든 것이 바짝 말라 보이는 곳에 가장 순수한 물이 땅속 깊숙한 곳에서 흐르고 있다.

당신도 이와 같다. 표면에서는 당신의 삶이 메말라 있다. 부유하든 가난하든 마찬가지다. 당신은 방향도 없고 목적도 없다. 당신의 깊은 곳에서 느끼고 아는 것을 당신이 느낄 수도 알 수도 없으니, 삶이 메말라 있다. 당신이 겪은 것을 사실대로 말하기 시작하면, 당신의 삶이 메말라 있다는 것을 알 것이다. 당신이 맹세한 목표를 모두 이루었다 하더라도, 오직 표면에서만 살기 때문에 당신은 공허하다. 당신한테 발견되기를 기다리는 삶의 깊은 흐름과 큰 방향을 당신은 찾지 못했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정직은 모두 당신의 체험·용기·진실성에 달려 있으므로 어려운 주제이다. 당신이 공언을 하거나 판단을 할 때, “여기서 정말 내 자신에게 정직한가?”라고 자신에게 물어보라. 지금 세상에 있는 신의 새 메시지를 따져볼 때, “이것을 내가 정직하게 따져보고 있는가?”라고 자신에게 물어보라. 나의 관계에서 내가 정말 정직한가?”, “일에 관해서 내가 정말 정직한가?” 그리고, “나의 관계들에 대해 내가 어떻게 느끼는지 내가 정말 아는가?”라고 물으라.

이러한 물음들이 당신에게 자신 안으로 더 깊이 들어가 보도록 요구한다는 것을 알겠는가? 이 물음들은 마음의 표면을 훑어보는 것이다. 정직은 표면에만 있는 것이 아니라는 것을 당신은 인식하고 있다. 정직은 자신 안에서 깊이 공명해야 하고, 당신이 생각하고 있는 것과 당신이 결정해야 한다고 느끼는 것을 깊이 평가해야 한다.

이때 정직은 당신이 당신 자신에게 말하는 것이 아니라, 당신 자신 안에서 당신이 아는 것이며, 당신이 가장 깊이 느끼는 것이고, 당신의 깊은 양심이 말하는 것이다. 당신의 사회적 양심이 말하는 것이 아니다. 당신에게 무엇을 믿고, 무엇을 믿지 말고, 무엇이 사실이고, 무엇이 사실이 아니라고 사회에서 조건화된 그런 것을 말하는 것이 아니다. 어떤 것이 옳고 어떤 것이 그른지를 아는 깊은 양심이 당신 안에 있다. 당신이 자신에게 뭐라고 말하든, 남들이 당신에게 뭐라고 말하든, 어떤 것이 옳고 어떤 것이 그른지를 당신은 안다. 이것이 앎이다. 앎은 당신 안에 있는 깊은 양심이다.

그러나 앎은 이보다 더 크다. 앎은 목적이고 방향이다. 앎은 당신을 세상에 보낸 이들과의 관계이며, 삶을 살아가는데 근원적인 책임이다. 앎은 자신에 대한 깊은 느낌이고, 남들에 대한 깊은 인식이다. 앎은 당신 안에서 공명하고 당신에게서 공명하는 진리이며, 남의 마음을 통해 공명할 수 있는 진리이다. 앎은 참된 창조성의 근원이고, 인류에게 주는 공헌이며, 모든 활동분야에서 지금까지 크게 기여된 모든 것의 중심에 있다. 앎은 당신 안의 큰 힘이자 큰 진리로 당신이 알아채기만을 기다리고 있다.

당신이 지금 정직하다고 주장하지 말라. 당신 안에 있는 앎과 연결될 때까지는 정직하다고 주장하지 말라. 그때까지는 정직하다고 당신이 생각할 뿐이며, 당신은 확실히 알 수 없기 때문이다. 이때 주의하라. 왜냐하면 자신을 속이기가 매우 쉽고, 당신의 사회적 상황이나 남들의 기대에 그냥 맞추기가 아주 쉽기 때문이다. 또한 당신의 소속집단이나 가족이 가진 편견, 당신이 좋은 인상을 주고 싶은 사람들이 가진 편견에 거슬러 가는 것이 너무 두렵기 때문이고, 태만하고 게을러 그저 여론을 표현하기가 아주 쉽기 때문이다.

당신은 이제 진짜로 일해야 할 것이다. 그래서 새 메시지가 당신을 필요로 한다. 새 메시지는 단순한 영적 행복 같은 것이 아니다. 그래서 당신이 필요한 것은 무엇이든 필요할 때마다 언제든 가서 가져오는 그런 것이 아니다. 그게 아니라 오히려 새 메시지는 당신과 인류에게 요구한다. 신의 새 메시지는 경고이고 축복이며 준비다. 진짜 일하고 자신에게 정직하여 지금 세상에서 새 메시지의 의미와 엄청난 중요성을 알아차리도록 새 메시지는 요구할 것이다.

신의 새 메시지를 정말로 조사해볼 때까지는 이렇다 저렇다 말하지 말라. 이 메시지를 조사해보고 당신의 삶에 적용해볼 때까지는 이 메시지가 그냥 또 다른 가르침일 뿐이라고 말하지 말라. 왜냐하면 당신이 실제로 조사해볼 때까지는 새 메시지가 무엇인지 모르기 때문이다. 새 메시지에 대해 어떤 주장을 하기보다는 실제로 나는 새 메시지가 무엇인지 모른다.”라고 말하는 것이 더 정직할 것이다.

사실은 다른 많은 것들도 마찬가지로 당신이 모른다고 말하는 것이 더 정직할 것이다. 왜냐하면 그것들에 관해서 당신은 겉에 보이는 것을 뚫고 안으로 깊이 결코 들어가 보지 않았기 때문이다. 이때 당신은 다른 사람이나 다른 국가에 대해 자신의 견해, 정치적 이념, 판단을 유보하는 것이 정직할 것이다. 다각도로 매우 깊이 문제를 조사해보기 전에 어떻게 당신이 교양 있는 견해를 가졌다고 주장할 수 있겠는가?

의견을 갖기는 쉽지만, 겉모습을 헤집고 들어가 어떤 것을 정말로 살펴보는 시간을 갖기는 훨씬 어렵다. 남을 비난하기는 쉽지만, 남을 정말로 이해하기는 훨씬 어렵다. 신의 새 메시지를 무시해버리기는 쉽지만, 새 메시지가 무엇이고, 왜 여기에 있고, 무엇을 뜻하고, 어떻게 공부하고 적용해볼 수 있는지 알아보는 것은 훨씬 어렵다. 쉬운 것이 정직한 경우는 드물다. 가벼운 것이 정직한 경우는 드물다. 가벼운 관계, 가벼운 추구, 가벼운 생각, 가벼운 견해, 이런 것들이 아주 조금이라도 정직하기는 매우 드물다.

당신이 누구이며, 왜 여기 있는지 실제로 안다면, 당신은 가벼운 것에 휩싸이려고 하지 않을 것이다. 가벼운 관계에서는 어떤 의미도 찾을 수 없으므로 당신은 그런 데에 휩싸이려고 하지 않을 것이다. 가치도 없고, 목적도 없고, 의미도 없는 것들에 삶과 시간과 에너지를 소비하려 하지 않을 것이다. 당신은 자신에게 정직하려 하기 때문에 이렇게 하지 않을 것이다. 오히려 당신 삶을 큰 기회로 보려 할 것이고, 엉뚱한 사람이나 엉뚱한 것에 삶을 낭비하고 싶지 않을 것이다. 오직 당신에게 깊은 가치와 의미를 주는 사람들과 활동들에만 몰두하려 할 것이다. 그리하여 부당한 불평 없이 여기서 살게 된 것에 대한 입장료로 세상에서 당신의 일을 해나가려 할 것이다.

이 모두가 정직에 관한 것이다. 당신이 자신에 대해 얼마나 정직하고 당신의 느낌과 체험에 얼마나 정직한가 하는 문제이며, 얼마나 깊이 마음 표면 아래로 들어가 당신을 기다리는 위대한 탐구를 해보았는가 하는 문제이다. 정직이 무엇인가 정말로 살펴보면, 당신의 내적 체험에 문이 열린다. 그러면 당신의 믿음·태도·선호를 넘어서 당신 안에 있는 깊은 체험의 영역 속으로 들어간다.

당신이 세상에서 큰 목적을 알려면, 가야 할 곳이 바로 이 영역이다. 당신 생각과 다른 사람들 생각이 지배하는 곳에서 자신을 자유롭게 하려면, 가야 할 곳이 바로 이 영역이다. 주변 삶의 압박과 비극에서 휴식을 찾으려면, 가야 할 곳이 바로 이 영역이다. 당신의 참된 방향을 알고 깊은 본성과 목적을 체험하려면, 가야 할 곳이 바로 이 영역이다.

여기서 당신 내면의 앎만이 정직한 것, 참인 것, 진짜인 것을 실제로 안다. 앎은 어떤 것에도 속지 않는다. 당신에게도 다른 누구에게도 속지 않고 세상에도 속지 않는다. 사랑과 두려움, 기쁨과 고통 같은 것에 끌려가 속지 않는다. 앎은 당신 안에서 완전하게 정직하다. 그러기 때문에 당신이 앎을 따라야 하며, 그러기 때문에 당신의 힘과 완전함이 앎에서 비롯되며, 그러기 때문에 앎이 당신에게 큰 선물을 내주어 세상에 베풀게 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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