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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펌] 거울 속에서...
게시물ID : humorbest_177784짧은주소 복사하기
작성자 : Arc™
추천 : 19
조회수 : 1189회
댓글수 : 4개
베스트 등록시간 : 2007/09/20 00:07:57
원본글 작성시간 : 2007/09/19 13:45:55
끼이이이이익-

4명을 태운 자동차는 바퀴 옆면으로 흙탕물을 밀어내며 급정거를 했다.

서울에서부터 10시간 가까이 달려온 끝에 우리는 드디어 목적지에 도착했던 것이다.

남해안 최말단에 위치한 연재네 별장..

연재말로는 지네 삼촌이 직접 지은 건물이라고 했다.

연재네 삼촌은 제법 명성이 알려진 건축가셨다.

특히, 장난끼가 가득한 독특하고 개성있는 실내구조로 정평이 나있었는데 재작년인가 갑작스럽게 행방불명이 되었다..

평소에 특별히 아끼시던 바로 이 별장에서..

물론 시체도 아직까지 발견되지 못한 상태였다..

왜 하필 놀러온 데가 이런 꺼림찍한 별장이냐구?

먹구대학생인 우리는 평생 기억에 남을 만한 멋진 여름 방학을 보내고 싶었고

알다시피..

그러기엔 평생 기억에 남을 만큼 가난했다-_-

그러던 중에 삼촌네 콘도를 공.짜.로 빌릴 수 있다던 연재의 말은 아기천사의 나팔소리를 배경음악으로 깔면서 들렸고-_-

무섭기는커녕 '빨리 돌아가 주셔서 감사합니다'라고 마음속으로 쾌재를 불렀다는건 연재에겐 죽을 때까지 비밀이다.

어쨋든 덕분에 나랑 연재, 세민이, 상희가 공짜로 놀러오게 된 것은 사실이지 않은가?

"우와~~ 니네 별장 진짜 먹어주는데? 꼭 외국에 온 것 같잖아?"

"지금 어두워서 그렇지 낮에 보면 더 멋있어"

연재가 우쭐한 표정으로 대답했다.

여름해라지만 이미 8시가 넘은데다 추적추적 끝물의 장마비 까지 오고 있어서 이미 사방은 어두침침했다.

바늘같은 빗물을 가득담는 듯한 노란 헤드라이트는 오래되어 보이는 통나무 콘도의 입구를 뿌옇게 비추고 있었다.

우리나라에서는 보기힘든 독특한 디자인 이었다.

중세의 수도원 같은 분위기랄까..

꽈꽝~~

갑자기 하늘이 훤히 밝아지며 번개가 쳤다.

동시에 음산한 별장은 빛과 어둠으로 극명하게 갈라졌다.

그 모습이 왠지 해골을 연상케 해서 나도 모르게 공포감이 들며 비명을 지를 뻔 했다.

후..건물과 해골사이에 공통점이 어디있다구..

왜 그런 터무니없는 연상이 떠올랐던 것일까..

피식 웃음이 새어나왔다.

콰아아아-

번개를 신호로 빗줄기는 더욱 거세어 지기 시작했다.

'씨발 내 나이가 몇살인데 번개에 놀라구 지랄이냐..

여긴 그냥 별장일 뿐이라구.

따지고 보면 사람하나쯤 죽지 않은 집이 서울 시내에 어디 있겠어?

이러고 있을 때가 아니지..'

나는 억지로 꺼림찍한 기분을 합리화시키며 머리를 내저었다.

도로롱~~~ 푸우~~ 도로롱~~ 푸우~~

어디선가 낯익은 소리가 나를 안심시켰다.

세민이였다.

후후..태평한 놈..

"세민아 도착했어 일어나!"

"우응.. 벌써?"

세민이는 아직도 졸린 듯한 눈을 부비며 정신을 차렸다.

털썩;; 쿠울~~

그리고는 다시 정신을 잃었다-_-;;

"하튼 세민이형은 한번 잠들면 탱크라니깐 탱크"

연재가 기가차다는 듯이 말했다.

"세민이 오빠는 내비두고 우리끼리 짐부터 옮기자 비두 오는데.."

상희가 특유의 명랑한 목소리로 말했다.

아니, 사람이 행방불명된 별장에 오는게 못내 꺼림찍한 듯 애써 명랑한 척 하려는 것 이리라..

"그..그래.."

우리는 세민이를 먼저 차밖에 끌어 낸 후 나머지 짐들을 나르기 시작했다-_-

2년동안 아무도 돌보지 않은 듯 마구 자란 풀이파리가 정강이에 스치며 빨간 핏자국을 남겼다.






쿠-웅~~!!!

현관문이 벌컥 열렸다.

"어후~~ 그렇다고 사람을 빗속에 내비두고 가는 놈들이 어딨냐?"

"그속에서 퍼질러 자는 놈은 또 어떻구?-_-;;;"

세민은 우리가 짐을 다 옮긴지 10분이 지나서야 비에 쫄딱 젖은 채로 실내에 들어왔다.-_-

" 야 발딱구 들어와 발딱구! 기껏 마루 닦아놨더니.."

"내가 마루에서 잘게. 됐지? 물걸레질 안해도 되잖어..-_-"

"닥쵸..빨랑 씻어.."

"에이 썅 귀찮아 죽겠는데..연재야! 목욕탕이 어디있냐?"

"어...한층 위로 올라가면 계단 바로 오른쪽에 있어..근데.."

세민이는 연재의 말을 다 듣지도 않고 계단으로 처덕 처덕 올라갔다.

달팽이가 지나간 자국처럼 물꼬리를 질질 흘리면서..-_-

순간,

'계단에서 굴러서 계단에 물걸레질을 한번 싹- 해줬으면..'

하는 악마적 생각이 내 머릿속에서 떠나지 않았다..

세민이 놈의 뒷통수를 후려보며 두 주먹을 꼬-옥 쥐고 립싱크로

'미끌..꽈당..미끌..꽈당..'

..주문을 중얼거리는 내 모습을 지켜보던 상희는 이모티콘 같은 표정을 지으며 말없이 마루에 걸레질을 했다.

꺄악~~~

"뭐..뭐야?"

상희의 갑작스런 비명에 나는 고개를 돌렸다.

상희는 하얗게 질린 얼굴로 바들바들 떨며 휴지통을 가르켰다..

믿을 수 없게도 휴지통입구에는 상희가 방금 먼지를 닦고 던진 휴지뭉치가 공중에 떠있었다.

"오..오빠..휴...휴지가 공중에 떠..떴어..."

"나..나도 봤어..잠깐 기다려 봐."

나는 남자답게 상희를 막아서고 휴지통으로 걸어갔다..

놀랍게도 휴지는 정말로 공중에 떠있었다..

나는 곧 그 이유를 알아차렸다.

"...바보야 거미줄에 걸렸잖어-_-"

집이 낡아서 여기저기 거미가 집을 지어놨던 것이었다

"응?...에헤헤 미안..."

"마루는 내가 할 테니까 넌 부엌정리하고 저녁이나 준비해라-_-"

마루도 먼지가 장난아니었지만 주방은 더 했다.

싱크대위로 쥐가 스머프같은 발자국을 남기며 종횡무진 했고..

장수풍뎅이만한 바퀴벌레는 날개를 푸드덕거리며 상희를 위협했다.

"꺄아아아 영준오빠 어떠케 어떠케~~"

상희는 눈물까지 찔끔거리며 나에게 매달렸지만..

나는 담담히 휴지를 두번 접어서 건네주었을 뿐이다..-_-;

"알아서 처리해..-_-)=p"

"흑 흑 징거~~ 무셔~~"

상희는 그 휴지로 꼭 꼭 눈물을 닦아내더니

빠직!

맨손바닥으로 바퀴벌레를 박살내고 말았다..-_-;

"좀만한게 까불고 있어 쯧-_-

엄머! 오빠 보고있었어? 으헤헤헤^/////^a"

"..가까이 오지 마;;(니네집 좀은 저만하냐?-_-;;)"

"호호홋 이제 바퀴벌레도 없으니 주먹밥이나 만들어야겠다^O^"

"..(주..주먹밥? 우욱;;)난 안먹는다..-_-;;;;"

"흥 먹든지 말든지"

상희는 투덜거리며 싱크대의 물을 틀었다

"어멋"

갑자기 상희는 화들작 놀라며 몸을 내게로 밀착시켰다.

포근하게 느껴지는 그녀의 등..

오옷 바캉스에서 꽃피는 로맨스?


..등이라고 생각했던 건 상희의 가슴이었다..

씨봉 왜 이렇게 빈약한 거냐..-_- 어째 '뭉클'하는 효과음이 없더라니..-_-;;

"오..오빠 수도꼭지에서 피가 나와.."

아닌게 아니라 뻘건 물이 철철 넘쳐나오고 있었다.

"바보야 이건 녹슨 물이잖아..자꾸 공포분위기 조성할래?-_-+"

나에게 뻘건 수돗물 보다 공포스러웠던 것은..

깜짝 놀라서 방금 바퀴벌레를 박살낸 손을 TmT 하고 입에 물고 있는 상희의 모습이었다-_-;;

저..저기 손가락 사이로 삐져나온건 바퀴벌레의 뒷다리는 아닐거야

저..저건..

...그래...새우야..새우..털이 많은 새우다리라고 생각하자..TOT

"뭐가지고 이렇게 시끄러워?"

상희랑 내가 티격태격하고 있는 사이 연재는 짐정리를 마치고 젖은 옷을 갈아입었다.

남자답지 않은 풍만한 가슴이 괜히 민망스러웠다.

"어.. 상희가 자꾸 쓸데없이 소란을 피우길래.."

"여기서 시끄럽게 굴면 안돼..돌아가신 삼촌이 입버릇처럼 말씀하셨지만.."

"..꾸울꺽.."

"..이곳엔 거울속에 갇힌 또다른 '나'가 밤에 자유롭게 돌아다닌데..

꼭 유령처럼..

너랑 똑같이 생긴 놈을 딱! 만난다고 생각해봐

졸라 살떨리지 않냐?"

"푸훗^m^ 너 자꾸 귀여운 소리 할래?

야야 유치하다 그만해라.

우리가 무슨 국민학생도 아니고.."

"허 참 진짜라니깐 그러네?

내가 지금 농담하는 거 같아보여?

그 증거로 지하 1층에 있는 커다란 거울이 있는데 그 거울엔 자기자신의 모습이 안 비친데..

거울에 비치는 순간 거울 속의 유령한테 잡아먹힌다나?

삼촌은 늘 그 거울은 다른 차원과 통하는 통로라고 입버릇처럼 말했었지..

안 믿기면 이따가 한번 시험해 볼래?"

"후후 10만원 내기라면 한다"

"진짜지? 이따가 울지나 말라구"

귀여운 자슥.

나를 표적으로 귀신놀이라도 짜두었나 본데 어림 없다.

아마 그 거울인지 먼지 주변엔 몰래캠코더라도 숨겨두었겠지.

머 이번 기회에 용돈이나 벌어볼까?

"좋앗어! 나중에 딴 말 하기 없기다? 10만원빵!"

"너야 말로!"

"오빠 나 존나 무서워.."

상희는 여전히 TmT 하는 표정으로 부들 부들 떨고 있었다..

이년아 니가 더 무서워..으..새우뒷다리;;;

그때..

끄아아아아아----

하는 비명소리가 2층에서 들려왔다.

세민이의 목소리였다.

피라도 토할 듯한 끔찍한 절규였다.

설마 토막시체라도 발견한 것일까..

아니면 연재가 말한 유령?

나는 머리털이 곤두서는 듯한 두려움에 떨며 서둘러 계단을 뛰어올라갔다.

세민이는 바닥에 털썩 주저앉아 있었고 그 앞에는 화장실 문이 열려있었다.

"으...으....문..문이.."

세민이는 겁에 질려 말조차 더듬고 있었다.

결코 연기를 하는 것이 아니었다.

두 팔을 쉴새없이 허우적거리며 십자가를 만들려고 허둥대고 있었다..

"..문이 어..어쨌길래..?"

긴장탓인지 성대가 바싹 조여져서 말하기가 힘겨웠다..

불에 달군 커다란 구슬을 목구멍에 반 쯤 삼킨 듯 했다.

"무..문이 저절로 열렸어..

불도 저절로 켜지고..

나..나..나는 손도 대지 않았는데.."

세민이의 바지는 오줌이 지려서 축축이 젖어있었다..

쿵쾅 쿵쾅..

심장이 뛰며 두 다리에 힘이 풀렸다.

" 세민아! 무슨 일이야?"

나를 뒤따라서 연재가 올라왔다..

'역시나..'하고 이미 예상했다는 듯한 굳은 표정이었다

"믿어줘 진짜라구!

진짜 문이 저절로 열렸다니까?

으아아아

여긴 악마의 집이야

죽은 연재삼촌의 혼이 돌아다니는게 분명해~~~~"

세민은 이성을 잃고 마구 울부짖었다..

"진정하구 차분히 말해봐"

나는 불안해 하는 나 자신에게 타일르듯이 말했다.

연재는 착찹한 표정으로 아무 말도 없이 서 있었다..

"그러니까 화장실 문을 열려고 손을 내미는 순간

문이 저절로 스르르 열리더니 안에 불이 켜졌어..흑흑

여..연재야..

이게 어떻게 된거야? 응? 응?"

울부짖는 세민을 향해 연재는 천천히 입술을 떼었다..

사형선고라도 내리는 듯한 엄숙한 말투였다.



"사실은 .그 문..."



"....서..설마...?"








"....자동문이야..-_-;;;;;"

"..."

"...."


"...머?-_-a"

"..그거 자동문이라구 바보같은 놈아.-_-;;;

우리 삼촌이 워낙 특이한 걸 좋아하셔서 화장실 여닫이 문도 자동으로 설계하셨어..

그래서 혹시 놀랄까봐 아까 말해줄랬더니 먼저 올라가 놓구선..-_-;;;;"

한순간에 좃되버린 세민은 화장실에서 오줌싼 바지를 빨아야 했고

연재는 그런 세민의 뒤통수에 한마디 보태는 것을 잊지 않았다.

"그문은 나올때도 자동으로 열리니까 또 놀라서 오줌싸지 마^m^"







쪽팔린 줄은 아는지 세민이는 그 사건 이후로 밖으로 나가고 보이지 않았다.

그러나 세민이의 바보행각은 오히려 일말의 공포심마저 깨끗이 날려버렸다.

그럼 그렇지..귀신같은게 어디있다구..

그날밤 나와 상희는 은밀한 한여름밤의 장난을 즐겼다

그..박진영이 말한바 어른들의 '게임' 말이다..

"상희야 조금만 더 벌려 봐.."

"싫어! 그럼 다 보이잖아-/////-"

"우리사이에 어때서 그래? 그럼 한번 대주기라도 해라"

"오빠가 정 원한다면 어쩔수 없지..

자 어디한번 먹어봐.."

"조오아써!!!"

철썩;; 철썩;; 허억.

"허억 허억..사..상희야 오빠 벌써 쌌어.."

"..앗싸! 내가 먹을게.."

아 씨봉..또 피 한 장 나가네..

역시 상희는 고스톱의 여왕이라니깐..-_-;;

"헤헤헤 씨바 오늘 졸라 잘맞는다

앗 오빠 듣고 있었어?^////^a"

"...니 말버릇 다 알았으니까 내숭 그만떨어.-_-"

"헤헤..^////^ 씨발..^-_-^ "

그 때 방문이 열리며 밖에 나갔던 세민이가 들어왔다.

비에 흠뻑 젖어서 어디서 주워왔는지 고물 후레쉬를 툭 방바닥에 던졌다..

왠지 모르게 껍데기만 남은 듯 허탈한 모습이 보기 안쓰러웠다.

"야 세민아 소문 안낼테니까 너두 같이 화투나 쳐라, 응?"

"....."

"...짜식 소심쟁이군-_-"

세민은 아무말도 없이 돌아누워 버렸다.

-(_-_)- 뒹굴~

"어휴 그렇게 자고 또 자냐..."

그때 어깨 너머로 흘깃 본 세민의 눈동자가 회색빛이었다는 건 나만의 착각이었을까.

데엥- 데엥- 데엥-

4명이 모여앉아서 정신없이 고스톱을 치는 사이 어느세 벽시계는 12시를 가르키고 있었다.

"영준아! 잊진 않았겠지?"

연재가 기다렸다는 듯이 말했다.

"응? 머? 아! 그거?"

"시침떼기는...10만원이나 걸려있는데.."

이 새끼가..은근슬쩍 넘어가려고 했더니..

"왜...겁나는 거야?^m^"

"겁나긴 씨바.."

"참, 남자답게 불은 켜지 않는 거다?"

"응?...부..불을?"

"세민이라면 불을 켜지 않고 후라쉬만 들고도 갔다올텐데.."

"나..나도 불 안켜! 씨파-"

역시 연재는 사람마음을 조종할 줄 알았다-_-

..가슴이 두근거렸다.

아까 8시경엔 몰랐는데..

막상 12시가 되니깐 혼자 낯선 지하실 거울앞에 서야한다는게 여간 꺼림칙하지 않았다.

왜 낮에는 유치뽕짝이던 귀신이야기도 밤에 혼자 생각하면 등골이 서늘하지 않은가.

하물며 사람이 실종된 낯선 별장에서 밤 12시에 귀신이 깃들었다는 거울앞에 혼자 선다고 상상해 보라..

아무리 10만원이 걸렸다고 한들 할 맛이 나겠는가?

..물론 나는 한다-_-

왜? 돈에 환장했으므로..-_-;;;;

"10만원이나 준비해 놓고 있어 새꺄"

나는 당당하게 큰소리를 치며 지하실로 통하는 계단으로 향했다..

좃같게도 지하실로 통하는 계단은 집 밖에 있었다.

"지하실도 방으로 설계되어 있으니까 그렇게 무섭진 않을 거야

멋하면 지금이라도 없었던 일로 하자구~~"

"좃이나 까!"

뚜벅 뚜벅..

나는 후라쉬 하나만 달랑 든 채 계단을 내려갔다.

풀밭에 벌레 울음소리가 그나마 위안이 되었다.

장마철 구름은 별빛마저 가려버려서 주변은 칠흑과 같이 어두웠다.

후레쉬 불빛만이 진흙같이 달라붙는 어둠을 미약하게 밀어내고 있었다.

계단을 걸어내려가다 보니 이상한 느낌이 들었다.

내 발자국 소리외에 다른 발자국 소리가 미세하게 겹처들렸던 것이다.

뒤를 흠칫 뒤돌아 봐도 아무도 없었다.

다시 걸으면 여전히 겹쳐들리는 소리..

그것은 메아리 따위가 아니었다..

아니, 뒤에서 나는 소리라기보다는 저 안쪽 깊숙이서 나는 소리 같았다..

'설마....저 안에도 무슨 장치가 되어있는 것이겠지.."

나는 아까 세민이의 실수를 떠올리며 기분을 밝게 전환시키려고 노력했다.

그러나 한번 마이너스이미지로 흐르는 감정은 쉽사리 회복되지 않았다..

'씨바..기분 진짜 좃같네..

설마 진짜로 나머지 세명이 짜고 날 골탕먹이려는 건 아니겠지?'

나머지 세명은 환한 거실에 앉아서 TV나 보면서 내가 얼마나 벌벌 떨지 뒷다마나 까고 있겠지.

그 모습을 상상하니 괜히 없던 오기도 생겼다.

'그래 까짓거 같은 건물인데 낮에 가나 밤에 가나 뭐가 달라?

더구나 나는 자동차 잡는 공익부대-_-출신이잖어?"

...안 웃겼다.

당시의 내 기분은 이정도 유머로 웃을 수 있는 상황이 아니었다..

무엇이 숨어있을 지도 모를 저 안쪽에서는 여전히 내 발걸음에 보조를 맞추어 발자국소리가 들려왔다..

장난이라도 치듯이 미묘하게 어긋나는 박자로..

이대로 가다간 지하방 중간에서 '그 무엇인가'와 딱! 마주치게 될 것만 같았다.

누.군.가.가. 나.에.게. 다.가.오.고. 있.다.!!!!

터무니없는 생각일지 모르지만 이런 생각이 내 뇌리를 스치고 지나갔다.

어느덧 나는 계단을 다 내려가고 지하방과 통하는 문앞에 서게 되었다.

돌아가려면 지금이 마지막 기회이리라..

그러나 10만원...

나는 문 손잡이를 가만히 움켜쥐었다.

'설마 이것도 자동문은 아니겠지?'

나는 놀라지 않게 마음의 준비를 한 후 조심 조심 문을 열었다..

다행히 문은 녹슨 소리도 내지 않고 부드럽게 열렸다.

그리고 그 칠흑 한가운데에 후라쉬 불빛을 들이미는 순간

후-욱- 하고 더운 숨결이 확 내 안면으로 뿜어져 나오는 것을 느꼇다..

거대한 거인의 숨결같았다..

살아있는 생물?

..아냐..아닐거야..

요즘 날씨가 워낙 후텁지근하다보니 안에 습기가 차서 그런 것일 거야..

높은 산 깊은 골~~ 적막한~~ 산하~~ 비내린 전선을~~

나는 어설프게 군가를 부르기 시작했다

이렇게라도 해야 안에 들어갈 용기가 날 것 같았다.

그렇지만 공익출신이다보니 가사를 끝까지 몰라서 중간까지밖에 부르지 못했다-_-

나는 심호흡을 하고 큼직하게 다리를 벌려서 성큼 안으로 들어갔다.

여기서부터는 자기네 영역이라고 말하는 듯 검은 어둠이 나를 감싸안았다

의지할 수 있는 빛은 후라쉬와

열린 문 사이로 살짝 들어오는 희미한 달빛이었다..

만약 이 상태에서 뒤의 문이 꽈당! 닫히기라도 한다면..

아냐..

나는 고개를 가로저으며 어두운 상상을 떨쳐냈다

계속 그렇게 생각하고 있으면 정말 그런 일이 일어날 것만 같았다..

' 영준아 오지마'

누군가가 내 뇌속에서 속삭이는 듯 했다.

환청이란 걸까?

환청치곤 재수없게도 하필 세민이의 목소리를 닮아있었다-_-;;

어쨋든 밀폐된 공간에 있으니 마음속의 두려움이 본능적으로 속삭이는 것이리라..

'어떤 새끼가 폐쇄공포증도 병이래?

이런 곳에 갇혀있으면 누구라도 무서운게 당연한 거지.."

나는 후라쉬 불빛을 사방으로 쏘며 거울을 찾았다.

연재와의 약속 때문에 불을 켤 수는 없었다..

나의 과제는 거울에 걸린 빗을 다녀갔다는 증거로 가져오는 것이었다..

반짝!

왼쪽 벽에서 무언가가 후라쉬 불빛을 강렬하게 반사해 내었다

저것이로구나..

드디어 발견했다..

나는 바닥에 걸려넘어지지 않도록 조심 조심 거울에 접근했다.

에상대로 내 전신을 다 비추고도 남을 만한 큼직한 거울이었다

아예 한쪽 벽면의 3분의 1을 차지하고 있을 정도였다.

무슨 보물선에서 건져올린 것 처럼 고풍스런 문양이 인상적이었다

'흥, 단순히 크기만 한 거울이잖아?

귀신은 무슨 얼어죽을..'

나는 큰 헛기침 소리로 숨막히는 정적을 깨뜨린 후 거울앞에 버티고 섰다.

거울은 내 전신을 정확하게 반사시켰다.

'머? 내 모습이 비치지 않는 거울이라고?

좃이나 까라..내 이럴 줄 알았어..

그런데..

억?"

갑자스런 깨달음에 뒷골이 서늘해졌다.

신기하게도 지하실방 구석 구석이 먼지로 가득했음에도 불구하고 거울유리는 광택마저도 없을 정도로 깨끗했던 것이다.

어떻게 이런 일이..

아까 연재가 몰래 미리 닦아 놓았던 것일까?

아닐 것이다.

도착하자마자 짐챙기고 청소하느라고 바빳으니 도저히 혼자 빠져나가서 그럴 여유가 없었다.

더구나 굳이 그런 노력을 기울인다 해도 내가 눈치채지 못한다면 말짱 도루묵 아니던가?

영악한 연재가 그런 비효율적인 노동을 할 리 없었다

이상한 것은 그것뿐이 아니었다..

거울안쪽에는 다른 세계가 있는 듯 깊이감이 느껴졌다.

아니, 아예 안에 유리가 없고 그안에 실제의 공간이 있는 듯 했다.

나는 떨리는 손으로 거울에 손가락을 가져다 대었다.

거울 저 편에서도 같은 속도로 거울에 반사된 내 손가락이 점점 다가오고 있었다.

정확한 좌우대칭으로..

마치 영화 E.T의 한 장면 같이 두 손가락이 거울 표면에서 만나려는 순간 나는 멈칫했다..

이대로 가면 정말 거울 표면 속으로 손가락이 쑤욱 들어갈 것만 같았기 때문이었다

'굳이 꺼림찍한 일을 할 필욘 없겠지..

이건 요구조건에 없던 거니까..'

흐윽.

순간, 아질한 현기증에 정신이 몽롱해졌다.

어처구니 없게도 거울이 나를 끌어당기는 듯한 느낌이 들었다.

어둠속에서 응시하는 거울은 수정구라도 되는 양 묘한 흡인력을 가지고 있었다..

유리가 아니라 검은 액체가 잔잔하게 가득 차있는 듯한..

뭐랄까..

깊디 깊은 우물을 바로 위에서 내려다 보는 듯한 기분이었다

누가 뒤에서 살짝 밀기만 하면 거울의 자력은 그대로 나를 집어삼킬 것만 같았다.

그건 타력에 의한 몰입감이 아니었다.

어쩌면 내 스스로가 빨려들어가길 바라고 있었는지도 몰랐다.

혹시 아파트 옥상난간에 올라가 서 본 경험이 있는가?

투신자살자의 마음이 궁금해서 난간에 올라가 바닥을 내려다 보는 순간,

'정말 뛰어내리고 싶다'

하는 충동에 가슴 한 구석이 일렁이는 경험이 있는가?

한발만...한발만 앞으로 내디디면 정말로 추락할 텐데..

자기도 모르게 그 돌이킬 수 없는 한 발을 내딛을 것만 같은 그런 기분..

자신의 마음이 어떻게 돌변할지 스스로도 몰라서 두려운 그런 기분..

나는 최면과도 같은 거울의 흡인력에서 벗어나고자 과장된 몸짓으로 몸을 뒤로 크게 젖혔다.

그대로 있었다간 옥상에서 공중으로 한발을 내딛듯

자기도 모르게 거울속으로 뛰어들어가진 않을까 스스로를 믿을 수가 없었기 때문이었다..

거울에는 공포로 뻣뻣하게 굳은 내 얼굴이 보였다.

후라쉬의 불빛 때문에 마치 전설의 고향에라도 나오는 귀신 같아보였다

나는 가만히 거울 속의 내 모습을 찬찬히 뜯어봤다.

여드름이 후라쉬 불빛에 그림자를 드리우며 장엄하게 솟아있었다.-_-;

그 중 코에 난 가장 큰 여드름에 시선이 가자 확 짜버리고 싶은 충동이 들었다.

나는 거울에 얼굴을 바싹 들이밀고 용을 썼다..

코 앞 1cm도 안되는 거리에서 거울 속의 내가 있었다.

거울은 내 모습 뿐 아니라 내가 뿜어내는 뜨거운 숨마저 반사해 냈다..

숨이 닿는 볼따구니가 텁텁하게 느껴졌다.

답답한 적막을 떨구어 버리려고

고개를 좌우로 흔들어 보았다

거울속의 나도 따라했다.

씨익 웃어 보았다.

거울 속의 나도 따라 웃었다..

거울 속의 나를 노려봤다..

'우리는' 눈이 마주쳤다.

거울속의 내 눈동자는 마치 살아있는 듯 생기를 띄고 번뜩였다..

그러나 눈싸움을 하고 있을 여유는 없었다.

거울을 보고있노라면 내 등 뒤에서 괴물이 튀어나와 내 어깨에 손을 턱! 얹어놓을 것만 같았기 때문이었다.

나는 여드름을 다 짜자마자 거울에 걸린 빗만 집어들고는 도망치듯 그 자리를 벗어났다..

뚜벅.. 뚜벅..뚜벅..

들어올 때와 마찬가지로..

등 뒤에서는 내 발자국소리와 미묘하게 겹쳐지는..

그러나 반대방향으로 점점 멀어져가는 발자국 소리가 들려왔다..







밝은 형광등..

친구들의 화기애애한 웃음소리..

담요에 널부러져 있는 화투장..

마치 고향에 온 것처럼 안심이 되었다..

모든 것이 유쾌했다..

휴지뭉치가 공중에 떳다며 휴지통앞에 주저않아 비명을 지르는 세민이만 제외한다면 말이다..-_-;;;

나는 연재가 건넨 두둑한 현찰 10만원을 받아들고 뿌듯하게 웃고 있었다.

시간은 어느덧 12시 30분이 넘어잇었다

겨우 30분도 안되던 시간이 나에겐 30시간처럼 느껴졌다..

"캭캭캭캭- 그래게 내가 뭐랬냐?

귀신은 무슨 얼어죽을...

덕분에 난 십만원 벌었지롱~~"

나는 조금전의 공포도 잊어먹고 기분이 들떠있었다..

룰루랄라 서울가면 이 10만원으로 뭘 할까.

"오빠앙..나 여름 원피스 하나 필요한데.."

상희가 어느새 실실 쪼개며 내 옆에 바싹 달라붙었다.

"..그냥 난닝구 잡아늘려서 입구다녀-_-+"

상희는 뽀루퉁해서 씨바 씨바 거리고 있었다.

그 자리에 더 있어봤자 결국 상희에게 돈이나 뜯길 것 같아서 나는 밖으로 나갔다

막 담배에 불을 붙이려고 하는 데 언제 나왔는지 연재가 다가왔다.

어딘지 모르게 낯선 느낌에 처음엔 연재인 줄 못알아봤다

역시 돈을 잃으면 사람도 달라보이나 보다-_-;

"야..근데 솔직히 말해봐

진짜 거울에 니 모습이 비쳤어?"

연재가 도무지 안믿긴다는 듯이 머리를 긁적였다

"당근이쥐!

모습안 비치는 거울이 거울이냐?

내 코 좀 봐라. 난 거울보고 여드름도 짯으니깐.."

나는 담배연기를 내 뿜으며 자랑스럽게 대답했다

짜식..사나이 말을 몰로 보고..

"에이~~ 솔직히 말해봐

무서워서 거울은 보지도 않고 그냥 빗만 들고 왔지? 그렇지?"

"이새끼가 지금 장난하나?

나랑 지금 당장 같이 가보자"

나는 연재와 아까전에 내가 다녔던 길을 고대로 따라갔다.

연제가 후라쉬를 들고 앞장섰다.

둘이서 함께 가니까 하나도 안무서웠다

아까전에 그렇게 쫄았던 모습이 괜시리 바보처럼 느껴졌다.

연재는 연신 '이상하네..이상하네..'를 중얼거렸다.

마침내 우리는 방 안에 들어섰다.

후라쉬를 비추자 거울은 아까 그 자리에 그대로 있었다

나는 거울을 가르키며 말했다.

"자 이 거울을 봐라 내가 아까 여기서..아악!!!!!"

나는 아찔한 공포감에 피가 얼어붙는 것 같았다..

거울에는 나와 연재 모습이 비치지 않았기 때문이었다..

그러나 방안 풍경은 고스란히 비추고 있었다.

"그것봐..내가 뭐랬어..

사실 이건 거울이 아니야 그냥 뻥 뚫려있는 문이라구

그렇지만 삼촌은 이 문을 사이에 두고 양 쪽 방을 완전히 좌우대칭이 되게 설계를 했지.

이 문을 경계로 공간을 접으면 정확히 포개어지도록 말야.

그래서 이렇게 정면위치에서 보면 원근법 때문에 마치 거울을 보는 듯한 착각을 일으키지..

자기 자신의 모습만 비치지 않는 귀신의 거울..

하긴 이 별장은 원래 주문을 받은게 아니라 공포물을 선호하는 삼촌자신을 위해 특별제작한 거니까..

참 우리 삼촌다운 발상이지.

자 어때

이래도 우길거야?

아까 니 모습 봤다는 건 거짓말이지?"

나는 전신의 피가 얼어붙는 듯한 공포에 입을 열 수도 없었다.

부들 부들 떨리는 손으로 '거울'에 손을 넣어보니 아니나 다를까 반대쪽 공간으로 관통되었다..

애초에 거울틀밖에 존재하지 않았던 것이다.

'으..어....어..'

"왜 그렇게 놀라지?

쑈크라면 아까 혼자 봤을 때가 더 심했을 텐데..

아항! 진짜 거울은 보지도 않았구나?큭큭큭.."

이제 모든 것이 이해가 되었다

아까 거울에서 느꼈던 알 수 없는 공간감과 흡인력..

그러나 진짜 공포는 그런 특이한 '거울'따위가 아니었다..

아까 전, 그 '거울'을 사이에 두고 나와 1cm도 안되는 거리에 있던..

텁텁한 입김과 번뜩이는 눈빛을 주고 받던..

나의 행동을 따라하며 거울 흉내를 내던..

'그것'은 대체 무엇이었을까..

정체를 알 수 없는 '그것'과 그토록 가까운 거리에서 아무것도 모른 채 함께 있었다는 사실에..

나는 보이지 않는 손이 위장을 쥐어짜는 듯한 공포감을 느꼈다..

갑자기 다리에 힘이 쭉 빠지며 땅속으로 꺼지는 듯한 불쾌감이 엄습했다

"여..연재야 사실은..."

연재를 돌아보자 연재는 아무 표정도 없이 나를 쳐다보았다.

조금 전과는 완전히 다른 사람으로 돌변한 듯 했다

마치 아무 감정도 없는 듯한 그런 차가운 표정이었다..

"저..내말 좀 들어봐..

이건 지..진짠데.."

연재는 여전히 무표정했다.

띠리리리리리리--

그 때 내 주머니에서 핸드폰이 울렸다..

"여..여보세요?"

"어 영준이야? 지금 어딧어? 다들 찾고 있잖어"

쿠웅...

심장이 폭발해 버릴 것만 같았다..

그것은 다름아닌 연재의 목소리였다..

"도...도대체..?"

나는 놀란 눈으로 내 앞에 있는 연재를 보았다..

'연재'는 젖은 듯한 회색 눈동자로 아무 감정도 없는 듯이 나를 노려보고 있었다.

칠흑같은 어둠..

유일한 빛인 후레쉬마저 '놈'의 손에 들려있었다.

'놈'은 섬찟한 미소를 짓더니 후레쉬 불을 꺼버렸다..

삽시간에 사방은 어둠의 세계로 변해 버렸다..

툭;;

나는 핸드폰을 떨어뜨리고 겁에 질려 문쪽으로 도망치려고 했다..

이 쪽 방향이 맞던가? 맞을 거야..젠장...빌어먹을..

'놈'은 천천히 나에게 다가왔다..

내 위치를 정확히 알고 있는 듯 했다..

"으...으아아아 오지마..오지 마아"

나는 겁에 질려서 울부짖으며 바닥을 기다시피 문쪽으로 나아갔다..

어둠속에서 탁자모서리에 부딪힌 정강이가 아파왔다...

이 쯤이 맞을 텐데..

아무리 벽을 더듬어도 손잡이가 잡히지 않았다.

빌어먹을..빌어먹을..

"영준아! 들려? 어디야? 어디냐구!!!"

떨어뜨린 핸드폰에선 여전히 연재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흐흑..꿈일 거야..이건 꿈일거야.."

죽음보다 더한 공포가 밀려왔다..

이제 조금만 더 가면 밖으로 나갈 수 있어

나는 필사적으로 벽을 더듬었다..

다리에 힘이 풀려서 도저히 서서갈 상황이 아니었다.

내 앞은 '놈'은 아주 천천히...한걸음씩 나에게 접근해왔다..

일어나서 달려나가면 벗어날 수 있을 텐데..

불과 30m도 채 떨어지지 않은 밝은 불빛과 친구들이 있는 방으로 돌아갈 수 있을 텐데..

살려줘..

누군가 나 좀 도와줘...

그 때 문이 벌컥 열리며 누군가가 들어왔다

희미하게 들어오는 달빛이 눈물나게 반가웠다

빛이 이렇게도 소중한 것이었던가..

"누..누구? 세민이? 나..나 좀 도와줘!! 저..저건 연재가 아니야!!!"

나는 구세주라도 만난 심정이었다.

나는 다급하게 그의 바짓가랑이를 붙들고 일어났다..

그러나 겁에 질린 내 눈에 비친 것은 세민이 아니었다.

나는 보았다..

나와 똑같이 생긴 얼굴로

악마의 미소를 짓고 있는 '놈'의 얼굴을...









"오빠 어디갔다가 온거야? 광 팔 사람도 있어야지"

상희가 고스톱을 치다가 말고 톡 쏘듯이 말했다

아..상희는 실제로 이렇게 생긴 아이였던가..

귀엽구나..거울 '속'으로 보던 것 보다..

"으응...잠깐 담배 좀 피러.."

나는 어색한 티를 내지 않으려 노력하며 말했다.

"난 또 아까 전화도 안받길래 걱정했잖아 앗싸! 청단!"

연재가 화투장을 든 채 돌아보지도 않고 말했다..

"세민이는?"

"어, 퍼질러 자다가 부엌에서 과일깍고 있어

오늘따라 안하던 짓을 한단 말야"

사각 사각 사각..

부엌에선 과일을 깍는 소리가 들려왔다.

모든 것이 평화로웠다.

나는 결국 성공했다..

놈의 모든 기억을 공유한채 '놈'을 거울 속에 가두어 버리는 일에...

24년 동안 거울 속에 갇혀서 상상만 하던 일을 나는 해낸 것이다..

모든 것이 허상의 세계와는 다르게 리얼하게 다가왔다..

이 밝은 빛..

친구들..

아..거울 밖에 세계는 참 따스하구나..

난 이제부터 이것들을 맘껏 누려야지..

어차피 모든 것은 상대적인 것이다..

'놈'이 '나'인지..

'내'가 '놈'인지 알 수 있는 사람은 아무도 없다..

그렇다고 오해해서는 안된다..

나는 자동차를 몰고 이 별장에 찾아온 영준과 다른 존재가 아니다..

나는 영준을 위협했던 '그놈'이자..

동시에 '그놈'에게 위협당했던 '영준'으로서의 기억도 고스란히 가지고 있는 것이다.

단지..단지 서로 위치만 바꾸었을 뿐이다..

이제부터..

모든 것이 위치를 바꾸게 될 것이다..

"연재야, 내가 아까 거울앞에 지갑 떨어뜨리고 왔는데 같이 갈래?"

"에..다시 가긴 무섭구나? 알았어..

참, 아까 좀 놀랐지? 하긴 진짜 거울 같아 보이니까..

나도 첨에 내 모습 안 비치는 거 보고 놀라 자빠지는 줄 알았지

하튼 우리 삼촌은 특이해..

얘들한텐 말하지 마라?

내일 밤엔 세민이 놀려먹어야 겠다^^"

"연재야.."

"응?"

"아니..아니다.."

니네 삼촌이 널 애타게 기다리고 있을 거야.

나는 앞장서서 후레쉬를 들고 연재를 데리고 내 친구-또다른 연재-가 기다리고 있는 지하실방으로 향했다.

나는 방을 나가기 직전 부엌에 있는 '세민'이의 회색눈동자와 눈이 마주쳤다.

우리는 다른 사람들이 눈치채지 못하게 은밀한 눈빛을 주고 받았다.

미소를 짓는 세민의 손에서는 차가운 칼이 빛나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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