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가 재수할 때의 이야기입니다
수능 100일전이라서 친한 재수생 둘과 함께
밤공원에 나와서 백일주랍시고 술을 마신 적이 있었습니다
근데 그 중에 한 녀석이
며칠 전부터 벙찐게 좀 넋을 놓고 살고 있는 것 같았습니다
그 친구를 A라고 하고, 다른 친구를 B라고 하면,
나와 B만 이야기를 하고, A는 얼빠진채 고개만 끄덕이는 그런 상황이었습니다
그런데 이야기를 하다가 문득 당구 이야기가 나왔습니다
우리는 A에게 물어보았습니다
"너 당구 몇 치냐?"
그러자 A는 여전히 얼이 빠진 표정으로 무심코 대답했습니다
"404.."
"뭐?"
"!"
그제서야 A는 자기가 무슨 말을 했는지 깨달은 듯 했습니다
그런데 어이없게도 그의 얼굴엔 해서는 안 될 말을 하고야 말았다는
후회와 공포가 깊게 서려 있었습니다
"임마 세상에 404다마가 어딨냐? ㅋㅋㅋ"
"지가 당구를 404를 친다고? ㅋㅋㅋ"
우리는 큰 소리로 웃어제꼈습니다
그런데 A는 당황한 표정으로 우리의 입을 막으려 했습니다
"왜 그래 임마?"
"제..제발 입 다물어!!"
그 표정이 너무 진지해서 우리는 깜짝 놀랐습니다.
나는 속으로 이 녀석이 미친게 아닐까 생각했습니다
그런데 어둠 속에서 누군가가 우리에게 다가왔습니다
옆 벤치에서 자고 있던 노숙자 아저씨였습니다.
아저씨는 냄새를 풍기며 우리에게 다가와 물었습니다.
"누가 당구 404다마를 친다고?"
나는 뭔가 낌새가 이상해 잠자코 있었지만
B는 아무 생각없이 낄낄대며 A를 가리켰습니다
"얘요"
그러자 노숙자 아저씨는 갑자기 무서운 눈동자로 A를 쏘아보았습니다.
"...그렇군. 너였나?"
어쩐지 분위기가 이상했습니다.
이 노숙자는 정신이 이상한 사람 같았습니다.
그래서 우리는 슬금슬금 그 자리에서 도망쳤습니다.
아저씨는 그 자리에 서서 움직이지 않고
도망치는 우리를 쏘아보고 있었습니다.
A는 표정이 하얗게 질려서 사시나무 떨듯이 떨고 있었습니다.
그는 계속 혼자 중얼거렸습니다.
"얼굴을.. 봐 버렸어.. 얼굴을.. 봐 버렸어.."
우린 너무 기분이 안 좋아서 그냥 그 자리에서 헤어졌습니다.
다음날 A는 학원에 오지 않았습니다.
그 다음날도 A는 학원에 오지 않았습니다
우리는 걱정이 되어서 A의 집에 전화를 해보았습니다.
그러나 아무도 받지 않았습니다.
그렇게 A는 사라져버리고 말았습니다.
A는 며칠 전에 무슨 일을 겪은걸까요?
404다마란 대체 무슨 뜻인지?
그 노숙자 아저씨는 누구였는지?
A는 대체 어디로 사라져버린걸까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