게시판 즐겨찾기
편집
드래그 앤 드롭으로
즐겨찾기 아이콘 위치 수정이 가능합니다.
[동게문학] 나는 노랑이입니다. - (3) 두 집사들
게시물ID : animal_177848짧은주소 복사하기
작성자 : 비락
추천 : 4
조회수 : 247회
댓글수 : 0개
등록시간 : 2017/03/13 21:41:06
옵션
  • 창작글
KakaoTalk_20170310_005118316.jpg


(1) 이별
(2) 안녕, 엄마



  아직 동이 트기 전에 눈을 뜬 나는 이불 속에 몸을 담그고 있는 두 명의 인간들을 물끄러니 바라보았습니다. 그들을 보며, 떠돌이 신세가 되지 않은 것만도 다행이라고 생각했습니다. 그래서 별 부담없이 둘다 나의 새로운 집사로 임명해주기로 했습니다.

  날이 밝자, 그들은 주섬주섬 뭔가를 걸쳐 입고 집을 나섰습니다. 나는 순식간에 혼자가 되었지만 전혀 외롭지 않았습니다. 오늘 해야 할 일이 태산입니다. 내가 갈 수 있는 모든 곳을 가보고, 동선을 그려야 합니다. 혹시나 빠져나갈 구멍이 있는지도 말이죠. 밥은 어디에 있는지,어떤 식으로 먹을 수 있는지도 확인해야 하고, 화장실도 어디 있는지 확인해야 합니다.

  한참을 정신없이 모험을 하고 있으려니, 두 명의 집사중에 키가 작은 쪽이 문을 열고 들어왔습니다. 나는 반가운 마음에 현관으로 마중을 나가 주었지요. 그랬더니 그 집사는 나를 두 손으로 들어올려 배에다 자기 얼굴을 문지르기 시작했습니다.

  이 집사는 참으로 동글동글합니다. 가장 동글동글한 부위는 얼굴과 머리입니다. 손발도 짧은데다 배는 튀어나와있고 다리 역시 짧습니다. 저런 몸으로 어떻게 넘어지지 않고 다니는 것인지 참 신기합니다. 우리처럼 네 다리로 걸으면 훨씬 편할텐데요. 앞으로 이 집사를 동글이 집사라고 부르도록 하겠습니다.

  내 몸집보다 큰 얼굴이 내 배로 다가오자 나는 너무나 무서워서 동글이 집사의 얼굴에 아주 작은 상처를 내고 말았습니다. 아직까지 발톱을 숨기지 못해서 벌어진 일입니다. 나는 결코 새로 만난 집사들에게 나쁜 인상을 줄 필요는 없다고 생각하고 있었지만 세상일은 역시 내 뜻대로 되는 것은 아니었습니다.

  동글이 집사가 나를 내려주자, 혹시나 그가 빗자루를 들고 와서 나를 흠씬 때려주는 것이 아닌가 생각이 들었습니다. 그래서 부리나케 내가 파악해둔 가장 안전한 곳 - 컴퓨터 책상 아래 - 으로 재빨리 숨었습니다. 다행이도 그의 성격은 생긴것처럼 동글동글한 것인지, 나를 때리거나 하지는 않았습니다. 참으로 다행인 일입니다.

  동글이 집사가 털 색깔을 바꾸고 나서(인간들은 참으로 털색깔을 자주, 그리고 쉽게 바꿉니다. 놀라운 일입니다) 이내 내 밥통과 물통을 지켜보곤 말했습니다.

[…이녀석, 새끼인데도 엄청 많이 먹네.]

  뭐라고 말했는지는 모르겠습니다. 동글이 집사는 밥통에 밥을 덜어주고, 물통에 새로운 물을 채워 놓았습니다. 이제 보급도 완료 되었고, 집사도 환영해 주었으니 다시 모험을 떠날 차례입니다.




  나의 새로운 보금자리 구조는 그다지 복잡하지 않았습니다. 다행입니다. 나는 이 집의 모든 곳에 다 올라갈 수 있었습니다. 창문만 열려있다면 창문 난간에도 올라가보고 싶은데 내 힘으로는 저 거대한 창문을 열 수 없었습니다. 전에 살던 곳에서는 집사가 창문을 항상 열어두었기 때문에 아무때나 창문에 올라갈 수 있었는데 말입니다.

  동글이 집사가 오기 전에 마지막으로 했던 탐험은 냉장고 위를 올라가는 것이었습니다. 전에 살던 곳의 냉장고가 점프 3번의 높이라면, 이 집의 냉장고는 점프를 6번을 해야 올라갈 수 있을 정도로 아주아주 높았습니다.

  밥통을 딛고 올라가서 그 위에 있는 전자렌지로, 그리고 그 위의 쌀통을 거쳐야만 냉장고 정상에 올라가는 것이 가능했습니다. 나는 그 위에 순식간에 올라가 동글이 집사를 불렀습니다. 엄마가 있었다면 엄마를 불렀겠지만, 그 집에 있는 엄마가 와줄리는 없겠죠.

  “봐라, 나는 이런데까지 올라올 수 있다! 어떄, 굉장하지 않아?”

  동글이 집사는 두리번 거리면서 나를 찾기 시작했습니다. 이내 냉장고 위에 올라와 있던 나와 눈이 마주친 집사는 나를 양손으로 잡고 땅으로 내려주었습니다.

  [새끼 고양이들은 높은데 올라가면 무서워서 못내려온다고 하더니. 진짠가 보네.]

  아마 어떻게 올라갔는지 다시 한번 보여달라는 것 같습니다. 나는 다리에 힘을 주어 다시 한 번 그 코스를 올라갔습니다. 밥통 - 전자렌지 - 쌀통 - 냉장고 정상 코스를 말입니다. 한 단계 한 단계를 오를 때마다 동글이 집사를 돌아 보며 자랑하려 했으나 그건 너무 부끄러운 것 같아 정상에 오른 후 한꺼번에 자랑해 주기로 마음먹었습니다. 정상에 오른 후, 동글이 집사를 바라보며 다시 한번 자랑스러운 표정을 지으며 말했습니다.

  “이렇게 올라오는거야. 나 대단하지?”

  동글이 집사가 나를 굉장히 멍청하다는 듯한 표정으로 바라보고 있는 것 같습니다. 그건 나의 착각이었을까요. 그때 띠띠띠띠 하는 소리와 함께 현관문이 열렸습니다. 두번째 집사, 키가 큰 쪽이 귀가를 한 모양입니다. 두번째 집사는 무척 목소리가 낮고 힘이 있습니다. 그리고 팔 다리가 길쭉길쭉 합니다. 왠지 모르게 이 녀석은 무섭습니다. 이 녀석이 나를 쓰다듬으로 손을 뻗으면 자동으로 몸이 움츠러 듭니다. 여하튼, 이 큰 집사를 꺽다리 집사라고 부르기로 하겠습니다.

  [나 왔어. 근데 뭐해? 쟤는 왜 저기에 올라가 있어?]

  신발을 벗기 시작한 꺽다리 집사는 서랍에서 뭔가를 꺼내더니 냉장고 위에 있는 나에게 흔들기 시작했습니다.

  [고양이들이 원래 높은 곳 좋아하잖아. 근데 애가 아직 어려서 높은데에 올라갈 순 있는데 내려오는건 무서운가봐. 아까 내가 내려줬는데 또 올라갔네.]

  꺽다리 집사가 흔드는 묘한 모양의 그것에서 달콤한 향기가 강렬하게 뿜어져 나오고 있었습니다. 나는 한달음에 성큼성큼 냉장고를 내려왔습니다. 원래 6번에 걸쳐서 내려와야 하지만 그 냄새가 참으로 궁금하여 3번만에 바닥에 내려왔습니다. 발에 욱신거리는 충격이 느껴졌지만 괜찮을 겁니다. 어쨌든 나는 고양이니까요.

   [… 잘 내려 오네. 간식 주는거야?]

  [어, 매일 퇴근하고 오면 내가 줄려고. 내가 너만큼 얘를 이뻐하진 않을 테니 져키라도 주면 얘가 나를 좋아하지 않을까?]

*져키 - 주로 쇠고기를 다져서 말린 것. 고양이용 육포.

  나는 그 달콤한 냄새가 나는 그것을 입에 덥석 물었습니다. 굉장했습니다. 내 머릿속에서 참치와 순위를 경쟁할 정도로 정말 굉장한 맛이었습니다. 나는 그것을 허겁지겁 삼켜버렸습니다.

  [얘 침흘리면서 먹네.]

  [진짜네. 강아지도 아니고 고양이가 침흘리면서 먹나?]

  나는 물끄러미 꺽다리 집사를 올려다 보았습니다. 그리고서 하나 더 달라는 강렬한 눈빛을 보냈습니다. 그런 나의 눈빛을 깔끔하게 무시한채 그는 방으로 들어가버렸습니다. 잠시 후, 동글이 집사처럼 털 색깔을 밝게 바꾼 꺽다리 집사는 화장실로 들어갔습니다. 화장실은 물이 나오는 무시무시한 곳입니다.

  그러고 보니 고양이들은 물을 참 싫어합니다. 우리들이 물을 싫어하는 이유는 다양하지만 일단은 차갑고, 털이 젖으며, 서로를 구별할 수 있는 냄새가 사라지기 때문입니다. 엄마가 한번 홀딱 젖은 모습을 본 적이 있었는데, 상당히 충격적인 비주얼이었습니다. 마치 고양이가 아닌 것 같았습니다. 그날은 엄마가 가까이 오라고 해도 가지 않았습니다.

  그래서 나는 화장실에는 따라가지 않은 채, 바깥에서 참을성 있게 꺽다리 집사를 기다렸습니다. 얼마 후, 머리털이 젖은 채로 화장실에서 나온 그는 드디어 나와 눈이 마주쳤습니다.

  “야. 하나 더 달라고.”

  야옹 - 야옹 -

  [얘 왜 이러는거지?]

  [하나 더 달라는거 아냐? 아까 침흘리면서 먹더니.]

  [아, 그런가. 얌마. 이건 하루에 하나씩만 먹는거야.]

  꺽다리 집사는 한 손을 뻗어 내 머리를 쓰다듬더니 뭐라고 중얼거리면서 가버렸습니다. 흠. 그가 가버린 이후, 나는 놀라운 먹을 것이 감춰진 그 서랍에 올라갈 궁리를 하기 시작했습니다. 머리를 최대한 굴려서 서랍에 올라가긴 했습니다만, 그 서랍을 여는 것은 아무래도 불가능한 일이었습니다. 한참을 시도해보다가 결국 포기하게 되었습니다.





  인간들은 참으로 요란하게 식사를 합니다. 나는 밥.물. 두개 뿐인데 인간들은 상다리가 부러지도록 먹습니다. 그렇게 여러 종류를 먹으면 덩치가 저렇게 커지는 것일까요. 한 종류만 먹게 되면 인간으로서 살아가기가 어려운 것일까요. 정확히 알 수 없습니다만 아까 먹었던 맛있던 먹을 것을 떠올리며 밥을 깨물어 먹기 시작했습니다.

  밥을 먹고 난 뒤, 꺽다리 집사는 심심했는지 가방에서 뭔가를 꺼냈습니다. 길다란 막대기 끝에 솜털이 달려있는 것이었습니다.

  [오뎅꼬치는 어디서 났어?]

   *오뎅꼬치 - 고양이용 장난감. 강아지풀처럼 생긴 도구.

  [오다가 샀어. 3천원.]

  [너 그렇게 안봤는데 이런것도 다 사고. 간식도 멱여주고. 대단한데. 감동했어. ]

  [화장실도 내가 치울건데. 냄새나잖아.]

  두 집사가 대화를 나누는 동안, 솜털이 살랑살랑 움직이기 시작했고 나는 강렬한 기분에 사로잡혔습니다. 반드시 저 솜털을 움켜쥐고 말겠다는 강렬한 생각이었습니다. 나도 모르게 자세를 낮춘뒤 솜털을 향해 달려들었습니다. 솜털은 금방 잡혔습니다. 잡아서 입으로 깨물고 손톱으로 움켜쥐었더니 더 이상 움직이지 않았습니다. 나는 내심 이 털 녀석이 다시 움직여 주었으면 좋겠다고 생각했습니다.

  [그렇게 하면 안돼. 역시 하수군. 오뎅꼬치를 좀 더 현란하게 움직여야지. 진짜 살아있는 것처럼.]

  [야, 뭔 말도 안되는 소릴. 무생물이 어떻게 살아있냐. 니가 한번 해봐.]

  동글이 집사의 손으로 넘어간 솜털은 그야말로 나를 도발하기 시작했습니다. 그것은 현란한 움직임으로 나를 이리저리 피해 달아났습니다. 나는 흥분에 겨워 한참을 전력으로 뛰어다녔습니다. 아무리 잡으려고 애를 써도 그 솜털은 잡히지 않았습니다.

  씨익 - 씨익 -

  [야 이거 뭔소리야. 얘 힘들어 하는건가?]

  [숨찬가봐. 겁나게 웃기네 이놈.]

  나는 숨을 고를 수 밖에 없었습니다. 솜털녀석을 잡아서 다시 한번 깨물기 전까지는 멈추지 않으려고 했지만 안타깝게도 다리를 움직일 수가 없었습니다.

  [얘 코 빨개졌다. 엄청 흥분했나 본데.]

  [다행이 오뎅꼬치 좋아하는 녀석이네. 이거 해도 반응없는 고양이들도 있다고 하더라고.]

  안타깝게도 내 컨디션이 정상으로 돌아왔을 때, 솜털 녀석은 어디론가 사라져 버리고 말았습니다. 다음번엔 반드시 잡아줄겁니다. 오늘은 태어나서 가장 힘든 날이었습니다. 그래서 나는 거침없이 잠에 빠져들고 말았습니다.




  잠에서 깨니 이미 날은 어두워져 있었고, 두 집사는 잠에 들어있었습니다. 나는 아까의 솜털이 생각나 동글이 집사에게로 갔습니다. 그의 배 위로 올라가 다시 놀자고 속삭였습니다.

  “놀자. 이번엔 잡을 수 있을 것 같아. 놀자.”

  [으… 배에 뭐가 있어…]

  일어난 것인지 잠꼬대인지 헷갈립니다. 나는 좀 더 목소리를 높였습니다.

  “놀자고! 다시 솜털 꺼내봐”

  [저리가]

  동글이 집사가 감히 내 몸을 밀어냈습니다. 아쉽네요. 나는 타겟을 바꾸어 이번에는 꺽다리 집사에게로 갔습니다. 꺽다리 집사의 배 위로 올라가 다시 한번 속삭였습니다.

  “놀자.”

  다음 순간, 내 몸은 하늘을 날고 있었습니다. 그 찰나의 시간에 몸의 중심을 잃지 않기 위해 정신을 바짝 차려야 했습니다. 다행이도 다친 곳이 없이 착지는 했지만 어떻게 된 일인지 알 수가 없었습니다. 내가 하늘을 난 걸까요? 나는 다시 한번 꺽다리 집사의 배 위로 올라가려 했습니다. 꺽다리 집사의 배 위에 한 발을 딛는 순간 나는 어떤 사태가 벌어졌는지 완벽하게 이해했습니다. 꺽다리 집사가 나를 집어던진 것이었습니다.

  나는 곰곰히 생각했습니다. ‘역시 꺽다리는 위험한 녀석이군. 가차없어.’ 그의 거침없는 행동을 보며, 꺽다리 쪽은 좀 더 조심히 다가가기로 마음먹었습니다.
전체 추천리스트 보기
새로운 댓글이 없습니다.
새로운 댓글 확인하기
글쓰기
◀뒤로가기
PC버전
맨위로▲
공지 운영 자료창고 청소년보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