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번 포스팅 “남자들이 성인비디오를 빌릴 때”에서도 보았듯이, 우리들은 다른 사람의 시선을 의식 할 때에는 평소와 다르게 행동한다.
보통 때와 다르게 행동하는 것은 우리들이 다른 사람에게 좋은 인상을 주기 위해 대단히 애쓰고 있기 때문이다.
적어도 다른 사람에게 나쁜 인상을 주어서는 안 된다는 생각을 우리 모두는 갖고 있다. 그렇게 보고 듣고, 또 배우면서 자라왔기 때문이다. 어찌 보면 상대방에게 좋은 인상을 주어야 한다는 것은 우리의 인간관계를 움직이는 기본 법칙이다.
남의 시선에서 자유로울 때
하지만 상황에 따라서 우리들은 다른 사람의 시선을 의식할 필요가 전혀 없을 때가 있다. 익명성이 완전하게 보장 될 때이다.
익명성이 완벽하게 보장된다면 사람들은 평소와는 달리 행동한다. 익명성이 완전하게 담보되면 사람들은 비상적이 된다. 그 결과 파괴적이 되기도 하고 공격적이 되기도 한다.
익명성과 비상식적 행동과의 상관을 보여주는 연구들은 대단히 많다. 하지만 비상식적인 행동이 반드시 폭력적이거나 파괴적이기만 한 것은 아니다. 비상식적인 행동이긴 하지만 익명성은 남녀간의 사랑을 급격하게 불태우게 만들기도 하기 때문이다
완전한 어둠이라는 익명성이 남녀간의 관계를 급격하게 발전시켜준다는 것은 이미 사회심리학의 실험에서 입증된 사실이다. 저명한 사회심리학자인 거겐( K. Gergen)의 실험을 보면 남녀관계에서 어둠이라는 익명성이 얼마나 큰 역할을 하고 있는지 저절로 알 수 있다.
실험은 간단했다. 서로 모르는 남녀 6명 혹은 8명을 한 방에 들어가게 해서 1시간 정도 머무르게 했다. 방의 크기는 3평(3m x 3.6m) 정도로 8명 정도라면 여유 있게 앉을 수 있는 정도의 넓이였다. 단, 한 그룹의 사람들은 밝은 방에, 또 다른 한 그룹은 어두운 방에 들어가게 한 후 그들의 행동을 비교했다. 어두운 방의 경우는 적외선 카메라로 사람들의 모든 행동이 체크되었고 그들이 나누는 대화 내용도 녹음되었다.
너무나 달랐던 밝을 때와 어두울 때
실험에 참가한 사람들은 실험에 참가하기에 앞서 간단한 설문지를 작성하고 나서 20분 후 다음과 같은 설명을 들었다.
“당신은 이 방에서 몇 명의 사람들과 함께 한 시간 가량 머무를 것입니다. 다른 사람들과 어떤 행동을 해야한다는 식으로 미리 정해진 것은 아무 것도 없습니다. 1시간이 지나면 한 사람씩 안내를 받아서 그 방을 떠나게 됩니다, 그 방에 있던 사람들과 또 다시 마주칠 일은 전혀 없습니다
실험 결과를 보자. 우선 밝은 방에 들어간 사람들은 우선 다른 사람들과 어느 정도 거리를 유지한 채 자리에 앉았다. 곁에 앉기보다는 서로 마주보는 식으로 대화를 나누기에 적합한 자세를 취한 것이다. 이들이 나누는 대화의 내용 역시 일상적이고 사무적이었다. 또한 실험 시간인 1시간 중 90% 이상 대화가 계속되었으며, 신체적 접촉과 같은 친밀한 행동은 전혀 일어나지 않았다.
반면 어두운 방에 들어간 사람들은 달라도 너무나 달랐다. 물론 처음 얼마 동안은 어두운 방의 사람들도 밝은 방의 사람들과 다르지 않았다.
하지만 시간이 지날수록 눈에 띄는 변화가 관찰되었다. 30분 정도 지나자, 대화가 사라지고 신체적 접촉이 두드러지게 나타나기 시작했다. 서로 몸으로 말하기 시작한 것이다.
서로 자리를 바꿔 가까이 앉아 몸을 밀착시키는 커플도 나타나기 시작했다.
시간이 경과할수록 밀착의 정도를 넘어 서로 몸을 만지는 커플이 관찰되었으며, 그 중에는 포옹하는 커플까지 있었다. 대화도 개인적인 내용이 주를 이뤄 이성간에 친밀도가 급격하게 높아졌다는 것을 알 수 있었다.
어두운 방에 참가한 50명의 100%는 서로 신체적 접촉이 있었다. 모든 실험에 참가했던 사람들 가운데 89%는 서로 의도적으로 신체적 접촉을 했다. 51%는 포옹을 했으며 78%가 성적 흥분을 느꼈다고 보고 했다. 실험 시작 전에는 생면부지의 남녀가 불과 1시간 만에 뜨거운 관계로 발전한 것이다.
익명성은 사람들을 대담하게 만들었다
왜 이렇게 다른 결과가 나타난 것일까? 인간은 누구나 어둠 속에서 공포를 느낀다. 그 상황에서 옆에 앉은 사람은 심리적으로 상당한 의지가 된다. 어둠 속에 있다는 공통점이 두 사람의 심리적인 유대를 강화시켜주는 것이다.
또한 어둠은 사람들의 심리적인 방어기제를 약화시킨다, 심리적인 방어가 무너지면서 곁에 있는 사람을 쉽게 받아들일 수 있는 심리 상태가 된다. 모든 것을 가려주는 어둠의 속성상 사람들은 타인의 시선으로부터 벗어났다는 안도감을 느꼈다. 그러면서 자연스레 익명성을 만끽할 수 있었다. 더구나 이 방을 떠나면 서로 마주칠 일이 없다는 실험자의 설명은 또 다른 익명성을 보장해주었고 그것이 이들을 한층 더 대담하게 만들었던 것이다. 실험참가자들은 일종의 몰아상태에 빠졌던 것이다.
실험에 참가했던 한 피험자는 다음과 말했다.
“우리들은 서로 가까이 붙어 앉아서 몸을 어루만졌다. 그러면서 우정 비슷한 감정을 느꼈다. 그러나 한 사람씩 방을 떠날 때는 상실감을 느껴 섭섭했다. 나는 그 경험이 재미있고 좋았다는 느낌을 갖고 그 방을 떠났다.”
결국 어둠으로 보장된 익명성은 그렇지 않았다면 표현되지 않았을 애정이라는 감정을 한층 더 드러나게 만들었던 것이다.
남녀관계를 한 단계 발전시키는 데는 ‘어둠’만 한 것이 없다. 서로 상대에 대한 호감은 있지만 아직까지는 서먹하고 거리감이 느껴지는 커플이라면 ‘어둠’을 적극 활용해보라. ‘어둠을 활용하라’는 말은 인적 없는 캄캄한 곳을 골라 데이트를 하라는 게 절대 아니다.
요즘같이 험한 세상에서 으슥한 곳만 찾아다니다가는 무슨 봉변을 당할지 모를 일이다. 어둠을 적극적으로 활용하려면 으슥한 곳보다는 조명이 좀 어두운 카페라든지 천체 박물관 같은 곳이 마땅할 것이다.
지금 솔로인 분들도 미리 알아두어서 나쁠 것이 없다. 영원한 솔로란 결코 없는 법이니 앞으로 다가올 그 사람을 위해서라도 미리미리 알아두어서 손해날 일은 없기 때문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