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신은 논한다. 이순신은 사람됨이 충용(忠勇)하고 재략(才略)도 있었으며 기율(紀律)을 밝히고 군졸을 사랑하니 사람들이 모두 즐겨 따랐다.
(중략) 부음(訃音)이 전파되자 호남(湖南) 일도(一道)의 사람들이 모두 통곡하여 노파와 아이들까지도 슬피 울지 않는 자가 없었다.
국가를 위하는 충성과 몸을 잊고 전사한 의리는 비록 옛날의 어진 장수라 하더라도 이보다 더할 수 없다.
조정에서 사람을 잘못 써서 순신으로 하여금 그 재능을 다 펴지 못하게 한 것이 참으로 애석하다.
만약 순신을 병신년과 정유 연간에 통제사에서 체직시키지 않았더라면 어찌 한산(閑山)의 패전을 가져왔겠으며
양호(兩湖)가 왜적의 소굴이 되겠는가. 아, 애석하다.
ㅡ 《조선왕조실록》 선조 31년 / 1598년 11월 27일의 사관 논평
절개에 죽는단 말은 예부터 있지만, 제 몸 죽고 나라 살린 것, 이 분에게서 처음 보네.
ㅡ 숙종 《현충사 제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