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캐나다의 정리해고
게시물ID : bestofbest_178014짧은주소 복사하기
작성자 : 캐나다소시민
추천 : 327
조회수 : 57137회
댓글수 : 0개
베오베 등록시간 : 2014/09/13 17:45:02
원본글 작성시간 : 2014/09/13 08:06:27

시작은 지난주였었나 봅니다.
제 매니저가 갑자기 팀미팅을 소집합니다. 
그리고 자기가 갑자기 라스베가스로 콘퍼런스를 1주일동안 가게 되었다고 자랑을 합니다.
그래서 1주일동안 역할분담을 위한 미팅이었던 거죠.


잠시 저희 매니저를 소개하자면 나이는 40대후반에서 50대 초반... 애가 둘 있다는데 둘 다 대학생이랍니다.
아시다시피 이 곳도 학비가 만만치가 않아서, 가끔 물어보면 학비 때문에 고민이 많은 것 같더군요.
회사생활은 거의 20여년이고, 저희 회사에서만 11년을 보낸 베테랑 중의 베테랑이죠.
메니저이다 보니 자신의 고유기술은 없지만, 두루두루 모두 알고 있습니다.
다른 메니저들도 뭔가 막히는 게 있으면 와서 물어보곤 하죠.
11년을 다녔으니, 거의 모든 사람을 다 알고 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닙니다.

사람은 참 좋은 사람입니다.
정말 제가 메니저 복은 타고 났습니다. 
여기 와서는 스트레스 주는 메니저를 만나 보지 못했으니깐요.
맨 처음에 메니저 팀에 배속되고 업무를 소개해 주는데 우리나라 패밀리레스토랑처럼 책상 옆에 무릎을 꿇고 앉아서 설명을 해 주어서 깜짝 놀랐습니다.
모든 일에 대해서 재촉하는 일이 없고, 일단 팀원들을 먼저 보살펴주는, 밑의 사람 입장으로서는 정말 좋은 매니저죠.

그렇게 일주일을 라스베가스에서 보내고 금요일에 팀런치를 하면서 여기저기 둘러본 이야기도 듣고 하면서 별 생각없이 다시 일상업무로 복귀합니다.
그러다가 이번 주 수요일, 즉 컨퍼런스 다녀온 지 3일째 날 아침, 다른 날과 똑같이 제가 먼저 도착하고 메니저가 30분후쯤에 도착을 했습니다.
인사를 하고, 간단히 하는 일 진척사항 이야기하고, 다른 팀원들 챙기고 그렇게 메니저가 자기 자리에 앉았는데, 9시 15분쯤 HR사람이 한명 메니저를 회의실로 데리고 나갑니다.
약 10분후쯤에 메니저가 약간 상기된 얼굴로 자리로 돌아오더니, 갑자기 다시 옷을 챙겨입고 나갑니다.
저는 또 회의가 있는가보다 생각하고(평소에도 메니저 업무 중에 반은 회의참석입니다.), 별 신경을 안 썼습니다.

그런데 다른 팀의 메니저가 갑자기 저희 팀원들 모두에게 팀미팅을 제안합니다.
이 메니저는 회사생활 10년정도 된 친구인데, 저희 회사에 온 지는 1년이 약간 안 됩니다.
눈빛부터 해서, 머리도 짧게 자르고, 젊은 친구인데 얼굴에도 정말 열의가 보이는 것 같은 야심찬 친구입니다.
그렇게 팀미팅을 하면서 청천벽력같은 소리를 합니다.

회사에서 구조조정이 있었다. 너희들은 이제 다른 팀에 배속될 것이다.

저야 말단직원이니 어느 팀을 가도 상관없고, 또한 새로 가는 팀이 좀 더 핵심적인 프로젝트를 많이 다루는 곳이므로 별 상관이 없습니다.
그런데 그 젊은 친구의 다음 발표가 곧 이어졌습니다.

너희 팀 메니저는 오늘 부로 해고되었다.

정말 깜짝 놀랐습니다. 구조조정, 구조조정 이야기는 많이 들어봤지만, 제 가까운 사람이 해고되는 건 처음 봤습니다.
그것도 제 직속메니저가요. 
우리나라에서는 해고를 하더라도 어느 정도의 유예기간을 주지 않나요? 
새 일자리 알아볼 시간이라든지...
여기는 얄짤이 없다는 이야기는 들었지만, 직접 눈으로 보니 정말 정떨어집니다.
아무런 예고도 없이 언제나 그렇듯이 아침에 출근했는데, 오자마자 이야기 듣고 바로 퇴근하는 상황이라니...

어떤 회사에서는 아예 회사입구에 경비를 세워서 못 들어오게 한다고도 합니다. 무슨 회사기밀 같은 걸 챙겨갈까 봐...


더 놀라운 건 팀동료들의 반응입니다. 
저는 놀라서 입을 못 다물고 있는데, 다들 그냥 그렇다는 듯이 고개만 끄덕거립니다.
미팅이 끝난 후 팀동료들과 커피 마시러 가면서도 저는 놀랍다고 어떻게 이렇게 사람을 자르냐고 하는데, 얘네들은 별 충격이 아닌 듯 합니다.
여기는 원래 이런 식이라고.

팀동료중의 한명이 작년에 회사에서 짤린 (전 스스로 나간 줄 알았습니다.) 직원의 이야기를 해 줍니다.
아버지의 임종이 가까워진 이 직원은 휴가를 내고 아버지를 보살피는데, 휴가 마지막날 아버지가 돌아가십니다.
꼬박 뜬눈으로 밤을 지샌 이 직원은 회사에 연락해서 아침에 잠깐 눈 붙이고 점심쯤에 출근한다는 이야기를 전합니다.
그렇게 잠깐 쉬고 회사에 출근했는데, 출근하자마자 HR사람이 역시 해고 통지를 하더랍니다.
그래서 일주일을 그렇게 마음고생하고 오자마자 다시 집으로 돌아갔다는 이야기입니다. 
아... 정말 냉랭해라...

제가 생각하기에 정도 많고, 능력도 많고, 그리고 무엇보다도 팀원들을 잘 챙겨주었던 메니저가 하루아침에 실직되는 걸 보고 참 많은 생각이 듭니다.

 

나도 언제가는 저런 일을 당할지도 모른다...
플랜 B는 선택이 아니라 필수이다...
실업급여는 얼마나 나오나...
실업급여 가지고 살 수 있나...
실업보험은 있나...

정말 회사에 꼭 필요한 인재라는 건 없는 것 같습니다.
그 당시 그 회사에 있으니 필요한 인재이지, 시간이 지나면 있으나 마나한 인재가 되는 것 같습니다.


그런데 그 때는 몰랐습니다.

약 2년여 후에 제가 바로 그 쓰디쓴 정리해고의 소용돌이에 휩쌓일 줄은...


다음 이야기는 제가 당한 정리해고 이야기...


출처: 내 블로그... 이제 블로그 드립은 그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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