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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패러디 수필) 애플블룸짤 그리던 노인
게시물ID : pony_17813짧은주소 복사하기
작성자 : 포니플라이
추천 : 10
조회수 : 452회
댓글수 : 5개
등록시간 : 2012/12/06 15:30:15


서울은 눈이 내리네요...(응?) 

마침 방망이 수필이 포니 버전은 없기에 있는 필력, 없는 필력 짜내어서 조잡한 패러디 수필이나 올려 봅니다. ㅋ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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애플블룸짤 그리던 노인                               


글쓴이:포니플라이 (원작: 방망이 깎던 노인-윤오영)



벌써 40여 일 전이다. 내가 신입 브로니 된 지 얼마 안 돼서 포게에 상주할 때다. 텀블러 돌아다니다 보면, 브로니력을 키우기 위해 일단 포게에 들러 짤들을 구경하는 게 일이었다. PC방 옆 자리에 컴퓨터 앞에 앉아 태블릿을 잡고 애플블룸짤을 그리던 노인이 있었다. 다른 이름으로 저장한 뒤 헠헠거리려고 짤을 부탁을 했다. 시간이 굉장히 오래 걸린다는 것 같았다.


 "좀 빨리 해 줄 수 없습니까?"


했더니,


 "애플블룸 짤 하나 가지고 에누리하겠소? 기다리기 싫거든 다른 데 가 부탁하시우."


 대단히 무뚝뚝한 노인이었다. 시간을 재촉하지도 못하고 잘 그려나 달라고만 부탁했다. 그는 잠자코 열심히 그리고 있었다. 스케치는 빨리 하는 것 같더니, 저물도록 선을 수정하고 구도를 다시 잡는 등 굼뜨기 시작하더니, 마냥 늑장이다. 내가 보기에는 그만하면 다 됐는데, 자꾸만 디테일을 추가하고 있었다.


 인제 다 됐으니 그냥 올려달라고 징징거려도 통 못 들은 척 대꾸가 없다. 루나공주님이 셀레스티아 공주님과 교대할 시간이 가까워 왔다. 갑갑하고 지루하고 초조할 지경이었다.


 "더 그리지 않아도 좋으니 그만 주십시오."


라고 했더니, 화를 버럭 내며,


 "기다릴 만큼 기다려야 쿨해지지, 대쉬가 재촉한다고 20% 쿨해지나."


한다. 나도 기가 막혀서,


 "헠헠거릴 사람이 좋다는데 무얼 더 그린다는 말이오? 노인장, 외고집이시구먼. 잘 시간이 없다니까요."


 노인은 퉁명스럽게,


 "다른 데 가서 부탁하우. 난 안 그리겠소."


하고 내뱉는다. 지금까지 기다리고 있다가 그냥 갈 수도 없고, 잘 시간은 어차피 틀린 것 같고 해서, 될 대로 되라고 체념할 수밖에 없었다.

 

"그럼, 마음대로 그려 보시오."

 "글쎄, 재촉을 하면 점점 거칠고 늦어진다니까. 짤이란 제대로 그려야지, 그리다가 놓치면 되나."

 

좀 누그러진 말씨다. 이번에는 그리던 것을 놓고 태연스럽게 컴퓨터로 암흑성소를 보고 있지 않는가. 나도 그만 지쳐 버려 구경꾼이 되고 말았다. 얼마 후에야 애플블룸 짤을 들고 여기저기 훑어 보더니 다 됐다고 내 준다. 사실 다 되기는 아까부터 다 돼 있던 애플블룸 짤이다.


 잠을 못 자고 점심때 쪽잠을 자야 하는 나는 불쾌하기 짝이 없었다. '그 따위로 늦게 짤을 그려 가지고 존잘소리 들을 턱이 없다. 리퀘 요청한 사람 본위가 아니고 제 본위다. 그래 가지고 시간만 더럽게 오래 걸린다. 팬 서비스도 모르고 불친절하고 무뚝뚝한 짤쟁이이다.' 생각할수록 화증이 났다. 그러다가 뒤를 돌아다보니 노인은 태연히 허리를 펴고 몰레스티아를 보며 침흘리고 있었다. 그 때, 포니를 빠는 옆모습이 어딘지 모르게 참된 브로니다워 보였다. 부드러운 눈매와 흰 수염에 내 마음은 약간 누그러졌다. 노인에 대한 멸시와 증오도 감쇄(減殺)된 셈이다.


 집에 와서 짤을 보여줬더니 여동생는 이쁘게 그렸다고 야단이다. 조세코가 그린 것보다 참 좋다는 것이다. 그러나 나는 전의 것이나 별로 다른 것 같지가 않았다. 그런데 친구의 설명을 들어 보면, 손기술만 너무 화려하면 포니의 개성이 묻혀버리고 하드 용량을 많이 먹으며, 손기술이 너무 없으면 금방 질려 휴지통에 넣어버리기 쉽단다. 요렇게 꼭 알맞은 애플블룸 짤은 좀체로 만나기가 어렵다는 것이다. 나는 비로소 마음이 확 풀렸다. 그리고 그 노인에 대한 내 태도를 뉘우쳤다. 참으로 미안했다.


 옛날부터 내려오는 애플블룸짤은 혹 다른 짤을 다 봤어도 찬찬히 음미하기만 해도 다음 에피 방영까지는 헠헠거릴 수가 있다. 그러나, 요새 애플블룸 짤은 첫인상만 눈길을 끌고 새로운 짤이 한 번 떨어지기 시작하면 금단 증상을 걷잡을 수가 없다. 예전에는 짤을 그릴 때, 포니의 개성이 묻어나오는 구도를 정성들여 구상하고 색채 배열에 신경써서 칠한 뒤에 디테일을 수정했다. 이렇게 하기를 세 번 한 뒤에 비로소 포니게에 내보인다. 이것을 장잉정신이라 한다. 물론 날짜가 걸린다. 그러나 요새는 그림판에 마우스로 3초작 짜리를 금방 그린다. 그러나 헠헠거리기 힘들다. 그렇지만 요새는 존잘 소리도 얼마 듣지도 않는 것을 며칠씩 걸려 가며 장잉정신을 발휘할 사람이 있을 것 같지 않다.


 팬픽만 해도 그러하다. 옛날에는 팬픽을 창작할 때 캐릭터 안에 들어 있는 개성과 혼을 고려했고, 글로 읽을 때 막힘이 없었다. 글로만 보아서는 팬픽으로 만든 건지 원작인지 알 수가 없었다. 단지 내용을 보고 빠는 것이다. 신용이다. 지금은 그런 말조차 없다. 어느 누가 꼴릿하지도 않는데 제대로 된 팬픽을 구하러 다닐 이도 없고, 또 그것을 믿고 몇 시간씩 fimfiction.net을 뒤질 사람도 없다. 옛날 사람들은 고어는 고어요 포간은 포간이요 비포간은 비포간이지만, 팬픽을 구하는 그 순간만은 오직 제대로 창작된, 스토리 탄탄하고 캐릭터성 넘치는 물건을 구한다는 그것에만 열중했다. 그리고 읽으며 포니에 대한 무한한 사랑을 느꼈다. 창작자도 그렇게 순수하게 심혈을 기울여 팬픽을 써 내려갔다.


 이 애플블룸 짤도 그런 심정에서 만들었을 것이다. 나는 그 노인에 대해서 죄를 지은 것 같은 괴로움을 느꼈다. '그 따위로 해서 무슨 존잘 소리를 듣는담.' 하던 말은 '존잘이 나 같은 손고자 브로니에게 멸시와 증오를 받는 세상에서, 어떻게 아름다운 짤이 탄생할 수 있담.' 하는 말로 바뀌어졌다.


 나는 그 노인을 찾아가서 뉴욕 브로니콘에라도 데려가 진심으로 사과해야겠다고 생각했다. 그래서 그 오늘 밤에 포게에 들르는 길로 그 노인을 찾았다. 그러나 그 노인이 활동하던 포게에 노인은 있지 아니했다. 나는 그 노인이 있었던 모니터 앞에 멍하니 앉아 있었다. 허전하고 서운했다. 내 마음은 사과드릴 길이 없어 안타까웠다. 맞은편 몰레스티아를 바라보았다. 애플블룸을 비롯해 잠에서 갓 깬 포니들이 부스스한 표정으로 일어나고 있었다. 아, 그 때 그 노인이 저 포니들을 보고 있었구나. 열심히 애플블룸 짤을 그리다가 유연히 조세코의 애플블룸을 바라보던 노인의 거룩한 모습이 떠올랐다. 나는 무심히 '채국동리하(採菊東籬下) 유연견남산(悠然見南山)!' 도연명(陶淵明)의 싯구가 새어 나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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