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야옹아, 가슴줄 좀 해보겠니?
게시물ID : animal_178475짧은주소 복사하기
작성자 : synousia
추천 : 2
조회수 : 433회
댓글수 : 1개
등록시간 : 2017/03/24 20:23: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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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8
그런 일이 있은 얼마 후, 집사는 조금씩 조금씩 야옹이를 세상 밖으로 풀어놔야 되겠다는 결심을 실행해 옮기기 시작하였습니다.
먼저는 산책냥이 정도의 수준으로 바깥 세상을 눈뜨게 하고 싶었습니다.
그래서 근처 동물병원들을 비롯 각종 대형마트를 기웃거리며 여기저기 뒤적거리다, 최종적으로 한 온라인 마켓에서 매우 저렴한 가슴줄 하나를 구매하였습니다.
가격 치고는 모양이나 성능 또한 괜찮아 보였습니다. 
무엇보다도, 이 녀석에겐 굳이 고가의, 소위 인간들의 기준에서 '좋다'라는 상품을 역부러 해 줄 필요가 없었습니다.
그것은 이 녀석과 몇 달 간 함께 지내며 절실히 체감한 경험에서 비롯된바, 아무리 돈이 궁해도 부모 마음으로 비싼 걸 해갖다 바치면, 이 자식은 그런 집사의 마음은 모로 두고 순전히 자기 마음대로 선별해버리기가 일쑤였기 때문입니다.
그러면서 이 녀석은 소비자본주의에 쩔어 있는 인간들이 하나의 공식처럼 여기는 법칙 -'비싼 것은 좋은 것이다'- 을 여지없이 뭉개버리는 것이었습니다. 
그러니 인간의 기준에서 비싼 거, 그래서 좋은 것을 굳이 이 녀석에게는 해줄 필요가 없었습니다.
비싼 게 좋은 것이고 싼 게 비지떡이라는 말이 결코 절대적인 법칙은 아니라는 사실, 그 정도만큼은 인지하고 있던 집사조차도, 이 녀석에겐 전혀 적절한 사실이 아닌 것처럼 보였기 때문입니다.
오히려 이 녀석에겐, 비싼 게 비지떡이고, 싼 게 좋은 것이라는 말이 결코 절대적인 법칙은 아니라는 사실, 그 정도만큼이 당연하고 적절해 보이는 것 같았습니다. 
그러니, 이 녀석을 위해 여태껏 무수한 금액대의 놀이도구들을 물어왔건만, 게 중에 가장 좋아하는 것은 다름 아닌, 다이소에서 산 천 원짜리 파랑 물고기 낚싯대였다는 사실이 이젠 별로 어색하게 느껴지지도 않습니다.
그리고, 이 녀석을 위해 여태껏 무수한 금액대의 먹이와 간식들을 물어왔건만, 게 중에 그나마 좋아하는 것은 다름 아닌, 퓨어비타 치킨 맛이라는, 그리 비싸지도 않은 사료였다는 사실이 이젠 별로 신기하게 느껴지지도 않는 것입니다.
물론, 야옹이의 이러한 선호가 집사의 궁핍한 사정을 감안한 선택일 수도 있다는 생각을, 집사는 결코 해 본 적 또한 없습니다.
개냥이를 포함한 모든 고양이는 -개냥이조차도 결국은 고양이일 수밖에 없다는 점을 파악했던 까닭에- 결코 그러한 동물이 아니라는 사실을, 집사는 이제 잘 알고 있는 것입니다.
순전히 지 꼴리는 대로 좋아한 게 이런 결과를 낳았음을, 집사는 명백하게 이해하고 있는 것입니다.
그러니 이번에도, 집사는 여러 오프라인을 돌며 하네스니 머니 명품? 가슴줄을 쥐어보다가도, 순전히 집사의 주머니 사정보다는 이 녀석의 변덕스러운 선호 경향 때문에 다시금 그것들을 내려놓곤 하길 수 번이나 반복하였던 것입니다.
그리고 결국엔 어떤 인터넷 사이트에서 달랑 이천 원 정도의 매우 저렴한 가슴줄 하나를 아무런 근심, 걱정 없이 구매하였던 것입니다.


그리고 그렇게 집으로 배달되어 온 가슴줄은 가격 대비 성능, 소위 가성비가 매우 뛰어났습니다.
색깔도 고양이 특유의 정열이 타오르는 듯한 빨강으로 무척이나 이뻐 보였습니다.
그러나 역시, 그럼에도 야옹이의 선택은 참으로 냉담하고 싸늘하였습니다.
대부분의 고양이 용품이 처하는 운명을 이 가슴줄 또한 겪게 될 거라는 생각은, 순전한 희망을 품으면서도 사실 마음 한 켠에서 암담하게 퍼져 나가고 있긴 하였습니다만, 그래도 이토록 빨리 그 가슴줄의 싸늘한 주검을 목격하게 될 줄은 미처 생각지 못했었습니다.
그도 그럴 것이, 단 한 번에 이 가슴줄은 패대기쳐졌던 것입니다. 
한 번 간신히 매어봤더니, 얼마나 별의별 난동을 다 일으키고 앙칼을 부리는지, 집사가 보기에도 참으로 민망하고 또 한편으론 밉살스러웠습니다.
그렇게 그 녀석의 산책냥이 전환은 처음부터 물 건너 간 것처럼 보였습니다.
야옹아, 너 진짜 밖으로 나가 볼 생각 없어?
집사는 시나브로 답답해지기 시작하였습니다.
너 진짜, 이 안에서만 주구장창 살 거야?
물어도, 열에 들떠 물어도, 야옹이는 역시나 딴짓거리입니다.
우리는 그렇게 오래, 그리고 멀리, 서로 돌고 돌며 알아왔지만, 진정 얼마나 알아왔으며, 진정 얼마나 이해하고 있는지, 지금 이 순간 확신할 수 없었습니다.
그렇게 우리는, 차라리 눈과 마음을 평행선으로 그려오고 있었는지도 모를 일이었습니다.   
야옹아, 우리 다른 방법을 생각해보자꾸나.
시름없이 앉아서 집사는 야옹이에게 우물거리기만 할 뿐이었습니다. 



출처 http://blog.naver.com/ha_eun_lov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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