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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름 분석... 한나라당2(제5 공화국의 정치,경제)
게시물ID : humorbest_178518짧은주소 복사하기
작성자 : jun2297
추천 : 32/6
조회수 : 777회
댓글수 : 4개
베스트 등록시간 : 2007/09/28 16:32:58
원본글 작성시간 : 2007/09/28 15:36:45
한나라당의 출발에 이어 다음 순서로 5공을 짚어보려 합니다.
http://todayhumor.paran.com/board/view_temp.php?table=sisa&no=33823&page=2&keyfield=&keyword=&sb=
이전 글에서 밝힌 바와 같이 반한나라당 성향이 강한 관점임을 다시한번 미리 말씀 드립니다.

지금의 한나라당을 짚어보고자 할때 5공과의 비교는 매우 중요하다고 생각합니다.
5공을 되짚어 보면 저는 한나라당의 경제, 정치 관념들이 그시절에 머물러 있음을 새삼 느끼게 됩니다.

정통성을 지니지 못한채 무력으로 정권을 움켜쥔 전두환 정권은 다각도로 민심을 우롱하기 시작합니다.
정치적으로는 당근과 채찍을 유효 적절하게 사용했고, 경제적으로는 정-경유착을 통한 성장위주의 정책을 펼쳤으며, 사회적으로는 3S 정책을 사용하여 국민의 관심을 돌리는 한편 언론 통폐합을 통해 국민의 눈과 귀를 가렸으며, 대북정책 또한 통일외교 이기 보다 정치불안을 해소하는 방법으로 사용했습니다.
거의 전세계를 돌다시피한 외교 정책은 땡전뉴스에 연일 화제거리를 안겨주며 국민의 눈을 돌리게 했죠.

먼저 정권 초창기 정치... 딱 한마디.. 민정당(민자당의 전신)은 5공의 시녀 이상도 이하도 아니었습니다. 81년 5월 7년 단임 대통령 간선제 개헌은 병원 입원환자까지도 동원되는 가운데 유례없는 95.5%의 투표율 속에 91.1%의 찬성으로 가결 되었고, 잠실에서 열린 통일주체 국민회의 간선을 통해 전두환은 민주주의 사상 유례를 찾기 힘든 전원찬성(무표1표)으로 11대 대통령이 됩니다. 
어떻게 그럴수 있을까요? 당연하겠죠. 국보위 입법회의를 통해 모든 정당을 해산시키고 정치풍토 쇄신법이라는 희한한 법으로 811명의 정치인을 정치 퇴출 시킨 후 입맛에 맞게 진행 되었으니까요. 이런 가운데 기틀을 잡은 당이 민정당입니다. 뭐 더이상 논할 필요성이.. ㅋ;; 11대 총선을 통해 민정당 151석 민한당 81석 국민당이 25석을 득표하여 정상적인 여대야소를 구축하는 듯한 외양을 꾸몄지만 5공 초창기의 야당은 여당이 말하면 뜻에 따르는 거수기에 불과할 뿐이었습니다. 정권 중,후반기 신한민주당이 등장하기까지 실질적인 야당은 없다 시피 했습니다.
민정당은 그냥 뭐..... 말마따나 툭하면 개각이었죠. 경제계 사건 터지면 몇명 쓸려 물러나고 개각.. 각종 데모가 심해지고 민심이 좀 떠나는듯 하면 또 개각. 소고기 수입문제 때문에 또 개각... 꼬리 자르기, 얼굴 바꾸기라고 하면 되겠습니다. 사건사고를 축소하는 방법이 당의 개각이었으며 정책이야 뭐... 대통령이 말한마디 하면 그게 바로 정책이었죠. 


경제... 5공 후반기에 경제는 눈부신(?) 성장을 했습니다. 정권초에는 극도의 불안과 이란-이라크 전쟁으로 인한 원유가 급등등으로 고전했지만 86-88년까지는 12%의 성장율을 자랑하기도 합니다. 외적으로는 3저현상이 지속되었고 내적으로는 정부가 극도의 성장위주의 정책을 사용했기 때문이죠. 5공 내내 물가안정에 집중하며 재벌위주의 성장정책을 펼칩니다. 당연히 정경유착은 극한 상황까지 진행 되었죠. 집권 초창기에 노조활동을 와해시켜버린(후에 민주화운동과 함께 부활) 정부는 임금동결 등을 통해 물가를 잡아갔고 법인세, 소득세 인하등 전형적인 기업인 위주의 정책으로 성장을 이끌었습니다. 물가 안정만이 경제가 살길이라는 논리였죠. 경제인들은 정경유착을 통한 한탕주의에 물들어 갔고 각종 거대한 비리가 년년 마다 터져나왔지만 정부와 언론은 이를 비호하기에 바쁠뿐 정화하는데는 관심이 없었습니다.
너무나 유명한 사건들이 많죠. 사체업계 대부 장영자 어음수취 사건... 명성그룹 사건...국제그룹이 정부에 개기다 공중분해 사건... 상류층의 부정을 보여주는 대도 조세형 사건... 연쇄적으로 터지는 대형 금융 사고들... 뭐 당시의 돈으로 수백억에 해당하는 경제 비리들이 난무했습니다. 장영자 사건 같은 경우는 문제가 너무 거대해서 국민이 알기전에 재경부 장관등 경제 관료들이 모여서 해결책을 먼저 의논하기 까지 했었죠. 매 사건마다 대통령과 영부인 이순자(년)의 측근들이 개입됐고, 그때마다 정부와 언론은 사건을 무마하기에만 급급했으며 더욱더 음지로 깊숙히 들어갔습니다.
이런 일방적인 정책과 정경유착이야 말로 IMF와 오늘날 양극화의 주범이라 할수 있습니다. 비정상적으로 성장한 재벌들의 존폐 여부에 나라의 경제가 좌지우지 되다보니 정비 할 방법이 없었고, 억눌려 왔던 노사관계가 일시에 대거 폭발하여 고용불안을 부추기는 결과를 낳을수 밖에 없었던 겁니다. IMF는 이런 과정을 통해 일어날수 밖에 없는 일이었다고 봅니다.

아유... 정치,경제만 쫌 언급했는데도 너무 길어 지겠군요. 사회,문화, 통일, 외교, 정권 후반기의 정치는 따로 봐야 할듯... 

80년대의 고속 경제성장을 그리워 하는 분들께 정말 묻고 싶습니다. 위와 같은 배경에도 불구하고 그당시가 그리우신가요? 그런식의 12%성장을 바라시나요?

저는 여전히 건재한 한나라당의 당시 인물들과 그런 유형의 정책들을 보며 그당시의 상황이 불쑥불쑥 떠오르곤 합니다. 참여정부의 실정을 논하는 것은 이해가 되지만 그당시가 그립다는 사람들을 보며... 조금 무섭기까지 합니다. 어떻게 그리 쉽게 잊을수 있는지... 그당시의 정치와 경제가 더 좋아보입니까? 정말 다시한번 숙고 해주시길 기대해 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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