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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의 교회는 무엇 때문에 그렇게 황폐합니까?
게시물ID : religion_17861짧은주소 복사하기
작성자 : 정과사
추천 : 0/5
조회수 : 336회
댓글수 : 2개
등록시간 : 2015/03/30 21:00: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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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교회가 황폐해지는 이 화제에 대해 언급하면 우리가 먼저 율법시대 후기에 성전이 무엇 때문에 황폐해질 수 있었는가 하는 이 문제를 연구 토론해 보는 것도 무방합니다. 만약 우리가 당초에 성전이 황폐해진 원인을 안다면, 현재의 교회가 무엇 때문에 이처럼 황폐해질 수 있는가 하는 답안을 자연히 알 수 있습니다.

 우리가 다 알다시피, 시초의 성전에는 여호와의 영광이 가득하였습니다. 예를 들면 여호와께서 솔로몬에게 “이는 내가 이미 이 전을 택하고 거룩하게 하여 내 이름으로 여기 영영히 있게 하였음이라 내 눈과 내 마음이 항상 여기 있으리라”고 말씀하신 것과 같습니다. 여호와의 영광이 항상 성전에 가득하였기에, 당시 여호와를 섬기던 사람들은 성전 안에서 매우 공손한 태도를 취하였고 누구도 감히 제멋대로 행동하지 못하였습니다. 제사장이 성전에 들어가면 반드시 먼저 여호와께서 분부하신 대로 자기를 정결케 하고 맨발로 성전에 들어가야 하였습니다. 만약 그들이 성전 밖에서 더럽게 되었다면, 여호와 하나님께서 규정하신 기한이 차기 전에는 누구도 감히 성전에 들어가지 못하였습니다. 그렇지 않으면, 불이 성전 꼭대기에서 내려 그들을 태워죽였습니다. 만일 누가 감히 여호와의 율법을 어기고 사사로이 성전에 들어간다면, 이 사람이 누군가를 막론하고 설사 이스라엘 사람의 왕일지라도 여호와께서 절대로 그를 용서하실 수 없었습니다. 예를 들면 성경 역대하 26장에 기록된 바와 같습니다. 이스라엘 사람의 왕 웃시야가 여호와의 율법을 멸시한 고로 제멋대로 성전에 들어가 분향하였는데, 제사장이 그를 가로막자 그는 듣기는커녕 제사장에게 노를 발하였습니다. 웃시야 왕이 노할 때에 이마에 문둥병이 생겨났는데, 그제야 성전에서 속히 나갔습니다. 그러나 그는 죽을 때까지도 문둥병이 낫지 않았습니다. 여기에서 우리가 볼 수 있는바, 성전 안에 여호와의 영광이 있을 때에는 하나님께서 사람이 성전 안에서 제멋대로 행동하는 것을 전혀 허용치 않으셨고 사람도 감히 제멋대로 행동하지 못하였습니다. 그러면, 후에는 성전이 무엇 때문에 뜻밖에 ‘강도의 굴혈’로 되었겠습니까? 사람들이 대담하게도 성전 안에서 돈을 바꾸고 소와 양과 비둘기를 매매하였는데, 이것은 어찌 된 일입니까? 아마 어떤 형제자매들은 “백성들이 율법을 지키지 못하고 제사장들이 우상을 숭배하고 다른 제사를 드렸기 때문에 여호와께서 성전을 떠나시게 되었고 성전이 차츰 ‘강도의 굴혈’로 되었지요.”라고 말할 것인데, 사실이 정말 이러합니까? 그렇다면 당초에 여호와의 영광이 성전에 가득할 때는 사람이 무엇 때문에 감히 그렇게 하지 못하였습니까? 웃시야도 비록 이스라엘 사람의 왕이어서 마음이 교만하였지만 여호와의 노기가 두려워 감히 성전 안에서 제멋대로 하지 못한 것이 아닙니까? 그러므로 아주 뚜렷한바, 백성들이 율법을 지키지 못하고 제사장들이 우상을 숭배하고 다른 제사를 드렸기 때문에 여호와 하나님께서 성전을 떠나신 것이 아니라, 여호와께서 성전을 떠나셨기 때문에 사람들이 감히 성전 안에서 제멋대로 한 것입니다. 혹시 어떤 사람이 “성전은 여호와께서 솔로몬더러 그분을 위하여 건축하라고 하신 거처가 아닌가요? 그분께서 어찌 주동적으로 떠나실 리가 있겠나요?”라고 말할 것입니다. 우리가 다 알다시피, 율법시대 후기에 사람은 갈수록 율법을 지키지 못하였고 갈수록 많은 사람들이 율법을 범한 탓에 돌에 맞아죽거나 하늘 불에 타죽는 위험에 직면하였습니다. 율법시대가 줄곧 지속해 나간다면, 사람은 모두 율법에 정죄받고 멸망되었을 것입니다. 그러나 이것은 결코 하나님의 심의(心意)가 아닙니다. 그러므로 하나님께서 그분 자신의 계획에 근거하여 당시의 사람의 필요에 따라 성전 밖에서 율법과 다른 한 단계 새로운 사역, 즉 십자가에 못 박혀 인류를 구속하는 사역을 하셨습니다. 알 수 있는바, 여호와 하나님께서 성전을 떠나신 것은 사람의 필요로 인한 것이고 역시 사역의 필요로 인한 것입니다. 하나님의 사역은 줄곧 앞으로 발전하는 것이기에, 그분은 줄곧 한 시대에만 머물러 계실 수 없습니다. 율법시대의 사역이 상응한 효과에 달한 후 하나님께서는 그분의 계획에 따라 다음 단계 사역을 하기 시작하셨는데, 낡은 사역을 끝마치셨고 낡은 사역 장소를 떠나 새 사역을 전개하셨으며 사람들을 하나님의 새 시대의 사역을 받아들이도록 인솔하고 인도하셔서 하나님의 시기 적절한 구원을 받을 수 있도록 하셨습니다. 그때의 사람들이 만일 하나님을 찾고 구하지 않고 하나님의 새로운 역사를 따라가지 못한다면, 성령의 역사가 없으므로 하나님의 공급을 받을 수 없었습니다. 차츰, 사람은 굶주리고 목마르고 소극적이고 연약해졌으며 엄중한 정도에 이르러 범죄해도 징계가 없었고 갈수록 타락되었습니다. 이리하여, 오아시스가 황량한 사막으로 되고 가나안이 기근이 들고 교회가 황폐한 곳으로 되는 국면이 나타났습니다. 바로 성경의 “주 여호와의 말씀이니라 보라 날이 이를지라 내가 기근을 땅에 보내리니 양식이 없어 주림이 아니며 물이 없어 갈함이 아니요 여호와의 말씀을 듣지 못한 기갈이라”(암 8:11)는 예언을 응하였습니다.

 이상에서 우리는 율법시대 후기에 성전이 황폐해진 관건적인 원인이 바로 여호와 하나님이 성전을 떠나 또 새 사역을 하셨기 때문에 성전이 황폐해진 것이라고 대략 언급하였습니다. 마찬가지로, 오늘의 교회가 황폐해진 원인도 역시 하나님께서 은혜시대의 교회를 떠나 또 따로 한 단계 새로운 사역을 하셨기 때문입니다. 하나님의 역사는 은혜시대에 머물러 있지 않고 또 앞으로 발전하였습니다. 다시 말하면, 교회가 황폐해진 관건적인 원인은 사람이 말하는 것처럼 사람이 연약하고 믿음이 없어서라든가, 사람이 세상을 너무 탐내서라든가 등등 일부 객관적인 원인이 아닙니다. 이것은 결코 주요한 원인이 아닙니다. 주요 원인은 하나님께서 이미 은혜시대의 교회에서 역사하시지 않아서입니다. 우리가 다 알다시피, 오직 하나님만이 생명의 양식이고 생수의 원천입니다. 하나님께서 어디에 계시면 어디에 곧 생명의 양식이 있기에 사람이 목마르고 굶주릴 정도는 아닙니다. 지금 교회가 공급을 받을 수 없고, 형제자매들이 굶주리고 목말라 하며, 동역자들이 분쟁하고 설교할 것이 없으며…… 이것이 성령 역사가 없는 표현이 아니란 말입니까? 만약 하나님께서 교회를 떠나시지 않았다면, 교회의 상황이 이럴 수 있겠습니까? 무엇 때문에 이전에는 교회가 그렇게 부흥하고 성령 역사가 그렇게 강하였습니까? 이전에는 사람의 믿음이 아주 크고 영적으로도 아주 굳세여 일이 아무리 바쁘고 일이 아무리 많아도 주님을 잊지 않았으며, 집회할 때마다 빛을 받을 수 있었으며, 어떠한 곤란도 마다치 않고 믿음의 마당에서 분전(奮戰)하였으며, 형제자매들의 생명은 우후죽순마냥 자라났으며…… 그때의 교회는 그렇게 흥성하였는데, 오늘날의 교회가 뜻밖에도 황폐한 곳으로 될 줄을 누가 생각이나 했겠습니까! 생각해 봅시다. 만일 교회에 성령 역사가 있다면, 교회가 어찌 황폐한 곳으로 될 수 있겠습니까?

 에베소서 1장 23절에 “교회는 그의 몸이니 만물 안에서 만물을 충만하게 하시는 이의 충만함이니라”고 하였는데, 그러면 하나님께서 무엇 때문에 교회가 황폐한 곳으로 되게 떠나셨습니까? 원인은 아주 간단합니다. 그것은 하나님께서 옛 시대를 끝마치고 새 사역을 하려 하셨기 때문입니다. 다시 말하면, 하나님께서 땅에서 또 말세 사람의 필요에 더 적합한 사역, 즉 작은 책을 펼치고 비밀을 풀어놓고 사람을 심판하고 정결케 하여 만교가 하나에 속하게 하는 등 사역을 하신 것입니다. 하나님의 사역은 정지(靜止)하는 것이 아니라 부단히 앞으로 발전하는 것입니다. 은혜시대의 구속 사역이 이루어지고 전 우주에 확장된 후 하나님께서는 그분의 계획에 따라 다음 단계의 사역, 즉 국도시대의 사역을 전개하셨습니다. 하나님께서 성전을 떠나셨을 때에는 성전에 혼란한 국면이 나타났습니다. 마찬가지로, 하나님께서 은혜시대의 사역을 끝마치고 국도시대의 사역을 시작하실 때에 은혜시대의 교회가 점점 황폐한 곳으로 되었는데, 오직 하나님 역사의 발걸음을 따르고 하나님의 말세 역사를 받아들인 사람만이 생명수의 공급을 받을 수 있고 성령의 역사를 얻을 수 있습니다.

 이상에서 우리는 교회가 황폐해진 원인을 교통하였는데, 아래에 또 전능하신 하나님의 말씀을 두 단락 봅시다. 이러면, 우리가 이 문제에 대하여 한층 더 똑똑히 깨달을 것입니다. 전능하신 하나님께서 말씀하셨습니다. 『사람이 모두 나의 영광을 볼 믿음이 없으니, 나도 사람에게 강요하지 않고 나의 영광을 사람들 가운데서 옮겨 다른 한 세계로 가져간다. 사람이 다시 뉘우칠 때에, 나는 ‘믿음’에 속하는 더 많은 사람들에게 영광을 나타낸다. 이것이 내가 역사하는 원칙이다. 영광이 가나안을 떠날 때도 있고 영광이 선민(選民)을 떠날 때도 있으며 더욱이 영광이 온 땅을 떠날 때도 있기에, 온 땅이 어두워져 빛이 없고 흑암이 뒤덮이고 가나안 땅도 해의 비춤이 없다. 사람은 모두 믿음을 잃지만 누구나 가나안 땅의 향기를 떠나기 아쉬워한다. 내가 새로운 하늘땅에 들어갈 때 비로소 다른 한 부분의 영광을 제일 먼저 가나안 땅에 나타내어, 칠흑 같이 어두운 온 땅이 한 가닥의 밝은 빛을 발하도록 하고, 온 땅으로 하여금 이 빛을 좇게 한다. 온 땅의 사람으로 하여금 빛의 위력을 힘입어 나의 영광이 더욱 증가되게 하고 다시 열방에 나타나게 하며, 모든 사람으로 하여금 내가 이미 인간 세상에 왔고 나의 이스라엘에서의 영광을 벌써 동방에 가져왔음을 발견하게 한다. 왜냐하면 나의 영광은 동방에서 발하는 것이고 은혜시대에서 가져와 오늘에 이른 것이기 때문이다. 하지만 나는 이스라엘을 떠났고 또 이스라엘에서 동방으로 옮겨왔다. 동방의 빛이 점점 밝아질 때에야 온 땅의 흑암이 광명으로 조금 바뀌게 되는데, 사람은 그제야 내가 이미 이스라엘에 있지 않고 동방에서 새롭게 떠올랐음을 발견하게 된다. 나는 이스라엘에 ‘강림’하였다가 이스라엘에서 떠난 후 여전히 이스라엘에 ‘강생’할 수는 없다. 왜냐하면 나의 사역은 전 우주를 이끌어 가는 것이고 또한 번개는 동방에서 발하여 서방까지 번쩍이는 것이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나는 동방에 강림하였고 가나안을 동방 백성에게 가져다주었다. 나는 온 땅의 백성을 모두 가나안 땅으로 이끌어 갈 것이다. 그러므로 나는 여전히 가나안 땅에서 음성을 발하고 말을 하여 전 우주를 통제한다. 이때, 온 땅은 광명이 없고 가나안을 제외하고는 사람이 모두 기아와 추위의 위협 속에 처해 있다.』 『하나님은 이 사실을 이루려 하는바, 전 우주 아래의 사람으로 하여금 모두 와서 하나님을 찾아뵙게 하고 땅에 있는 하나님을 경배하게 한다. 하나님이 다른 곳에서의 사역을 다 정지하였으니, 사람은 모두 어쩔 수 없이 참 도를 찾게 된다. 마치 요셉 때처럼 사람마다 먹을 것을 가지려고 그가 있는 곳에 가서 그를 경배하였는데, 그에게 먹을 식물이 있었기에 기아의 재난을 벗어나기 위하여 사람들이 모두 어쩔 수 없이 참 도를 찾고 구한 것과 같다. 온 종교계에 엄중한 기근이 나타났지만, 오직 오늘의 하나님만이 생수의 원천이고 사람에게 누리도록 하는 끊임없이 흐르는 원천이 있기에 사람은 모두 그에게 의탁할 것이다.』 (≪말씀이 육신에서 나타남≫에서 발췌)

 우리가 전능하신 하나님의 말씀에서 볼 수 있는바, 현재 하나님께서 이미 새로운 사역을 하셨으며 다른 곳에서의 하나님의 사역은 다 이미 정지되었지만 오직 전능하신 하나님만이 생명의 생수가 있어 우리의 갈급한 심령에 공급하실 수 있고 자양하실 수 있습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서슴없이 하나님 역사의 발걸음을 따라야 하고 하나님의 발자취를 따라야 합니다. 오직 하나님의 새로운 역사를 따라야만 우리가 하나님의 시기 적절한 공급을 받고서 굶주리고 황폐한 땅에서 나와 가나안 땅에 올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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