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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카가 하늘에 갔다
게시물ID : gomin_1786832짧은주소 복사하기
작성자 : 익명Z2hta
추천 : 26
조회수 : 1375회
댓글수 : 4개
등록시간 : 2021/02/06 22:49:02
미팅을 끝내고 홀가분한 마음으로 커피 한잔 하다가 들었다. 

태어나서부터 조카는 계속 많이 아팠고, 언니도 계속 마음이 아팠다.

임신중에도 순탄하지 않았고, 출산 후에도 순탄하지 않았다. 

 

당시 나는 싱글이었고, 원체 어려서부터 아이들을 좋아하지 않는 성격이었다. 

하지만 언니의 아이라는 존재는 지금껏 보지 못한 관계의 아이였고, 신기했고, 궁금했고, 보고 싶었다. 

많이 아팠던 조카는 내가 차마 안을 수가 없었다.

혹시라도 내가 안았다가 다칠까 봐, 뭐라도 했다가 실수할까봐. 

그렇게 눈으로만 보았다. 

자주 보지도 못했다. 

이야기만 많이 들었다. 

못본지도 오래되었다. 

 

언니는 현모양처가 꿈이었다. 

화목한 가정을 꾸려서 알콩달콩 사는 것이 바람이었다. 

그때는 결혼하기 어리지 않았지만 지금은 어려보이는 이십대 후반. 

그 꽃다운 나이에 우리 언니는 결혼을 했다. 

 

결혼식까지, 언니는 철없이 행복해 보였다. 

나는 멀리 있었기에 자주 보지 못했다. 하지만 매일 소식은 들었다. 

임신중독증으로 아픈 것도, 아기가 아주 빨리 나온 것도, 아주 작게 나온 것도. 

긴 입원 후에도 언니는 아기 치료를 위해 매일을 바쳤고, 

아기가 퇴원한 다음에도 병원과 홈티가 일상의 전부였다. 

아무리 자기 자식이라도 나는 그렇게 못하겠다 싶을정도로 부지런하게 

매일을 그렇게 아기를 위해 살았다. 

아이가 남들 하는것을 다 할수 있게 되길 바랄수는 없었고

다만 악화되지 않기 위해 매일 최선을 다해 노력했다. 

 

남들은 영어유치원이며 이것저것 하느라 돈이 많이 나간다고 한탄하지만 

언니는 병원비에 그렇게 많은 돈을 들이면서 아이가 나아지는 것을 기대할 수 조차 없었다.

그래도 하루하루 사랑으로 키웠다. 

몇년을 키워도 앉지도 못하고 엄마 한번 불러주지도 못하는 아이를 

온갖 사랑과 정성을 다해 키웠다. 


아이는 늘 작았고 늘 말랐다. 커갈수록 움직임도 달랐다. 

유모차에 태워 함께 외출한적이 있었다. 언니는 바깥 바람을 쐰다는 사실에 기분이 좋은지 살짝 웃었던 것 같다. 

외출하면 사람들은 늘 물어보곤 했다. 아이가 몇개월이냐고. 

처음 보는 사람 스쳐지나갈 사람에게 구구절절 설명할 수 없는 

엄마와 언니는 서로 당혹스럽지 않도록 웃으며 얼버무리곤 했다. 

악의 없이 물어보는 것은 알지만 나는 그런 사람들이 못내 원망스러웠다. 

아픈 아이를 겪어보지 않은 사람들에게는 당연한 질문이고, 

건강한 아이를 가진 사람들이라면 즐거운 질문일 것이다. 

하지만 괜히 마음이 힘든 우리는 제발. 제발 그냥 아무 말도 하지 않고 지나가 주기를 바랐다.

그냥 얼버무리면 대충 지나가주기를 바랐다. 계속 물어보지 않아주기를 바랐다.  

아이가 커갈수록 다른 아이들과 다름은 더욱 쉽게 눈치챌 수 있었고, 

그렇게 우리 언니는 집과 병원에만 있었다. 

 

내가 어떻게 언니의 마음을 다 이해할 수 있겠냐마는, 그렇게 왕래 없고 멀리 있었던 나도 

밖에 나가서 건강한 아이들 아기들을 보면 그냥 눈물이 나곤 했다. 

그냥 볼 수가 없었고, 보기 싫었고, 눈 앞에서 빨리 벗어나기를 바랐다. 

엘레베이터에서 아기가 빤히 바라보게 된다거나 해서, 아기 엄마가 '안녕하세요 해야지~' 하기라도 하면

'안녕~ ' '귀여워라~' 그런 말이 입에서 나오기가 힘들었다. 

언니의 아이보다 어리지만 몇살은 더 커보이는 아이가 옆에서 웃고 떠들면서 

못하는 행동이 없고 못하는 말이 없었다. 

그 때 들었던 마음이 아직도 생생하다.  

그런데 언니는 오죽했을까. 


언니와 나는 대화가 없은지 좀 되었다. 

꾸역꾸역 대화를 하는 것이 전혀 좋을 것이 없었다. 

이 또한 시간이 해결해 주리라 하며 지내고 있었다. 

그 사이 언니는 남편이 없어졌고, 이제 아이가 떠나갔다. 

나는 남편이 생겼고, 아이가 생겼다.

 

아이가 처음으로 뒤집던 날, 처음으로 걷던날, 아이가 하기 시작하는 말들

그 모든 순간들이 신기했다. 하지만 그 모든 순간 내 마음 속에는 조카가 있었다. 

아니, 보다 정확하게는 조카보다는 언니가 있었다. 

그래서 모든 행복해야 할 순간에, 행복감과 슬픔은 함께 다가온다.

이 기쁨을 느끼는 것이 죄스럽고, 미안함을 느끼는 감정이 사치스럽고,

가엾게 느끼는 것이 주제넘고, 마음 아픈 것이 호강에 겨워 요강에 똥싸는 것 같다. 

늘 감정이 혼란스럽다.

모르긴 몰라도 우리 부모님도 그럴거다.

우리 아이를 볼 때마다 언니 아이가 생각나시겠지. 

예쁘고 사랑스러우면서도 언니 아이 생각에 그런 마음을 가지는게 미안하시겠지. 

나도 그러니 우리 언니 부모님 마음은 어떻겠어. 


꾸역꾸역 하지만 포기하지 않고 꾸준히 그 무게를 버텨내는 언니를 보며 대단하다고 생각은 했지만 

당사자가 아닌 나는 사실 나는 알수가 없었다 

당사자가 아닌데 감히 아는체 하고싶지 않아 아무말도 하지 않았다

흔한 위로의 말도 할수가 없었다. 괜찮다고 위로하고 싶지 않았다. 어떻게 괜찮을 수가 있겠어 

많이 힘들지 이야기하는것도 버거웠다. 당연히 힘든데 괜히 위로한답시고 티내려 한마디 하는것 같아서

그래서 아무말도 하지 못했다. 그것이 과연 옳은 선택이었는지는 지금도 모르겠다. 

너무 거대한 산을 마주했기에 다른 사람의 고민은 사치가 되어버린 우리 언니에게

다른 사람들은 사소한 일들로 고민하는 부질없는 존재들이었다. 

자식은 그런 존재였다. 


이야기는 매일같이 했지만. 정말 몇번 본적이 없다. 

그렇기에 내 기억속의 조카는 늘 내가 예전에 봤던 그 몇가지 모습 뿐이다. 

그런데도 얼굴이 생생하고 표정이 생생하다. 

그런데 이제 없다니. 언니 마음이 어떨지 상상이라도 된다고 말할수가 없다. 

뭐라고 말해야 할지도 모르겠다. 

말하지 않는 것이 나은지도 모르겠다 생각하다가도 정말 그렇게 내가 할수 있는 것이 없지는 않을것도 같다.

하지만 그게 다 주제넘은 일도 같다. 


멍하니 소파에 누워 창밖 하늘을 보는데 조카의 웃는 얼굴이 떠올랐다. 

말 그대로 하늘에 그림을 그리듯이 생생히 떠올랐다. 

너무 많이 아팠던 우리 조카. 

그 조카를 먼저 보낸 우리 언니. 

그런 언니를 바라보는 우리 엄마. 아빠. 

 

아무 것도 모르겠지만 

이렇게라도 생각이라도 정리해 보고 싶어서. 

적다가 생각난 건데... 

 

아이가 아픈 엄마에게. 꼭 그런게 아니어도 마음이 많이 아픈 사람에게. 

괜찮아 많이들 겪는 일이야. 너만 힘든거 아니야. 이겨낼 수 있는 시련이니까 오는거야.

그런 말은 하지 말아 주세요. 

그냥.... 귀찮더라도, 시간이 좀 걸리더라도 그렇구나 하면서 

네가 많이 힘들었구나. 그랬구나. 그랬구나... 그랬구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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