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5년 12월 2일 (금) 14:22 한겨레
아베의 일본’에 대비하라
[한겨레] 포커스
‘고이즈미 이후’의 일본을 읽는 열쇳말은 ‘아베 열풍’이다. 10월31일 관방장관 취임을 기점으로 아베 신조(51)는 국민들 사이에 ‘차기 총리 0순위’라는 인식을 확고하게 굳혔다. 개각 뒤 나온 각종 여론조사는 아베의 압도적 우위를 보여준다. 유력 후보들로 한정한 조사에서 그의 지지율은 50%를 넘었다. 다른 후보들의 지지율이 한자릿수에 그친 것과는 비교가 되지 않는다. 야당인 민주당 지지자들에서도 민주당 인사보다 아베의 인기가 훨씬 높았다.
일본인들이 아베에 열광하는 이유는 뭘까? 그를 지지·반대하는 쪽에서 공통적으로 꼽는 몇가지 요소가 있다. 젊음, 화려한 가문, 찬반이 분명한 태도, 미디어 시대에 걸맞는 외모와 말투 등이다. 그동안 일본 정계에서 ‘황태자’로 불린 사람이 여럿 있었지만 그만큼 ‘완벽한’ 조건을 갖춘 이도 드물다. 장기불황으로 주눅이 든 일본인들 사이에선 단호해 보이는 그에게 ‘강한 일본’ ‘다시 떠오르는 일본’을 기대하는 목소리가 높다.
일찌감치 아베를 총리감으로 여겨 ‘아베 대망론’의 전도사를 자임한 자민당의 야마모토 이치타 참의원 의원은 아베의 장점을 세가지로 요약했다. 북한에 대한 의연한 자세와 알기 쉽게 설명하는 대국민 커뮤니케이션 능력, 부패한 정치인과는 다른 깨끗한 이미지를 들었다.
반면, 정치 논평을 활발하게 하는 가네코 마사루 게이오대 교수(경제학)는 아베가 고이즈미에 버금갈 정도로 이미지 정치에 뛰어나다는 점을 지적했다. 그는 “국민들이 고이즈미의 ‘개혁 쇼’에 취해 지난 총선에서 자민당에 표를 몰아준 것이나 아베에 쏠리는 현상이나 큰 차이가 없다”며 “사회 전체가 이성적 판단을 하지 못한 채 정신없이 돌아가 정말 위험하다는 생각이 든다”고 말했다.
일본 국민들에게 열광 못지 않게 우려를 사는 대목이 바로 아베의 극단적 정치 성향이다. 역사인식 뒤집기부터 헌법개정, 대북 강경론에 이르기까지 그는 전방위로 활약 중이다. 대부분의 정치 평론가들은 그의 극우성향의 뿌리를 출신 배경에서 찾는다. 에이급 전범인 외조부 기시 노부스케 전 총리로부터 ‘극우 유전자’를 고스란히 물려받았다는 분석이다. 아베는 기시에 대해 “나에겐 위대한 존재”라며 깊은 영향을 받았음을 숨기지 않는다. 아베의 어머니는 아베가 “정책은 외조부, 성격은 (고집센) 부친을 닮았다”고 말했다. ‘쇼와(히로히토 일왕)의 요괴’라는 별명을 지닌 기시는 도조 히데키 내각에서 상공대신으로 입각해 침략전쟁 수행에 앞장섰던 인물이다.
대 이어 물려받은 극우 유전자
아베는 세이케이대 정치학과 재학 때부터 헌법개정을 외쳐왔다. 기시의 숙원이 반영된 것이다. 기시는 53년 개헌을 조건으로 자유당(자민당의 전신)에 입당해 헌법조사회 회장을 맡았고, 총리가 돼서는 내각에 헌법조사회를 설치했다. 심지어 미-일 안보조약 개정 파동으로 물러난 이후에도 후임 총리에게 보고서를 낼 만큼 개헌에 대한 집착이 남달랐다. 외조부의 꿈이 50년 가까운 세월을 건너뛰어 손자인 아베에 의해 실현될 가능성이 높아진 셈이다. 아베는 또 관방 부장관 시절 와세다대 강연에서 핵무기 보유 가능성을 언급해 물의를 빚었다. 이것 역시 기시 발언의 복사판이었다. 기시는 총리 겸 외상이던 57년 외무성 기자클럽에서 “현행 헌법에서 자위를 위한 핵무기 보유는 허용된다”고 말해 원폭을 당한 일본 사회에 큰 충격을 던졌다.
아베를 스타 정치인으로 만들어준 것은 북한의 일본인 납치다. 그는 아버지 아베 신타로 전 외상의 비서 시절부터 이 문제에 관여하기 시작했다. 고베 철강 직원으로 근무하다 외상 비서로 정계에 입문한 그는 자민당 온건파 의원들로부터 외면받던 납치 피해자 가족들을 따뜻하게 맞이해 신뢰를 쌓았다. 97년 요코타 메구미 납치 의혹이 본격적으로 불거진 뒤 납치 피해자 지원을 위한 의원연맹을 결성했다.
“야스쿠니 참배는 총리의 책무”
익히 알려진 대로 2002년 9월 북-일 정상회담은 그가 총리 후보로 급부상하는 결정적 계기가 됐다. 김정일 북한 국방위원장이 일본인 납치를 인정하자, 고이즈미에게 사과를 받기 전에는 공동선언에 서명해서는 안된다고 강력히 주장했다. 이런 ‘활약상’이 보도된 뒤 그의 인기는 상종가를 쳤다. 특히 그는 평양에서 돌아온 다음날 직접 피해자 가족들을 찾아가는 정성을 보여 그들을 감격케 했다. 언론 여론조사에서 그가 총리 물망에 오른 것도 이 때부터다. 북-일 관계가 경색되면서 그는 입버릇처럼 대북제재를 외치고 있다. 자민당 납치대책본부를 이끌면서 대북제재 법안을 차례로 마련했다. 미국 신보수(네오콘) 세력과 마찬가지로 제재를 통해 북한의 체제붕괴를 유도해야 한다는 주장까지 펴왔다.
역사인식 면에선 ‘고집불통’인 고이즈미보다 한술 더 뜬다. 고이즈미가 야스쿠니 신사 참배를 고집해 주변국과의 마찰이 악화일로에 있지만, 아베는 “참배는 총리의 책무이며 차기 총리도 참배해야 한다”고 공언해왔다. 그도 해마다 빠짐없이 참배해오고 있다. 극우성향 신문의 기고를 통해, 국회에서 에이(A)급 전범은 전쟁범죄인이 아니라는 주장을 편 노다 요시히코 민주당 국회대책위원장을 대단히 용기있는 인물로 추켜세우기도 했다.
그는 또한 역사 교과서 왜곡의 핵심인물이다. 97년 교과서에서 강제연행과 일본군 위안부에 관한 기술을 삭제하는 것을 목표로 내건 ‘일본의 전도와 역사교육을 생각하는 젊은 의원 모임’의 출범 당시 사무국장을 맡았다. “종군위안부는 언론이 만들어낸 허구”라는 게 그의 지론이다. 올해 자민당 간사장 대리로 있으면서 ‘새로운 역사교과서를 만드는 모임’이 펴낸 후소사판 교과서의 채택을 조직적으로 지원했다.
아베가 관방장관실에서 불과 40m밖에 떨어져 있지 않은 총리실로 가는 길목에는 2개의 관문이 놓여 있다. 총선 압승을 통해 1인 지배 체제를 구축한 고이즈미의 ‘낙점’이 첫번째 과제다. 고이즈미는 물러나는 순간까지 권력누수를 최대한 막기 위해 후보간 공개 경쟁을 부추기고 있다. 그렇지만 아베에 대한 각별한 애정을 드러낸 사례는 적지 않다.
고이즈미의 ‘제왕학’ 강의 받아
지난달 11일 총리 집무실에서 세계무역기구 통상교섭에 관한 각료협의가 열렸다. 아베도 자리를 함께 했다. 이런 회의에 관방장관이 참석한 것은 이례적이다. 4차 고이즈미 내각이 구성된 10월31일 오후 3시, 고이즈미는 아베를 집무실 불렀다. 입각 예정자들에게 전화를 걸어 임명사실을 알리는 조각 모습을 보여주었다. “고이즈미가 아베에게 ‘제왕학’을 가르쳐주는 것 같다”는 얘기들이 총리실 주변에서 흘러나왔다.
최종 관문은 고이즈미가 물러나는 내년 9월의 자민당 총재 선거다. 공룡여당 총재는 자동적으로 총리가 된다. 총재는 300표인 당원투표와 한표씩 행사하는 의원투표를 합산해 뽑는다. 아베 측근들은 그의 당선을 기정사실로 여기고 있다. 2001년 고이즈미 총재 선출 이후 대중적 인기가 뒷받침되지 않고서는 당선이 불가능하다고 이들은 말한다. 파벌간 조정의 시대는 끝났고, 그 흐름은 되돌릴 수 없다는 것이다.
물론 아베의 인기에 ‘거품론’을 제기하는 사람들도 있다. 아베의 인기는 단호한 언동과 핵심요직 ‘깜짝 발탁’에서 비롯했을 뿐, 내세울 만한 정치적 업적은 없다는 주장이다. 과대포장된 실력이 들통나면 언제든지 주저앉을 수 있다는 얘기다. 그가 강경 성향에 비해 심지는 굳지 않다는 지적도 있다. 아베를 가까이서 지켜본 모리 요시로 전 총리는 “체구는 크지만 대는 약하다”고 꼬집었고, 민주당 실력자 오자와 이치로는 “안과 밖의 격차가 심하다”고 평했다. 이와 함께 국민부담을 늘릴 소비세 인상과 참의원 선거가 2007년 예정돼 있어 아베가 단명 총리에 그칠 것이라거나, 고이즈미의 영향력 저하를 틈타 자민당 유력 인사들이 후쿠다 야스오 전 관방장관을 총재로 옹립하는 쿠데타를 일으킬 것이라는 등 다양한 시나리오도 나온다.
총재 선거를 10개월 남짓 앞둔 지금 아베는 마지막 시험대에 올라 있다. 세·재정개혁을 맡은 경제각료나 외상에 비해 관방장관은 ‘결정적 실수’의 확률이 낮은 안전한 자리다. 그럼에도 그는 대북관계를 비롯해 대부분의 현안에서 입조심을 하고 있다. ‘아베 색깔’을 누그러뜨린 이런 행보가 점수를 깎아먹는 자충수가 될 수도 있다.
그러나 아베의 낙마 가능성은 희박해 보인다. 그의 아버지는 총리를 ‘예약해둔’ 상태에서 췌장암으로 쓰러졌지만 그는 이제 50대에 들어섰다. 설령 차기에 실패하더라도 아베 총리의 시대가 잠시 늦춰질 뿐, 그것을 피해갈 수는 없을 것이라는 관측이 지배적이다. ‘아베의 일본’을 대비하지 않으면 안된다는 뜻이다.
도쿄/박중언 특파원
[email protected] << 온라인미디어의 새로운 시작. 인터넷한겨레가 바꿔갑니다. >>
ⓒ 한겨레(http://www.hani.co.kr),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
2005년 11월 10일 (목) 11:26 민중의소리
[10일 국제뉴스]
(단신) 아베 신조 보는 미국… 눈길 뜨겁네
일본의 차기 총리 1순위로 꼽히는 아베 신조 관방장관에 대한 미국의 '작업'이 심상치 않아. 지난 8일 총리 관저에서 점심을 함께 한 아베 장관과 토머스 쉬퍼 주일 미국대사는 앞으로 한달에 한번 만남을 정례화하기로.
미국 쪽은 지난 5월 아베 장관이 미국을 방문했을 때에도 딕 체니 부통령과의 면담을 마련하는 등 매우 융숭하게 맞이해 또 눈길.
미 행정부의 ‘특별대접’은 아베 장관에 대한 기대감을 노골적으로 드러낸 것. 아베는 대표적 친미 인사로 네오콘들과 코드가 잘 맞는다는 점에서 미 행정부의 ‘호감도 1위’ 인물이라고.
[출처: 미디어다음/한겨례/민중의소리]
http://news.media.daum.net/snews/culture/art/200512/02/hani/v10975805.html http://news.media.daum.net/snews/foreign/others/200511/10/vop/v10748717.html