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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냥 길고 긴 넋두리 입니다.
전 30대 중반의 결혼한 여자에요.
나이차이 나는 남동생이 하나 있고 부모님 두분 다 계십니다.
아버지는 거진 8년전 부터 바람을 피우고 계세요.
제가 알게 된건 5년 정도 된듯 합니다.
정말 방랑벽이 너무도 심했던 사람이라 엄마의 신혼초부터 일주일에 몇번 들어올까 말까.
저를 낳던 날에도 친구들이랑 술을 마시러 나갔다더군요. 폭력도 꽤나 오래 있었구요.
그래도 바람은 없었는데 어느날 부터인가 아예 안들어오기 시작하더니
아예 딴 살림을 차렸습니다.
하지만 엄마는 아직 모르세요. 모른척 하고 계신거겠죠.
저에게도 가끔 네 아빠 딴 여자 생긴거 아니냐 물어보시지만 그뿐 입니다.
그런데 웃기게, 안들어와도 생활비는 따박따박 보내더군요.
하는 사업이 안될때도 생활비는 매달 입금되었고 잘되고 나니 좀더 올려서 주었구요.
물질적으로는 크게 문제 없이, 필요할때는 늘 도움을 받았습니다.
처음 바람 사실을 몰랐을때는 그냥 그런가보다 했는데, 사실을 알게 되고 나서는
엄마한테 이혼하는게 어떻겠냐 여러번 설득해 봤어요. 바람 사실은 차마 얘기하지 못했고,
저렇게나 방랑벽 심한 사람 그냥 놔주고 우리끼리 살자고만 했었죠.
그 말에 대답은, 엄마는 아직도 아빠를 사랑한데요.
아직도 얼굴보면 떨리고 설레고 한답니다. 그래서 이혼할 수 없다네요.
그리고 엄마 몸이 안좋아 일도 그만 둔 상황에 생활비 걱정이 없었다 할 수도 없겠죠.
아버지도 엄마를 놓아주라는 제 말에도 이혼은 절대 안한다는 입장이었습니다.
그렇게 8년이 넘는 기간동안, 아버지는 돈만 보내고 일년에 두어번 얼굴 보는게 다였고,
엄마는 오십견이 심하게 오며 일상생활이 힘들어 졌고 그때 갱년기가 와 우울증도 겹쳤었습니다.
2년정도 정말 힘들었어요. 엄마도 저도.
동생은 자기밖에 모르는 이기주의고, 엄마를 케어할 수 있는게 저밖에 없었으니까요.
거기다 거동 힘드시고 살짝 치매까지 오신 외할머니를 떠넘긴 외삼촌들 덕에 우리 모녀는 참 힘들었습니다.
그러다가 2년 전부터 엄마가 이상해 졌어요.
그때 엄마 나이 50대 후반이었는데, 검사해보니 치매가 왔더라구요.
너무나 많은 일이 있었지만.. 말로 표현 못할 상황이 너무 많았어서.
아버지에게 몇번 말했지만 시큰둥 하더군요. 네가 더 잘챙겨라 하는 말뿐.
이게 무슨 상황인지 어떤 병인지 어떻게 진행되는건지 모르니 그냥 낙관적이더라구요.
저는 미쳐버릴 것 같은데 말이죠.
그러다 작년 가을쯤 엄마가 환시 환청, 폭력성까지 심각해졌고, 아버지도 그 상황을 봤습니다.
그제야 상황의 심각성을 알고 한사코 반대하던 정신병원 입원 동의서를 작성해 주었습니다.
아버지가 많이 후회하고 힘들어 했습니다. 전 아버지의 그 모든 말들이 그냥 덤덤하기만 했습니다.
그때는 원망도 분노도 증오도 별거 아니었어요. 하루하루 버티기도 힘들어서.
그리고 앞으로 계속해서 엄마에게 돈 들어갈 일이 수백가지인데 전 감당이 안되는 상황이었죠.
아버지의 돈이 필요했어요. 그래서 그냥 다 수긍하기로 했습니다.
엄마는 대학병원에서 루이소체 치매와 조울증 진단을 받고, 한달 반만에 퇴원을 했습니다.
10키로는 빠진듯한 앙상한 몸에 유아퇴행을 한 듯한 모습에 눈물도 안나왔습니다.
그보다는 무서웠어요. 그동안 너무 시달리고 힘들었는데 앞으로는 어찌해야 하나 싶어서요.
누구는 열과 성의를 다해 치매 부모님을 돌보고 희생하던데, 전 나쁜 딸년인가 봅니다.
너무나 지치고 힘들고 피로했어요. 앞으로의 삶이 기대되는게 아닌 절망적으로 끔찍했습니다.
아버지가 살고 있는 한적한 곳 근처에 엄마 집을 얻어주고, 고모가 엄마를 케어하게 되었습니다.
알고보니, 친할머니와 고모가 아버지가 내연녀와 살고 있는 집 근처로 집을 지어 이사오셨더군요.
내연녀가 친할머니에게 잘한다는 얘기가 들려오는거 보니, 할머니는 며느리가 둘이었네요.
고모가 일을 그만두신 상황이라 아버지께 월급 받으며 평일에 엄마를 24시간 케어 해주기로 하셨고,
평일에 일해야 하는 저는 주말마다 엄마 집으로 가서 고모대신 케어를 합니다.
친할머니와 아버지의 집 근처에는 내연녀의 언니도 이사를 왔다고 합니다.
가끔 고모가 엄마를 할머니댁에 모시고 가는데, 그 아주머니가 엄마를 살갑게 대해준다고 하네요.
낯을 많이 가리는 엄마가 그 아주머니가 좋은지 같이 잘 웃고 얘기하고 한다고 합니다.
이게 무슨 막장 아침 드라마인지 모르겠어요.
그런데 이렇게 살아가고 있습니다.
이렇게 지낸지 이제 벌써 1년이 되어 가고 있습니다.
엄마의 감정기복은 정말 많이 좋아지셨지만, 이제는 판킨슨 병이 왔습니다.
손 떨림, 굳어있는 표정, 휘청거리는 몸.
저는 요즘 엄마의 얼굴을 똑바로 볼 수가 없습니다. 눈을 마주칠 수가 없어요.
죽은 듯한 눈빛과 찡그린 표정에 저 또한 죽을 것 같아 오래 바라볼 수가 없습니다.
엄마가 돌아가시게 된다면, 나는 죄책감에 제대로 살아갈수 있을까요.
엄마가 오래도록 사신다면, 나는 얼마나 삶을 버틸 수 있을까요.
나쁜 년이라는 죄책감에 하루하루가 지옥입니다. 미래가 없이 목숨줄이 콱 막힌 기분입니다.
누구에게 말할 수도 없는 난잡하고 당황스러운 상황들에 말할 곳이 필요했어요.
그냥.. 살아가고 있는 넋두리 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