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해 거래액이 25조원을 넘어설 정도로 인터넷쇼핑 시장은 활황을 맞고 있다. 그러나 정작 인터넷쇼핑업체들은 치열한 경쟁 탓에 큰 재미를 못 보고 있는 상황이다. 이런 무한경쟁 하에서 '조르기'라는 새로운 인터넷쇼핑방식을 무기 삼아 차별화를 시도하는 업체들이 속속 등장해 눈길을 끈다. 조르기란 본인이 온라인상에서 상품을 고른 후 직접 결제하는 일반 인터넷쇼핑과 달리 상품을 고른 뒤 친구나 연인에게 결제를 해달라고 '조르는' 방식이다. 이 방식에 따르면 소비자는 자신이 원하는 정확한 사이즈와 색상, 디자인에 부합하는 상품을 직접 고른 다음 상대방에게는 결제만 요청하게 된다. 이 때문에 조르기는 속옷처럼 개인의 체격과 취향에 따라 소비자 효용이 크게 좌우되는 상품을 취급할 때 가공할 위력을 발휘한다. 이 방식을 가장 먼저 도입한 업체는 일본의 인터넷 속옷 쇼핑몰인 '트라이엄프 재팬'이다. 트라이엄프 재팬은 과감하게도 속옷을 직접 착용하는 여성 대신 남성을 최종 구매층으로 지목했다. 기대대로 남성들은 결제 단계에서 망설이기 일쑤인 여성들과 달리 과감하게 대금을 결제했다. 과감한 시도 결과 트라이엄프 재팬은 일본 속옷시장을 강타했다. 해당 사이트는 구매전환율 80%를 기록하며 일본 인터넷쇼핑 시장의 새 지평을 열었다. 구매전환율 80%란 10명이 접속해 8명이 물건을 구입했음을 의미한다. 이같은 일본시장의 뜨거운 반응에 고무된 한국 인터넷쇼핑업체들도 속속 조르기를 도입했다. 소셜커머스 모음 사이트인 '오빠사줘'와 해외 속옷 브랜드 빅토리아시크릿의 상품을 판매하는 '사조라'가 대표적인 예다. 이 가운데 지난달 문을 연 사조라가 가장 트라이엄프 재팬에 유사한 조르기 방식을 구현했다는 평을 받고 있다. 사조라를 운영하는 허승철 에스제이상사 대표는 "오빠사줘 접속자는 단순히 상대방에게 무엇을 사고 싶다는 메시지를 보내는 데 그친다"며 "반면 사조라는 쇼핑하고 배송지까지 결정한 뒤 남자에게는 결제만 시키는 전형적인 조르기"라고 설명했다. 허 대표는 머지않아 조르기 방식이 인터넷홈쇼핑의 대세가 될 것이란 전망도 내놨다. 그는 "인지도가 더 높아지면 속옷 이외에 어린이용 장난감 등 여러 물품을 조르기 방식으로 판매할 방침"이라며 "앞으로 6개월이 될 지 1년이 될지 모르지만 주요 웹호스팅업체들이나 인터넷쇼핑몰이 일제히 우리 방식을 따라할 것"이라고 말했다. 그러나 허 대표의 말처럼 긍정적인 면만 있는 것은 아니다. 물건 구입에 혈안이 된 여성이 남자친구 여러 명을 동시에 사귄 다음 이들에게 동시다발적으로 수많은 상품에 대한 결제를 요구하는 일이 있을 수도 있고, 보이스피싱 조직이 여자친구인 척 스팸문자를 보내 결제를 시키는 일도 발생할 가능성도 있다. 전문가들은 기대와 우려를 동시에 드러냈다. 익명을 요구한 한 이비즈니스학과 교수는 "조르기를 통해 구매전환율이 높아질 경우 전자상거래를 더욱 촉진시킬 수 있는 매개체로서 역할을 할 것"이라며 "또 선물을 하는 사람과 선물을 받는 사람의 고민을 동시에 해결해 줄 수 있다"고 긍정적으로 평가했다. 그러나 이 교수는 과소비와 개인정보 보호 문제를 제기했다. 그는 "조르기 기능이 명품 속옷 브랜드 판매에 가장 먼저 적용된 것에서 확인할 수 있듯이 앞으로 여성들을 표적으로 하는 명품 위주 쇼핑몰이 조르기를 표방하며 지속적으로 등장할 수 있다"며 "이 경우 무분별한 과소비를 조장할 가능성이 있다"고 지적했다. 또 "조르기 기능을 활용하는 인터넷쇼핑몰은 결제를 하는 고객의 정보뿐만 아니라 조르기를 하는 상대방의 정보까지도 추가적으로 확보하게 된다"며 "조르기와 관련해 수집된 개인정보를 어떻게 관리할 것인지 명확히 하는 등 정보보안대책도 수립해야할 것"이라고 조언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