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살인자가 될뻔한 이야기, 그리고 플래시백
게시물ID : gomin_1791777짧은주소 복사하기
작성자 : 익명a2tnZ
추천 : 1
조회수 : 703회
댓글수 : 8개
등록시간 : 2021/10/26 17:54:57

어느 시골의 생수공장에서 일을 했던 시절이 있습니다.

일 자체도 정말 힘들었습니다. 낮에는 품질 관리 및 출장, 밤에는 생산라인을 돕는 식이었습니다.

 

죽으면 편하게 잘 수 있다면서, 한 1년쯤은 아예 안 자도 문제 없다는 발언을, 회의시간에 당당하게 언급하는 사장이 경영하는 회사였습니다.

 

그러던 어느날 사단이 터졌습니다.

일하는 아주머니 한 분이 기계에 끼어서 사망하는 사고가 터졌거든요.

 

그 사고가 일어날 당시, 뭔가 불길한 예감에 고개를 돌리는 순간 비명소리가 들리길래 거의 본능적으로 전력질주했습니다.

아주머니가 기계에 끼어있는 상황이었고, 그걸 빼내겠다고 실린더 압력을 뺀다고 난리를 치고 있었죠.

 

꺼내서 바닥에 눕히고나서도, 다들 그냥 어쩌나 어쩌나 어떻게 하나 이럴 뿐이지 누구 하나 119 조차 안 부르더군요.

그때 뛰어든게 지금으로서는 가끔 후회되긴 하지만, 정말 글자 그대로 '생각하기 이전에 몸부터 뛰어들고 있었다' 그 자체였습니다.

 

사실 맥박이고 뭐고 의미가 없었습니다. 손을 댄 순간 이미 싸늘하게 식어간다는 감각이 머리를 때려댔으니까요.

그 상황에서도 포기는 머릿속에 떠오르지도 않더군요.

한손으로 CPR 시작하면서, 더듬더듬해가며 119에 전화를 걸고 출동해달라고 요청했지요.

 

그 당시 정말 다행이다 싶은 건, 아주머니의 남편 분이 호흡 밀어넣기를 대신 해주셨다는 겁니다.

죽음을 직접 목격하신 셈이니 그 분에게는 최악의 비극이기에, 지금도 그 분에게는 그저 죄송한 마음 밖에는 없습니다.

하지만 제 입장에서는 지금 생각해보아도 혼자서 죄다 하고 있었다면, 제가 탈진으로 죽었을지도 모르겠다 싶거든요.

시골 공장이다보니, 119가 도착하는데도 시간이 꽤 걸렸습니다.

그 당시 상황이 모두 끝나고 나서 폰을 보면서 멍때리다가 확인한 바로는, 대략 20~30분 정도는 혼자서 흉부 압박을 했던 것 같더라구요.

 

119가 도착하고, 발견시간, CPR 계속 해왔고 맥박이 안 잡히는 상태라는 등등의 정보를 인계해주고 보냈습니다.

 

저것만으로 이미 충분히 비극이었습니다.

내 손 안에서 사람이 죽어가고 있다는 것 그 자체로도 한동안 악몽을 꿨거든요.

 

- 니가 좀 더 빨리 와줬으면 안 죽었어. 니가 날 죽인 거야. -

 

이런 식으로 꿈에 나타난다거나, 멀쩡하게 일하다가도 아주머니가 끼었던 기계를 보는 순간 그 당시의 광경이 확 되살아나는 식이었습니다.

영화 같은데서 보면, 피칠갑을 하고 나타난다 그러죠. 정말 그게 현실에서도 그렇게 되더라구요.

 

하지만 쉴 수는 없었습니다. 아니 사장부터가 그럴 사람이 아니었습니다.

오히려 진짜 비극은 저기서부터 시작이었거든요.

 

아주머니가 결국 돌아가시고, 산업재해 조사가 시작되는 시점부터, 사장은 제 과실 때문에 죽은 거라고 몰아가기 시작했습니다.

기계에 목이 끼는, 협착 사고로 인해 목이 이미 부러진 것이 밝혀진 상황에서도, 제가 흉부 압박을 하다가 심장을 찌부러뜨리기라도 한 거라는 식으로 회의 시간에 떠들어댔거든요.

그리고 악에 받혀서는 '여기에 살인자가 있다! 사람 죽여놓고도 책임 안 지는 무책임한 살인자가 있다!!!' 라고 소리지르는 식이었죠.

 

그 회사를 그만둘 때까지도 걸핏하면 저렇게 떠들어댔는데, 저것 뿐만이 아니었습니다.

 

지칭하기는 좀 그런 편이니, '간부'로 통칭하자면.

직속 상사부터 간부 두세명이 몇 개월간에 걸쳐서 잊을만 하면 압박해댔습니다.

잠깐 밥먹는 시간, 커피마시는 시간, 심지어 일하는 도중에도 옆에 와서는 '남자답게 과실 인정해라. 사장님이 너 버리겠냐.' 라는 식으로 살인을 인정하라고 압박해댔거든요.

 

그 당시에도 악몽을 꾸고, 잠을 설치는 와중이었습니다만. 아무리 그래도 그걸 수긍할 수는 없었습니다.

하지만, 저걸 몇달간이나 겪다보니까 진짜로 무심코 저지를 뻔 했던게...

 

우연히 경찰서 앞을 지나던 와중에, 순간이나마 '그래 그냥 자수하고 맘 편하게 살자.' 라고 생각하면서 경찰서에 들어갈 뻔 했습니다.

그것도 한 번이 아니라, 몇 번을 그럴 뻔 했거든요.

그러다가 입구에 서있는 의경이 '무슨 일로 오셨습니까.' 이러면, 퍼뜩 정신이 돌아오는 식이었습니다.

 

그때 정말 다른 간부 두어분이 '니 잘못 아니다. 그 새끼들 말은 그냥 무시해라.' 라는 식으로 다독여주시지 않았다면 극단적인 선택을 하고도 남았을 것 같습니다.

 

그렇게 시간이 지나고, 그 사고는 산업재해 사고로 분류되어서 지금은 산업재해 보고서까지 구글에서 검색할 수 있습니다.

 

그리고 산업재해 보상금 관련으로 실제로 보상을 해줘야하는 단계가 되니까, 그때부터는 진짜로 사람을 굴리기 시작하더군요.

그나마 주말에 기숙사에서 잠을 보충하는 것조차도 허용해주지 않고, 집에 돌아가서 쉬고 오는 것조차 못 하게 만들기 시작했습니다.

방문 잠그고 들어가서 자려고 하면, '문 잠그지 말랬지!' 이러면서 문을 두들겨대고.

주말이 되어서 '진짜 퇴근'해서 집에 가서 쉬고 오려고 맘먹고 있으면, '이것만 하고 가라.'를 반복하면서 버스 막차, 기차 막차가 끊기는 시간까지 사람을 붙잡아 두는게 반복되었습니다.

 

결국 못 버티고 회사를 관둘까 하고 생각하면서도, 그래도 퇴직금이라도 받고 나가자는 마음에 버텼습니다.

하지만, 딱 11개월 언저리가 되는 순간 '계열사'로 자리를 옮기라고 하면서, 계약서를 새로 써야한다고 통보하더군요.

퇴직금조차도 안 주려고 뺑뺑이를 돌리겠다고 노골적으로 나오는 것에 그야말로 질릴대로 질려서 거기서 퇴사하겠다고 선언하고 정리하고 나와버렸습니다.

 

사실, 그 회사를 그만두고 나오는 순간까지도 끝이 안 좋았던게.

시골에 박힌 회사니까 여가를 즐기고 나발이고 아무것도 없었습니다.

그래서 노트북을 구매해서 영화를 보고 애니를 보는 등등으로 그나마의 '멘탈 위로'를 하는 식이었거든요.

 

회사를 그만둔다고 선언하자마자 그 회사의 간부들이 뛰어와서는 '짐만 많아지는데 다 두고가라'는 식으로 압박을 넣더군요.

물론 그 노트북도 넘기고 가라는 식이었습니다. 논리가 이런 식이었거든요.

'회사에서 준 월급으로 산 거니까 회사돈으로 산 거랑 뭐가 다르냐.'

물론, 악으로 깡으로 제 개인 물건은 죄다 챙겨내려왔습니다. '더러워서 걍 던지고 만다' 라는 생각은 1도 들지 않았거든요.

 

그 회사를 관두고 나와서는, 진짜 몇일간은 잠만 잤습니다... 라고 말하고 싶지만 그렇게 깊이는 못 잤습니다.

대략 10년 전의 일입니만, 지금도 그렇게 길게 푹 자는게 불가능합니다.

 

처방받은 안정제 혹은 수면제를 먹으면 대여섯 시간까지는 잘 수 있습니다.

그거라도 안 먹으면, 정말 오래 잠들어봤자 두세시간 잠들었다가 바로 깨버립니다.

꿈이라도 꾸게 되면, 어김없이 악몽을 보게 되는지라 알아서 몸이 깨는 것 같더군요.

 

그래도 어느 정도 휴식을 취하고 나서, 다른 회사를 들어가보려고 시도해봤습니다.

 

면접도 보고 그랬습니다만, 어김없이 몸이 거부하는 수준이었습니다.

 

또다시 그 악몽을 겪어야하는가 하는 공황상태에 빠지고, 토악질이 올라오는 것을 버틸 재간이 없더군요.

그래서 간간히라도 들어오는 번역일, 사진촬영일을 하면서 용돈벌이 정도만 하는 식입니다.

 

인간 쓰레기가 되어가는 과정으로 진입하는 중이라는 자각 정도는 있습니다.

 

하지만 도저히 저 악몽을 이기는 게 너무 힘듭니다.

병원도 간간히 다니면서, 상담도 받아보고 약도 먹어가면서 버티기는 하지만.

정작 '일'이라는 것 자체가 공포 그 자체가 되어버린 상황에 빠져버린 걸 어떻게 감당할 수가 없네요.

 

제 딴에는 길게 안 쓰려고 했는데, 길어져버렸습니다.

뭐랄까, 너무 속에 받치는게 많아서 좀 토해내고 싶었습니다.

 

눈치 빠른 분, 정보 검색에 능하신 분이면, 아마도 여기 언급된 단서만으로도 어떤 사고인지 뻔히 알아내실 수 있을 거라 봅니다.

아니 어쩌면 당사자가 보게 될지도 모릅니다.

 

그저 토해내고 싶었습니다. 그저 살인자가 아니라는 소리를 듣고 싶었습니다.

 

그 회사에서 겪은 일을 쓰기 시작하면 정말 끝도 없습니다만, 다른 건 다 젖혀놓고서라도 살인자가 아니라는 위로를 받고 싶었습니다.

바보같은 글이라도 읽어주신 분들께 고맙다는 말씀 미리 올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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