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야옹이를 잃어버렸습니다.
게시물ID : animal_179191짧은주소 복사하기
작성자 : synousia
추천 : 2
조회수 : 285회
댓글수 : 0개
등록시간 : 2017/04/07 19:16:5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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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4
집사는 따사로이 불어오는 바람을 맞으며 그렇게 누워선 책을 읽고 있었습니다.
노곤한 기운이 건듯 불어와 잠으로 살풋 빠져들다가도, 정답고 활기차게 지저귀는 참새들과 신명과 괴성이 섞인 울부짖음을 뽑아내는 고양이 녀석들 때문에 다시금 깨어나길 몇 번이나 했을까, 시간은 진즉에 많이 흘러가버리고 있었습니다.
희끗희끗 태양이 서쪽 하늘로 그 기운을 다 빼앗긴 채 스러져 갈 때에야 집사는 비로소 야옹이를 떠올렸던 것입니다.
이 녀석은 멀 하길래 아직도 안 돌아오는 걸까?
은근히 걱정과 기대가 섞인 의문을 품고, 밖으로 나가 그 녀석을 찾아보기 시작하였습니다.
나가자마자 아까 전에 야옹이랑 같이 눈 맞아 사라지던 그 회색 냥이를 발견할 수 있었습니다.
저 멀리 밭두렁 곁으로 집사를 보고 도망가다가 살짝 뒤돌아서서는 우리의 눈이 서로 마주쳤던 것입니다.
아니, 야옹이는 어디다가 두고, 이 녀석 혼자만 쏘다니는 거지?
문득, 아뿔싸! 싶었습니다.
조금은 황망하고 두려운 발걸음으로 여기저기 야옹이를 찾아다니기 시작하였습니다.
없었습니다.
집사 집 주위나 그 회색 냥이 영역 근처는 말할 것도 없고, 그 동네 어귀나 저 멀리 빠져나가는 도로 근처 등등, 최소한 이쯤에 있을 것이다라고 예상할 수 있는 가장 극댓값의 장소에서조차도 그 녀석을 발견할 수 없었습니다.
이제 시각은 서서히 저녁을 향하고 있었습니다.
한낮의 그 온화하던 태양은 아낌없는 하루를 선사하고, 저쪽으로 뉘엿뉘엿 가라앉고 있었습니다. 
그리고 그만큼이나 집사 마음 또한 차갑게 가라앉고 있었습니다.
이걸 어떡한다?
갑자기 오싹한 기분이 들기 시작하였습니다.
싸하고 쎄하게 밀려오는 그 미래의 암운을 어떻게든 상상해보지 않으려고 순식간에 머릿속을 강제 종료시켜 버렸습니다.
하지만, 그러고 나서도 집사는 한참을 서성거리기만 할 따름이었습니다.
이젠 어떻게 해야 될지, 뭘 해야 될지, 도무지 아무 생각조차 나질 않았던 것입니다.
정신 나간 사람처럼, 그저 눈이 닿는 대로, 발이 가는 대로, 여기로 왔다가 저기로 갔다가, 할 뿐이었습니다.
이윽고 밤이 되었습니다. 
인간의 가시거리는 더욱더 짧아지고, 그래서 마음의 가시거리도 더욱더 짧아져 버렸습니다.
야옹이를 찾게 되리라는 실낱같은 희망 또한 더욱더 짧아져 버렸습니다.
집으로 돌아왔습니다.
밖에서 흐느적대며, 아무 생각 없이, 아무 희망 없이, 싸돌아다녀봤자, 미친x 취급만 당할 뿐이었습니다.
아니, 차라리, 미친x이니까 미친x 취급당하는 건 하릴없이 별 수 없는 셈 치더라도, 어떤 일말의 생각이나 계획조차 없이, 유령처럼 되는 대로 기웃거리고 배회하기만 한다는 건, 아무래도 귀중한 시간을 헛되이 낭비하는 꼴이 아니냐고, 그렇게 본능적으로 느꼈는지도 모를 일이었습니다.
백열전구가 쏘아내는 공허한 빛들이 허허롭게 둥둥 떠다니는 골방 안에서, 다시금 정신을 차려보고자 아까 밖에서 봉인해 둔 머릿속을 풀어헤치기 시작하였습니다.
급격하게 쏟아지는 별의별 무수한 상상과 감정들을 간신히 버려내고 벌려내면서, 그 와중에서도 태초의 빛인 양 살뜰하게 자리한 지침을 찾아보려고 무던히도 애썼습니다.
야옹이를 처음 우리 집 골방으로 데려왔을 때가 떠올랐습니다.
몇 평 되지 않는 방에서도, 그 녀석은 두려움과 예민함이 뒤섞인 줄행랑을 놓거나, 저쪽 구석 쿰쿰한 어둠과 함께 숨어 있기를 곧잘 하였었습니다. 
그리고 그럴 때면, 집사는 그 녀석을 발견하고 찾아내기가 좀체 쉽지 않았었습니다. 
그러니 하물며, 지금은 더 말해 무슨 소용이 있겠습니까?
수백, 수천 평도 가뿐하게 넘을까 말까 한 세계 속에서, 더군다나 모든 대지를 칠흑 같은 어둠으로 뒤덮고 있는 밤과 직면해서는, 집사에게 이젠 그 어떤 수단도, 도구도 남아있질 못하였습니다.
그저 그 녀석이 제 발로 집사를 알아보고 다가오는 경우밖에 없었습니다.
하지만 지금까지, 불행하게도, 그 녀석은 그러질 않았던 것입니다. 
이젠 달리 방법이 없었습니다.  
그렇게 앉아 있으며, 그 녀석이 돌아오기만을 기다리는 수밖에 다른 도리가 없었습니다.
하지만, 집사는 또 그럴 수조차 없었습니다.
무언가, 집사를 지금껏 한 인간으로서, 한 생명으로서, 중심추처럼 잡아주던 그 무언가가, 저 멀리 빠져버린 것 같았습니다.
그래서 이제는 어디 한 곳에 머물고 앉아 있는 것조차 불가능하게 되어 버린 것 같았습니다.
다시 밖으로 뛰쳐나갔습니다.
아무 대책도 없었습니다.
아까 간신히 골방에서 머릿속으로 정리한 귀결을 번복할 만한, 그 어떠한 대책이나 계획이 전무하다는 암흑을 뒤엎을 만한, 새로운 빛은 정녕 보이지 않았습니다.
단지, 그 침침한 무덤 같은 곳에서 앉아 있기가 싫었을 뿐이며, 그 황량한 벌판 같은 곳에서 그 녀석을 마냥 기다리고만 있을 수 없었기 때문이었습니다. 
봄이라고는 하지만, 아직도 쌀쌀한 맛이 느껴지는 바람이 밤을 휩쓸고 돕니다. 
그 속에서 실낱같은 그림자마저 슬픈 집사는 정녕 어디로 향해야 할지, 어디로 호명당해야 할지, 아무런 느낌도, 생각도 쥐고 있질 못하였습니다.
그저 야옹이가 집사를 알아보고 나와주기를, 그 미소하나마 절실한 끈을 그 녀석 또한 멀리서 기대하고 있기를, 간절히 바랄 따름이었습니다.
그렇게 서로의 소망과 희망 희미하게 부딪쳐가며 만날 수 있기만을, 간절히 바랄 따름이었습니다.


하지만, 정녕 신은 그런 우리의 소망과 희망의 끈을 쉽게 묶어주시진 않는 듯하였습니다.
그 희미한 끈마저 시나브로 떨어져 내리고, 의문과 불신만 작열하는 황홀한 고통의 사막만 눈앞에서 비릿하게 타오르고 있었습니다.
시간은, 그 녀석과 조우할 수 있는 시간은, 점점 불타오르고 있었습니다.
저 어둠 속에서 야옹이가 뛰쳐나올 것만 같은 예감은 시간과 더불어 그렇게 불타버리고 있었습니다.
하지만, 활활 불타오르는 그 불마당에서도, 자기 자신을 오롯이 태워 죽일 것 같은 그 불마당에서도, 오히려 어떤 생의 감각을 돌연히 깨우쳐 돌진하는 한 마리의 불나방처럼, 집사 또한 그렇게 시간이 불타오르고, 희망과 예감이 불타오르는 곳에서, 황홀하게 슬픈 불놀이를 차마 벗어나고 싶진 않았습니다.
그렇게 밤은 잇달아 흘러가고, 어둠은 잇달아 쌓여가고 있었습니다.
불꽃들은 싸늘한 재로만 남아 야속한 야밤을 타고 돌며, 부질없이 흩날리고 있었습니다.
그 멸각의 내음새에 진저리치며, 저으기 집사 또한 사멸되어 가고 있었습니다.
그리고 결국 집사 또한, 본적도 계통도 없는 뼈다귀만 가득 끌고서, 하릴없이 골방으로 돌아올 수밖에 없었습니다.
그저...
그저, 내일을 기약할 따름이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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