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 초딩때 우리동네 뒷산에 약수터가 있었거든
엄마가 가끔 운동도 할겸 남동생이랑 같이 물 떠오라고 시켰었는데
그날은 동생이 태권도에서 늦게 온다고 나혼자 오후 4~5시쯤에 갔었다
(정수기가 없어서 약수터 물 떠와서 먹었거든)
그런데 그날은 무슨 일인지 가는 길에 사람이 한명도 안보이길래 좀 이상하다 했는데
한 10~20미터 앞 큰나무 뒤에서 연기 뿜어져 나오는게 보이길래
거길 주시하면서 앞으로 가고 있었거든
거리가 좁혀지면서 연기 나오는 곳을 지나갈 때 쯤 보니까
야구모자를 푹 눌러쓴 어떤 남자가 나무 기둥 옆에 바짝 붙어 쪼그리고 앉아서
담배꽁초를 바닥에 비벼 끄고있더라
분위기가 좀 이상했지만 중간쯤 간 터라 다시 돌아 가기도 무서워서
약수터 쪽으로 가면 분명히 사람들이있을 거라 생각하고
아무렇지도 않은 척 노래를 큰소리로 부르면서 빠른 걸음으로 걸었어
뒤돌아 볼 생각은 못하고 최대한 빠른 걸음으로...
멀리 보이는 약수터에 사람이 있나 없나 그것만 보면서 가고 있는데
한 30초 정도 지나서 궁금해서 뒤를 돌아보는 순간
갑자기 우다다다 하는 발소리가 들리고 누가 뒤에서 내 입을 틀어 막더라
한 손으로는 내 입을 틀어 막고 한손으로는 나를 꽉 끌어안았는데
아무리 소리를 지를려고 해도 성인 남자가 큰손으로 입을 있는 힘껏 틀어 막으면
초딩인 나는 아무 것도 할 수 없더라, 소리가 입속에서만 맴돌뿐 안나오더라고...
진짜 내가 너무 나약하구나, 무력감이라는 걸 그때 처음으로 뼈저리게 느꼈어
그래도 그새끼가 맨손이니까 나는 죽을 힘을 다해서 발버둥을 치면서 확 주저 앉았어
그리고 몸을 최대한 뒤틀면서 바닥에 밀착시키듯이 흙바닥을 쓸면서 풀을 잡고 버텼는데
갑자기 그새끼가 나를 던지듯이 놔주더니 약수터 반대 방향으로 뛰어 가더라
나는 이제 살았다는 안도감인지 진이 다 빠져서 잠시 널부러져 있었는데
고개를 들어서 앞을 보니 약수터 쪽에서 어떤 아줌마가 이쪽으로 오고 있더라
그 아줌마는 멀리 있어서 인지 이쪽 상황을 모르는 것 같았어
아무튼 정신차리고 일어 나서 내 몸을 보니까
그때 여름 방학이라 흰바탕에 검은 땡땡이 무늬 원피스에 쫄바지 짭은거 입고 슬리퍼 신고 있었는데
내가 얼마나 살려고 몸부림을 쳤으면 원피스 치마가 다 찢어지고
무릎도 다까지고 엄지 발톱까지 덜렁 거리더라
그런데 하나도 아픈지 모르겠더라고...
그런데 치마를 털면서 손을 보니 풀에 손이 베여서 피가 막 나더라고
피를 보니 그때 서야 눈물이 터져 나와서 막 울었어
그리고 그 아줌마가 나를 지나 갈 때쯤 뒤 따라서 약수터를 나오는데
그 아줌마는 나에게 옷이 왜그런지 왜 우는지 묻질 않더라고...
아마 내가 넘어 져서 울고 있었겠거니 했나봐...
아무튼 그렇게 집에 돌아와서 씻고 엄지 발가락에 밴드 붙이고 동생이 와있길래
너는 약수터 혼자 가지 말라고 경고하고 아무렇지도 않게 동생 밥 차려주고 그랬다...
물론 나도 그뒤로 약수터 혼자 간 적 없고...
나는 편부모 밑에서 장녀로 컸는데
엄마가 심심하면 폭언 폭행을 하니까 괜히 말하면
왜 혼자 갔냐고 또 혼나고 맞을 까봐 말을 못했었어
성인이 된 지금까지도 아무한테도 말 못하고 나를 괴롭히는 기억들중 하나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