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너를 떠나보내며...
게시물ID : animal_179344짧은주소 복사하기
작성자 : synousia
추천 : 4
조회수 : 349회
댓글수 : 0개
등록시간 : 2017/04/10 20:09: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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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7
야옹아,
너를 처음 봤던 그때가 왜 궁상스럽게 지금 와서 계속 떠오르는지 모르겠구나.
그때 처음으로 널 보며, 우리의 인연이 이렇게까지 묶이고 엮이고 꼬일 줄 알았겠느냐.
갑자기 쓰러져 죽어가던 널 들쳐업고, 이리로 저리로 뛰어다니던 날들, 
실낯같은 너의 생명이 하얗게 깜박거리던 그 무섭도록 표백된 밤을, 우리 둘만의 작은 온기로 부둥켜안고 버텨내던 날들,
그리고, 그렇게 다시금 미소한 생명 불꽃 붙어 나대던 너와의 그 즐거웠던 나날들... 
그 자연의 물레바퀴를 둘이서 정겹게 돌리던 시간들... 
땡볕이 쏟아지는 한 여름, 지독하게 덥던 불가마 속에서도 엎치락뒤치락 서로 납작이 붙어지내던 날들과, 뭇 생명들이 황홀한 절정을 불태우며 스러지던 가을 어느매, 너와 함께 누워서는 아스라이 즐거운 꿈 자아내던 시간들, 매서운 한파가 몰아치던 그 어느 겨울밤엔, 열기 하나 없이 차가운 돌방에서 너와 나, 그렇게 마주한 불이 되어 서로 뜨거웠던 나날들... 
아...
온갖 애교와 어리광을 부리며 다가서는 너에게 매번 하릴없이 무릎을 내어주고, 배를 내어주고, 내 몸 전체를 기꺼이 내어주던 지난 나날들,
어떻게든 너에게 맞는 음식과 간식을 사 먹이겠다, 네가 좋아하는 놀이도구를 구해야겠다, 살뜰히도 이리 뛰고 저리 뛰어다니던 지난 나날들,
하지만 그럼에도, 너의 그 모습과, 너의 그 소리와, 너의 그 행동이, 나에게 얼마나 큰 빚을 지게 했는 줄 아느냐.  
너와 함께 놀고, 너와 함께 웃고, 너와 함께 울고, 너와 함께 밥 먹고, 너와 함께 누워 자던 그 모든 나날들...
야옹아,  
나에겐 그 시간들이, 그 하나하나의 순간들이, 얼마나 찬란한 보석으로 얼마나 귀중한 보물들로 빛나고 있는 줄 아느냐. 
고귀한 별로 떨어져 황폐해버린 내 가슴에 한 줄기 아름다운 빛 선사했던 야옹아.
그러니, 나에겐 그 모든 추억들이 즐거운 저승길 노자가 될 것임을, 하늘나라 가서도 빛나는 자랑거리 될 것임을, 결단코 의심치 않는단다.
무딘 내 가슴속에서도 살풋이 비단결 바람 일어내던 야옹아.
그러니, 지금 나에겐 너의 그 부재가 정말로 버겁게 느껴지는구나.
가슴속 텁텁한 감정들과 미친 듯 끓어대는 이 격정들을 어디로 토해내야 할지, 방향도 상실한 채 그저 주저앉아 울고만 있구나.
이런 나를, 
야옹아.
용서해주겠니?
고독만 을씨년스럽게 불어대는 골방 안에서 너의 흔적들만 덕지덕지 날리고 있다.
걸레가 되다시피한 이불과 낚싯대 물고기며, 너의 발톱 노리개가 된 휴지들, 정말 따분할 때나 가끔 건드려보던 너의 장난감 도구들,
좀 싸게 사보겠다고 대량으로 푸어다가 아직도 넘쳐흐르는 너의 모래들이 이제는 죄다 길을 잃고 덩그러니 무너져 있구나.
너는 곧잘 그랬었다.
그 이불을 쏘다니며 온갖 장난과 놀이를 쳐댔었고, 내가 머라고 하는데도 상관없이 휴지들을 뜯어댔으며, 종종 새로 산 스크레처니, 의자 따위에 앉아 기념샷 포즈를 취하기도 했었고,
아...
그러고 보니, 넌 내가 방 안에서 어딜 갈 때나 따라다녔고, 기다렸었고, 내 몸 여기저기를 만져댔었고, 타고 올랐었다.
그 일상의 행복을 이젠 오로지 나 혼자 들어찬 공간에서, 너무나 삭막하고 메마르게 느껴지는 이 공간에서, 추억해야만 하는구나.
이 추억질이란 고통을 황홀하게 되새김질해야만 하는구나.
그러니 야옹아,
이런 나를,
부디 용서해주겠니?  
이젠 그저, 어딘가에서 네가 잘 살고 있겠거니,
나는 그렇게 믿으련다.  
너의 평소 그 기지나 천성을 나는 굳게 확신하고 있으니.
그러니, 그 언젠가는 너를 다시 보게 되겠지.
그리고 우리 그땐, 마주 보고 서로 웃을 수 있었으면 좋겠구나.
그때 그 언젠가, 너는 오히려 더 활기차고 즐겁게 밖에서 생활하고 있을 테니까, 
그때 그 언젠가, 너는 그 눈부신 모습으로 오히려 내게 괜찮다, 다독여 줄 테니까.
나는 그렇게 믿으련다.
부디, 이런 이기적인 나를,
야옹아.
용서해주겠니?


너를 마음속에 품고 살았고, 지금도, 그리고 나중에도 품고 살 거니까, 
헤어지는 일따윈 바이 없겠지만,
그래도 잠시나마, 우리 이별연습 한 번 해볼까?
야옹아,
그동안 정말로 고마웠고, 또 고마웠단다.
건강하게 우리 다시 만날 때까지,
잠시만, 안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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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물과 인간의 구별은 부질없다. 한 생명과 한 생명이 마주 빛나면 그뿐.  >



출처 http://blog.naver.com/ha_eun_lov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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