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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본의 수군이 약했느냐 약하지 않았느냐에 대한 담론
게시물ID : history_17946짧은주소 복사하기
작성자 : 김즈믹
추천 : 12
조회수 : 1587회
댓글수 : 34개
등록시간 : 2014/09/02 20:21:5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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실제로 국가에서 해군을 가지게 되는 가장 큰 원인은

바다에서 오는 적을 막거나, 바다 건너 적을 소탕하기 위해 만들어집니다


실제 고려나 명나라에서의 수군은 왜구를 막기위해 창설되었으며, 

만약에 왜구에 의한 피해가 없었다면 그 규모는 굉장히 축소되었을 껍니다, 

실제 고려 말에 등장하는 수군은 일본의 남북조 시절의 혼란기에 일본에서 도주하여 해적화된 일본군인들과

여몽연합군의 침공에대한 복수를 목적으로 한 세력들이 고려를 대대적으로 침공하게 되어 수군의 역활이 상당히 중요해지게 되었는데, 

실제 배에서 포를 달아 배 자체를 부숴버리는 시도도 이때 등장합니다 

(※대포는 성을 부수기위해 만든 것으로 실제 해전에서 쓰이기까지는 상당한 시간이 걸립니다)



말하자면 그 시절 동아시아 수군의 역활은 해상에서 적이 영토로 넘어오기전에 영격을 하기위한 목적으로 설치되었으며,

즉 수군이 발전하기위해서는 영토를 침범하는 세력이 꾸준히 존재해야 가능한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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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지만 일본의 경우에는 태생적으로 섬나라 인데다가, 

대륙에서도 좀 떨어진 열도 국가이기때문에 지형상으로도 중원국가가 한반도를 평정하기 전까지는 결코 먹을수 없는 미지의 땅(..)으로써 

외세의 침략이 굉장히 적은 편이였습니다, 일례로 원나라가 고려 전체를 식민지화 시킨 이후 일본을 평정하기위해 군대를 보낸것이

태평양전쟁 당시 일본땅에 폭격 당하기전 마지막 외세의 침략이였습니다, (개항기 시절 영국과 싸우긴 하지만 그건 교전수준이므로..)


사실 일본에도 수군이 없던것은 아니지만 워낙 일본의 바다가 평화롭기때문에 일본 내에서는 수상세력은 

그냥 근해를 떠돌며 심심할때 무역선이나 낚아채는 해적 비스무리한것들로 변하기 시작했고

그것마저 귀찮아 졌는지, 나중에 가면 그냥 해협에서 배들이 지나갈때 통행세를 걷는 톨게이트가 되버렸고(...)

이것은 도쿠가와 막부가 일본을 제대로 통일하기전 까지 쭉 그랬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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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제는 일본이 전란의 시대인 전국시대로 넘어가기 시작할떄 이 해적들의 역활도 상당히 중요해지기 시작합니다

왜냐하면 이제 몇개의 나라로 찢어진 일본이 다시 통일하기 위해 섬과 섬 사이로 군대가 옮겨갈 필요가 생기게 되었거든요


그 당시 일본내에서 바다를 양분하는 해적은 두명이 있었습니다


바로 구키 요시타카의 토바 해적단

그리고 무라카미 다케요시의 삼도 무라카미 해적단


여기서 구키 요시타카는 오다 노부나가를 섬겨 노부나가의 수군이 되었고

무라키미는 모리 가문을 섬겨 모리의 수군을 맡게 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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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기서 아주 재미난 일이 벌어지는데, 

바로 모리 수군과 오다 수군이 해전을 벌인다는 일본 최대의 해전 드림매치가 펼쳐질 기회가 생겼기 때문입니다


'키즈가와구치 해전'이라고 불리는 이 해전은 오다 노부나가의 일본통일전에서 총 2차례 펼쳐지게 되는데

1차전은 모리와 무라카미의 화공으로 오다 노부나가의 함대가 크게 격파당하는 수모를 입게 됩니다


이 패전으로 화가 잔뜩 뻗친 오다 노부나가는 구키 요시다카에게 명령을 하는데 그게 참 가관인게


" 불에 타지 않는 배를 가져와라!!"


이딴 소리를 합니다(...)


그걸 또 말한다고 그대로 실천한(..) 구키는 배에다가 철판을 대충 붙이고 대형화시킨 안택선 6척을 가져옵니다 

그리하여 2차전에 오다 노부나가의 철갑선 6척과 모리 수군의 600척이 오사카만에서 싸우게 되는데.. 


결과는, 오다 노부나가의 압승, 



해전의 해자도 모르던 오다 노부나가가 대충 지시해서 만든 이 장난감 철갑선에 

모리 수군은 문자 그대로 괴멸, 당시 최강이라고 떵떵거리던 무라카미 수군의 수준이 그대로 나오는 사건으로 평가받습니다(...)

그나마 이 정도가 일본에서 수군이 아주 활약한 정도지, 

나중에 가면 일본 수군의 역활은 적의 성주가 바다로 못 도망치게 봉쇄하는 역활에만 주력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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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렇게 허접한 수준의 일본군은 임진왜란에 가서도 별 다른 차이 없이 그대로 조선을 침공하게 됩니다(...)


그리고 아시다시피 별 다른 마음의 준비를 안한 구키 요시다카는 이순신과 조선수군에게 실컷 얻어맞게되는데

실제 일본에서 최대의 수군 거물이 였던 구키 요시다카는 안골포에서 도망치다 싶이 하고

무라카미 수군의 일파이던 구루지마 미치후사의 경우는 명량해전에서 전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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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기서 말하고자 하는 바는 조선 수군과 일본 수군의 차이는 그 유구한 역사에서 차이가 난다고 할수 있는데

앞서 서술했듯이 한반도의 수군이 왜구를 토벌하던 역사는 조선이 건국하기전 고려에서부터 대대적으로 등장하고

왜구의 침략강도가 강해질수록 점점 조선의 군선들의 규격또한 같이 진화(..)하게 되는 놀라운 변화를 겪습니다


그러나 일본의 경우에는 제대로된 해군은 커녕 도적화된 일본인들이 선박에 탑승한채 약탈을 하기위한 목적으로 출몰한 해적들이

임진왜란 당시 조선을 공격한 일본 수군의 전신이라고 볼수 있는데,



실제 정규수군과 해적의 싸움이니 당연히 정규군이 해적을 토벌하는 수준으로 밖에 보이지 않는 것이 임진왜란에서의 해전의 수준이고 

당연히 해적들도 일본수군에 편입된 만큼 그냥 훈도시입고 싸우는 해적이겠습니까만은, 실전성이 결여된 채 약탈에만 치부하고 전혀 변화가 없던

일본 수군에게 있어서, 몇백년동안 자국의 침략에 이를 바득바득간 조선수군과의 격차는 꽤 큰 수준이였습니다


단적인 예로 전국시대를 거쳐온 일본군의 수준과 평화롭던 조선 관군의 수준이 극악으로 차이 났던것도 좋은 예로 볼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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