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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85호 크레인 김진숙] 2차 희망버스를 다녀왔습니다.
게시물ID : sisa_108830짧은주소 복사하기
작성자 : 두두씨
추천 : 13/2
조회수 : 590회
댓글수 : 10개
등록시간 : 2011/07/13 20:49:30
사실 일전에 희망버스에 참가하기 전에 오유에도 희망버스 관련글을 올렸습니다.
하지만 글이 많아서 그런지, 조명 되진 못했습니다만, 오유에서도 많은 분들이 이 희망버스에 관심을 보이시는 것같습니다. 
그래서! 한진중공업 해고노동자 및 김진숙지도위원을 뒤로하고 이렇게 후기를 작성합니다. 
(기사는 부록으로 넣어 두겠습니다!)



일단, 한진사태가 어떻게 된 것인가에 대해서 짧게 얘기해드리겠습니다.

74년 동안 참으로 많은 노동자의 목숨을 집어 삼키며 세계 5대 조선소로 성장했던 한진중공업입니다.
한진중공업은 지난 10년간 4,227억이라는 막대한 이익을 올렸고, 2008년에는 영업이익이 630억으로 업계 1위를 차지했으며, 구조조정 계획을 제출한 2009년에도 519억의 실적을 올렸습니다. 그런 한진중공업이 2009년 12월, 난데없이 경영난을 들이대며 조선부문 노동자 2500명 중 1000명 이상을 감원해야겠다고 으름장을 놓았고, 이에 600명이나 되는 노동자들이 퇴직강요를 못 이겨 조선소를 떠나야 했습니다.
이것이 끝이 아니었습니다. 새해가 밝자마자 못다 자른 400명 중 110명을 집요하게 내쫓더니 지난 1월 12일, 나머지 290명의 노동자에게 정리해고를 통보했습니다. 자르고자 맘먹었던 1000명을 기어이 다 채우고야 만 것입니다. 이렇게 노동자를 내쫓는 진짜 이유는 필리핀에 있는 수빅조선소에 수주받은 물량을 빼돌리고 국내의 모든 공장을 하청화하기 위한 것이었습니다. 실제로 한진중공업은 2010년 수빅조선소로 수주를 몰았고(영도조선소 수주 0척), 영도 조선소 하청업체는 훈련생을 모집하고 있습니다.

이렇게 한진은 10년 넘게 조선업에서 엄청난 흑자를 내고 있던 독보적인 기업이었습니다. 
그런데, 경영의 어려움을 핑계로 한진 해고노동자 1000명중 나머지 290명의 노동자마저 한 순간에 부당한 정리해고를 감행하였습니다.
흑자경영을 꾸준히 이어가는 한진이었습니다. 
그런데, 노동자는 해고되었습니다. 
더욱 분노하게 되는 것은 무엇인지 아십니까? 
이 290명을 해고시키고 주주들의 배당금을 각각 [174억원]씩 챙겨줬다는 사실입니다. 
노동자를 해고한 이유는 대량이윤이 목적이었던 것입니다. 
 

*희망버스의 전개과정
7월 9일 토요일 - 7월 10일 일요일 (황금주말이었습니다)
대규모 전국적으로 185대의 희망버스가 준비되었습니다.
어느 쪽에서는 희망 도보, 희망 자전거, 심지어 제주도에서는 희망 비행기까지 타고 자기 사비를 털어 황금같은 주말에 전국에서 연대한 시민이 1만명이 넘었습니다. 
계층도 참 다양했습니다. 어린이, 노동자, 학생, 예술계, 장애계 등 끼있는 사람들도 많이 모인 것같았습니다. 아참 저는 학단위차원의 대학생으로 참가했습니다.

버스에서 몇시간이 지났을까요? 
저녁 7시 쯔음 부산역에 도착했습니다. 
부산역에서 억수같은 비가 오든 말든, 마냥 모두들 박수치며 춤추며 노래부르며 축제처럼 문화제를 즐겼습니다. 

2시간에 걸친 문화제가 끝이 나고 행진을 하기 전, 송경동 시인께서 발언 하셨습니다. 기억에 남습니다.
"희망버스에 오기 전에 정말 많은 곳에서, 특히 경찰들에게 많은 전화가 왔다. 그들은 우리를 막으려 안간힘을 쓰지만, 우리는 김진숙을 만나러 갈 것이다. 한진중공업 해고노동자를 만나러 갈 것이다. 아니 우린 이땅의 모든 해고노동자를 만나러 갈 것이다"

발언이 끝나마자 마자 무섭게 익히 알던 민중가요들이 부산역에서 울려퍼지기 시작했습니다.
그 이후 바로 거리행진을 시작했습니다. 학교에서 만든 피켓을 들고 선전전을 하며 행진했습니다. 
차를 타고 가시는 많은 분들이 乃 엄지를 치켜세우며 바라보았고 응원과 지지를 해주셨습니다. 
그리고 즐겁게 걸었습니다. 민중가요와 함께 즐겁게 춤추며 들썩들썩 거리며 2시간 동안 걸었습니다.

......그리고 영도에 도착했습니다.

영도는 우리를 반겨주지 않았습니다. 오히려 경찰들이 우리를 기다리고 있었습니다.
그리고 경찰은 우리가 여기 오기 전 주민들에게 위험이 된다는 이유로 우리를 위해 준비해주신 분들의 오뎅500인분도 뺏어갔습니다. 
그들은 우리가 약속한 평화행진을 장벽으로.. 가로막았습니다.
우리는 분명 평화행진을 약속했었고 우리에게는 경찰들 처럼 갑옷과 방패와 그리고 최루액이 없었습니다.
우리 갈 길 가겠다는 것을 저들이 가로막는데 우리도 가만있겠습니까?
"조남호는 물러가라!", "폭령경찰 물러가라!", "평화행진 보장하라!", "정리해고 철회하라!", "비정규직 철폐하라!", "김진숙을 만나고싶다!" 등 구호를 외치며 전진을 시도했습니다!!

하지만
경찰은 마치 싸이코패스인냥 아무 감정이 없는 듯 발암물질인 최루액을 시민들에게 난사를 했습니다.  
마치... 오락실의 총게임을 하는 것처럼 말이죠. 그렇게 마찰이 새벽까지 계속 이어졌습니다.
결국, 경찰은 물대포를 쏘았고. 파란 물감이 섞인 최루액 대포를 신호탄으로 그 즉시 경찰들이 곤봉을 치켜세우며 우리를 때려댔습니다. 이 과정에서 우리 학단위 친구도 잡혀가기도 했습니다. 
솔직히 무서웠습니다. 최루액 대포는 직접 맞지 않았지만, 숨쉬기 너무 힘들었고 곤봉을 그렇게 휘두르는 경찰들이 떼거지로 달려드는 모습이 너무 강렬하여 지금도 뚜렷합니다..

우리에게는 방패도 없었고 하이바도 없었고 또 최루액도 없던 비무장사람 이었습니다.
무기인지 모를 우산으로 그저 최루액을 막으며 전진하려 노력했을 뿐입니다..

그렇게 새벽을 넘어 다음 날 아침까지 1만명의 사람들은 거리에서 연대한 분들이 준비하신 '연대의 연밥'도 먹었고 '희망의 묵밥'도 먹으면서 하루를 지샜습니다. 
이후 경찰과의 충돌은 없었습니다. 
이후의 기억은 즐거웠습니다. 
즐겁게 즐겁게 집회했습니다.
그리고 다시 올 3차 희망버스에 예약했습니다.


지금도
180일이 넘게 한진 조선소에 있는 85호 크레인에 올라가 있는 김진숙 지도위원을 생각하면 정말 눈물만 납니다.. 바나나가 고무가 되어버리고 사과가 총탄처럼 되어버렸던 그 곳에서 김진숙씨가 지금까지 투쟁을 하고있습니다...

사람이 있습니다.
그녀는 위험합니다. 
김진숙을 살려야 합니다. 
사람을 살려야 합니다. 
인류를 살려야 합니다.  


http://hosik.egloos.com/  기사모음
http://www.vop.co.kr/A00000414723.html 민중의 소리
http://www.labortoday.co.kr/news/view.asp?arId=105197 매일노동뉴스
http://www.newscham.net/news/view.php?board=news&nid=62343 참세상
http://www.hani.co.kr/arti/society/labor/487161.html 한겨례
http://h21.hani.co.kr/arti/special/special_general/29968.html 한겨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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