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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생일이 싫다
게시물ID : gomin_1794751짧은주소 복사하기
작성자 : 익명a2tnZ
추천 : 3
조회수 : 954회
댓글수 : 10개
등록시간 : 2022/04/23 15:33: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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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릴 적 내가 갖고 있는 생일에 대한 첫 기억은 90년대 초, 국민학교 2,3학년쯤 무렵이다.

 

 

아버지께 생일이라고 이야기하니 아버지는 생일이란 낳아주신 부모님께 감사드려야 하는 날이니, 네 용돈으로 부모님께 선물을 해야 맞다고 말씀하셨다.

나는 이해할 수가 없었다. 남들은 다 생일이라고 축하받고, 파티하고, 선물 받던데?

그럼 아버지는 자기 생일에 선물 받고, 내 생일에도 선물 받으니 두 번을 받네. 나는 언제 선물을 받는 걸까? 이렇게 말했다가 혼이 났던 것도 같다.

나는 학교 다니던 내내 학폭에 시달렸다. 학교를 가는 게 두려웠다. 그 어린 나이에 자살이 뭔지 알았겠느냐마는, 죽고 싶을 때도 많았다. 태어난 것에 감사하라는 말은 정말 치가 떨리도록 싫을 때가 있었다. 그래도 남들처럼 생일 축하는 받고 싶었다.

 

 

엄마는 기념일에 의미를 두지 않는 분이다. 엄마는 본인을 포함한 그 누구의 생일도 기억하지 않았고, 축하조차 필요없다 했다. 물론 공평하게 내 생일도 그렇다.

결국 부모님 생신은 어영부영 넘어가곤 했고 내 생일 역시 그랬다. 아버지는 당신 생일을 기념 받고 싶으신 모양이었지만, 어머니가 기억을 못한 덕에 우리 집은 누구의 생일도 챙기지 않았다. 내 생일도 기억해주려 굉장히 노력하셨지만, 결과적으로 보아 쉽지 않으셨던 모양이다.

 

 

부모님은 맞벌이 전문직이셨다. 두 분은 언제나 늦어서 늘 저녁은 혼자 사먹거나 시켜먹곤 했다. 주말은 두 분 다 파김치가 되어 늘어져 계셨다. 나는 친구네 집에 가끔 놀러가기는 했지만, 집에 친구를 초대한다는 건 상상조차 할 수 없었다. 하물며 생일파티라니.

 

 

부모님께서 생일을 챙겨준적이 아예 없는 것은 아니다.

몇 번인가 생일이라는 명목으로 선물을 받은 적은 있다. 생일파티는 한두번 했다고 말은 하는데, 나는 잘 모르겠다. 할머니가 해주신 것 같기도 하고

다만 부모님께 생일을 축하받은기억은 없는 것 같다.

 

 

국딩인지 중딩시절.

부모님이 피자집을 운영하시는 친구가 있었다. 당시는 피자는 막 들어온 신 문물이라 고급 외식거리였다.

어느 날 방과 후 친구랑 놀까 해서 피자집으로 갔다. 녀석은 종종 부모님 피자집에 앉아 피자를 축내곤 했다. 하지만 그 날 피자집은 평소와 달리 알록달록한 리본과 풍선이 가득 걸려 있었고, 안에선 파티가 열리고 있었다. 녀석 생일이라는 말을 며칠 전 들었던 것 같기도 했다. 내가 일부러 잊으려고 애썼던 것 같지만.

 

알록달록한 고깔모자를 쓴 그 친구를 중심으로 다른 친구들이 빙 둘러앉아 있었고, 가운데에는 엄청나게 크고 호화로운 피자가 중심에 놓여있었다. 어린 나이라 커보였겠지만, 체감상 지름 1m는 되보였다. 생일 케이크 대신이었겠지. 다 함께 박수를 치며 생일축하 노래를 불렀다.

나는 슬그머니 눈에 띄지 않게 물러나 밖으로 도망쳤다.

 

나는 다음날 학교에서 친구에게 그 이야기를 했다. 친구는 웃으며 들어와서 같이 놀지 그랬느냐, 왜 그냥 갔냐고 물었다. 나는 딱히 답할 말이 없어 얼버무렸다.

 

 

몇 달 후엔가 다른 친구의 생일에 초대 받았다.

이번엔 마음 먹고 참석했고, 친구에게 생일선물을 주었다. 나는 노트 같은 학용품을 가져갔던 것 같고, 다른 친구들은 딱 봐도 재미진 장난감이었다. 아마 사전에 이야기가 된 모양들이었다. 누가 봐도 내 선물은 초라했다. 나는 선물을 준 적도 받은 적도 없었으니까. 고르는 눈조차 없었다. 받는 친구조차 달가워않는 표정이 역력했다.

 

 

나는 그 이후 누구의 생일파티에도 가지 않았다.

몇 번 거절하다 보니 부르는 사람도 없어졌다. 친한 친구들끼리도 일절 생일은 챙기지 않았다. 고등학교에 올라가니, 남자들끼리라 나부터 생일에 관심 없다는 걸 천명하니 금방 받아들여줬다. 대학까지 이어진 친구들 역시 마찬가지였다. 생일 때 나를 빼고들 모여서 종종 술 먹는 것 같긴 했지만 내게 말하지만 않으면 상관없었다.

 

 

대학을 들어갔다.

1학년 겨울방학 때, 여행을 갔던 곳에서 친해진 4학년 누나가 있었다. 시원시원한 성격에 코드도 잘 맞고, 소심한 나를 위해 늘 세심히 배려해줬다. 자기전 매일 두 세시간씩 통화했었고, 주말마다 누나를 만나러 서울로 갔었다. 누나는 늘 내게 새로운 곳을 데려다줬고 맛있는 걸 사줬다. 나는 이게 사귀는 걸까? 라고 자문했었지만. 우리 중 누구도 사귄다는 말은 하지 않았다. 이성을 사귄 적이 한 번도 없었던 나는 그냥 우리가 친한 누나 동생 사이라 생각했다.

누나는 단 둘이 술을 먹을 때면 자기가 얼마나 인기가 좋은지 자랑하곤 했다

-? 누나는 몸만 오면 먹여주고 입혀준다는 남자 많아. 알아?-

나는 그런 이야기를 들을 때마다 짜증을 냈고누나는 키득거렸다

하지만 주말마다 누나가 만나는 건 나였다. 

 

누나는 내 생일에 반지를 줬다. 과외해서 돈을 모았다고 했다.

한 눈에 봐도 비싸보이는 반지는, 순은이라고 했다.

고맙다고 했지만 한편으론 정말 불편했다. 왜 사람들은 자꾸 생일을 강요할까. 이런 이야기를 하면 사람들은 뜨악한 표정을 지으며 화를 내거나 나를 동정했다. 그런 반응들이 다 싫었다.

나는 거기 어떻게 반응해야 하는지 도무지 몰랐다. 생일은 다들 유쾌하고 즐겁고 행복한 날이라고 했다. 하지만 내겐 진저리 치도록 싫은 날일 뿐이었다.

 

 

누나의 생일이 다가왔다.

나는 선물을 뭘 골라야 할지 몰랐다. 돈이 없는 건 아니었다. 용돈과 알바한 돈을 다 털면 이삼십 정도는 어떻게 될 듯 했다. 물론 누나가 산 것 같은 반지는 택도 없었지만 누나는 돈에 연연하는 성격이 아니었다하지만 나는 무서웠다선물을 고른다는 것 자체가 나에겐 지독한 스트레스였다. 나는 며칠을 고민하다 결국 아무것도 사지 못했다. 아니, 않았다.

누나의 생일날이 됐다.
평소처럼 만나 같이 밥을 먹고 놀았지만 그날 저녁 나는 누나에게 다른 날과 동일하게 대한 후 헤어졌다. 집에 들어가려 할 때 누나가 머뭇거리는 것 같았다. 나는 알고 있었지만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다음날 누나는 종일 전화를 받지 않았다.

며칠 후 연락이 됐지만 태도는 눈에 띄게 쌀쌀해져 있었다. 병신 같은 나는 미안하다는 말조차 하지 못했다.

어딘가 마음 한 구석이 휑했다. 몇 번이나 사과해야 한다고 생각했지만, 그러려면 사정설명을 해야 했다. 생일에 관한 내 속내를 꺼내는 건 수치스러웠다.

이후 몇 번인가 함께 여행갔던 사람들과 섞여서 만났지만. 더 이상 둘만 만나는 일은 없었다. 밤마다 전화하는 일도 없었다

두 세 달 후인가 누나와의 연락은 끊겼다.

 

 

대학을 졸업했다.

사회생활을 하다 보니 카카오톡이란 것이 나왔다. 이제 선물 챙겨줄 상대는 상품권 하나 보내면 그만이었다. 세상 참 좋아졌다. 누나와 만날 당시에도 카톡이 있었으면, 그래서 상품권이라도 하나 보냈으면 좀 나았을까 하는 생각을 가끔 하다가 밀려드는 자기 혐오에 몇 번이나 이불을 찼다.

 

 

이런 나도 어찌어찌 결혼을 했다. 와이프는 굉장히 생일을 중시하는 성격이었다. 그녀를 위해 연애 때는 성의표시는 했던 것 같다. 내 생일 때는 대충 넘겼다. 와이프는 생일을 거부하는 나를 매우 이상해했지만 그냥 넘겼다.

 

 

결혼 후, 나는 생일을 앞두고 선언했다.

우리 집에서 생일축하 문화는 없애자고. 모두 안 주고 안 받기 하자고.

적어도 내 집이라면, 내 마음대로 해도 되는 것 아닌가.

내 유치한 오기는 그녀를 상처 입혔다.

와이프랑 싸운 후 와이프 생일은 챙기기로 결심했다.

솔직히 이해할 수는 없었지만 그 점은 최대한 맞춰줄 생각이었다. 여전히 눈치는 꽝인 나였지만 멍청한 남자라도 서른살이 넘었으면 대학교 1학년 때보단 낫기 마련이다.

이후엔 선물도 주고 케이크도 꽃다발도 사고 나름대로 이것저것 챙겨주려 노력했다.

결혼 첫 해 내 생일은 그냥 지나갔다. 와이프가 박박 우긴 끝에 선물 받는 건 관둘테니 현금으로 달라고 했다. 공돈이 생겨 좋았다.

 

 

몇 년 후, 아들이 태어났다.

그리고 와이프는 나한테 눈물로 호소했다. 이제 애도 태어났는데 제발 오빠 생일도 같이 챙기면 안되겠냐고. 나는 이게 가족끼리 다 같이 즐기는 소중한 시간이라 생각한다고.

나는 싫었다. 싫었지만 와이프의 말은 틀린 데가 없었다. 단지 내 트라우마를 위해 그녀에게 상처입혀선 안된다. 알겠다고 했다.

이후 매년 와이프는 나를 위해 성대히 생일을 챙겨주었다. 내 첫 생일파티 때 와이프는 내게 고깔모자를 쓰라고 권했다가 금방 말을 거뒀다. 아마도 내 표정이 심하게 일그러졌던 모양이다.

해가 지나면서 나도 적당히 내 생일날 웃으며 분위기는 맞춰줄 수 있게 되었다.

 

 

결혼 후 본가를 가끔 갔다.

 

 

어느 날인가,

아버지가 왜 당신의 생일을 챙기지 않느냐고 나한테 화를 내셨던 날, 나는 정말로 격노했다. -아버지가 내게 어떻게 그렇게 말하실 수 있냐고. -

하지만 차마 제대로 말하지 못 했다. 아버지는 말은 거칠지만 속은 여리시다. 상처 입으실 것 같았다. 나를 보며 이 놈이 왜 이러나 하는 눈으로 보셨지만 금방 잊어버리셨다.

개인적으로 나는 아직까지 그 날 내가 무슨 표정을 지었을지 궁금하다.

 

 

그 이후 나는 부모님 생일 때마다 와이프와 함께 가서 밥을 먹고 온다. 와이프는 상다리가 부러져라 요리를 준비하고, 아들 놈은 가서 재롱피우는 게 효도다. 나 역시 가서 웃고 떠들긴 한다.

아버지의 선물은 돈으로 주는 게 편하다 하셔서 봉투로 드린다. 엄마 생일 때는 필요없다 하지만 아버지와 형평성을 맞추기 위해 받아주시는 듯 하다. 엄마는 본인 생일 때 받은 돈은 내게 슬쩍 돌려주겠다 몇 번 말했지만 웃으며 사양했다.

 

 

그리고 얼마 전 내 생일이었다.

 

 

와이프는 전날부터 요리를 하고 케이크를 특별 주문했다. 다섯 살 난 아들이 자기가 요리했다고 빵을 보여주며 자랑했다. 그리고 녀석은 알록달록한 생일모자를 가져왔다. 와이프는 내 눈치를 보며 말했다.

 

 

- 어린이집서 배웠나봐. 아빠 생일이라니까 꼭 모자 써야 한다길래.-

 

 

나는 아이를 향해 웃어주고 모자를 썼다. 와이프도 웃었다.

그리고 두 사람은 불을 끄고 내게 생일 축하 노래를 불러주었고 선물도 주었다.

솔직히 기뻤다.

 

 

생일날 아침에는 장모님이 전화하시고 용돈을 주셨다. 점심에는 처형이 상품권을 보내주었고 오후에는 장인어른께서 전화를 주셨다. 감사하다고 말씀드렸다. 메일함을 열어보자 생일쿠폰과 각종 메일들마저 내게 생일을 축하해주었다.

 

 

그날 밤, 오늘은 오빠 생일이니 와이프가 애를 재우겠다고 데려가 모처럼 자유를 즐겼다.

늦은 밤에 좋아하는 영화 하나 걸어두고 맥주를 홀짝이던 중 엄마한테 전화가 왔다

에이 하는 심정과 혹시 하는 심정이 뒤섞인 채 전화를 받았다

원래 엄마랑 사이가 좋아 일주일에 두 세 번씩은 종종 전화로 시시콜콜한 이야기를 나누곤 한다.

전화한 이유는 카톡 다루는 법 질문이었다. 스마트폰을 다루는데 엄마는 늘 골치를 썩인다.

통화 끝에 엄마는 여상스럽게 말했다.

 

 

-별 일 없지?-

 

 

나는 0.1초의 망설임도 없이 별 일 없이 잘 지낸다고 말했다. 그리고 그렇게 답한 내 자신이 대견했다.

전화를 끊었다. 나는 영화를 다시 켜는 것도 잊은 채 오늘 하루 통화목록을 뒤져보았다. 회사 통화 몇 개를 제외하곤 가족 중에선 와이프, 장모님, 처형, 장인어른, 엄마. 가 떴다.

한참 그러고 있다 보니 문득 깨달았다. 지금이라도 엄마에게 전화가 오길 기다리고 있다는 사실을.

죄 없는 폰을 소파에 집어던졌다.

 

 

얼마 전, 본가에 가 짐을 정리하다 그 반지가 나왔다

순은답게 오래 되어 거뭇거뭇해져 있었다. 나는 보자마자 반지를 서랍에 도로 처넣었다. 연락이 끊어지고도 10년 정도는 전화번호를 기억하고 있었지만, 이제 기억이 나지 않는다. 잠시 기억을 더듬다 문득 옛날 여행 갔던 사람들끼리 인터넷 상에서 카페를 만든 기억이 떠올랐다..

그 카페를 십수년만에 들어가보았다휴면상태인 카페는 여전히 누나가 카페지기였다.

다른 사람은 정회원이었고, 나는 특별회원이었다.

 

 

이 글은 와이프에게도, 부모님에게도, 친구에게도 말할 수 없겠지.. 그래도 누구에게라도, 여기에라도 말하고 싶었다.

 

 

미안해.

정말 미안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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