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돌려받지 못한 돈, 그리고 어린 시절 상처 받은 나를 돌이키며
게시물ID : gomin_1796878짧은주소 복사하기
작성자 : 익명YWFhZ
추천 : 5
조회수 : 851회
댓글수 : 3개
등록시간 : 2022/10/20 19:22:40
아버지께서 생전에 친척 어른께 빌려주신 돈이 있습니다.
가게를 한다며 빌려간, 1억이 넘는 아주 큰 금액...
시간이 흘러 불의의 사고로 아버지께서 세상을 떠나시고 제가 그 권리를 받게 되었어요.

아버지 사후에 크게 목돈이 들어가는 일이 생겼고, 돈을 돌려달라 빌며빌며 부탁해서 겨우 2.5할 정도 돌려받았어요.
그리고 몇 년이 또 흘렀고, 이번에도 목돈이 필요해져서 돌려달라 요청했으나 코로나로 가게가 힘들다며 거절당했죠. 
또 시간이 흘러 이번에도 목돈이 필요했고, 마침 상대측이 가게를 얼마 전에 정리했다는 걸 알게됐습니다.
가게를 정리했으면 권리금이든 뭐든 돈이 생겼을텐데 왜 갚지 않는 거지? 연락을 주지 않았지? 하는 의문이 들었지만 어찌 되었든 저희도 이번에 정말 급하게 돈이 필요하니 돌려달라 요청드렸고...
당장은 힘들어서 돈이 없으나 마련은 해보고 조금이라도 갚겠다, 며칠 내로 연락주겠다는 약속을 들었습니다.
하지만 예상하셨듯이 연락이 오는 일은 없었고, 그 뒤로 며칠간 제 전화는 안 받고 계십니다.

정말 돈이 급하게 필요하다 사정을 설명 드렸는데 어째서 저렇게 무책임하게 나오는가에 대한 분노가 일었어요.
그러다 저번 통화에서 말씀하신 부분이 문득 떠올라 더 큰 분노가 끓어올랐습니다.
요즘 이러저러해서 정신이 없고 힘들고 손주 학교도 보내고 챙겨주느라 힘들다는 말이었습니다.
친척 어른이 키우는 중인 손주... 저한테는 5촌 조카에 해당합니다만, 사실 거의 본 적이 없어서 잘은 모르는 그런 아이입니다.
저는 마지막으로 본 것이 그 아이가 7~8살 무렵이라 마냥 어린 아이로 기억하고 손주 돌보느라 고생이 많으신가보네 막연히 생각했습니다.
그러다 문득 깨달은 것이, 제가 본 이후로 7년 정도 시간이 흘었으니 지금쯤 중학생이 되었을 것이라는 것. 그리고 아직도 할머니 손이 필요한 나이인가? 생각하다 떠오르는 소름끼치는 기억.

제가 14살이던 무렵, 저희 어머니는 건강이 급격하게 악화되셨어요. 명절에도 어딜 나갈 수 없는 몸이라 어머니를 제외한 식구만이 추석에 큰집에 가게 되었습니다.
어른들께 인사를 드리고 오빠를 따라 사촌 오빠방에 들어가려는 제 팔목을 누군가 붙잡았습니다.
바로 본문의 그 친척 어른이었습니다. 어리둥절한 제게, 그 분은 이렇게 말씀하셨습니다.
"니 엄마가 아파서 안 왔으니까 니가 대신 일해야지."
14살이던 제게 그렇게 말하던 그분. 오빠는 놀아도 되지만 저는 그러면 안 되는 아이였습니다. 엄마 대신 일을 해야 하는 아이였습니다.
저는 하루종일 부엌에서 여자 어른들과 함께 해야 했습니다.

그 일은 아직도 저에게 큰 충격이자 트라우마로 남아있는 일이었습니다.
물론 그 일이 끝이 아니었고, 그 분은 종종 저희 집에 찾아와서도 집안일에 미흡한 저를 혼내시며 "엄마가 아프면 니가 아빠랑 오빠를 잘 챙겨야지!"하며 윽박을 지르는 일도 있었습니다.
저희집에서 가장 어린 저에게 말이에요.

그랬던 그 분이 저에게 하소연을 하신 겁니다. 중학생쯤이 되었을 본인의 손주를 챙기느라 힘들다고요. 똑같이 중학생이던 저에게는 제대로 집안일도 못 해낸다며 윽박을 지르던 그 분이요.
그 사실을 깨닫자 숨이 가빠지고 가슴이 미어지고 눈물이 터져나왔습니다.
울며 남편에게 하소연했어요. 그 사람은, 14살의 나에겐 그렇게 모질게 굴어놓고 자기 손주는 부둥부둥 예뻐서 어쩔줄 모르는 걸까. 그 시절 나에게 그랬던 일은 까맣게 잊었으니 나에게 그런 말을 아무렇지도 않게 할 수 있는 거겠지?

그리고 마음이 차갑게 식어갔습니다.
아버지의 돈은 어떻게든 받아낼 거예요.
그래요. 그 분은 늘 저를 만만하고 하찮게 여기셨지요. 그러니 돈을 돌려달라는 제 부탁에도 무시라는 방식을 취할 수 있으셨겠지요.
아버지께서 가족을 많이 아끼던 분이시라 최대한 아버지의 의사를 존중해 온건한 말과 방식으로 반환을 요청드렸지만, 이대로 저를 무시하는 방침으로 나온다면, 저도 착하게만 받아낼 생각은 없어요.

어린 시절 다쳤던 마음을 치유 받기 위해서라도 꼭 받아내겠습니다.
그런 마음을 담아 지금의 기분을 언제까지고 기억하기 위한 글이었습니다.
그리고 이름 모를 누군가들에게 하소연하고 싶었어요.
두서 없이 써내려가느라 정신 없고 재미 없는 이야기지만, 여기까지 읽어주셔서 정말 감사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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