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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련군이 조선 독립 운동을 탄압한 일본인을 처벌했다
게시물ID : humordata_1797187짧은주소 복사하기
작성자 : 대양거황
추천 : 12
조회수 : 2213회
댓글수 : 12개
등록시간 : 2019/02/03 13:40:4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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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반도에 살던 일본인들이 1945년 8월 15일, 일제가 패망하자 자기들 나라인 일본으로 떠났는데

그 과정을 담은 <조선을 떠나며>라는 책이 있죠.


이 책을 보니, 중간에 이런 내용이 있더군요.


1945년 8월 7일 소련이 일본에 선전포고를 하고 일본 지배하의 만주를 160만 대군으로 공격해서

불과 11일 만에 일본 관동군 70만을 항복시키고 


그 여세를 몰아 북한 지역까지 점령해서 현지의 공산주의자들을 조직하여 인민위원회를 만들었는데,

이 인민위원회가 1919년 조선의 독립을 외친 3.1운동을 탄압했던 일본인들을 찾아내 처벌했다는 것이었습니다. 


아래는 그 내용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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북한에서는 소련 군정이 식민 지배의 실체였던 (일본) 군인, 경찰, 관료들을 압송 투옥 억류하면서 지배 네트워크 자체를 해체해버렸다. (이 일본 출신들을 이용한) 노동력 확보에 열을 올리던 소련군은 이들을 북한 내 다른 지역이나 만주 사할린 소련 등지로 끌고 갔고, 북한에 새롭게 대두한 조선인 정치세력은 구 지배세력에 대한 단죄를 남한에 비해 뤌씬 강도 높게 실시할 수 있었다(조선을 떠나며 125쪽)./


(당시) 신의주 형무소와 평양 형무소에 수감되었던 일본인들의 형량과 유죄 선고 이유는 이렇다.


야마시타 히데키(징역 5년 확정)

다년간 법관으로서 조선인을 압박하였고 특히 조선인 사상범(공산주의자, 독립운동가)에 대해 사형, 무기징역 등 가혹한 판결을 내린 악질 전직죄.


하마다 이치조(제 1심 무기징역)

20년 전 국경경찰로 근무 중 누누이 경찰공로장을 받은 것은 신성한 조선 독립을 위한 혁명 분자를 박해한 것으로서, 이것은 증오할 만한 살인죄가 됨.


이나다 교이치(제 1심 징역 10년)

1919년 조선 독립만세 사건 시 소방대원으로 정주 시내의 경계를 담당하였는 바, 곳곳에서 소동 중인 조선인 수명을 살해한 것은 조선 독립 혁명가에 대한 살인죄가 됨(조선을 떠나며 128~129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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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제까지 북한 지역에 들어온 소련군을 가리켜 약탈이나 강간 같은 나쁜 짓들만 저질렀다고 알려졌죠.

물론 소련군이 그런 비행을 저지른 것 자체는 사실입니다.


그러나 소련군이 설치한 인민위원회에서 저렇게 조선 독립 운동을 탄압한 일본인들을 처벌했다는 것과

그런 일을 소련군정이 승인한 점으로 본다면,

최소한 소련군이 조선 독립에 도움을 주었다는 점은 인정해야 할 것입니다.


같은 시기, 남한에 들어왔던 미군이 조선 독립 운동을 탄압한 일본인들을 단 한 명이라도 처벌했던 가요? 아니면 조선의 독립 운동을 가리켜 저렇게 신성하다고 칭찬이라도 했던 가요?


아니었습니다.


오히려 제가 알기로 당시 미군정을 이끌던 미군 사령관이란 작자는 조선인들을 가리켜 너희도 일본인들과 똑같이 살인 강간 강도질을 저질렀다고 욕설을 했었죠. 


또, 여태까지 냉전 반공 체제에 가려져서 그렇지 일제 패망 직후 남한에 들어온 미군들도 조선인들을 상대로 상당한 행패를 부렸습니다.


그런 미군정에 비하면, 소련군이 조선 독립을 위해 약간이나마 더 나았다고 생각합니다.  

출처 조선을 떠나며/ 이연식 지음/ 역사비평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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