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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의 슈퍼맨, 아기장수
게시물ID : humordata_1797388짧은주소 복사하기
작성자 : 대양거황
추천 : 7
조회수 : 3800회
댓글수 : 2개
등록시간 : 2019/02/04 16:10: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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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오늘날 전 세계적으로 가장 유명한 슈퍼 히어로는 단연 슈퍼맨입니다. 1934년 미국에서 만화로 나온 슈퍼맨은 초인적인 능력을 갖추고 악을 물리치는 슈퍼 히어로의 원형을 만들었습니다. 

 

  슈퍼맨은 글자 그대로 인간을 뛰어넘은 초인간이기 때문에, 눈으로 빔을 발사하거나 총탄이나 포탄에 맞아도 다치지 않으며 커다란 산을 들어 던지는 일도 가능합니다. 하지만 무엇보다 슈퍼맨의 가장 큰 특징은 바로 아무런 비행 도구나 기계가 없이 혼자서도 자유자재로 마음껏 날아다닌다는 점입니다. 하늘은 물론이고 심지어 지구를 넘어서 우주에까지 날아갈 수 있는 능력자가 바로 슈퍼맨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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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슈퍼맨을 다룬 영화 맨 오브 스틸의 장면들. 슈퍼맨의 가장 큰 특징은 하늘을 자유자재로 날아다닐 수 있다는 점입니다.)



  그런데 놀랍게도 슈퍼맨이 나오기 400년 전, 조선에서 하늘을 날아다닐 수 있는 사람의 이야기가 보고된 바 있었습니다. 출처는 국가에서 공식적으로 만든 기록인 조선왕조실록의 연산군일기인데, 이 연산군일기의 1503년 6월 15일자 기사에 의하면 이런 내용이 실려 있습니다.


  오늘날 평안남도인 용강(龍岡) 지역에 사는 임동(林同)이라는 백성이 같은 평안남도 안주(安州)에 사는 사람인 김덕광(金德光)의 아내인 방금(方今)이라는 여자가 이상한 아이를 낳았다고 고발을 해왔던 것입니다. 


  고발의 내용에 의하면, 방금은 사내아이 한 명을 낳았는데 그 아이의 모습은 마치 부처와 같았으며, 아이가 나온 곳이 배꼽이었으며, 태어난 아이는 어머니 품을 떠나 무려 공중으로 날아갔다고 하였습니다. 그리고 믿어지지 않게도 방금이 낳은 아이는 갓 태어난 직후에 공중을 날아다니면서, “나는 앞으로 나이 18살에서 19살이 될 때, 나라를 차지하기 위해서 전쟁을 벌이겠다!”라는 말을 했다고 합니다. 


  조선 시대에 왕족이 아닌 한 개인이 나라를 가지려 전쟁을 벌이겠다는 말은 곧 반역죄였기 때문에, 저 보고를 듣고 놀란 조정에서는 서둘러 안침(安琛)이라는 관리를 안주 지역에 보내서 아이를 낳은 당사자인 김덕광과 방금을 심문하였습니다. 하지만 공중으로 날아갔다는 그 아이는 어디에서도 찾을 수가 없었습니다. 아마 하늘로 날아가서 부모의 곁으로 돌아오지 않고, 그대로 사라졌던 모양이었습니다. 


  오늘날의 사람들에게는 부처와 같은 모습으로 태어난 아이가 나라를 빼앗기 위해 전쟁을 벌인다는 말이 다소 이상하게 들릴지도 모릅니다. 그러나 불교에서는 전륜성왕(轉輪聖王)이라고 하여, 쇠와 구리와 은과 금으로 만들어진 네 개의 수레바퀴를 굴려 세계를 정복하고 평화를 가져다주는 부처를 믿고 있습니다. 그래서 불교를 독실하게 믿으면서 영토를 확장한 업적을 세운 신라의 진흥왕(眞興王 생몰연도 526~576년)은 자신이 아예 인간의 모습으로 나타난 전륜성왕이라고 주장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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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불교에서 언급되는 전륜성왕은 강력한 힘으로 사방을 정복하여 세상의 평화를 가져다 준다는 일종의 구세주로 믿어져 왔습니다.)



  한편으로 생각해 본다면 저 기사가 기록된 1503년은 연산군이 중종반정으로 쫓겨나기 3년 전이라, 연산군의 폭정이 극에 달했던 때였습니다. 아마 그런 폭군 밑에서 고통을 받는 백성들 사이에서 부처와 같이 생긴 영웅이 나타나서 폭군을 몰아내고 나라에 평화를 가져다주기를 바라는 소망이 확산되면서 저렇게 하늘을 날아다닌다는 아이의 민담이 전해지게 된 것이 아니었을까요?


  그리고 이런 식으로 신비한 능력을 가진 아이가 악과 싸워 승리하고 세상을 구원한다는 이른바 ‘아기장수’ 전설은 국가공식기록인 조선왕조실록 이외에도 야사나 민담에서 흔하게 전해 내려옵니다. 대부분은 어린 아기의 겨드랑이에 날개가 달려 공중을 날아다니자, 이 아이가 신기한 힘을 믿고 나라에 반역을 했다가 역적이 되어 온 가족이 함께 죽을 것을 두려워한 부모가 그 날개를 자르거나 떼어내자 아이가 피를 흘리며 죽고, 부모는 슬퍼하게 아이를 몰래 묻었다는 내용들입니다. 


  이러한 아기장수 설화들 중에는 ‘삼별초(三別抄)’라는 특수부대를 이끌고 제주도에서 원나라와 고려 정부군에 맞서 최후까지 싸웠던 장군인 김통정(金通精 ?~1273년)에 관한 이야기도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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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몽골군과 고려 정부군에 맞서 싸웠던 삼별초의 모습을 그린 그림. 김통정은 그런 삼별초의 지휘관이었고, 민간 전설에서 최초로 그 이름이 아기장수라고 알려진 인물이기도 합니다.)



  제주도에서 전해지는 설화에 따르면 김통정은 태어날 때부터 용처럼 비늘이 돋아난 몸을 하고서 겨드랑이에 날개가 달려 하늘을 날아다녔고, 자라서는 화살을 쏘거나 안개를 피우는 도술을 부려서 토벌하러 온 원나라와 고려 정부군도 좀처럼 이기지 못했습니다. 


  그런데 김통정의 부하인 ‘아기업개’가 고려 정부군 장수인 김방경(金方慶 1212~1300년)에게 “김통정의 목에 난 비늘이 벌어진 틈새를 노려 공격하면 그를 죽일 수 있다.”라고 약점을 가르쳐 주었고, 김통정이 자고 있는 사이에 아기업개의 안내를 받고 몰래 다가간 김방경이 그대로 김통정의 목에 난 비늘이 벌어진 틈새를 노려 칼로 내리치자 김통정은 목이 잘려 죽었다고 합니다.

 

  그나저나 하늘을 날아다니면서 초인적인 힘으로 악을 제거하고 세상에 평화를 가져다주는 영웅의 모습이 16세기의 조선에서 오늘날인 21세기까지 시대를 넘어 이어지고 있다는 점은 참으로 놀랍습니다. 아마 사람들이 꿈꾸는 영웅의 이미지는 예나 지금이나 별반 다르지 않다는 점을 보여주는 것이겠지요?

출처 한국의 판타지 백과사전: 91~93쪽/ 도현신 지음/ 생각비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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