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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태된 게임 프로그래머
게시물ID : gomin_1797870짧은주소 복사하기
작성자 : 익명aGhna
추천 : 3
조회수 : 1212회
댓글수 : 3개
등록시간 : 2023/01/16 19:36:29
나는 게임 프로그래머다.

 

아니 게임 프로그래머였었다.

 

게임이 좋았다. 내 인생은 바라볼수록, 생각 하면 할 수록 암울했지만, 적어도 게임을 플레이 할 때는 그렇지 않았으니깐. 게임으로 도망가면 적어도 나는 살 수 있었다.

 

죽고싶다고 생각한건 10살때부터 그랬다. 나를 도와줄 사람들은 아무도 없었고, 학교에도 없었고, 집안에도 없었다. 게임은 유일한 도피쳐였다.


사람이 싫다. 사람이 무섭다. 사람을 증오한다. 하지만. 사람은 사람없이 살 수 있게 만들어지지 않았다. 꼬우면 뭐... 

 

나는 사실 진작에 죽었어야 하는 인생이었다. 그러지 못한건 나의 생존 본능이 너무나도 강렬했던 것과, 내가 상상이상으로 겁쟁이었다는 것이다. 목을 매달았을 때, 그 압박감과 사소한 고통이 너무나도 강렬했다.

 

죽지도 못하고, 살아야만 했던 나는 적어도 스스로 살아 남기 위해서 돈은 벌어야 했다. 그래서 나를 살려줬던 유일한 도피처에 가까워지고자 게임을 만들기로 했다. 살아 남는데 적어도 의미상으로는 나름 내 인생에서 멋진 선택을 한 것 같았다.

 

하지만 나의 우울감은 오래되었다. 사람에 대한 본능적인 적개심은 사라지지 않았다. 나의 사회생활은 순탄할리가 없었다. 

 

약을 먹기 시작했다. 우울증으로. 적어도 약을 먹는 순간에는 하루에 몇시간씩 자살을 검색하는 강박적인 충동은 자제할 수 있었다. 하지만 몇주마다 약을 먹기 위해서 찾아가는 그 순간이 너무나도 괴로웠다. 나는 면담이 필요한 게 아니라 약이 필요한데.

 

약을 먹는다고 내 삶이 마법적으로 정상으로 되돌아 가지 않았다. 여전히 동료들과 나는 몇겹의 소통할 수 없는 벽이 존재했고, 나는 그 벽을 극복하려고 노력하다가 이내 그만 두었다. 

 

회사를 다니면서 남의 게임을 만들고, 남의 게임을 서비스하고 유지보수하는 일은 나쁘지 않았다. 완전히 이상적이진 않더라도, 그래도 할 일이라는 것과 나를 필요로 하는 것이니깐. 하지만 한 회사를 다니는 기간은 그리 오래 되지 못했다. 여러 이유를 댈 수 있지만. 사실 그건 전부 내 탓이다.

 

회사를 그만두고 중간 중간 공백기에는 내 게임을 만들어 보겠다고 발광을 해 보았다. 경험적인 측면에서는 이것도 값지고 유의미한 활동이겠지만, 사람과의 접점이 없는 내가 혼자서 게임을 만드는 행위는 완벽한 무인도에 스스로 걸어 들어가는 꼴이었다. 자연스럽게 집에 고립되고, 이내 약을 받으로 밖으로 나가지 않게 되자, 그대로 자살 충동이 나를 덮쳐왔다. 

 

 단순히 자살충동이 문제인게 아니다. 자살 충동이 드는 시점까지 가는 과정에서 다른 정신적인 인프라가 모두 무너져 버리는것이 더 크다. 제시간에 일어나고 밥을 먹고, 주변을 정리하고, 오늘 할 일에 몰입하고 성취를 기뻐하고 나를 아끼고 하루를 영위하는 그 일상 자체가, 모두 무너져 버리고 하루종일 술을 들이키고 어떻게 하면 편히 갈 수 있을까를 광적으로 갈망하는 나 자신을 바라보는 것은, 너무나도 끔찍했다.

 

 정신을 차리고 다시 약을 받아와서 먹고, 어디 걸어 두었던 로프를 치우고 코딩 테스트를 준비 하면서, 사실 내가 그렇게 프로그래밍에 재미를 느끼는 사람이 아니라는 것을 깨닫게 되었다. 나는 게임이 좋았던 거지, 그 게임을 만드는 도구까지 좋아하지는 않았던 것이다. 이러면 안되는데, 솔직하지만 사실 이래서는 나는 내 커리어를 오래 유지 할 수 없다는 것을 깨닫게 되었다. 나이를 먹게 되고, 내 몸은 예전과 같지 않고, 머리는 점점 굳어져 가는 것을 느끼게 되었다. 우울감을 피하기 위해서 증량했던 약은 나를 하루종일 멍하게 만들었고, 졸리게 만들었다.

 

 나는, 나의 꿈들이, 즉 자본주의에서 성공하고, 다른 사람들을 용서하고 사랑을 받을 수 있도록 성장하고 싶었던 모든 희망들이 사라져 가는 것을 깨닫게 되었다. 나는 여전히 극단적인 외톨이이고,  나는 그렇게 해서는 안될 물경력과 잦은 이직으로 내 커리어를 스스로 부셨고, 더욱더 최악인 것은, 이제 게임이 재미있지가 않다는 것이다.

 

 도저히 내가 재미있는 게임을 만들수 있다는 생각이 들지 않았다. 아니 사실 그 이전에 뭘 만들고 싶은건지도 모르겠다. 분명 약으로 멍한 나일 터인데, 나의 자살충동은 그럼에도 불구하고 사라지지 않았다.

 

 그만둘까?

 

 이제 다른 걸 해야 하나? 하지만 그러기에는 모아 둔 돈도 별로 없고, 내가 뭘 좋아하는지, 뭘 잘하는지도 여전히 모르겠다. 자기 개발서를 읽을수록, 유튜브를 전전하면서 그 많은 동기부여 영상들을 볼 때 마다 내가 더 쓰레기 같이 느껴졌다.

 

 죽고 싶다. 약을 더 늘려야 하는건지 아니면 이미 5~6번은 바꾼 상담 선생님을 또 찾아 다녀야 하는지, 아니 도대체 뭐가 잘못된건지? 잘못된건 지금까지 살아 있는 나 자신이 아닐까? 

 

 나의 삶의 하향곡선에서, 모든것이 연쇄적으로 점점 무너져 내리는 것에, 저항할 힘도 없고 이유도 찾지 못하는 이 상황이, 마치 인생이라는 크고 불합리하고, 재미 없는 게임을 억지로 하는 느낌을 받았다.

 

 이 너무나도 엉키어 버린 나의 상황에서 나는 글을 쓰면서 절규했었다. 그리고 글을 마친다.

 

 


 

 

출처 우울증 약을 먹었음에도 우울한 나 자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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