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큐르포
<언더그라운드(Underground)> 1화*본 내용은 2006~2007년 지하철 공익요원을 하며 겪었던 경험담입니다.
<The metro of the dead>
일요일 저녁이었다.
비상전화로 지하철 승강장에 사람들이 몰려서 혼잡하다는 신고가 들어왔다.
후임과 함께 재빨리 내려가보니 승강장은 100여 명의 할머니, 할아버지들로 아수라장이었다.
당시 스크린도어가 없었던 승강장이어서 끔찍한 인명사고로 이어질 수도 있는 상황이라 노인들을 진정시키기 위해 호루라기를 불고 소리를 쳐봐도 노인들은 들은 척도 하지 않았다.
노인들 몇 분을 붙잡고 물어봐서 사건의 개요를 알게 되었다.
서울의 'M교회'라는 대형교회에서 '행사'를 하는데 사람수가 모자를 것 같자 노인들을 동원했다.
교회측에서는 노인들에게 행사에 참여하면 5000원씩 주겠다고 약속을 했고 행사가 끝난 저녁에 지하철 승강장에서 돈 배급을 하고 있어서 혼잡한 것이었다.
100여 명의 노인들이 돈을 나눠주는 한 할아버지를 둘러싸고 '어서 돈을 내놓으라'고 아우성 치며 손을 내뻗는 모습은 좀비영화 속의 한 장면 같아 공포스러웠다.
행여나 혼잡한 상황 속에서 그 돈 5000원을 못받게 될까봐 노인들의 아우성은 점점 더 격해져 갔다.
사태안정을 위해 돈을 나눠주는 할아버지를 데리고 역무실로 향했다. 돈을 받기 위해 모였던 노인들은 이제 우리 주위를 에워쌌다.
노인들은 '내 돈 달라고', '그 사람 데려가면 내 돈 어떻게 받냐고' 소리를 지르며 계단을 올라가는 우리들을 뒤에서 잡아 끌었다.
마치 여고생 팬들으로부터 톱스타를 경호하는 느낌을 받았다.
그 중 한 할머니는 끈덕지게 틈을 파고 들어와 할아버지 옷자락을 붙잡고 주저앉으며 '내 돈 달라'고 소리쳤다. 할아버지가 가방에서 5000원짜리를 꺼내들었다가 떨어뜨리자 할머니라고는 믿기지 않는 속도로 재빨리 주워 들고는 사라졌다.
경찰들이 출동하고, 자꾸 혼란을 조장하면 돈 배급하는 할아버지를 연행해가서 돈을 못받게 하겠다고 엄포를 놓고 나서야 노인들은 진정되었고, 노인들 줄을 세워서 차례로 돈을 나눠주었다.
돈을 다 나눠주자마자 노인들은 감쪽같이 사라졌다.
돈 5000원의 위력을 새삼 깨달은 날이었다.
나중에 알고보니 그 노인들이 동원된 행사는 "FTA 찬성집회"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