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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학여행 갈때 학교 쨀거라고 했던 고3 학생이에요.
게시물ID : gomin_1798948짧은주소 복사하기
작성자 : dcols
추천 : 5
조회수 : 2350회
댓글수 : 2개
등록시간 : 2023/04/30 20:58:20
그냥 울면서 하소연하는 마음로 대충 쓴 글을 생각보다 많은 분들이 보신것 같아서 당황스러웠어요.  잠깐이지만 베스트 글에도 올라갔더라고요.

댓글들도 많이 달려서 일단 설명 드리자면

1. 우선 병결도 못써요.

방금 선생님한테 병결쓰고 싶다고 말씀드리까 정말 아픈거 아니면 못쓰는거 알텐데. 저번에 수요조사할때 학교 나와야한다는 말에 알겠다고 대답하지 않았냐, 무슨 기분이고 뭘 원하는지 아는데 규칙대로 했음 좋겠다는 대답을 들었습니다.

사실 제가 쓴 글 다시 보려고 들어온것도 누구라도 이 일에 대해 아는 사람들을 보고 싶다는 생각으로 울면서 들어온거에요.

2. 그냥 아프다고 거짓말 하면 되지 않냐.

저는 거짓말을 못합니다. 성격이 정직한건 아니고 어릴때부터 정말 작은거라도 거짓말 하면 바로 맞고 부모님이 항상 해오던 말이 무슨일이 있어도 거짓말은 하면 안된다였습니다.

그래서 곧 죽어도 거짓말은 못합니다.

3. 부모님께 상황을 말씀드려라.

저는 가족들과 그다지 친하지는 않습니다.

예전에는 좀 친했던것도 같은데 중2 이후로는 좀 어색해졌습니다.  

4.그냥 진료서를 떼서 가져다 드리면 되지 않냐. 애초에 안 친해도 이런 얘기는 할수 있지 않냐.

이게 중2때 있었던 일이랑 연관되는 건데요… 얘기가 좀 많이 길어요. 귀찮으시면 5번으로 건너뛰세요.

우선 말씀드리자면 저는 일단 정신적으로 건강하지는 않습니다. 전문적으로 진단을 받은 적은 없지만 확실합니다.

그야 정신 멀쩡한 사람이 남 앞에 나서기 싫은것 때문에 스트레스 받아서 자해를 하지는 않으니까요.

초등학교때는 평범하게 활발했습니다. 친구들이랑 두루두루 어울리고 뛰어놀았어요. 다만 중학교 적응을 제대로 못한것 같습니다.

처음으로 겪는 제대로된 시험. 그 시험으로 결정지어지는 내가 갈수 있는 고등학교. 처음으로 치룬 중간고사 성적의 처참한 결과.

중1때는 자유학기제인가 학년제 때문에 2학기에만 시험을 봤어요.  엄마가 화낼줄 알았지만 엄마는 웃으면서 얘 역사가 30점이라고 아빠한테 말했죠. 아빠도 웃었어요.

저는 내신 성적 180후반대를 유지하고 있던 언니를 더 대단하게 보기 시작하며 똑같이 웃었고요.

근데 괜찮은게 아니었던거죠. 알아서 잘하는 언니가 있으니 저도 다음에는 잘할거라고 생각했던건가봐요.

기말고사부터 분위기가 안좋았어요. 공부좀 하라고 본격적으로 말하기 시작했고요.

수행평가가 내신 반영 비율이 더 높잖아요. 그래서 과목마다 달에 한번씩은 있는 수행평가때 본격적으로 스트레스를 받기 시작했어요.

솔직히 노력했다고는 못해요. 암기도 제대로 못했으니까.  근데 저도 변명거리 있어요. 생각없이 안한거 아니에요.

발표 수행평가가 많았어요. 조용한 교실에서 교탁 앞에 나가 내가 만든 피피티로 발표를 해야 했어요.

엄마가 시험에 신경좀 쓰라고 말했던 기말고사부터 내가 만들어낸 결과물을 누군가에게 평가받는게 무서워졌어요.

원래부터 사소한것 하나하나 내가 고른것들. 예를 들어 폰케이스를 산다고 해도 내가 고른 디자인은 별로라고 하던가 하는 언니도 한몫 한거 같아요.

그때는 몰랐지만.  아무튼 처음으로 한 국어 발표 수행평가에서 한마디도 못하고 울면서 들어간 뒤 집에 돌아와서 잠도 못자고 생각했어요.

계획서 보면 발표가 많던데. 내가 아무리 노력해도 발표때문에 어차피 망할텐데 무슨 소용이야? 하는 생각이 좀 강했어요. 지나칠 정도였죠. 그때는 그게 세상 전부인줄 알았죠. 모두가 그렇게 말했으니까.

그러다가 중2 1학기 말쯤 체육수행평가가 하나 진국인게 있었어요. 모둠별로 노래에 맞춰 간단한 체조 동작을 만들어 오라는거에요. 그냥 춤추는거죠. 발표래요. 애들 다 보는 앞에서.

준비 기간은 한달이었고 한달 내내 그걸로 스트레스 받다가 수행평가 당일 등교 직전 터졌어요.

짐 싸다가 빠트린 가위보고 홀린듯이 들어서 손목을 그었어요. 아파서 깊게는 못했어요.  피도 안난줄 알았는데 학교에서 보니까 길게 빨간 줄이 그어져있더라고요. 그거 보고 또 그냥 긁었어요.

아픈것도 신경 안쓰고.  그러다 동그랗게 살이 패였어요. 피도 많이 났어요. 피묻힌채로 돌아다닐수는 없으니 화장실에서 물로 씻었는데 따끔따끔한게 뭔가 편하더라고요.

한번이 어렵지 두번이 어려울까요. 그 뒤로 스트레스 받을때마다 그엇어요.

그러다 중2 여름방학 들켰고 엄마가 방까지 따라와서 뭐냐고 물었어요. 침대에 앉아서 아무말도 안하고 있는데, 세상에. 그날이 아빠 휴일인걸 잊고 있었어요.  아빠까지 들어와서 엄마랑 아빠가 제 양 옆에 앉았어요. 갇힌거죠.

뭘로 했녜요. 왜 했냐고 자꾸 캐물어요. 10분정도 대치하다가 못견디겠어서 울면서 뒤도 안보고 바닥에 가위 던지고 놀러나가서 비어있는 언니방에 들어가 문을 잠갔어요.

문을 따는 소리가 들려요. 숨도 못 쉬었어요. 금세 열린문으로 아빠가 빗자루를 들고 들어왔어요. 일어나라고 손목 잡아 끌다가 제가 말없이 버티니까 그냥 앉아있는채로 허벅지를 때렸어요. 엄마 말로는 위험하게 가위를 던진거 때문에 그랬다는데 모르겠어요.

나흘동안 허벅지에 자국이 안없어졌어요.  이후로도 연관된 자잘한 일이 여러번 있었고 이젠 학교에서 거의 말도 안하게 되었어요. 사람이 무서워서 말을 못하겠어요.

3학년으로 넘어가는 시점에 코로나가 터져서 그 상태가 고착화된채로 지금이 되었죠.   말하는게 무서워서 혼자 병원도 못가요. 부모님이랑 진지한 얘기로 엮이면 또 어떻게 될까봐 무서워요. 고등학교 입시로 또 일이 있었어서 더 그래요.

무서운게 너무 많아요.

5. 그냥…그냥 아무것도 못하겠어요.

이건 정말 모르겠어요. 예전엔 괜찮았던 일들이 괜찮지가 않고 좋아했던 것들이 아무런 감흥도 가져다주지 않아요.

그냥 20살 성인 되면 죽을까 하면서 하루하루 살아가다가도 내가 책임지는 작은 생명을 보며(애완 뱀) 그래도 얘 늙어서 죽는건 봐야지 하고 아침 이불속에서 몸을 일으키고.

뭐라도 똑같은 일상에서 벗어난 일을 겪어보고 싶었어요. 진심으로 즐거움이라는 감정을 느낀게 마지막으로 언제인지도 모르겠어요. 그래서 수학여행이 그리도 가고싶었어요.

언제인지도 기억 안나요. 무슨 일 때문이었는지도 모르겠요. 저는 울고 있었고 엄마는 한숨을 쉬며 일단 쓰레기나 버리고 오라고 했어요.

모자를 주워 쓰고 잠옷으로 입는 낡은 반바지와 바람막이 한장 걸친 채 슬리퍼 직직 끌며 내려가 쓰레기장에 갔어요.

그리고 충동적으로 집이랑 반대방향으로 뛰어갔어요. 앞 일 따위 전혀 생각하지 않은 선택이었어요.

익숙한 길을 따라 가까운 공원길을 걷고 점점 낯설어지는 풍경속 불안감이 서서히 차오르기 시작했지만 이미 쓰레기 버리기에는 너무 오랜 시간이 지나버린 상태였죠. 집에 있을 엄마가 더 무서웠어요.

핸드폰도, 조금의 돈도 없는 상황 속 그래도 길은 안 잃으려고 한쪽 방향으로만 걸었어요. 머리 꼭대기 걸려있던 해가 서서히 기울며 노을이 지기 시작해요.

다리는 끊어질듯 아프고 슬리퍼 속 발바닥에는 물집이 잡혀있고 걸으면서도 계속 운 탓에 머리도 아프고 목도 말랐지만 이상하게 기분은 좋았어요.  난생 처음 겪는 후련함이었어요.

그때는 결국 4시간만에 집으로 돌아갔죠. 무서운게 너무 많아서.

너 걱정해서 가족 다같이 아파트를 돌아다녔다는 엄마의 말은 믿어야 할지 말아야 할지.

그 감각을 잊을 수가 없어요. 하면 안되는 일을 하면서 느끼고 있는 그 이상한 고양감. 그러니까 무단 결석을 하면 뭔가 더 대단한 감정을 느낄수 있지 않을까.

그래요. 도망갈거에요. 처음으로 나 하고싶은 일만 하면서 아주 짧은 시간이라도 살아보는 거에요.  그러면 좋은 방향이든 나쁜 방향이든 내 인생에 뭔가 바뀌는 점이 생기겠죠.

내가 대한민국 청소년 자살율에 반영이 되면 안될텐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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