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릴 땐 딱히 굶지는 않으니까, 추위에 떨지는 않으니까 그냥저냥 만족하고 살았고
보세 옷 사 입는 게 당연하고 브랜드 있는 옷은 사치라고 생각한 정도였다.
중학교 때부턴 확실히 가세가 기울어서, 그나마 재능이 있는 공부를 깊이 파 보기로 마음 먹었다.
과외는 언감생심이었고 학원 딱 하나 다녔는데 월 10만원짜리 작은 보습 학원이었다.
고지식한 문법 외우며 영어 공부를 해야했다.
고등학교 때도 힘들게 공부했지만 불필요한 내용 같아서 생략...
갖은 고생 끝에 명문대에 붙었다.
기숙사에 떨어져서 아빠에게 전화를 했다. 그러자 아빠는 "니가 아르바이트 해야겠네"라고 했다.
지금까지 아빠는 한번도 등록금을 대주지 않았다.
사실 가세가 기울고 난 후에는 엄마의 경제력, 생활력에만 의존해왔고, 아빠의 역할은 없었다. 이것도 자세히 말하고 싶지는 않아서 생략..
내가 어릴 때 살던 동네는 아빠의 본가였다. 난 할머니 손에 맡겨져 초등학생 때까지 컸다. 그래도 아빠가 아니었으면 할머니 슬하에서 자랄 수 없었을테니, 아빠의 역할이 아예 없었던 것은 아닌 것 같기도 하다.
명문대에 오니 대부분 서울 출신이고 서울이 아니더라도 경기권이 참 많다. 동네도 꽤나 부촌인 곳들..
내가 살던 동네는 어디인지 아무도 모른다. 딱히 대놓고 무시하는 친구는 없는 것 같다.
그런데 인터넷에서 뒤늦게 유머 게시판? 같은 곳에서 내가 살던 동네가 굉장히 낙후된, 치안이 안 좋은.. 달동네급 취급을 받는다는 걸 알았다.
우연히 갔던 봉사활동에서 나와 같은 도시 출신이라는 사람이 있길래 우리 동네를 밝혔더니 "거기 완전 달동네잖아요"라는 말까지 들었다.
어릴 때는 정말 몰랐다. 동네 애들이랑 술래잡기하며 놀고 할머니의 친구분들이신 동네 할머니들에게 인사하고 다녔을 뿐... 불량배를 본 적도 없고 신변의 위협을 느껴본 적도 없었다.
내가 살던 동네가 그 정도였구나..를 성인이 되어서야 깨닫고.. 하필 주변 동기나 선후배는 대체로 강남, 분당, 송파 이런 곳 출신이라, 아무도 뭐라 하는 건 아닌데도 내가 초라해보인다.
노력해서 그 동네를 벗어나긴 했지만, 상경은 했지만 숨 막히는 원룸에서, 집안일도 다 내가 하면서 학과 공부까지 해야한다. 그 후진 동네에서 할머니랑 살던 집이, 그래도 지금 살고 있는 원룸보단 훨씬 넓고 쾌적했는데....
할머니도 보고 싶고, 내가 주제 넘게 귀족 사회 같은
곳에 온 것 같다.
경쟁은 원래 평생 계속 되는 거지만, 내가 앞으로 경쟁을 버텨낼 힘이.. 그리고 경제력이.. 뒷받침될 지 모르겠다.
그 흔한 가족 여행도 한 4살 때? 가 본 게 마지막이다. 경제력도 경제력이지만 화목하고 유복한 가정에서 정서적으로 든든한 지지를 받는 동기들이 부럽다.
그래도 대학 공부까지 할 수 있는 나라....에 태어난 것에 감사해야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