게시판 즐겨찾기
편집
드래그 앤 드롭으로
즐겨찾기 아이콘 위치 수정이 가능합니다.
싸우려는 것이 아니야, 내 사랑아
게시물ID : readers_18009짧은주소 복사하기
작성자 : 0829
추천 : 1
조회수 : 296회
댓글수 : 0개
등록시간 : 2015/01/12 19:25:42

싸우려는 것이 아니야, 내 사랑아

 

당신이 건강한 결혼생활을 믿고 있다고 가정해봐. 당신과 당신의 배우자는 수년 동안 함께 해온 생활이 지난 지금도 아직까지도 친한 친구이자 연인이야. 당신이 스무 살 때부터 꿈꿔왔던 꿈, 즉 당신이 싱글이고 날씬했던 당시 사랑하는 연인과 함께 도심의 작은 레스토랑에 앉아 촛불을 사이에 두고 서로를 바라보는 것에 대한 상상은 현재 어느 정도 실현이 된 상태이고.

 

20년이 지났어. 당신은 20에이커(1에이커=4,050평방미터)의 땅과 농장, 아이들, 개와 말을 소유하고 있어. 당신은 당신이 그려왔던 부모의 모습과 유사한 모습을 보이고 있으며, 사랑과 책임감을 갖추는 등 사실상 모든 것을 이루었지! 디즈니랜드, 캠핑, 하와이, 멕시코, 도시 생활, 팬질 등 안 해본 것이 없는 상황이야.

 

물론 결혼 생활이 순탄하게만 흘렀던 것은 아니야. 하지만 어느 정도 잘해왔다는 자신감이 있었기 때문에 그 어떤 악몽을 꾼다 하더라도 다음의 말이 당신 남편의 입 밖으로 나올 것이라고는 상상해본 적도 없었을 거야: “난 당신을 더 이상 사랑하지 않아. 사랑했던 기억도 없는 것 같아. 나가 살기로 결정했어. 아이들은 이해할 거야. 그들도 내가 행복하길 원하거든.”

 

여기서 잠깐. 이 이야기는 당신이 생각하는 전형적인 이혼 이야기가 아니야. ‘그를 붙잡고 설득하고 말거야식의 이야기도 아니지. 이 이야기는 그저 당신의 남편이 난 당신을 더 이상 사랑하지 않는 것 같아라고 말한 이후에 당신이 그 말을 믿지 않는 그런 이야기야. 이 이야기의 결과는 과연 어떻게 될까?

 

전반적인 상황을 위해 예를 하나 들어줄게: 아이는 짜증만 내고 있어. 자신의 엄마를 때리려고 하지. 하지만 그 엄마는 반격하거나 설교 또는 체벌 따위를 하지 않아. 그저 수그릴 뿐이야. 그리고 엄마는 마치 그 짜증이 일어나지 않았던 것 마냥 자신이 하던 일을 마저 하려고 노력해. 엄마는 짜증에 대한 보상을 주지 않지. 그 짜증을 개인적인 것으로 받아드리지도 않아. 짜증의 원인과 자신이 관련되어 있지 않다고 여기기 때문이지.

 

정확히 짚고 넘어갈 점이 있어: 내 남편이 어린애처럼 마냥 짜증을 냈다는 것은 아니야. 그는 다른 것에 시달리고 있었어(다른 것은 사춘기가 아닌 중년기에 오는 상상을 초월할 정도로 골치 아픈 그 어떤 것이라고 볼 수 있어.). 이 골칫덩어리는 우리의 결혼 생활이 처음에 생각했던 것만큼 믿음직스럽게 유연해지거나 움직이지 않을 때 생기기 시작했어. 하지만 나는 우리 사이에서 발생하는 이 골칫덩어리를 아이들의 짜증에 반응할 때와 똑같이 대하기로 했어. 계속해서 나는 동일한 방식으로 우리의 관계를 다루었어. 무려 네 달 동안.

 

난 당신을 더 이상 사랑하지 않아. 사랑했던 기억도 없는 것 같아.”

 

이 단어들은 마치 주먹처럼 내게 다가왔어. 불시의 타격처럼. 하지만 어쩌다 보니 나는 몸을 숙여 그 주먹을 피할 수 있었지. 어느 정도 회복한 후에 나는 나 자신을 추스르고 못 믿겠어.”라고 말하기로 결정했어. 실제로 그랬으니까.

 

그는 놀란 듯 뒷걸음쳤지. 아마 그는 내가 통곡하거나 격분하거나 양육권 보호를 외치며 위협하는 것이라고 예상하고 있었겠지. 어쩌면 자신의 마음을 돌리기 위해 무릎 꿇고 애원하는 상상을 했을 수도 있어.

 

그래서 그랬던 걸까, 그는 나쁜 사람으로 변모했어. “이렇게 되어버린 당신의 모습이 싫어.”

 

속이 뒤틀리는 듯 한 침묵이 흘렀어. 어떻게 그런 말을 할 수 있는 거지? 그때서야 나는 싸우고자 하는 욕구에 휩싸였어. 격분. 통곡. 하지만 실행에 옮기지는 않았지.

 

그 대신 나는 침착이라는 덮개로 온몸을 휘감고 이렇게 말 했어: “못 믿겠어.”

 

보다시피, 나는 최근 스스로와 약속을 한 적이 있어. 나는 고생의 끝에 맹세를 했지. 나는 나의 개인적인 행복이 외부의 성공과 동일하다고 외치던 내 머릿속 목소리와 맞서기로 결정했어. 나는 나의 속마음이 외치던 공식이 말도 안된다고 생각했고, 내 행복에 대한 책임을 스스로 지기로 결정한 거야. 행복에 대한 모든 책임을 말이지.

 

내 남편은 나의 이러한 생각을 이해하지 못하는 듯 했어. 그는 수년간 겪어왔던 엄청난 업무량을 즐기는 사람이었고, 우리 4인 가족은 그가 일했던 것에 대한 대가로 생활을 이어나갈 수 있었지. 하지만 그가 새롭게 시작한 분야에서 그는 큰 성과를 내지 못했고, 가장으로서의 그의 역할은 급작스럽게 감소하였어. 그는 자괴감을 느끼기 시작했고, 스스로를 불필요한 인물로 간주하면서 감정적으로 자신을 잃어감에 따라 신체적으로도 포기한 상태에 이르게 된 거지. 그리고 결과적으로 우리의 결혼 관계 속에서 뛰쳐나가고 우리 가족을 끝내버리고 싶어 하게 된 거야.

 

하지만 난 그 말을 믿지 않았어.

 

나는 이렇게 말했지: “아이들이 부모의 행복에 대해 걱정하는 과정에서 나이는 중요하지 않아. 하지만 당신이 당신으로 인해 아이들의 생활수준을 악화시키고 그들로 하여금 심리치료를 다니길 원하는 상호의존 관계를 만들길 원한다면 아이들의 나이는 중요한 결정 요소가 될 수 있어. 사실 모든 관계는 휴식을 필요로 하는 경우가 많아. 우리가 어떻게 해야 당신이 우리와 적정 거리를 유지하면서도 우리 가족이 아프지 않을 수 있을까?”

 

그는 말했어.

 

네팔로 여행을 떠나. 뒤뜰에 유르트(몽골시베리아 유목민들의 전통 텐트)를 지어. 주차장을 작업실로 만들어. 당신이 원하던 그 드럼 세트를 사던지 해. 모든 것을 해도 좋아. 하지만 당신이 지금 말하는 것처럼 무책임하게 뒷걸음치는 행동으로 제발 우리 가족을 아프게 하지는 말아줘.”

 

그리고 나서 나는 내 말을 반복했어, “우리가 어떻게 해야 당신이 우리와 적정 거리를 유지하면서도 우리 가족이 아프지 않을 수 있을까?”

 

 

어떻게 해야 책임감 있는 거리를 둘 수 있는 걸까?

 

나는 거리를 두고 싶은 것이 아니야.” 그는 말했어. “나가고 싶을 뿐이야.”

 

내 심장은 뛰기 시작했지. 다른 여자가 있는걸까? 마약? 양심에 어긋나는 비밀? 하지만 나는 스스로를 진정시켰어. 고생하고 싶지 않았기 때문에.

 

대신 나는 내 책상으로 돌아가 구글에 접속했지. “책임감 있는 이혼을 검색하자 긴 리스트가 검색 창에 떴어. 나는 다음과 같은 검색어를 포함 시켰어: 누가 어떤 신용카드를 사용해도 되는 것일까요? 이혼할 경우 아이들이 만날 수 있는 부모는 둘 중 누구인가요? 누가 어떤 열쇠를 갖고 있어도 되는 건가요?

 

나는 리스트를 쭉 훑어본 뒤에 그에게 보여줬어.

 

그는 이렇게 대답 했지: “열쇠? 우리 집에는 열쇠가 없어.”

 

나는 평정심을 유지했어. 그의 눈에서 아픔을 볼 수 있었기에. 내가 알고 있는 그 아픔을.

 

, 당신의 의도를 알겠어.” 그는 말했지. “당신은 내가 심리상담을 받게 만들고 싶은 거야. 당신은 나를 보내고 싶어하지 않는거야. 그렇기에 아이들을 이용하여 나와 맞서려고 하는 거지.”

 

나는 그렇게 말한 적이 없어. 나는 그저 우리가 어떻게 해야 당신에게 당신이 필요로 하는 거리를 줄 수 있냐는 거야.”

 

그 얘기 좀 그만해!”

 

그는 떠나지 않았어.

 

대신, 그는 여름 내내 믿을 수 없는 사람이 되어버렸지. 그는 6시 이전에 귀가하는 습관을 버렸어. 그는 늦은 시간까지 밖에 있으면서도 전화하지 않았어. 그는 우리의 74(퍼레이드, 바비큐, 불꽃놀이)에 다른 지인의 파티에 참석하면서 그날을 완전히 망쳐버렸지. 그가 집에 있을 때도 그는 멀리 있었어. 그는 내 눈을 바라보지 않았고, 나에게 생일 축하해라고 말해주지 않았어.

 

하지만 나는 그의 행동에 놀아나지 않았어. 나는 내 길을 묵묵히 걸었고, 아이들에게는 아빠는 다른 어른들이 자주 그런 것처럼 어려운 시기를 겪고 있어. 하지만 우리는 여전히 한 가족이야. 그 어떤 일이 있어도.”라고 말해주었지. 나는 고생하지 않을 것이라고 다짐했고, 아이들도 같은 마음이었어.

 

내 친한 친구들은 내 편이 되어주기는커녕 격분했어. “너는 도대체 어떻게 그런 행동을 받아드릴 수 있는 거니? 쫓아내버려! 변호사를 고용해!”

 

하지만 나는 나의 길을 걸었어. 이 남자는 분명 나를 아프게 하고 있어. 하지만 그의 문제는 내가 해결할 수 있는 것이 아니었던 거지. 그가 문제를 해결하는 동안 내가 방해가 될 수는 없었어.

 

당신이 나에 대해 어떤 생각을 가지고 있는지 알아: 만만한 사람으로 보이겠지. 약하고 겁에 질려있으면서도 나의 가족을 유지하기 위해 모든 것을 하는 그런 사람. 아마 매를 맞아도 참을 것 같은 그런 사람이겠지. 하지만 나는 그런 사람이 아니라는 점을 분명하게 말할 수 있어. 나는 1,500파운드에 달하는 말들을 트레일러에 싣고 몬타나 지역에서서 여름 내내 말을 타는 사람이야. 나는 피토신을 주입해가면서 자연분만을 했어. 이후에 제왕절개를 했을 때는 추가적인 약을 먹지도 않았지. 심지어 나는 전기톱을 다룰 줄도 알아.

 

나는 그저 내 자신이 남편의 문제의 핵심 속에 존재하지 않는다는 사실을 깨달았을 뿐이야. 그가 그 핵심 속에 존재했던 거야. 그가 만약 그의 문제를 결혼 문제로 이끌어나갈 수 있었다면, 그는 우리의 문제를 언급했을 거야. 그런 상황이 발생하지 않기 위해서 나는 그의 영역에서 사라져야만 했던 거지.

 

나는 그에게 개인적인 약속을 했어. 6개월의 기간을 주겠다고.

 

좋은 날들도 있었고, 나쁜 날들도 있었어. 좋은 날들의 나는 간선 도로를 탔지. 그의 비난과 권투선수마냥 나를 때려대는 언행을 무시했지. 나쁜 날의 내 마음은 8월 햇살 아래 아이들이 스프링클러 사이를 뛰어다니는 모습을 보며 곪아갔어. 내 마음은 그에게 분노했지. 하지만 나는 약해지지 않았어. 비록 나의 남편이 당신을 더 이상 사랑하지 않아.”라고 말할 때 개인적으로 받아드리지 마.”라고 충고하는 것처럼 비참한 것은 없지만, 가끔씩은 정확히 그 말을 머릿속에 되새길 필요가 있어.

 

최후통첩, 고함, 오열이나 구걸 같은 행동을 하는 대신 나는 그에게 선택권을 주었어. 나는 여름 동안 가족이 즐거워할 수 있는 환경을 만들어주었고, 그 곳에 그를 초대했지. 그가 초대에 응할지 여부는 상관없었어. 그의 선택이었기 때문이야. 그가 오지 않기로 결정을 한다면, 우리는 그를 그리워하겠지만 여전히 괜찮았을 거야. 하지만 고맙게도 우리는 함께할 수 있었어.

 

맞아. 당신이 생각하는 것처럼 나는 그를 앉혀놓고 우리 곁에 남아주길 설득하고 싶었어. 나를 사랑해주길 설득하고 싶었어. 우리가 이룬 것들을 지키기 위해 싸우자고 주장하고 싶었어. 분명 그렇게 하고 싶었지.

 

하지만 그렇지 않았어.

 

나는 바비큐를 구웠어. 레몬에이드를 만들고 4인 식탁을 차렸어. 그리고는 먼 곳에 서서 그를 사랑했어.

 

그러던 어느 날, 그는 일찍 퇴근해서 집에 와 잔디를 깎고 있었어. 남자는 떠날 집의 잔디를 깎지 않지. 적어도 이 남자만큼은. 그는 8년 동안 망가져 있던 문을 고쳤어. 집 대문에 페인트를 칠해야 한다고 말했지. 우리 집의 대문을. 그는 다음 겨울을 대비하기 위한 목재가 필요하다고 했어. 미래에 대해 언급한 거야. 그는 조금 씩 조금 씩 미래에 대해 언급하기 시작했어.

 

추수감사절이 된 날 우리의 문제는 해결되었어. 내 남편은 겸손하게 고개를 숙인 채 말했지. “내 가족이 있어 감사합니다.”

 

그가 돌아왔어.

 

나는 그가 잃어버린 것이 무엇인지 알 수 있었어: 자부심. 그는 자신에 대한 자부심을 잃었어. 어쩌면 우리가 중년이 되었을 때 자존심에 타격을 입게 되면 더 이상 스스로가 예전처럼 빛나고 젊지 않다는 것을 깨닫게 되는 것일지도 몰라.

 

우리의 인생이 방황을 시작하고, 우리가 어릴 적 듣던 신화가 그저 그런 이야기였다는 사실이 밝혀질 때 알게 되는 진실은 우리가 인생에서 겪는 가장 큰 빌어먹을 펀치로 느껴질 지도 몰라: 우리에게 행복을 가져다주는 것은 배우자나 땅 또는 직장이나 돈이 아니야. 그래 물론 부와 명예를 쟁취하는 과정에서 이룬 성과나 인생 속 관계들이 우리의 행복감을 높일 수는 있겠지. 그래 맞아. 하지만 행복은 그 자체 내에서 시작되어야 해. 다른 것에 의존하여 행복을 찾는 것은 치명적일 수 있어.

 

내 남편은 신화 속에서 길을 잃었던 거야. 하지만 돌파구를 찾아낼 수 있었지. 우리는 이후에 계속해서 많은 어려운 대화를 나눴어. 실제로 나의 시련에 대해 글을 써보라고 권유한 것 또한 그였어. 같은 시점에 다다를 다른 커플들을 도와주기 위함이었지. 두려움과 막막함을 느끼는 그런 사람들을 위해. 일시적인 감정이 영원할 것이라고 여기는 그런 사람들을 위해. 쉽게 나가버리고, 도망쳐버릴 수 있을 것이라 믿는 그런 이들을 위해서 말이야.

 

남편은 나와 거래를 하려고 했던 거야. 그는 그가 고통 받는 것이 내 탓이라고 생각했고, 그의 개인적인 수치를 나에게 해소하려고 했던 거지.

 

하지만 나는 고개를 숙였어. 그리고 기다렸지. 그러자 해결이 됐어.

 

출처: New York Times - Modern Love

원문: “Those Aren’t Fighting Words, Dear,” Laura Munson, July 31, 2009

번역: 0829 (http://blog.naver.com/0829_love)

 

전체 추천리스트 보기
새로운 댓글이 없습니다.
새로운 댓글 확인하기
글쓰기
◀뒤로가기
PC버전
맨위로▲
공지 운영 자료창고 청소년보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