게시판 즐겨찾기
편집
드래그 앤 드롭으로
즐겨찾기 아이콘 위치 수정이 가능합니다.
부끄러움을 팝니다.
게시물ID : humorbest_180178짧은주소 복사하기
작성자 : 마멀레이드@
추천 : 19
조회수 : 1707회
댓글수 : 1개
베스트 등록시간 : 2007/10/17 17:52:15
원본글 작성시간 : 2007/10/16 23:45:13
나는 20대 중반의 한 남자이다. 대학을 졸업한 후 작가의 꿈을 가지고 여러 단편소설들을 내놓아봤으나 언제나 항상 날아오는 답변들은 차가웠다. '아이디어는 괜찮은데 뭐랄까,인물들간의 상태라 해야하나? 갈등관계 같은것이요. 이런게 제대로 안잡혀있고......무언가를 다루는데 사전지식도 좀 부족해보이고. 음......조금만 다듬어 오면 괜찮을 것 같은데요' 그런식으로 퇴짜를 맞은게 제법 된다. 다듬어오면 밀리언셀러 되겠네. 언젠가는 베스트셀러를 한편 떡하니 내놓고픈 꿈을 위해 오늘도 나는 소재를 찾으러 거리를 거닐었다. 정해진 목적지는 없었다. 그냥 내 발이 따라가는데로 따라갈뿐...... 내 발이 멈춰선 곳은 한 놀이동산이었다. 규모도 제법 우리나라에서 다섯손가락 안에 들어간다는 한 놀이동산. 애초에 놀이기구를 탈 마음은 없었기에, 나는 입장권을 끊고 들어가서 벤치에 앉아 사람들을 하나씩 바라보았다. 부모님의 손을 잡고 온 아이들도 있었고, 대학생 같아 보이는 사람들도 많이 보였다. 그리고 주위에서 행복해 하는 연인들..가족들.. 그 와중에 혼자 앉아있는 내가 참 이질적으로 느껴졌다. 그렇게 주위를 둘러보다가 맞은편 벤치에 한 남자가 앉아서 나처럼 사람들을 둘러보고 있는것을 보았다. 내가 그 남자를 쳐다보자 그 남자도 나를 쳐다보았다. 우연히 눈을 마주쳤는데, 그 때 본 남자의 인상은 매우 수척해보였다. 한순간 호기심이 동해서 나는 그 남자에게 다가갔다. "이런곳에서 혼자 무엇을 하고 계시나요?" "무엇을 팔려고 왔습니다." "이런데서 장사를 하신다면 풍선이나 가면같은 장난감을 파시는 분이신가요?" "아뇨, 제가 팔려고 하는것은 남다릅니다." "무슨 기발한 물건이라도 있으신 건가요?" 남자가 희미하게 웃어보였다. 남자의 웃음 때문에 남자의 면도하지 않은 수염들이 더욱 도드라져 보였다. "네. 어떻게 보면 꽤 기발하죠. 아니, 이 물건을 파는 사람은 전세계를 다 뒤져도 얼마 없을겁니다. 아니면 저 뿐일지도 모르죠." "호.....무엇을 파시길래 그러시는거죠?" "부끄러움입니다." "부끄러움요?" "네. 그냥 부끄러움입니다. 제가 가진 부끄러움을 남에게 팔려고 하는 것입니다." "음....흥미가 가는데요? 일단 이렇게 어색하게 서있는것보다는 앉아서 대화를 계속 해봅시다." 우리 둘은 서로 마주보며 앉았다. 옆에 앉기에는 왠지 모를 거부감이 들었기 때문이지만, 나는 이 사람의 눈을 보고 싶었다. 눈을 마주보며 이야기 하는것은 내가 좋아하는 것중 하나이기 때문이다. 남자가 자신의 이름은 B라고 말했다. 나도 나의 이름을 말해준 다음 못 끝낸 이야기를 이어나갔다. "그럼 B씨, 왜 당신은 부끄러움을 파실려 하는건가요?" "부끄러움을 가지고 싶지 않기 때문입니다." "아뇨. 그렇다면...더 옛날로 올라가서 왜 당신은 부끄러움을 가지게 되었나요?" B가 잠시 망설였다. 나는 B가 내 눈을 똑바로 쳐다보고 있음에도, 그의 망설이는 눈빛을 내 눈으로 읽을 수 있었다. B는 결국 체념하듯이 이야기하였다. "실은 제가 예전에 사람을 죽였습니다." "....사람을 죽였다는게 부끄러신건가요?" "아뇨. 그 사람은 죽어도 싼 사람이었기 때문에 제가 그 사람을 죽인것 자체가 부끄러운건 아닙니다. 제가 부끄러운 이유는 사람들이 모두 이 사람의 죽음에 초점을 맞추기 때문이죠. 이 사람이 얼마나 못된 사람이다 라는 그런 사실에 집중하기보단 이 사람이 언제 어떻게 죽었고, 누가 죽였느냐 라는 식으로 밖에 말을 하지 않기 때문입니다." "사람들이라면 당연히 사람이 죽었으면 그 죽음에 초점을 맞추게 되는게 당연한것 아닌가요? 그리고 당신이 부끄러워하는 이유와 그 사실은 별로 안어울리는것 같은데요." "요전에 제가 친구와 그 사람에 대해서 이야기를 한 적이 있습니다. 저는 그 사람에 대한 안 좋았던 점들을 이야기 하였지요. 그러나 그 친구는 그 사람의 대한 죽음을 둘러싼 의문점만을 제게 이야기 하더랍니다. 그 순간 저는 제가 왜 그사람을 죽였는가에 대해 회의감이 들더라구요. 죽으면 그 사람의 악행이 드러나 세상사람들이 욕을 하기는 커녕, 그를 모르는 사람들은 그 사실에 무심한 한편 그를 아는 사람들은 그가 죽었으니 그를 잊으려 하더라구요. 그건 제가 원했던 것이 아닙니다. 그러니까 그때부터 점점 제가 그 사람에게 또 졌다. 라는 생각이 들더군요." "그 사람에게 졌다는 그 마음이 당신을 부끄럽게 하던가요?" "네. 그렇죠. 부끄러움은 점점 제 몸속에서 커져갔습니다. 지워내고 싶었지만 그 사람이 제 머릿속에서 떠나가질 않는 한 그 부끄러움도 안지워질거라 생각하니 점점 무서워졌습니다." "그래서 그 부끄러움을 파실려하는 겁니까?" "네. 행여나 팔아치우면 없어질까 싶어서요." "하지만 그런 부끄러움을 누가 사가겠습니까?" "인생을 살면서 항상 자만해오고 오만해 하는 사람들에게 팔려고 합니다. 그 사람들이라면 사갈지도 모르죠. 애초에 자기자신은 부끄러움이 없었다고 믿을테니까." "말이 안되는것은 아니네요." 그렇게 우리둘은 아무말도 하지 않고 고개를 숙여 자기손만 만지작대고 있었다. 어색한 침묵. 나는 그 어색한 침묵을 깨기위해 B에게 말을 건넸다. "저는 작가입니다. 말은 작가지만 사실 이렇다할 소설한편도 쓰지 못한놈이지요. 출판사에 가면 번번히 퇴짜를 맞고 집에서는 부모님이 작가의 꿈은 잠시접고 취직공부를 하는게 어떻냐고 말하십니다. 아직 이래뵈도 제가 젊거든요..면도도 하고 괜찮은 옷도 빼입으면 괜찮다는 소리도 듣습니다. 그러다 소재거리를 찾으러 이 놀이공원에 오게 되어서 당신과 같은 사람을 만나니 참 재밌다는 생각이 드네요. 잘하면 아주 좋은 소재가 될 수 있을것 같기도 하고요." "그렇습니까? 그렇다면 그쪽에게는 다행인 일이네요." "네. 좋은 소재를 주셨으니 그 보답으로 차라도 한잔 대접하고 싶습니다." "아뇨...괜찮습니다. 보니까 그쪽도 돈이 별로 많아보이지 않는걸요." 나는 B의 말을 부정할 수 없었다. 내가 지금 돈이 없는건 사실이었으니까. 내가 아무말도 하지 못하자 B가 내게 이야기를 건넸다. "xx동 살인사건 아십니까?" 나는 B의 이야기에서 그가 그 살인사건의 범인이라는 것을 짐작했다. 하지만 그를 경찰에 신고하고 싶은 마음은 없었다. 내가 가만히 그를 쳐다볼뿐 아무말도 하지 않자 B는 다시 말을 이어나갔다. "현재 범인이 잡히지 않아 많은 어려움을 겪고 있는 그 사건 말입니다. 사실은 제가 범인입니다." 예상하고 있던 사실이라 전혀 놀라움의 기색을 드러내보이지 않았다. 그런 나를 B는 다소 실망스러운 눈으로 쳐다봤다. 아마 내가 소스라치게 놀라기를 바랬겠지. B는 내게 다시 말을 이었다. "안놀라시는것도 당연하겠죠. 아뇨. 지금 이 순간이 믿기지가 않으시겠죠. 어떤 이상한 사람이 거리를 활보하며 당신같은 평범한 사람한테 '내가 사람을 죽였다' 라고 떠들고 다니면 보통 그 사람을 미친놈이라 생각하지 살인자라 생각하지는 않거든요." 나는 B의 말을 더 이상 듣고 싶지 않았다. 처음에는 내 소설에 좋은 소잿거리가 될거라 생각하여 그의 말을 아무말 않고 들었는데, 점점 들으면 들을수록 이 사람 하는 말이 가관이라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나는 자리에서 일어나며 B에게 말했다. "실례지만, 이만 가봐야겠습니다." "역시 당신도 다른 사람들과 비슷한 반응을 보이는군요. 그래도 당신은 작가라고 하길래 뭔가 다를줄 알았습니다만은......인연이 닿으면 다시 만나게 되겠죠. 그때도 이렇게 이야기를 나눌 수 있었으면 좋겠습니다." "네. 그럼..." 나는 그렇게 거울에서 멀어져갔다.
꼬릿말 보기
전체 추천리스트 보기
새로운 댓글이 없습니다.
새로운 댓글 확인하기
◀뒤로가기
PC버전
맨위로▲
공지 운영 자료창고 청소년보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