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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월 그리고 나.
게시물ID : gomin_181625짧은주소 복사하기
작성자 : 라마티타
추천 : 1
조회수 : 299회
댓글수 : 2개
등록시간 : 2011/07/17 06:48:01


 나이 먹을 만큼 먹은 게 아니라서 반말 하면 안 되는데 옆에서 누가 자고 있어서 말을 짧게 해야 돼.
사실 친해지자는 의미니까 사이좋게 지내주세요.





 오빠가 하나 있어. 온살배기야. 나에게 있어 남매라는 건 남처럼 매정한 사이의 줄임말이야.
태어날 때부터 차별을 받았지. 오빠나 나나 갓 태어났을 땐 3.7kg 똑같은 무게였는데.

아들을 먼저 낳고 딸을 낳으면 좀 수월하다는 얘기가 있어.
어머니께서 줄기차게 말씀해 주셨지. 
정말 힘들게 낳았대. 오빠. 낳는 동안 눈이 돌아가기도 하고, 손톱이 다 빠지기도 했대.
정말 고통스러웠대.
날 낳았을 땐 어땠냐고 여쭈니
"며칠 묵힌 똥 싸는 기분"
딱 이 말씀만 하시더군. 넌 정말 편하게 낳았다. 그래서인지 애착이 별로 없는지도 모른다. 라고도.

오빠는 한 여름, 나는 한 겨울에 태어났어. 정말 극과 극이야.
외모도 완전히 달라. 오빠는 엄말 닮고 난 아빨 닮았지.
오빠는 풍채가 좋고 난 별로 그렇지 못해. 173cm인데 집에서 내가 제일 작아.

 난 돌 사진도 없어. 
어머니께서 원래 돌 사진은 첫째만 찍는다고 말씀하시긴 했는데. 오빠 돌 사진은 금테를 둘러서
화려하게 찍혀있고
난 생크림 케이크 오빠한테 뺏기는 사진 밖에 없더군.
그래도 돌 잔치를 해 준게 얼마냐는 생각도 들어.
케이크 하나 뿐이었지만.


 오빠는 어릴 때부터 유난히 자주 아팠대. 비염에 천식에. 
나는 안 아팠대. 목욕탕 갔다 왔더니 눈병 걸려와서 온 가족한테 다 옮긴 것 빼면.
나 어릴 때 얘기를 하면 어머니께선 항상 눈병 얘길 하셨지. 
너 때문에 고생했다고. 오빠 때문에 밤잠 설친 거, 살 빠진 거, 속 상한 거 얘긴 안 하시더라.
나 때문에 눈병 걸린 얘기만 하셨지.

 유치원에 갔을 때 난 입학 사진 졸업 사진도 없어. 
오빠 사진은 계절 별로 잔뜩 있지.
같이 놀러 가면 오빠는 항상 양손에 기념품과 먹을 걸 들고 있었어.
난 없었지.
유치원에서 그림을 그렸는데, 선생님이 가정방문을 하셨더라구.
얘는 꼭 미술을 시켜야 한다고.
근데 나 미술학원 다닌 적 없다.
그 말씀 듣고 어머니께서 해주신 건 하필이면 십팔색깔 크레파스 구입. 이십사색도 아니고. 하필.
지금 생각하니 웃기다. 하하 

 국민학교 들어갔을 때도 내 입학 사진은 없다.
오빠는 국민학교 들어가고 참 바빠졌지. 웃기게도 오빠가 미술을 하고 싶다고 하니
돈 없다고~ 없다고 크레파스 하나 사주시던 어머니께서 냉큼 비싼 학원 등록비를 내시더군.
이젤이니 뭐니 장비도 잔뜩 사다 주셨음. 오빠, 한 달 다니고 때려침.
음악을 하고 싶다고 하니 첼로를 사 주시고, 학원도 보내주시고, 개인 강사도 붙여줬어.
한 학기 합주부에서 깔짝대더니 때려침. 첼로 지금도 잉여잉여 중 :D 
난 졸라게 빌어서 하모니카를 받았다. 겁나게 불어서 입술이 다 부어터질 정도.
오빠 피아노 가르친다고 피아노도 샀었지, 참. 오빠가 안 건드려서 내가 먹긴 했다만...
전자 피아노였어. 진짜배기 피아노와는 비교도 안 되는 음질이지.
하지만 난 정말 행복했다. 오빠가 쓰다 버린 거였지만, 그렇게 큰 내 꺼는 없었거든. 

 오빠가 동상을 받아오면 고기를 먹었어.
내가 금상을 받아오면 대상이 아니라고 혼이 났지.
오빠가 장려상을 받아오면? 케이크를 사오셨어.
내가 우수상을 타 오면? 최우수상이 아니라고 까였지. 키키..
어릴 때 상장 받은 거 보면 대상도 없고 최우수상도 없어. 다 우수 아니면 은, 동.
그거 내가 매직으로 다 바꿔놨더라. 우수상 앞에 최 써놓고. 은의 ㅇ은 ㄱ으로 ㄴ은 ㅁ으로.
동은 동 같은 금이라고 써 놨더군.

 난 항상 밥을 잘 못 먹었던 것 같아. 1시간 씩 깨작거렸지. 
매일 밥상머리에서 맞았어.
오빠는 요리를 잘 했어. 볶음밥을 하면 어머니께선 눈물까지 글썽이시며 드셨지.
에드워드 퀀이 상다리 휘게 요리를 해다 바쳐도 어머니께는 부피 큰 음식물 쓰레기일 걸.
내가 하면 안 드셨지. 맛이 없대나 뭐래나.
항상 오빠, 오빠, 오빠, 오빠 뿐이었어.
티셔츠 한 장을 사도 난 시장표, 오빠는 9만원 10만원 하는 백화점표.

 초등학교를 졸업할 때 어머니께서 오셨어.
오빠 졸업식엔 화환을, 내 졸업식엔 학교 정문에서 파는 떨이 꽃다발을 사들고.
그래도 그게 얼마야.
졸업식이 끝나고 어머니께서 사라지셨더군.
집에 왔더니 문이 잠겨 있었어.
열쇠가 없어서 난 밤이 깊도록 옥상에 앉아 있었지.
학부형들과 자장면을 드시러 갔었대.

 난 똑똑했던 것 같아.
3살 때 신발끈도 혼자 묶었고, 옷도 혼자 입고, 젓가락질도 혼자 했대.
동네 혼자 나가선 할아버지들하고 달이 뜰 때까지 수다를 떨다가 잠들어 업혀 들어오곤 했대.
말도 잘 하고, 글도 제법 썼고, 그랬대.
내가 부모면 나같은 자식이 나오면 정말 잘 해줄 것 같은데 그렇지도 않나 봐.
사랑하는 아들보다 별로 안 이쁜 딸이 잘 하는 건
꼴보기 싫었나 봐.

칭찬을 들어본 적이 없어.


 중학교 들어가서는 교복을 입는다는 생각에 들떴지. 오빠 교복은 완전 맞춤으로 제작해 주셨거든.
솔직히 거까진 기대 안 했다. 근데 남이 입던 누리끼리한 거 주워오셨... 어깨 뽕도 들어가 있더라.
세상에. 난 교복을 입은 게 아니라 걸고 다녔다, 몸에다. 
 공부 안 했어. 재미도 없었고.
그렇다고 담배를 피우거나 술을 마시거나 남자들과 어울리진 않았어.
난 원래 들판을 뛰노는 걸 좋아하거든.
혼자 산행을 하거나 했지.
만화방에 틀어박혀서 만화를 보거나.
그러다가
중간고사 평균 60점이 나왔어.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
그 때 어머니께서는 몹시 화를 내셨던 걸로 기억해.
몸을 팔아서 살라고 하셨지.
너 따위한테 먹일 물도 없다고. 영계라서 돈 잘 벌거라고. 다리 벌리고 돈 벌어서
니 하고 싶은대로 하고 살라고.
난 니가 태어나는 순간부터 정말 싫었다고.
그 때 처음 자살을 시도했어.
2층 침대 기둥에 밧줄을 걸고 매달렸지. 발이 땅에 안 닿더라.
더럽게 아프고 더럽게 무섭고 죽겠더라.
죽으려고 작정한 거였지만 그래도 죽겠더라.
다행히 밧줄고리가 내 머리보다 커서 난 빠져나올 수 있었지.
나 참 근성없다. 

교우관계도 좋지 못했어.
사회성이 너무 결여되어 있었기 때문에 말도 잘 못했지.
혼자선 참 잘 놀았어.
나비도 보고 꽃도 보고.

졸업식을 맞이했지.
이 때도 어머니께서 오시긴 했지만 행방불명.
또 마침 열쇠가 없었고 난 그네를 5시간이나 탔다.
밤이 으슥해 돌아가니 학부형들과 보쌈을 드시러 가셨다더군.


 고등학교에 들어갔어.
이땐 좀 나았던 것 같아.
정말 좋은 친구를 만났거든.
남자친구도 사귀어보고.
나름 나만의 하이스쿨패너지(high school fantasy)를 실현하고 있었지.
RPG에 빠져서 허송세월을 보내긴 했지만, 후회하진 않아. (아니 솔직히 후회 해.
그리고 지금도 그 게임을 좋아한다는 게 정말 아오....)
그 때 처음으로 놀이터에서 술을 마셔봤네.
이 때 좀 인생을 혼자 마구 망쳐놓았어. 요게 아쉽다. 많이. ㅋㅋ

 오빠랑 같은 중학교 고등학교 다녔는데, 오빠 정말 공부를 잘 했거든.
전교 톱클래스였어.
다들 당연히 서울대, 못하면 연고대나 가겠지 할 정도였어. 카카카
연고대님들 미안해.
그런데 수능을 조져서 서연고 다 못갔어. 서울 4년제 명문에 드가긴 했지만.


고등학교 때까지 오빠한테 맞았어. 밖에 나가면 모범생에 우등생, 착하고 성실한 학생 이미지로
살아야 했기에 스트레스가 많았나 봐.
항상 나를 비웃고, 욕하고, 깔보며, 때렸지.
피도 많이 봤다.
뼈도 많이 꺾여보고.
멍도 많이 들었지.
부모님은 근데 말릴 수 없었어. 오빠 덩치가 정말 태백산맥.
그래도 참 다행이야, 대학에 가서 오빠랑 떨어졌거든. 키키
근데 오빠, 돈 떨어질 때 만 집에 연락을 하더군. 매달 70만 원 이상 용돈을 타 썼어.

내가 부모면 오빠 정말 싫을 것 같아. 오빠가 어머니에의 호칭을 접은 게 중학생 무렵이었거든?
매일 "할망구, 미친 할망구, 부모면 자식을 책임져야지. 밥 내놔, 돈 내놔." 이랬어.
난 정말 내 자식이면 호적에서 파고 고자를 만들었을걸. 근데 어머니께선 해달라는 대로 하셨어.
미치겠더라.

수능을 봤어.
돌아오니 문이 잠겨 있더군.
밤 9시가 넘도록 계속 그네를 탔어.
어머니를 만났지. 파마하고 오셨다네.
고생했다고 김밥지옥엘 데려가려고 하셨지.
김밥지옥에서 뜨끈한 오뎅국물 먹을 생각에 난 벌써부터 심장이 쿵쾅거렸어.
그런데 가는 길에 아버지를 만났지.
아버지 언급이 왜 거의 없냐면,
같이 산 시간이 무척 짧거든.
고3 때는 함께 살았어서 말야.
아무튼 아버지께서 딸이 수능을 봤는데 김밥이 뭐냐고 하시더군.
울컥했다.


해물탕 먹고 집에 왔어.
수능 조져서 오뎅국물만 마셨어도 ㄳㄳ였는데.

아무튼 그렇게 살았지.
고등학교 졸업식 때도 어머니께서 산화하셨지만 내게는 열쇠가 있어서 걱정이 없었다.
크크크....


대학 뭐 보잘 것 없는 데 붙어서 대충 다녔다.
부모님께서 용돈을 부쳐주셨는데, 자그마치 30만원 씩.
차곡차곡 모았다. 알바도 하고. 옷이나 화장품, 미용에 관심이 없어서 그런 데 들어가는 돈도 없었지.
모은 돈으로 외국에 처음으로 혼자 여행도 갔다. 
신나게 살았지.
연애도 많이 하고.
밤새서 PC방에서 게임하고 놀고.
술도 맘껏 마시고.
즐거웠어.






그러던 어느 날 부모님이 서울에 오셨더군.
깜짝 놀랐다.
항상 젊기만 하던 분들이 많이 늙으셔서.
그 때 갑자기 눈물이 쏟아지더라.

나한테 모질게만 군 사람이 늙은 게 반갑기는 커녕 말야.

그때 깨달았다.

난 정말 빌어먹을 년이지.
부모님의 흰 머리를 보자마자
부모님이 내게 모질게 구신 것 말고도
해주신 게 아주 많다는 게 기억이 난 거야.
매일같이 다쳐서 울고 있으면
어머니께서 항상 내 곁에 있었어.
열이 조금이라도 나면 주무시지도 않고 내 곁에 계셨지.
식욕이 없을 땐 한술이라도 먹이려고 정말 맛있는 반찬 많이 해 주시고 그랬어.
많이 안아주셨지. 많이 사랑해 주셨지.
 오빠를 더 좋아한 건 어쩔 수 없다 싶다.
처음으로 가진 자식, 처음으로 낳은 자식, 엄마를 쏙 빼닮은 자식이었으니.
때로는 남편, 때로는 원수, 때로는 남의 자식인 남자를 닮은 나를
온전히 사랑하기는 조금 힘들 수도 있었을 거야.
엄마가 날 낳았을 땐 내 또래였어. 
요즘 20대들 봐, 얼마나 귀여워 ~ 보송보송하지.
29살 막 이러면 귀엽잖아.
그런 20대일 때 아이를 낳았으니, 시행착오를 겪는 게 당연하지. 당시엔 뭐 20대가
지금처럼 마냥 귀여운 나이는 아니었겠지만, 20대는 20대 아냐? 하하... 
아버지도 그래. 나이 처먹을 만큼 처먹은 자식이 지 갈길 안 가고 아버지 등골에 빨대 꽂고
액기스를 쫙쫙 빨아먹고 있으니 얼마나 힘드실까.
이런 떨거지들 키우느라 사랑하는 자식들과 함께 살지도 못하셨으니 얼마나 외로우셨을까.


난 왜 그토록 삐딱하게 생각했을까.

난 왜 그토록 내게 피와 살과 뼈를 나눠주신 분을 원망만 하면서 내 자신을 괴롭혔을까.

남들보다 편하게 사니까 배가 불러서, 불행해지고 싶어서 헛짓거리를 했다고 밖엔 생각이 안 들어.

이런 상병신이 또 어딨을까.




그 때 울면서 어머니 아버지께 사랑한다고 했다.

처음이었다. 



처음만 어렵지 그 뒤로는 쉽더군.

무뚝뚝하고 재미없는 딸년에서 찌질하고 수다스러운 딸이 된 거야.






대학을 졸업하고 시시껄렁한 데서 일하다가 때려치우고 집에 빌붙으러 갔지.
가서는 동물을 몇 마리 끌어들였어.
시장에서 샀지.
물론 조건이 있었다.
똥, 오줌 내가 치우긔 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

어머니께서는 여느 어머니들과 다를 게 없더라.
자식이 벌여놓은 일 다 갈무리하시고 말야. 캬캬
정말 사랑으로 두 마리 악마같은 짐승들을 보살피시더라. 
사실 그 녀석들은 나의 클론이지. 클론 원 투.
먹고 싸고 앙탈 부리고 자는 거 외에 할 줄 아는 게 없는. 흐흐.... 



나이라는 게, 세월이라는 게 이런 건가 봐.
요즘엔 내가 정말 죽을 지경이야.
어머니께서 나만 보면 사과를 하시거든.
너한테 좀 더 잘 해줄걸, 하시면서.


막말에 차별이 좀 있긴 했지만 내가 어머니를 누구보다도 사랑하고 있다는 걸 보면
그것도 다 별 거 아니었던게지. 

다 필요없어, 솔직히.
건강하게만 , 살아주셨으면 해.


오빠도 요즘엔 피자 주문하면 반은 나 주더라. 내 지갑에서 반 가격이 없어지긴 하지만. 개자식.
고등학교 다닐 때까지 그 자식 그놈 그거 추접이 그거, 맛있는 반찬에 침 뱉었다. 나 못 먹게 하려고. 
오빠나 나나 참 병신같다.
사람이 살면 얼마나 산다고, 80 산다 치면 1/4의 시간을 날려 먹고 말야.




난 요즘 행복하다는 기분이 든다.
쥐뿔도 없지만,
여전히 병신이지만,
옛날만큼 
미친개쓰레기허접찌질잉여잉여메가톤유니온림스키코르사코프맨해튼뉴올리언스블라하욕쟁이할망구는만두를싫어해만두를먹다가배탈이나서족발을들고언덕위에올라선병신이 아니라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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